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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0구간<삼막골 갈림길-괘방령>

 

 

삼막골 갈림길-화주봉-질매재-바람재-황악산-괘방령 21,4km(2003.11.1)

 

 

백두 1구간(천왕봉-성삼재)과 2구간(성삼재-여원재)에 이어 3번째 맞이하는 1박 2일의 대간 종주날이다.11월 1일(토) 오후 4시 30분,한양프라자 앞에 김익수,김유건,신남석,이재화,전기환,최금구,한정문 8명이 모였다.병원 일 때문에 30분 늦게 합류한 황세를 싣고 만덕으로 가면서 손의선 회원과 또 서김해에서 강호철 회원을 태웠다.그러는 사이 서마산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김현기 회원은 우리가 늦게 출발한데다 차량정체 때문에 무려 1시간 가량 하릴없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6시 현기를 봉고에 태우고 부마고속도로로 스며들었으나 현풍에 가까워지면서 차량은 거북이 걸음이었다.가까스로 북대구를 빠져나와 왜간을 지나면서 차량소통은 원활해지기 시작했다.아마 이번 주말 마지막 단풍을 보려는 단풍 인파에다 묘사 인파가 겹친 듯하였다.김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오자 해인산장의 김용원 씨에게 9시 30분 쯤 도착할 거라며 흑돼지 숯불구이를 준비해달라고 휴대폰을 날렸다.

 

김천시 지례 버스정류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903번 도로를 타고 부항면으로 들어섰다.부항령 밑 삼도봉 터널로 빠지는 왼쪽 도로를 지나쳐 해인리로 들어간다.그런데 산골짝 도로가 다 그렇긴 하지만 그 길이 그 길 같아 어둠속에서 해인산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헷갈렸다.제법 반듯한 길이라 들어서고 보면 농로가 나온다.몇 차례 들락날락 하다 해인농원을 지나 해인산장 들머리에 다다른 봉고는 멈춰서고 말았다.


부산번호판의 승용차 한 대가 시멘트도로 끄트머리에 바퀴가 달랑 빠져 옴짝달싹 못하고 전전긍긍 굉음과 함께 연기를 내뿜고 있는 탓이었다.우리의 봉고는 그 승용차를 피해 해인산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내려 승용차를 밀어올려보기로 했다.그러나 운전석 쪽 바퀴가 허공에 걸려 돌을 고이고 차를 들어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기묵 아우가 운전석에 있는 사람을 보더니 "상근이 아이가?"하며 반색을 하는 게 아닌가.그러자 그는 차문을 열고 나오면서 황세를 보더니 "황세 형님 아인교."하며 황세의 손을 덥썩 잡는다.이어서 재화도 상근이를 알아보고 "아니,여기서 웬일이야." 하며 뜻밖의 장소에서 예기치 않은 동문을 만난 것을 놀라워했다.괴정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정상근 동문은 23회 기묵 아우와 동기였고,저 아래 지례가 고향인데 친지를 이곳 해인산장으로 초대하였다는 것이다.대덕이 고향인 나도 상근 아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해인산장으로 가 김용원 사장에게 차를 끌어내달라고 부탁했다. 해인산장에는 상근이 친적들이 먼저 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지례 흑돼지 참숯구이를 들며 소줏잔을 들고 있는 회원들과 군모를 눌러 쓴 김용원 해인산장 사장이 써빙을 하고 있다.

 

해인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야외에 마련된 방갈로 의자에 빙 둘러 앉았다.참숯을 피우고 그 위에 석쇠를 얹은 뒤 참기름을 발라 듬성듬성 썬 지례흑돼지를 앉혀 불길이 피어나도록 돼지 생고기를 익히면 기름이 지글거리며 담백한 맛의 숯불구이가 완성된다.혀끝을 와 닿는 구수하고 쫀득하며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의 맛-그 맛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자칭 베이스캠프 매니저(?)라는 김유건 동기가 양푼이에 담긴 흑돼지를 집게로 집어 석쇠에 내려놓는다.숯불의 불길은 벌겋게 타오르고 해인산장의 밤은 깊어만 간다.황세와 나는 고기를 한 점 집어들고 의선이는 노란 배추잎에 고기를 싸고....잠시 방갈로 밖으로 나오자 주먹만한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상큼한 골바람이 코끝을 스친다.내일의 종주는 잊어버리자.오늘은 맘껏 소줏잔을 기우리며 이 가을밤을 만끽하자.

 

 

우리들은 흑돼지 숯불구이를 들면서 2주일 전 해인산장 김용원 사장이 부탁한 회를 내놓았다.재화가 준비한 모듬회는 아이스박스 3개분 어치였다.그때 김 사장은 부산 동대신동 출신의 아내를 얻은 탓에 부산의 명물회를 �잊어했다.하기야 이 첩첩산중에 회를 맛볼 기회는 전무했으니 우리한테 회타령을 했고 회를 가져오면 지례 흑돼지와 바꾸자(?)는 이야기까지 선선히 하게 됐다.


그런데 정작 회를 건네자 반가워해야 할 김 사장은 시큰둥하여 뭔가 석연치 않는 분위기였다.고맙다는 말도,잘 먹겠다는 말도 없었다.회타령은 우리가 한 게 아니라 김 사장이 했는데,영 분위기가 썰렁하기까지 했다.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아이스박스에 든 회 1박스를 말도 없이 정상근 후배한테 선심까지 썼다는 것이었다.상근이한테 건네준 회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의 소행이 너무 약삭발라 우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 다음날 새벽 우리는 산행준비에 바빠 베이스캠프 매니저,유건이한테 해인산장에서 보낸 숙박료와 식대를 계산해달라고 미루고 종주에 들어갔다.그런데 질매재에서 기묵이의 봉고를 다시 만나 점심을 들면서 유건이한테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너무 기가 찼다.식대며 방값을 1원 한푼 깎지도 않고 그대로 계산하더라는 것이었다.우리가 식대와 방값을 아낄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부산에서 따로 장을 보아 회를 장만하고 그 먼길을 공수해왔는데,인사치례 한마디 없이 싹뚝 제 계산대로 해치웠으니 우리는 몹씨 기분이 상했다.다들 "허,그참 몹쓸 양반이로구먼, 청계천에서 삐댄 장사꾼이 어딜 가겠나!"하며 혀를 찼다.아 참 한 대목이 빠졌구나.술자리를 파하고 방안에 들어왔을 때 김 사장은 맥주 3병을 갖고와 자기가 한 턱 내는 거라며 선심을 쓰기는 했다.아마 이것이 우리가 회를 장만해온 답례였던 모양이다.

 

밤 10시가 넘어서 우리는 방갈로에서 자리를 떳다.내일 아침 새벽 4시 산행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세 개의 방이 우리한테 배정됐다.우리가 들어간 방은 황토방으로 따뜻하게 군불이 지펴져 모처럼 시골방에서 두 세시간 푹 잠을 잘 수 있었다.그러나 재화와 의선이 호철이와 금구는 큰 방에 앉아 김 사장과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호철이가 동갑내기인 김 사장과 서로 말을 터놓고 지내자며 호쾌하게 웃자,김 사장이 한 턱 내는 거라며 맥주 3병을 돌리고,이에 질쎄라 재화가 다시 맥주 3병으로 되받아치고...나는 밀려드는 졸음에 그만 녹아떨어지고 말았다.

 

[삼막골 갈림길에서 금구를 중심으로]
 

11월 2일 일요일 아침,3시 곤히 잠든 회원들을 깨운다.다들 일어나기 싫어 전전반측이다.이 시간이라면 집에서는 세상 모르고 잘 텐데...이게 무슨 꼴이람.


산을 찾는 일이란 도시생활의 일상을 될수록 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광속으로 달리는 차도 없고,도시의 소음도 없고,매캐한 도시의 대기도 없다.인위적인 회색빛 빌딩의 숲도,컴퓨터도 오락기도 없다.시정에서 마주치는 싸늘한 눈초리나 스트레스도 없다.산은 그런 것이다.우리네 삶의 현장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협조없이는 한 순간도 살지 못한다.그러나 산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남이 해주는 것을 버리고 제 스스로 하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지고 이 적막강산으로 오지 않았던가.

 

산행은 스스로 하는 D.I.Y(Do It Yourself)요 시쳇말로 셀프다.산행 리더가 길을 인도하지만 회원 스스로 걸음을 옮길 뿐이다.그 누구의 도움도 끼여들 여지가 없는 것이 산행이다.특히 대간 종주는 더욱 그렇다.10시간 이상을 오로지 제 발품에 의지하여 걸어낼 뿐이다.따라서 완주하고 나면 그만큼 뿌듯한 성취감을 맛본다.살아가면서 우리는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분노한다.자신이 제 아무리 완벽해도 자신과 연관을 짓고 있는 상대방이 일을 잘못하면 우리는 그와 함께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산행을 하면서 발품을 팔 때마다 성취감을 맛본다.이 성취감이 자꾸만 커져서 나중에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로 길들여진다.가풀막진 오르막이나 험난한 바윗길에서 우리는 긴장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나면 몸에서는 엄청난 힘이 솟구친다.우리 몸은 어느 새 바뀌게 되고 정신도 바뀐다.이런 순간의 연속이 산행이다.산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고요함이다.이 고요와 적막 그리고 안온함은 우리가 다시 세상사로 되돌아갔다 산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요체(要體)다.


나는 친구들의 고요함을 신중하게 깨뜨려야 했다.4시 30분,김용원 사장이 준비한 된장국으로 아침을 �딱 해치우고 기묵 아우의 봉고로 해인리주차장에 내렸다.해인산장에서 바로 삼막골을 거슬러 오르는 돌확길이 미심쩍어 삼도봉 아래 갈림길로 붙어 삼도봉에 올랐다가 삼막골 갈림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20분 동안 가파른 산길을 더터 삼도봉 아래 갈림목에 닿았다.

 

그러나 후미의 의선이는 웬일인지 감감 무소식이었다.나는 현기와 무전을 교신하면서 삼도봉으로 올랐다.삼도봉에는 칠흙같은 어둠만이 머물고 있었다.새벽 5시 15분,삼도봉에 오르고 나서도 25분이 지나 의선이가 올라왔다.엊저녁 대취한 그가 오늘은 힘이 부치는 모양이었다.바람부는 삼도봉에서 800미터 저 아래에 있는 삼막골 갈림길로 하산한다.기나긴 나무계단을 밟고 6시,드디어 오늘 구간의 시발점에 닿았다.삼막골 이정표를 뒤에 두고 이곳이 처음인 금구를 중심으로 어둠 속에서 디카의 셔터를 눌렀다.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해뜰 무렵은 늘 신비롭다.]


 

6시 3분,어둑어둑한 삼막골 갈림길(1,040m)에서 사진을 찍고 1,123.9봉으로 발품을 판다.40분쯤 더 가야 날이 샐 것 같다.랜턴에 의지하여 그냥 앞으로만 나아간다.주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새벽 산행은 그만큼 집중력이 높아지므로 부지런히 걸어내야 한다.6시 17분,1124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심한 잡목숲 내리막을 한참 내려섰다.밀목령인듯한 잘룩이에는 철 지난 억새가 스산하게 흔들리고 있다.6시 55분,지도상에 표시된 밀목령에 다다랐으나 갈림길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동진(東進)하던 대간은 여기서 90도로 꺾여 북진(北進),1,089.3봉으로 이어진다.1,089.3봉으로 가다 7시쯤부터 날이 새기 시작했다. 두터운 구름에 가려 해돋이는 보지 못했지만 날이 새자 삼라만상은 활기를 찾은 듯 했다.7시 16분,1089.3봉에 다다르자 또다시 잡목구간이 나타난다.저멀리 화주봉과 1,175봉이 눈 앞에 들어온다.7시 45분,1,111봉에 다다르자 등산로는 왼쪽 산허리를 돌아간다.사진은 암봉으로 이뤄진 1,175봉 바로 밑에서 대간 회원들을 카메라에 잡았다.맨 앞쪽에 황세,기환 그리고 익수가 햇빛이 눈부신 대간 길에 서 있다.

 

[1,175봉 능선에서 햇빛의 위대한 힘을 느끼며]
 

1,175봉 바로 아래 능선에서 포즈를 잡은 최금구,강호철,한정문 회원-밝고 맑은 아침 햇살이 온누리를 적셔 눈이 부시다.친구들의 얼굴도 금강석처럼 빛나누나.오! 햇빛의 위대한 힘이여.

 

[재화,의선,현기가 아침 햇살에 젖고 있다.]  
 

1,175봉 아래 능선에서 밝게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잠시 걸음을 멈춘 재화,의선이 그리고 현기.

 

[1,175봉 암릉길에 실족한 재화-위험천만이었다.]
 

드디어 기환이가 그토록 염려하던 1,175봉에 올라섰다.정수리는 그저 평범한 바위봉우리처럼 보였으나 좁은 정수리를 넘어서자 40미터는 족히 될 짐한 깎아지른 벼랑길이 나온다.오늘 종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구간이었다.


내가 바윗길을 내려서고 재화와 황세가 뒤따라 내려온다.그런데 재화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배낭 채로 넘어져 잡목 사이로 곤두박질친다.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재화는 두 나뭇가지 사이에 발바닥이 허공에 들린 채 상체가 끼이고 말았다.조금 만 더 굴렀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황세가 다가가 재화의 손을 붙잡아 가까스로 일으켜세웠다.재화는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은 없었다.무거운 중등산화가 너무 딱딱하여 발을 내디딜 때 감각이 무뎌 그런 실수가 일어난 듯했다.너무 무겁고 딱딱한 등산화는 릿지용으로는 권할 만하 것이 못된다.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생각만 해도 아찔했으니 망정이지....

 

[황세가 넘어진 재화를 일으켜주고 있다.]

 

황세의 손을 잡고 일어선 재화가 몸을 추수르고 있다.

 

[잡목 사이로 암릉을 내려서고 있는 종주팀]
 

1,175봉 암장을 반쯤 내려와 회원들을 화인더에 담았다.암장 들머리에서는 밧줄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내려오다가 균형을 잡고 내려서면 또다시 밧줄에 의지해야 한다.맨앞에 재화가 내려오고 그 뒤에 검은 색의 황세가 구부텅하게 내려오고 있고 하늘금이 맞닿은 곳에 익수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1,175봉 암릉길의 하단과 쪽빛 하늘]
 

1,175봉 암장을 내려서서 나는 아직 바위에서 내림짓을 하는 회원들과 암장을 카메라에 담았다.맨 앞에 익수,기환,정문이가 보이고 그 다음에 의선이,호철이 맨 뒤에 검은 옷을 입은 현기와 금구가 흡사 소인국의 아이처럼 작게 보인다. 두 사람 뒤의 티없이 맑은 코발트빛 하늘이 회색빛 암릉,메마른 갈색의 나뭇가지와 너무 대조적이다.

 

 [화주봉에서 1,175봉 암릉을 등지고]
 

북동진하던 대간이 1,175봉에 이르면 방향을 꺾어 급격히 바윗길을 타고 기세를 수그리며 동진하다가 서서히 남동으로 틀면서 화주봉에 다다르게 된다.8시 35분,1,175봉 암장을 내려와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화주봉으로 발품을 판다. 잘 다듬어진 묘지를 지나 9시 화주봉(또는 석교산 1,207m)에 다다랐다.회원들 뒤로 1,175봉의 거대한 회갈색 암장과 우리가 종주한 대간 마루금이 선명하다.

 

[1,062봉 헬기장에서 화주봉을 등지고]
 

화주봉에서 질매재까지 대간은 거의 북동진하다 바람재를 지나 황악산 능선에 이르면 북진하게 된다.화주봉(1,207m)에서 잠시 발품을 팔아 9시 11분,두 갈래 능선이 갈라지는 분기봉(1,150m)에 다다르다.여기서 대간은 왼쪽 산줄기를 따른다.서서히 내리막길이다.1,100봉 왼쪽 허리길을 돌아 9시 27분 헬기장이 있는 1,062봉에 닿았다.종주팀 뒤,제일 높은 봉우리가 화주봉(1,207m)이다. 

 

[질매재에서 베이스캠프 유건이와 함께]
 

유건이는 캔맥주를 꺼내 질매재에 도착하는 회원들한테 하나씩 돌린다.그런데 기묵이의 봉고말고 또 한 대의 봉고가 있었다.대간 종주를 지원하는 차량이었다.덕산재(?)에서 질매재까지 종주하는 대간꾼들을 기다린다고 기사는 말했다. 우리는 질매재에서 점심을 들어야 했다.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한 탓에 다들 배가 고파 바람재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해인산장 김 사장으로부터 받은 밥에다 내가 가져온 생면을 끓여 점심을 들기로 했다.매일유업 김천농장 입구의 양지 바른 시멘트도로에 깔판을 깔고 점심을 들었다.11시 19분, 점심을 끝내고 우리는 질매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베이스캠프 매니저인 유건이도 함께 촬영을 했다.

[남의 사진만 찍어주다 모처럼 피사체가 되어...]
 

질매재에서 유건이 홀로 대간 종주 기념사진을 찍었다.시멘트도로가 나오지 않도록 사진을 찍어달라는 유건이의 섬세한 주문대로 우리가 바람재로 출발할 질매재 산행들머리에서 그를 화인더에 담았다.유건이 뒤로 울긋불긋한 대간 종주 리번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여행통이자,베이스캠프 조장인 김유건 동기]
 

질매재에서 바람재로 종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회원이 함께 했다.

 

[질매재 등산로 입구의 종주팀]
 

유건이와 기묵 아우랑 괘방령에서 만나기로 하고 대간 길을 잇는다.11시 22분, 질매재(725m)를 뒤로 하고 870봉으로 오른다.1시간 가량 쉬어서 그런지,점심을 들어서 그런지 몸이 마냥 무겁다.대간은 870봉 정상으로 가지 않고 870봉과 900봉 중간의 능선으로 올라붙는다.이 능선에 올라서니 멀리 황악산과 얼핏보기엔 묘지같은 폐초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저 초소를 넘어서면 바람재가 나올 텐데...황악산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그리고 오늘 구간 가운데서 가장 괴로운 구간이 남아 있구나 생각하니 피로감이 일시에 밀려온다.900봉 근처에 다다라 찍은 사진이다.

 

[900봉 부근에서 바라본 폐초소-그 너머에 바람재가 있다.]
 

900봉 능선에서 황악산을 조망하고 11시 51분 960봉에 이르니 잡목 천지다.이 봉우리에서 10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삼성산(985.3m)으로 발길을 재촉한다.오른편 발치 아래로 삼성암이 내려다보인다.12시 17분 삼성산에 이르니 조망이 빼어나다.폐초소가 한결 가까워 보이고 황악산의 육중한 산줄기가 눈 앞에 물결친다.잠시 잘룩이로 80미터 가량 내려섰다가 1,000봉에 올라서면 평평한 능선이 나온다.


12시 34분,1030봉을 슬쩍 비켜선 대간은 오른쪽(동쪽)으로 꺾이고 폐초소로 이어진다.폐초소에 다다르자 김천 쪽에서 올라온 임도가 바람재로 해서 이곳까지 올라와 있다.바람재의 헬기장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너머 형제봉이 우뚝 솟았다.바람재까지는 깎아지른 급경사인데 임도가 지그재그로 올라오고 있다.임도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직선으로 치고 내려서는 게 빠르다.

 

[폐초소 공터에서 황악산 형제봉을 배경으로]
 

12시 45분,선두에 선 재화,정문,익수가 바람재로 떠나고 나는 그 둔덕에서 후미를 기다린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후미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그 사이 선두는 저만치 아래로 치고 내려간다.나는 회원들이 바람재로 내려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바람재에 있는 헬기장이 뚜렷하고 오른편 김천 쪽에 조성된 바람재 목장과 임도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게 보인다.

 

[바람재로 내려가는 선두 일행]
 

이번에는 바람재에 거의 다다른 선두를 카메라의 렌즈를 끌어당겨 담아보았다.

 

[바람재가 지척인 선두 일행]
 

선두의 재화,황세,익수,정문이와 나는 오후 1시 15분 바람재 헬기장에 다다랐다.헬기장에는 땡볕이 쏟아져 다리쉼을 하기에 마땅하지 않았다.헬기장 옆 나무그늘에 배낭을 벗어놓고 후미를 기다렸다.나는 헬기장으로 되돌아가 억새를 헤치고 내려오는 후미의 모습을 역광으로 잡았다. 
 

 [바람재로 닥아오는 후미 일행]
 

후미 가운데 기환이가 막 헬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역광을 받아 억새와 나뭇잎이 빛나고 있고 기환이의 얼굴은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이다.  


 [바람재로 들어서는 기환]
 

금구와 호철이,의선이와 현기가 바람재로 들어서고 있다.마치 키재기라도 하듯 이상하리만큼 구도가 어울린다.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바람재에 다다른 금구,호철,의선,현기]
 

바람재 나무그늘에서 4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황악산으로 오르기에 앞서 회원들의 모습을 화인더에 담았다.

 

[바람재를 떠나기 전의 종주팀]
 

오후 1시 25분 바람재의 나무그늘을 떠나 황악산으로 오른다.여기서 신선봉 분기봉을 거쳐 형제봉,황악산 정상 비로봉으로 오르는 오름길이 오늘 구간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거리는 약 1.9km,표고차는 400미터,벌써 7시간 산행으로 몸이 상당히 지쳐 있을 테니 수월한 구간은 아닐 것이다.이 구간만 제대로 소화해낸다면 괘방령까지는 일사천리 하산길-회원들 모두 아무 탈없이 종주해낼 것인지 염려가 앞서는 것은 리더로서 책임감 때문일까!


오늘 구간은 꼬박 12시간(엄밀히 말하면,점심시간과 휴식시간 약2시간을 빼면 10시간 가량)을 걸어내야 하니 체력은 바닥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오늘과 같은 종주를 꼬박 사흘간 해내고도 체력이 남아 있어야 제대로 종주를 해냈다고 할 것이다.이는 물론 20-25kg 배낭을 지고 산에서 한둔이나 텐트를 치고 막영하며 사흘을 종주한 것을 가정했을 때를 말한다.우리야 직업상 산 속에서 사나흘을 지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루치기 종주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앞으로 일터에서 물러나 시간이 남아돌면 그때 이런 장거리 산행을 우리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구나.

 

[황세,형제봉에서 황악산 비로봉을 등지고]

 

황악산은 우리 이일산우회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1999년 10월 하순,2번째 부경합동산행지가 바로 황악산이었기 때문이다.그때 서울 동기들은 "산사랑"이라는 산행클럽을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지만 부산 동기들은 산우회를 조직하지 않고 그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산행을 하곤 했다.


그런데 황악산 산행을 마치고 직지사 앞 식당에서 산행뒷풀이를 하면서 부산에도 바야흐로 "이일산우회"가 만들어졌으니 황악산은 우리 산우회를 태동시킨 바로 그 산인 셈이다.그날 서울과 부산,마산,진주 등 각지에서 모인 100여명의 동기와 가족들은 황악산 산행을 하면서 준비되지 않은 산행이 얼마나 무모하며 위험한가를 몸으로 체험하는 장이 되었다.한 동기는 황악산 비로봉에서 형제봉으로 하산하다 두 다리에 근육경직이 일어나 갖은 곤욕을 치뤘으며,대부분의 동기들은 랜턴도 준비하지 않는 채 산행을 하다 해가 지고나서 어두운 밤길을 가까스로 헤치고 내려오기도 했다.그때 집행부는 식당에서 랜턴을 빌려 다시 계곡으로 되올라가 마지막 산 속에 남은 동기들을 데려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서울과 부산의 집행부는 마침내,부산에도 동기 차원의 산행클럽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론이 돌아 부산 이일산우회가 탄생되었던 것이다.산우회가 만들어진 지 올해로 5년,우리 이일산우회는 열심히 산을 탔고 동기들의 산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지난 해에는 낙남정간 완주와 금년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된 것이다.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돌이켜보면 신선봉으로 갈래치는 분기봉에서 근육경직이 온 동기를 들쳐메고 하산하던 일은 이제는 아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머리칼이 쭈볏쭈볏 곤두선다.황악산 능선을 밟으면서 그 예전의 산행을 되새김질 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커다란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형제봉에서 나는 황악산 정상을 뒤로 하고 우리 산우회 출범의 산파역을 맡았던 이재화 산우회 총무와 한정문 회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형제봉에서 정문,재화 황악산 비로봉을 등지고]

 

2구간 종주를 빼먹은 익수는 지난 구간 종주에서는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그래서 오늘 종주를 위해 지난 주 5일 동안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불어난 몸을 줄이고 주력을 키우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달리기를 하며 오늘 구간에 대비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새벽에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바람재에서 점심을 들고나서 컨디션이 매우 양호하여 선두 그룹에 붙었다는 것이다.호흡도 가쁘지 않고 걸음걸이도 마냥 신이 나 전혀 피로한 기색이라곤 찾을 수 없었으니.... 익수가 황악산으로 올라갈 때 살펴보니 걸음짓이 굉장히 가벼워보였다.


그 대신 장족의 발전을 한 기환이는 황악산 오르막길에서 몹씨 힘들어 했다.지난 해 낙남정간을 완주한 익수의 저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무슨 일이던지 목표를 세워 한발한발 닥아가노라면 제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난관을 극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익수는 터득한 셈이었다.지난 구간 기환이의 놀라운 주력에 자꾸만 뒤로 처진 악몽을 익수는 이제 완전히 떨쳐버렸다.그런 익수가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을 뒤로 하고 해맑은 얼굴로 포즈를 잡았다.익수야! 오늘의 그 걸음짓,그 컨디션을 부디 잊지말기를...

 

[익수,형제봉에서 황악산 비로봉을 뒤에 두고]
 

형제봉(1,020m)에서 황악산 비로봉(1,111.4m)으로 오른다.정상으로 가는 등산객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정상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다.2시 18분,정상 아래 직지사 능여계곡으로 빠지는 갈림길에 다다라 다리쉼을 한다.사진은 그 갈림길에서 형제봉 일원을 뒤돌아본 모습이다.형제봉 뒤로 아스라한 산줄기가 보이는데,왼쪽은 대덕산이요,한가운데는 삼도봉 그리고 오른쪽은 화주봉이다.

 

 [능여계곡 갈림길에서 돌아본 대간,형제봉과 화주봉...]
 

능여계곡 갈림목에서 후미를 기다려 황악산 정상,비로봉(1,111.4m)으로 오른다.2시 41분,드디어 정상에 닿았다.황악산 정상을 알리는 작은 빗돌과 돌탑(케른)이 있을 뿐 참으로 소박했다.정상에서 멋진 조망을 기대했으나 뿌연 가스로 먼산은 조망이 어려웠다.우리는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2시 45분 하산길에 들었다.

 

[황악산의 정수리,비로봉에 다다라]
 

황악산 정상,비로봉(1.111.4m)에서 사진 촬영을 끝으로 2시 45분,괘방령(300m)으로 하산한다.괘방령까지 남은 거리는 약 4.4km.2시간 가량 발품을 팔아야 한다.황악산 하산길에서 조망은 숲이 가려 별로였다.먼지 풀풀 나는 등산로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 길에 들었고 더러는 황악산 정상으로 올라오고 있는 등산객들도 있었다.하산길은 계속 내리막길-이 산의 명산 대찰 직지사가 있는 골짜기를 오른편에 두고 바람처럼 내닫는다.


3시 20분,직지사로 하산하는 최단코스인 운수암 갈림길(670m)에 다다라 잠시 후미를 기다린다.7분 가량 지나서 후미가 내려왔다.오후 3시 27분,재화와 황세가 운수산(또는 千德山 668.2m)으로 먼저 떠난다.그 다음으로 기환이가 운수봉 오르막으로 오르다 그만 멈춰서며 종아리를 문지른다.쥐가 났거나 아니면 근육에 통증이 온 듯했다.얼마전 기환이는 자신의 밧테리 성능이 9시간 반짜리라며 얘기 하더니 오늘은 상당히 피로한 기색이다.아! 그러고보니 새벽부터 산행을 한 지 벌써10시간을 넘고 있었구나.그렇다고 그가 산행을 못할 바는 아니지만 콘디션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기환이한테 천천히 쉬었다 오라고 말하고 운수봉으로 오른다.호철이와 익수가 뒤따라 온다.

 

3시 37분,운수산(668.2m)에 올라섰지만 숲에 가려 주위를 살필 수가 없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2개를 넘어선다.8분 뒤,여시골산(640m)에 다다르니 왼쪽 계곡 아래로 어촌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궤방령으로 이어지는 두루뭉실한 대간마루금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시골산에서 바라본 두리뭉실한 대간마루금]
 

여시골산(640m).참으로 희한한 이름의 산이다.여시란 야시,즉 여우를 말하니 야시골산이렸다.사람을 홀리는 야시가 사는 골짝이라 대간종주팀이 한바탕 곤욕을 치루게 된다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여시골산에 오르자 그저 평범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그런데 여시골산을 조금 지나자 대간마루금 왼편으로 좀 으시시한 굴이 보였다. 우리는 "여시굴"이라 이름짓고 이 굴을 살펴본다.수직굴이었다. 제법 깊었다.저 아래는 컴컴하여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금방이라도 빨려들 것만 같다.호철이가 여우(?)가 산다는 여시굴을 신기한 듯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보고 있다.(짜잔 짜) 차라리 예쁜 미녀로 둔갑한 여우한테 홀리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 숨가쁜 세상에...

 

 [호철이가 컴컴한 여시굴(?)을 굽어본다.]
 

여시굴산(640m)을 지나 평평하게 이어지던 등산로는 금방 하산길에 들어설 것 같더니 그게 아니었다.잠간 내리막길이더니 650 봉우리를 지나또다시 오르막길,670봉에 다다랐다.밋밋한 등산로를 따라 250미터쯤 발품을 팔아 약 590m 지점에 다다르니 대간은 왼편으로 사정없이 꺽이며 가꿀막진 내리막길이다.590m 지점에서 오던 그대로 무심코 내려가면 아랫괘방령으로 빠지니 조심해야 한다.


대간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급격하게 내려가다가 이번에는 또다시 오른편으로 내려선다.한없이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길이다.자칫하다가는 데굴데굴 구를 것만 같다.특히 눈 내리는 겨울철에는 매우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여시굴산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이곳은 종주꾼들의 혼을 빼놓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구간이었다.이 구간을 지나면 목장이 나오면서 밭 가장자리로 대간길은 이어진다.사진은 가파르게 하산을 마친 재화가 목장 근처로 내려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괘방령 근처 목장을 향해 내려서는 재화]
 

재화와 나는 밭 가장자리를 걸어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5분 뒤인 4시 25분,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괘방령(300m)에 다다랐다.경북 김천시 대항면에서 충북 영동군 매곡면으로 넘는 906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괘방령은 고개라고도 할 수 없으리만큼 고도가 낮았고 한갓진 고개였다.4시 46분 후미가 괘방령에 다다르면서 장장 12시간의 지리한 종주는 막을 내렸다.

 

[종주정보]

 

해인산장(450m)---04:36 해인리 주차장(850m)---0.75---05:00 삼도봉 갈림길(1,140m)...0.4---05:15-05:40 삼도봉(1,172m)---0.8---06:00 삼막골 갈림길(1,040m)...1.0...06:34 1,124봉...1.9...06:55 밀목령(990m)...2.15...08:16 1,175봉...1.2...09:00-09:05 화주봉(석교산 1,207m)...1.6...09:27-09:40 1,062봉...1.35...10:22-11:20질매재(725m)...1.62...12:17삼성산(985.3m).....

1.5...12:34 1,030봉...1.2...13:15-13:25 바람재(810)...1.88...14:40-14:45 황악산 비로봉(1,111.4m).....1.25.....백운봉(770m).....1.2...15:45 여시골산(640m)...2.0...16:25-16:46 괘방령(300m)

 

종주거리/시간:21.4km/10시간 36분

진입거리/시간:1.95km/1시간 24분

산행거리/시간:23.35km/1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