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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8구간<빼재-덕산재>

 [종주들머리,빼재에서]  

 

 

 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12.9km(2003.10.5)

 

 

새벽 4시 한양프라자 앞을 떠난 봉고는 남지를 거쳐 합천댐을 돌아 거창에 다다랐다.‘둥지식당’에서 선지해장국으로 아침을 들고 고제를 거쳐 7시 50분, 지난 구간 하산지점인 빼재에 올라섰다.


덕산재에서 점심을 들기로 하여 기묵 아우의 봉고에 도시락을 모두 내려놓았다.오늘 종주에는 김익수,김현기,김황세,손의선,신남석,이재화,전기환 한정문 회원이 참가했다.그리고 우리 이일산우회 정영천 회장이 처음으로 동참했다.


작년 4월,낙남정간 종주 둘째 구간에서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해 1년 반가량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했던 정 회장-몇 개월 전에는 호전되는 듯하다가 허리가 좋지 않아 다시 몸을 추스리곤 했다.해운대 장산 기슭에 사는 그는 틈틈이 산을 찾아 몸을 다스려 지난 9월 셋째주 영남알프스 종주 때는 9시간 산행을 거뜬히 해내 우리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그런 그가 종주에 왔으니 우리의 기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정 회장이 빠진 그간의 산행은 시쳇말로 불꺼진 항구를 찾아가는 항해였다고나 할까.그리고 지난 6,7구간에 불참한 익수가 좀 불어난 몸매를 하고 와 주었다.


빼재는 수령,신풍령,상오정재라고도 불리는데 수령(秀嶺)이란 기념비가 고갯마루에 서 있다.본래 이 고개는 사냥꾼과 산적이 많아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뼈가 그득히 쌓여 있어 뼈재라 불렀다.뼈재를 경상도 억센 사투리로 발음하다보니 빼재가 되었고,한자로 이름짓기 좋아하는 이들이 빼어날 수(秀)를 생각해내 수령(秀嶺)이란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신풍령(新風嶺)이라 부르는 것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추풍령을 본 떠 바람도 쉬어 넘는 새롭게 생긴 고개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상오정재는 고개 북쪽 무주군에 있는 상오정 마을에서 빌려온 것이다.사진은 수령기념비에서 50미터쯤 오른쪽으로 내려와 산비탈을 오르기 전 기묵 아우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수정봉에서 조망한 거창의 연봉]
 

빼재(920m)에서 대간 길은 절개지를 바로 오르지 않고 거창군 고제면 쪽으로 50미터쯤 내려와 된비알을 더터 올라야 한다.거리는 비록 짧지만 장단지가 당길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이다.선두에 황세와 재화,내가 서고 오랫만에 온 정 회장이 뒤따른다.


날씨는 선선하고 대기는 맑아 산행하기에 무척 좋았다.잠시 뒤,대간 마루금에 올라서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8시 13분,첫봉(1,030m)에 올라선다. 이제부터는 콧노래라도 부를 만큼 완만한 산길이다.


드디어 가을이다.간간이 억새가 손을 흔들고 지난 여름 울창하던 나뭇잎은 노랗게,빨갛게,더러는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수정봉(1,040m)에 올라서자 거창의 연봉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빼어난 산을 품에 안은 고장답게 거창의 멋진 명산들이 줄지어 닥아온다.사진 맨뒤에 하늘금을 그리는 연봉들은 비계산(1,052.7m)과 통신시설이 있는 뾰족한 정수리의 오도산(1,134m)이고 두번째 산줄기가 흰대미산에서 나우리치는 보해산(911.7m)과 금귀봉(710m)이다.금귀봉은 거창 시내에서 가까워 거창 사람들이 즐겨찾는 봉우리로 정수리에는 봉수대터가 있으며,수정봉 능선에서 볼 때 원뿔 형상을 하고 있다.그리고 첫번째 산마루금은 대간에서 갈래쳐나간 두루봉 능선이다.그 산기슭 아래 마을이 거창군 고제면 일원이다.

 

[수정봉에서 조망한 수도산과 가야산]
 

이번에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가야산을 바라본다.수도산과 단지봉 뒤에 한송이 연꽃처럼 피어오른 봉우리가 가야산이다.

 

[호절골재 내리막길에 바라본 삼봉산]
 

수정봉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다시 짧은 오르막을 거쳐 봉우리에 올라선다.그런데 내 뒤를 따라오던 정 회장이 자꾸만 뒤로 쳐지더니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촛대뼈 쪽에 근육경직이 일어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장단지나 허벅지 근육경직은 더러 보아왔지만 촛대뼈 부위의 근육경직은 난생 처음이었다.


오랫만에 종주에 나선 정 회장,의욕이 앞선 나머지 선두를 따라나선 것이 무리였던 모양이었다.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선두를 고수하려던 것이 오버페이스를 한 셈이었다.의선이와 나는 돌덩이처럼 굳은 근육을 주무르기도 하고,재화의 상비약‘벤게이’(근육통 및 벌레 물린 데 좋은 연고)를 바른 뒤, 파스를 붙여 통증을 완화시켜본다.그런데 기환이와 황세 두 의사가 있기에 산길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사고(?)는 별반 걱정하지 않았는데... 아무튼 우리 나이에 가장 취약한 신체부위는 무릎이라 하겠는데,무릎에 통증이 오면 두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진통제를 먹어 크게 효험을 보곤 한다.정 회장의 굳은 다리를 주무르다,현기가 가져 온 솔송주를 마시게 하여 근육이완을 시키고 백지장처럼 하얀 정 회장 얼굴에 생기를 돌게해본다.그러는 사이 의선이와 정 회장은 우리한테 먼저 떠나라며 채근을 한다.

 

다시 작은 봉우리에 오르자 대간은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거의 90도 꺾인다.조금 가자 펑퍼짐한 덤불구간이 나온다.이곳이 된새기미재인 듯하나 갈림길도 보이지 않고 사람이 다닌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또다시 오르막을 딛고 올라 봉우리에 올라서니 9시,비로소 삼봉산 능선이 눈에 잡힌다.우리는 여기서 목을 추기며 정 회장을 기다린다.그러나 뜻밖에도 의선이와 정회장은 이내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었다.사진은 그 봉우리(1,220m)에서 호절골재로 내려서기 전 삼봉산 능선을 담았다.사진 오른쪽 봉우리가 삼봉산 정상(1,254m)이며 한가운데 모자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조망이 일품인 암봉(1,250m)이다. 

 

[억새밭에 든 산우회 총무,재화]

 

1,220봉에서 삼봉산을 겨냥하여 호절골재(1,150m)로 내려선다.고갯마루에는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올 들어 처음 보는 억새군락이었다.나는 억새밭을 지나는 친구들을 향해 차례대로 카메라를 들이댔다.지난 여름철 그렇게 무성하게 푸른 창검의 기치를 세우던 푸른 억새가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은빛 바람꽃이 되어 흔들리고 있다.

 

[가젯트라는 애칭의 기환]
 

전기환 원장(혜성병원)이 억새밭에 들어서서 포즈를 잡았다.지난 7구간 빼재를 얼마 남기지 않고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면서 힘겨워 한 기환이-내 밧테리는 9시간 짜린데 30분을 넘어 9시 30분 가량 산행을 했으니 엄청 힘이 부쳤다며 곤혹스러워 하던 그는 이제 대간 길에서는 푸로다.주력도 그렇고 산에 대한 탐구심도 남달라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산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은 그와 산행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니 오늘날의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 가운데 일등공신은 그의 내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정문 회원-이번 대간 길이 세번째 종주다.의선이의 소개로 우리팀에 합류한 정문이는 산에 대한 욕구가 뜨겁다.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그의 평소 성격대로 그는 한번 도전한 일에는 중도하차라는 말이 없다.백두대간을 첫 구간부터 종주하지 않고 도중에 참여하여 우리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 지난(至難)한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그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며 " 화이팅!!!" 을 외쳐본다.

 

[해맑은 동안(童顔)의 익수]

 

지난해 낙남정간 전 구간을 완주하고 백두대간도 5구간까지 열심히 타던 익수가 6,7구간에 불참했다.이유인즉,체력이 딸린다는 것이다.그의 불참을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애석하게 생각해왔다.그동안 미국에 사는 친구의 초청으로 부부가 미국을 두루 다녀오는 바람에 산행에서 멀어지게 되었지만,그가 결코 산의 품에서 멀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이렇게 8구간에 오지 않았는가.처음부터 주력이 낼쌔고 숨이 차지 않는 사람은 정말 드문 일이다.힘겨워하면서도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단련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그도 아닐 테니 앞으로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여하여 그동안 굵어진 뱃살을 화끈하게 빼려므나.

 

[억새밭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후미대장,김현기]


이일산우회의 후미대장이며 대간 종주에도 늘 후미에서 동기들을 다독거려 완주하게 만드는 우리의 숨은 일꾼 현기-껑충한 키에 늘 같은 보폭으로 무리하지 않고 발품을 파는 그를 보면 정말‘산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가 있기에 선두에 선 우리는 아무 걱정하지 않고 마루금을 더터가며 종주를 해낸다.오오! 이 가을 그에게 따스한 햇빛이 한껏 쏟아지길 기대한다.은빛 억새가 물결치는 호절골재에 양광(陽光)이 내려꽃히듯...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력의 김황세 원장]


그의 주력은 워낙 빼어나서 따라잡을 사람이 흔치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산에 대한 태도와 열정은 그의 무공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그래서 부산시 의사회 산악회를 리더하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의 직업은 늘 그를 긴장하게 만들고 피로하게 한다.그는 산행을 통해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버린다.틀에 사로잡혀 속좁은 의사로서가 아니라 열린 마음과 따뜻한 인정으로 인술을 베푼다.산에서 보고 듣고 배운 바를 매일의 삶속에 실천하는 황세-그가 호절골재 억새밭에서 포즈를 잡았다.

 

[이일산우회의 영원한 회장,정영천 변호사] 
 

우리 이일산우회의 정신적인 지주인 정 회장-6년전 산우회가 출범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그래서 우리한테는 영원한 회장이 될 수밖에 없다.법조인으로서,또 집안 내림의 불자로서 금년에는 불교포교사가 되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정회장은 산행도 대단히 열성적이다.그러나 호사다마랄까,작년 낙남정간 종주 2구간에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거의 한 해를 쉬다시피하며 산행을 멀리 했다.그가 없는 우리는 마치 컴컴한 어둠속에서 항해를 하는 격이었다.그가 다시 돌아왔다.산의 품으로,아니 우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이제 건강도 완전히 제 자리를 잡았고 그간의 산행 리허설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그러나 오늘도 산행 들머리에서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다.호절골재에 다다른 그는 "하도 여러 가지 처방이 한몫에 내려지는 바람에 낳아지기는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는다.천만다행이었다.회장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육체적으로 온갖 시련을 몸으로 받아내고 물리쳐야 올곧은 회장이 되는가보다.이제 비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지듯 그의 산행에 축복이 있으리라 믿어본다.

 

 

호절골재에서 동쪽 삼봉산 능선의 암장을 바라보며 정영천 회장이 느긋하게 포즈를 잡았다.

 

[한 겨울철에도 반바지,반소매 처림의 별종,손의선]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가장 기량이 향상된 두 사람을 들라면 의선이와 기환이다.작년 낙남정간 종주 때만 해도 의선이는 초반에는 늘 뒤에 처지기 일쑤였다.그러나 백두대간을 끊어타면서 사정은 확 달라졌다.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선두에 설 수 있는 산꾼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재화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몸무게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여전히 그는 물을 엄청나게 많이 들이키고 한 겨울에도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이다.워낙 열이 많은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단다.그 차림으로 덤불이라도 지나치면 다리와 팔에는 온통 상처투성이지만 목욕 한 번 하고 나면 그 상처는 온데간데 없으니 실로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게다가 커다란 덩치에 어디서 그런 섬세한 요리실력을 지녔는지 아연실색이다.부모가 이북 사람이라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그는 우리를 먹여살리는 주방장 노릇을 톡톡히 한다.대간 종주팀원들이 모두 소중하지만 의선이가 오지 않은 날이 있다면 다들 재미는 커녕 풀 죽은 모습을 하게 될 것이리라.그는 종잡을 수 없는 기인(奇人)이다.

 

[삼봉산 능선의 의선이와 정 회장 뒤로 덕유연봉이 아아하다.]

 

호절골재 억새밭에서 촬영을 끝내고 삼봉산 능선으로 오르다 정 영천 회장과 손의선 회원이 나란히 섰다.두 사람 뒤로 가로지르며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능선이 대간 마루금으로 그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수정봉이다.두번째 산줄기 뒤의 능선이 대봉(1,263m)에서 투구봉(1,274.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왼쪽 잘룩이가 대봉에서 잦아드는 잘루목으로 왼쪽 봉우리인 갈미봉(1,210.5m)으로 이어져 빼재로 이어진다.그리고 세번째 푸른 산줄기가 백암봉(1,490m)에서 향적봉(1,614m)으로 굽이치는 장쾌한 북덕유 능선이다.

 

[수도~가야산 능선을 등지고 선 정 회장과 의선]  

 

수정봉과 대봉,그리고 북덕유 능선을 조망하고 9시 40분,돌탑이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오른 듯한 가야산을 바라본다.수도산과 단지봉 사이 능선너머로 가야산이 슬며시 엿보인다. 

 

[삼봉산에서 조망한 대덕산과 거창 삼도봉]
 

9시 45분,삼봉산(1,254m)에 올라 대덕산과 거창 삼도봉을 조망한다.소사마을 뒤쪽에 헌걸차게 치솟은 봉우리가 대덕산이다.왼쪽 봉우리는 대덕산(1,290m)이며,김천 사람들은 투구봉이라 일컫고 그 오른쪽 봉우리가 거창 삼도봉(1,250m)인데,애기봉 또는 대덕산 남봉이라 부른다.대간은 소사마을을 거쳐 거창 삼도봉으로 올라붙어 대덕산을 지나간다.

 

수[삼봉산 정수리에 선 종주팀] 

 
삼봉산(1,254m)에 올라 8분 가량 사위를 조망하고 빗돌을 중심으로 기념촬영을 했다.왼쪽부터 정영천 산우회장과 한정문,전기환,이재화 산우회 총무,손의선,김익수,김황세 그리고 김현기 후미대장이 보인다.
 

 

 

[덕유산의 첫머리,삼봉산(초점산) 빗돌을 중심으로] 

 

삼봉산 정수리에는 거창 덕유산악회에서 세운‘덕유삼봉산’이란 빗돌이 서 있다.삼봉은 본래 초점산이라 하여 덕유산의 첫머리가 되는 산으로 산경표에 나와 있다.삼봉산 빗돌을 중심으로 대간 종주팀이 다른 각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삼봉산 암장을 내려서는 종주팀] 

 

9시 53분 삼봉산을 떠나 발품을 판다.10시 4분,거대한 암봉과 마주쳤다.바위를 더듬어 꼭대기에 올라서니 조망은 거칠 게 없었다.동쪽은 직벽으로 아찔하고 북쪽 역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암릉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돌아 내려섰다.그 암봉이 고스란히 바라뵈는 지점에 다다라 뒤를 돌아보니 바위벽에 붙은 의선이와 익수가 암봉을 더듬어 내려오고 있었다.나는 바위가 위험하니 왼쪽(서쪽)으로 돌아 내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바로 그 장면이 이 사진이다.

 

[소사고개  분기봉에서 바라본 대덕산과 소사마을]

 

10시 12분,소사고개로 내려서는 대간 분기봉(1,250m)에 다다라 다시 한 번 대덕산 일원과 소사마을을 조망한다.삼봉산은 바위산인데 비해 대덕산은 육산이라 사뭇 대조적이다.이 분기봉에서 대간은 소사고개(740m)까지 한껏 자세를 낮추다가 거창 삼도봉(1,250m)으로 서서히 고도를 높여 대덕산(1,290m)으로 이어진다.


사진에 보이는 저수지 오른쪽 숲속으로 대간이 지나는데,한가운데 길이 난 밭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지며 도로가 가로지르는 일대가 소사마을이다.그곳의 대간 분수령이 소사고개다.소사고개에서 대간은 드문드문 이어지는 숲을 따르게 되고 오른쪽 거창 삼도봉으로 맥을 잇는다.

 

[소사고개 대간분기봉에서 조망한 국사봉 일원]

 

소사마을로 하산하기에 앞서 대간분기봉(1,250m)에서 국사봉(875.1m) 일원을 조망한다.거창 삼도봉(1,250m)에서 남진하다 활처럼 휘어져 동진하는 삼도봉 지맥은 국사봉을 일으켜세운다.사진 중앙에 치솟은 이 국사봉에서 또 하나의 지맥은 우두령으로 자세를 한껏 낮추다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 수도산을 일으켜 세운 뒤,가야산으로 나우리치면서 경남과 경북의 경계를 이룬다.

 

[소사마을 배추밭에서 올려다본 삼봉산능선] 

 

10시 12분,소사고개로 하산하는 분기봉(1,250m)에 다다르자 대간은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서게 된다.가파른 하산길은 더러 낙석의 위험이 있어 조심스럽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7부 능선쯤에 이르자 5-6미터 높이에 "다래"가 열려 있었다.

 

나는 다래나무를 딛고 올라가 가지 끄트머리를 휘어잡고 말랑말랑한 다래를 따 마침 충주에서 왔다는 세 명의 젊은 종주팀에게 다래 맛이 나 보라고 던져 내렸다.그들은 다래 맛을 보더니 그 기막힌 맛에 탄성을 지른다.그러는 사이 우리 종주팀도 다래나무 밑에 다다르자,나는 연신 다래를 따 밑으로 내려주었다.의선이는 지난해 지리산 중봉골을 내려오다가 "다래" 맛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모친"이 몇 십년만에 다래를 처음 맛보며 즐거워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재배하는 양다래(키위)가 아니라 자연산 다래를 먹어본 동료들도 달착지근하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그 맛에 흠뻑 빠져든다.그러나 다래를 더 따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 나무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10분 가량 발품을 팔아 평탄에 산길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확 달라지며 발걸음이 빨라진다.10시 40분,갈림길이 나오고 조금 가자 숲길을 벗어나 배추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사진은 배추밭에서 올려다본 삼봉산 능선이다.왼쪽으로 쏟아질듯 빛나는 거대한 암봉 뒤에 삼봉산 정상이 있으나 보이지 않고 그 능선을 따라 오른쪽 봉우리 잘룩이로 하산길이 트여 있다.그 배추밭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10시 56분,1089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소사고개에 다다랐다.경남 거창군 고제면에서 전북 무주군 무풍면으로 넘는 소사고개에는 이렇다할 표지판이나 이정표마저 보이지 않았다. 

 

[숲을 벗어나 배추밭으로 들어서는 재화와 기환]

 

배추밭으로 들어서는 재화와 기환이를 삼봉산 능선과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소사고개  727번 도로변 배추밭에서 삼봉산을 등진 재화]
 

 

10시 56분,소사고개 고갯마루에 다다르면서 이제 완전히 덕유산 구간을 벗어나 대덕산 구간으로 들어선다.삼봉산에서 내려오는 대간길이 생각보다 길어 어디서 목이라도 축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재화와 나는 소사고개 왼쪽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도로가에 배추밭이 나오고 거기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인다. 마당 앞 나무에는 대간꾼들의 리번이 휘황찬란하게 걸려 있다.아마 우리처럼 잠시 목을 축이고 간 길손들의 흔적인 모양이다.

 

우리는 막걸리 대신 동동주와 시원한 맥주를 청해 차례대로 갈증을 다스렸다.재화는 어제 저녁 한 숨도 자지 못했으니 술기운으로 저 삼도봉에 올라가야겠다며 동동주를 들이킨다.동료들도 이게 웬 술이냐며 반색을 한다.평소 술을 먹지 못하는 나도 달착지근한 동동주 한 사발을 들이키니 기분이 상쾌했다.한바탕 술추렴이 끝나고 행장을 차려 11시 10분,삼도봉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삼도봉 오름길,묘지에서 삼봉산을 배경으로]  

 

소사고개는 고도가 700미터 안팍의 고지대이지만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구릉으로 되어 있다.대부분 백두대간을 따르게 되어 있는 도경계 또한 밋밋한 흐름의 산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마루금을 벗어나 무풍면 덕지리 부흥동으로 쳐져 있다.신라와 백제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도 경계는 소사고개가 아니라 덕유산 삼봉(1,254m)에서 뻗어내린 능선,즉 나제통문을 경계로 한 설천면과 무풍면이었다.

 

무풍면이 전라도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것은 소사고개가 고개로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소사고개는 고갯마루에 마을이 들어설 만큼 여유가 있었고,그러한 연유로 강원도에나 있을 법한 고랭지 채소밭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11시 10분,소사고개를 떠나 4분쯤 발품을 팔자 석물이 있는 묘지에 다다른다.묘지를 지나자 또다시 묘지가 나온다.이제 억새가 하늘거리는 풀숲으로 올라서서 동료들을 한데 모아 삼봉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삼도봉 아래 잔디밭에서 조망한 삼봉산과 소사마을] 

 

조금 발품을 팔자 이번에는 배추밭이 나온다.배추밭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자 숲길이 나온다.11시 26분,숲길이 끝나고 다시 배추밭을 건너자 자갈길이다. 작은 구릉 허리를 돌아서자 넓직한 빈터가 나오는데,밭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장이었다.11시 43분 공사장을 지나 돌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대간은 산길로 이어진다.본격적으로 삼도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이었다.우리는 그 들머리에서 잠시 목을 추긴다.

 

청주에서 왔다는 세 명의 젊은 대간꾼들도 그 오르막을 오른다.잘 먹지 못하는 동동주를 마신 탓에 걸음이 자꾸만 무디어지고 가꿀막진 오르막길은 점점 더 경사가 심하다.장단지가 당기고 호흡이 가팔라진다.오늘 구간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술심(酒心)으로 재화는 훨훨 날아 선두로 치고 오르고 젊은 대간꾼들을 추월하자 "대단하네요."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12시 16분,삼도봉 아래 잔디가 잘 조성된 묘지에 다다라 배낭을 벗고 호흡을 고른다. 오늘 처음으로 땀을 흘렸다.나는 잔디에 앉아 삼봉산과 소사고개를 카메라에 담았다.사진 한가운데 숲이 띠를 이룬 지대가 나오고,대간은 이곳을 끊어질 듯 이어지며 절묘하게 통과한다.

 

[거창 삼도봉에서 건너다본 삼봉산 산줄기] 

 

전망 좋은 잔디밭에서 삼봉산을 건너다보며 숨을 고른 다음, 삼봉산 앞 봉우리(1,170m)로 오른다.12시 21분,그 봉우리에 올라선 뒤 3분 가량 발품을 팔아 거창 삼도봉(1,248.7m E 127.53.20/N 35.54.40) 정수리에 올라섰다.먼저 올라온 재화는 "이건 순전히 술심으로 올라왔다."며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고 있었다.

 

이 봉우리를 김천 사람들은 대덕산 정상 남쪽에 있다하여 대덕산 남봉이라 부르거나 대덕산 정상을 투구봉,이곳을 애기봉이라 일컫는다,그러나 거창 산악인들은 경남 거창군 고제면,경북 김천시 대덕면 그리고 전북 무주군 무풍면 세 도가 만나는 봉우리라 하여,거창 삼도봉이라 즐겨부른다.이 거창 삼도봉에서 국사봉으로 한가닥 지맥이 흘러내려 우두령을 거쳐 수도산과 가야산을 일으켜 세우고 경남과 경북의 도계를 이룬다.대간은 삼도봉을 지나면서 경남 땅과 헤어지고 왼쪽은 전북,오른쪽은 경북의 도계를 분수령 삼아 삼도봉까지 굽이쳐나간다.

 

 

거창 삼도봉 정수리(1,254.7m)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려 12시 48분,눈 앞에 빤히 보이는 대덕산(1,290m)으로 떠난다.삼도봉에서 북서쪽으로 1,150m 잘룩이까지 내려갔다가 대덕산 앞봉(1,250m)까지 치고 올라야 한다.사진은 그 잘룩이로 내려서면서 대덕산을 조망한다.맨 뒤의 봉우리가 대덕산 정상이며 그 왼쪽 봉우리가 대덕산 앞봉이다.대덕산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소잔등처럼 보인다.

 

 

삼도봉에서 잘룩이로 내려섰다가 대덕산 앞봉을 치고 오르면 억새밭과 만난다. 전기환 원장이 억새밭을 헤치고 있다.

 

 

황세가 억새밭을 지난다.

 

 

정영천 산우회장이 은빛 억새밭에서 손을 흔들며 발품을 팔고 있다.

 

 

정 회장 다음으로 의선이가 억새밭을 지나고 있다.

 

 

후미의 익수와 현기가 은빛 천국의 억새밭을 지난다.

 

 

삼도봉에서 잘룩이로 내려섰다가 대덕산 앞봉에 오르면 억새밭이 펼쳐진다.기환이와 정문이가 억새밭을 통과하고 있는데,한정문 회원의 힘겨워하는 모습이 엿보인다.저멀리 삼봉산의 산세가 헌걸차다. 

 

 

1시 25분,핼기장이 있는 대덕산 정상(1,290m)에 이르렀다.은빛 억새 사이로 거창 삼도봉이 보이고 그 너머 하늘금을 긋는 코발트빛 연봉이 거창의 산,산들이다.그리고 거창 삼도봉 왼쪽 산자락 아래,김천시 대덕면 외감리에는 내 선조의 선영이 자리잡고 있어 대덕산과 삼도봉에 오른 감회가 남달랐다.내가 산을 좋아하고 산행을 즐기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내 마음속에 대덕산이 이미 심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후 1시 26분 마침내 대덕산(大德山 1,290m) 정상에 이르러 종주팀이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대덕산 정상에서 조망은 한마디로 막힐 것이 없었다.저 멀리 구미의 금오산과 가야산,그리고 덕유산 연봉과 지리산 능선이 아스라하다.최고의 전망터다웠다.우리는 조망을 마치고 헬기장에 퍼질러 앉아 간식을 들었다.

 

 

오후 1시 42분,이제 덕산재로 하산이다.정상에서 400미터쯤 더 북쪽으로 가 오른쪽으로 내려간다.산비탈은 가팔라 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다.내리막 들머리는 산죽밭이 우거져 있어,비가 오는 날에는 흙길은 진창으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덕산재로 방향을 틀고 15분쯤 내려오자 전혀 물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샘이 있다.얼음골 약수터다.시원하고 단맛의 약수로 갈증을 달래고 덕산재로 쏜살같이 내려간다.

 

2시 31분,덕산재에 다다르니,기묵이의 봉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그런데 덕산재에 있던 주유소와 매점은 폐허가 되어 흉물스러웠다.이곳에서 라면을 끓이고 점심을 들기로 한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대진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덕산재를 거쳐 무주 구천동으로 가던 차량통행이 급격히 감소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이렇듯 새로운 도로가 뚫리면 마을과 도로의 영락(榮落)도 함께 하는 수가 허다함을 우리는 누차 보아오지 않았던가.2시 45분,후미가 덕산재에 모여들었다.

 

이제 부항령까지 6km 남은 구간을 종주해야 하는데,덕산재에서 점심을 먹고 약 2시간 30분 가량 산행을 하면 부항령에 도착할 시간은 빨라야 날이 저문 저녁 6시 30분경이 될 듯하였다.그렇다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정 회장과 익수를 차에 두고 우리끼리 종주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 오늘 종주는 덕산재에서 마감하기로 뜻을 모았다.이렇게 되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반색을 한다.

 

나는 흑돼지로 유명한 김천 지례로 직행키로 했다.내 본향이기도 한 지례(知禮)의 흑돼지는 경북 지방에서는 그 맛과 풍미를 알아주기 때문에 그곳으로 안내했다.대덕을 지나 지례 시외버스정류소에 있는 "지례돼지가든" 에 차를 세우고 점심,저녁 겸 흑돼지구이를 들었다.이럴 때 저녁 식대는 당연히 내 몫이었다.산행 뒷풀이를 마치고 거창으로 가는 대신 세칭 아흔아홉고개(가마목재)를 넘어 가기로 했다.가마목재 너머 증산에서 30번 도로를 따라 성주까지 가는 30km의 계곡은 북쪽 가야산 갈피갈피를 에도는 길이라 경치가 장관인데,작년 태풍의 여파로 엉망진창으로 파헤쳐져 적잖이 실망스러웠다.성주를 지나고 고령 땅을 거쳐 부마고속도로에 들어섰을 즈음 밀려드는 졸음에 나는 나른한 잠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종주정보]

 

07:50빼재(920)...<0.8>...08:25수정봉(1,040)...<0.75>...된새기미재...<0.8>...09:00 1,190분기봉(1,170)...09:20호절골재...<1.45>...09:45-09:53삼봉산(1,254)...<0.6>...10:12 소사고개 분기봉(1,250)...<1.3>...794.3봉...<0.7>...10:56-11:10 소사고개(740)...<2.8>...12:24-12:48삼도봉(1,250)...<1.2>...13:26-13:42 대덕산(1,290)...<2.5>...14:45 덕산재(650)

 

도상거리:12.9km

종주시간:6시간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