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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2구간 끊어타기<작점고개-윗왕실고개>

 

 

작점고개-용문산-국수봉-큰재-회룡재-윗왕실고개 17.22km(2003.12.14)

 

 

이일산우회 대간종주팀이 산행을 하기에 앞서 작점고개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일행은 약속이나 한듯 검은색 긴팔 마우틴 셔츠를 입어 흡사 대간종주 유니폼같은 느낌을 준다.그렇다.그건 대간종주 유니폼이다.지난달 김황세 동기가 거금을 쾌척하여 15벌을 마련했는데,재질은 방한성 스트레치 원단에 "21산우회 백두대간 종주"라는 황금색 자수를 곁들여 대간종주 유니폼에 통일성을 기했다.이 자리를 빌어 황세한테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7시 30분,작점고개(350m)를 뒤로 하고 발품을 판다.북진하던 대간은 첫번 째 봉우리(360m)에서 서서히 서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북북서진하여 473.7봉으로 이어진다.등산로는 밋밋하여 부드러웠으며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최적이었다.아직 갇힌 근육이 풀리지 않은 채 가파른 오르막길 오르기는 정말 곤혹스러운 법인데,이렇게 평탄한 산길을 가니 절로 흥이 솟고 걸음이 빨라진다.473.7봉에 가까워지면서 묘함산 쪽에서 동이 터온다.그러나 짙게 드리운 구름장을 뚫고 태양이 솟구쳐 오르는데는 좀더 시간이 걸려야 한다.7시 45분,삼각점이 있는 473.7봉에 닿았다. 사진은 473.7봉 근처에서 동이 트는 여명을 잡았으나 동편 하늘에 비낀 구름 탓에 장엄한 해돋이는 볼 수 없었다.단지,그 구름장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인 햇빛이 장관을 연출했다.

 

 

동편에 걸린 구름장을 뚫고 이글거리던 태양이 구름을 벗어나 온누리를 비추자 사위는 환하게 밝아지며 어둡던 우리의 얼굴도 밝아진다.일행 뒤쪽으로 묘함산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동이 트자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대간 왼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점점 그 기세를 더해간다."태양의 기운을 받아 바람이 생긴 것"이라는 금구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밤새 잠자던 삼라만상이 뜨거운 태양의 기운으로 꿈틀거리며 소생하기 때문이란다.왼편 귓볼이 얼얼하다. 영상 1도 안팍의 기온이지만 바람이 부니 그 체감온도는 마치 영하의 날씨를 방불케한다.


8시 4분,돌무지가 있어 성황당터로 짐작되는 갈현(360m)을 지난다.9분 뒤 490봉을 지나자마자 비닐 움막이 나오고 이내 기도원으로 빠지는 갈림길에 다다랐다.687봉으로 오른다. 8시 23분 바위가 듬성듬성 있는 오르막에 올라선다.거기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8시 39분 바람이 잠풍한 520봉에서 다리숨을 한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고나서 8시 46분,687봉으로 오른다. 7분 뒤,687봉에 올라서니 북서쪽으로 우리가 밟아야 할 용문산과 국수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687봉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용문산(708.5m)에 다다른 시각은 9시 5분


헬기장이 있는 용문산 정수리는 빗돌도 표지판도 없었지만,헬기장 한켠에 삼각점이 보였다.배낭을 벗어놓고 사위를 조망하며 나는 회원들에게 주변 산세,특히 북서쪽 추풍령면 신안리에 있는 반고개의 유래를 설명했다.

 

추풍령에서 북쪽으로 10리 남짓한 신안리에는 반고개란 이름의 고개가 있다.추풍령에서 모동으로 넘는 고개인데 오랫동안 발길이 드물다가 최근에 포장길을 내어 두 지역 사람들의 왕래가 부쩍 늘었다.신안리 사람들은 지금도 반고개가 한양과 부산길의 절반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믿는다.추풍령에서 반고개를 넘어 보은과 청주로 올라가는 길이 한양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9시 11분,대간종주팀이 기념사진을 찍는다.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국수봉과 거기서 큰재로 뻗어내리 능선 위의 683.5봉이 회원들 뒤로 치솟아 있다.

 

 

9시 11분,용문산에서 국수봉으로 간다.용문산을 지나면서 지난 번에 내려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더러 밟힌다.용문산에서 1km 가량 떨어진 740봉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라 걸음이 빨라진다.갈림길을 지나 740봉에 올라서자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650미터의 잘룩이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가팔라 나뭇가지를 잡고 미끄럼을 타듯 쏜살같이 내려간다.9시 37분,갈림길인 잘룩이로 내려왔다.오른편 길은 용문산기도원으로,왼편 길은 추풍령면 신안리 응북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열려 있다.


이 갈림길(650m)에서 국수봉(793m) 오름길은 비록 거리는 500미터에 지나지 않으나 까꿀막지기 이를 데 없다.한 겨울철에는 고생깨나 할 것 같다.갈림길에서 표고 140여 미터를 치고 올라야 하므로 처음으로 땀이 흐르고 숨길이 차다.국수봉 앞봉인 720봉에 허위단심 올라서자 세찬 바람이 몰아쳐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이 봉우리에서 국수봉은 200미터 떨어져 있으나 길은 평탄하다.국수봉에 가까워지자 능선 위에 전망바위가 보인다.


우리는 거기서 용문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맨 먼저 황세와 정문이가 포즈를 잡았다.암장 뒤로 우리가 오른 가파른 산줄기,그리고 그 뒤에 용문산이 보인다.

 

 

익수가 뾰족한 전망바위에 걸터앉고 그 앞에 의선이가 바위에 퍼질러 자세를 잡았다.두 사람 뒤에 용문산과 그 뒤에 눌의산이 가늠된다.

 

 

국수봉 아래에 있는 전망바위는 여러 사람이 앉기에는 턱없이 좁았다.기환이와 금구가 바위에 앉고 그 앞에 현기가 말을 타듯 걸쳐 앉아 포즈를 잡았다.현기 뒷쪽에 용문산기도원으로 빠지는 갈림길로 가파르게 쏟아져내리는 산줄기가 보인다.

 

 

10시 5분,오늘 종주길 가운데 가장 높은 국수봉 정상에 다다랐다.국수봉에 서니 상주의 너른 평야와 백학산,서산,기양산,갑장산,묘함산,황악산과 민주지산이 아스라하게 펼져진다.국수봉은 웅산(熊山),용문산(龍文山),웅이산(熊耳山) 또는 곰산 따위 여러 이름으로 일컫어지고 있다.정상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어모면,경북 상주시 공성면이 만나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菊水)라 한 듯하다.웅신당(또는 용문당)이라는 당집에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중국의 웅이산(熊耳山)과 같이 시초(蓍草)가 난다 하여 웅이산이라 했다 한다.아울러 상주의 젓줄인 남천의 발원지이기도한 국수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김천,영동 땅과 헤어지고 상주 땅 중화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화지역은 국수봉에서 시작하여 백학산,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비재.갈령을 지나 속리산의 형제봉까지를 이르는데 대간을 벗어난 상주의 화동,화서,화남,화북과 모동,모서 모두 6개 고을이 충북 땅으로 깊숙이 침범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화동,화서,화남,화북의 4개 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요,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을 따르던 중모현과 화령현을 뭉뚱그린 이름이다.

 

 

국수봉(793m)에서 사위를 조망하고 10시 17분,큰재로 내려간다.국수봉에서 큰재까지 약 2.6km 구간은 거의 북쪽으로 내려서야 한다.큰재가 빤히 눈에 들어온다.인성분교를 목표 삼아 내려가면 되므로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하산길 들머리는 가파른 북사면인 탓에 이따금 잔설(殘雪)이 보이지만 미끄럽지는 않았다.대간 왼편으로 상주시 공성면 신곡리가,오른편으로는 상주삼남(청리,공성,외남)평야의 너른 벌판이 펼쳐진다.


10여분 발품을 팔아 삼각점이 있는 683.5봉에 다다랐다.하산길은 생각보다 좋았다.475봉을 지나 10시 56분,묘지를 지나자 오른편에 큰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나온다.아주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니 민가와 학교가 보인다.


11시 9분,드디어 큰재(330m)에 다다르니 기묵이의 봉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큰재에 있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는 쇠락할대로 쇠락해 거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부산녹색연합에서 폐교된 인성분교를 빌려 생태학교로 쓰고 있다하나 운동장에는 풀이 무성하고 건물 유리창은 깨지고 거미줄이 처져 을씨년스러웠다.학교에서 점심을 들려던 우리는 발길을 돌려 아예 기묵 아우의 봉고안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점심을 먹고나서 상주시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물가름(분수령) 표지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1시 57분,오후 산행에 들어갔다.종주팀 뒤 나무울타리 너머가 인성분교 운동장이다.

 

 

대간마루금 위의 유일한 학교라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에서 점심을 들려던 우리의 기대는 접어야 했다.폐교된 인성분교는 부산녹색연합에서 생태학교로 쓰고 있었으나 인적이 묘연했고 물도 없었으며 어디 앉을 만한 마땅한 장소마저 없었다.그래서 우리는 기묵이의 봉고안에 전을 차리고 라면을 끓이고 뜨뜻한 국물을 곁들여 점심도시락을 들었다. 

 

 

오후 산행에 대비하여 물을 구해야 하는데 한적한 시골동네인 신곡리에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고갯마루 민가 할머니 집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학교 왼편 울타리를 따라 발품을 판다.학교 관사 건물 뒤 능선에 접어들어 양지바르고 잠풍한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큰재(330m)를 출발한 지 3분 뒤에 쌍묘를 지나고 3분 뒤에 또다시 묘지를 만난다.400봉에 올라서면서 밋밋한 등산로가 이어진다.12시 20분,또 묘지를 지난다.8분 가량 발품을 팔자 왼쪽에서 올라오는 시멘트도로가 나오고 묘지 1기와 마주친다.저 아래 간하리에서 이영도 목장으로 넘나드는 도로다.그 도로를 따라 12시 30분,고갯마루에 올라서자 40미터쯤 앞에 목장건물이 보인다.


이 고개에서 곧장 가면 목장길,대간은 오른편 산등을 따른다.대간마루금은 이영도목장을 왼편 발치 아래에 두고 서서히 북진한다.매캐한 냄새가 간간이 바람결에 묻어나온다.목장에서 실려오는 고약한 냄새였다.12시 44분,410봉에 이르자 대간은 왼쪽(북서)으로 방향을 튼다.


오후 1시 5분,회룡재에 닿았다.상주시 공성면 봉산2리 회룡마을에서 공성면 봉산1리 골가실을 넘나드는 농로로 옛길의 정취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 조용하고 휴식을 하기에 좋았다.우리는 회룡재(340m) 맞은편 양지 바른 곳에서 다리쉼을 한다. 물을 마시고 간식도 들며 숨을 고른 뒤 1시 21분,다시 발품을 판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처럼,가다가 중지하면 우리의 삶도 그치는 것처럼 우리는 걸음을 옮긴다.작은 봉우리를 올라서자 망개가 지천이다.한곳에서 그렇게 많은 망개를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종주팀을 모아 사진을 찍었는데,붉게 물든 망개의 모습을 그대로 전할 수 없어 유감이다.

 

 

망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개터재로 떠난다.1시 40분,제단이 있는 묘지를 지나 460봉 밑자락에 다다르니,대간마루금 오른쪽으로 열린 우회로가 나온다.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길이 희미하고 종주리번도 보이지 않는 460봉으로 오르지 않고 이 우회로를 따라 개터재로 직행한 듯했다.우리도 우회로를 따라 간다. 조금 발품을 파니 460봉 산허리길은 너덜길로 바뀐다.


1시 50분,개터재(350m)에 다다랐다.개터재는 효곡(孝谷) 사람들이 인근의 개터골에 농사를 짓지 위하여 넘나들던 고개다.차량 통행이 가능하며 공성면 효곡리와 공성면 봉산리를 이어준다.개터재 밑으로는 상판저수지 물을 상주삼남(청리,공성,외남)평야의 농업용수로 돌리기 위하여 뚫은 지하수로가 지나가고 있다.사진은 개터재 고갯마루에서 봉산리 쪽으로 등진 종주팀을 찍었다.

 

 

1시 56분,개터재(350m)에서 750미터쯤 떨어진 505봉으로 오른다.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 두번 째 봉우리인 470봉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기온이 영상 6도까지 오르고 햇볕이 들어 이마엔 땀이 흐른다.2시 10분,470봉에 올라섰다.5분 뒤 505봉에 올라 능선에 서니 오른쪽으로 공성과 외남의 들판이 펼쳐지고 들판 한복판에 서산(西山 509.1m)이 우뚝 치솟아 있다.


505봉에서 오늘 구간의 하산지점인 윗왕실고개까지 약 2.95km가 남았다.빠른 걸음으로 1시간 10분이 걸릴 거리다.2시 30분,430m 잘룩이를 지난다.13분 가량 발품을 팔자 잡목 숲이 훤히 트이면서 왼쪽으로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백학산(615m)과 윗왕실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463봉을 지나 3분 뒤에 다시 백학산과 백학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를 바라보았다.사진 맨 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백학산(615m) 정수리이고 그 왼쪽에 봉긋 솟은 봉우리가 520봉이다.520봉 왼쪽의 낮은 봉우리가 430봉이며 그 산자락 밑에‘넘어마’마을이 보인다.

 

 

백학산을 조망하고 발품을 팔아 3시 5분,마침내 윗왕실고개에 이르자 난데없이 육교와 함께 왕실임도가 나온다.왕실임도는 공성면 효곡에서 외남면 소상으로 연결되고,육교는 동물의 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임도를 내면서 산줄기를 끊어 절개지가 이뤄지면 동물들이 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교를 만들어 산줄기를 이어주는 것이다.사진은 윗왕실임도에서 기묵이의 봉고에 배낭을 부리고 종주를 마감하는 장면이다.

 

 

국토가 숨쉬는 곳!-여기는 백두대간" 윗왕실임도를 가로지르는 육교에걸린 표어다.동물의 이동을 위하여 만든 동물통로인 육교 뒤로 우리를 실어나르는 오기묵 동문의 봉고가 보이고,육교 위 갈매빛 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다.동물들은 각기 그 먹이를 취하는 자신의 이동반경이 있기 마련이다.그런데 도로나 임도를 내면서 산줄기를 끊어 절개지가 생기면동물들은 이동을 하지 못하고 그 행동반경이 줄어 종내는 서서히 멸종된다고 한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육교를 만들어 끊어진 산줄기를 이어주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윗왕실고개 임도에서 윗왕실마을을 내려다본다.효곡리의 전답과 마을이 보이고 첫번 째 산줄기는 백학산 지릉인 남릉,두번 째 산줄기에 성봉산(星峰山 572m)이 우뚝 솟았다.

 

 

우리의 봉고는 윗왕실임도 따라 윗왕실마을과 효곡리를 차례로 지난다.조금 더 가자 상판저수지가 펼쳐진다.상주시 모동면 상판리와 공성면 우하,봉산리에 있는 상판저수지-지난 79년 12월에 준공되어 저수면적은 79.1ha이고 최대수심은 19.7m로써 백두대간의 개터재 밑 터널을 통하여 청리,공성,외남의 상주삼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습하는 저수원이다.사철 낚시꾼들이 즐겨찾으며 잉어,향어,메기,붕어 따위가 많이 잡히고 겨울철에는 빙어잡이로 붐비는 장소다.상판저수지를 왼쪽으로 감돌아나가자 68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다시 상판저수지 오른쪽을 따라 모동면으로 스며들었다.모동에서 49번 지방도로로 꺾어 들자 눈앞에 웅장한 백화산맥이 가로막아선다.일행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산인데 백화산이라고 말하자 깜작 놀란다.상주 땅 너른 벌판에 철옹성처럼 치솟은 백화산은 2001년 10월 28일 부경합동산행을 한 바 있어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오도치(수봉재)를 넘어 황간에 다다랐다.황간 역 인근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올갱이(다슬기)국으로 유명하다는 동해식당을 찾아갔다

 

동해식당에는 제법 손님들이 붐볐다.1급 청정수에만 산다는 다슬기를 이고장 사람들은 올갱이라 부른다.간에 좋다는 올갱이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시락국처럼 된장을 풀고 다슬기를 넣어 걸쭉하고 맵싸하게 만든 해장국이다.예전에 먹던 다슬기국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지만 우리는 올갱이국을 한 그릇씩 시켰다. 울갱이국으로 소주를 들기에는 뭣했지만 그냥 국만 들고 나올 수는 없어 소주잔을 돌렸다.덤으로 오늘 불참한 재화한테 줄 올갱이국을 따로 포장하였다.백두대간 13차 끊어타기는 올갱이국으로 마감을 했다.아니다.미진한 산행뒷풀이를 부산의 문경약돌돼지로 옮아갔으니 산행은 황간에서 끝을 낸 게 아니었다.때맞춰 이날은 신 대장의 결혼 26주기-미리 연락을 받은 기환,익수 아지매가 케익을 들고 와 신 대장과 그의 아내를 축하해주었다.대간을 타면서 동고동락하는 회원들의 우애가 끈끈하게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종주정보]

 

07:30 작점고개(350m)...2.0...08:04 갈현(360m)...2.62...09:05-09:10 용문산(708.5m)...2.0....10:05-10:15 국수봉(793m)...2.63...11:09-11:57 큰재(330m)...3.43...13:05-13:21 회룡재(340m)...1.25...13:50 개터재(350m)...2.25...14:45...463봉...15:05-15:07 윗왕실고개(390m) 

 

*종주거리:17.22km

*종주시간:7시간 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