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주들머리,덕유교육원 갈림길에 선 종주팀]
덕유교육원 갈림길-서봉-남덕유-월성치-삿갓골재 4.65km(2003년 8월 17일)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3시 46분,국제신문사 건너 한양프라자 앞에 백두대간 6구간 종주를 위해 종주팀이 다시 모였다.재화,황세,기환이와 의선이,나를 비롯,초대손님 한정문 씨 그리고 봉생크로바산악회 이임자,송보경 씨 8명이었다.
의선이에 이끌려 참가한 한정문 씨는 지난 8월 10일 대운산 납량산행에 참여한 바 있으며,우리산줄기 답사에 뜻을 새겨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그리고 10년 가까운 탄탄한 산행경력을 갖춘 여성 산꾼 이임자,송보경 씨 역시 재화의 권유로 종주시간이 비교적 짧은 이번 대간 길에 동참하였다.서마산에서 기묵이의 봉고에 현기를 태우자 대간 종주팀은 모두 9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70~80mm 가량의 비가 쏟아질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우리를 초장부터 우울하게 만들었다.그렇다면 오늘도 빗속을 헤치는 산행을 감수해야 하리라 생각하니 착잡했다.하지만 산청을 지나 함양 땅에 들어섰는데도 가랑비만 흩날릴 뿐 큰 비가 내릴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기묵이의 봉고는 대진고속도로 서상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지난 구간 하산지점인 영각교로 향했다.5시 40분,아침밥을 먹기 위해 영각교 못미쳐'서상농협농수산물집하장'에 내렸다.햇빛 가리개가 있어 비를 피하기 좋았고 속을 비우기에 적당한 측간도 있어 안성맞춤이었다.두 여성 회원은 스치로폴 상자에서 김이 무럭무럭나는 시락국과 김치,뜨뜻한 밥을 풀어내며 익숙한 솜씨로 밥상을 차린다.산청휴게소에서 소고기국밥을 몇 번 든 적은 있었지만 직접 끓여온 시락국을 먹기는 종주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초량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임자 씨의 각별한 성의에 고마움을 표할 뿐이다.시락국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또 몸이 하자는 대로 그 속을 비웠다.
기묵이의 봉고는 영각교를 거쳐 개울을 건넜다.6시 50분,봉고는 외딴집 앞에 멈춰섰다.기묵이와 황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산행에 들어갔다.
7시 7분,덕유교육원 오르는 갈림길에서 잠시 길이 헷갈려,교육원 잔디밭으로 들어갔으나 이내 길을 찾아내 지난번 우리가 내려온 길을 따라 오른다.날씨가 찌부퉁하고 기압이 낮아 땀이 억수같이 쏟아진다.7시 43분,덕유교육원 갈림길인 대간마루금에 다다랐다.이 갈림길에서 곧장 오르면 덕유서봉이요,왼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할미봉을 거쳐 육십령에 닿는다.덕유교육원 갈림길에서 종주팀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뒷줄 왼쪽부터 김현기,손의선,이재화,송보경(봉생크로바산악회),한정문,김황세,앞줄 왼쪽부터 이임자(봉생크로바산악회),전기환 동기의 모습이 보인다.

[구름 비낀 합미봉]
덕유교육원 갈림길을 뒤로 하고 서봉으로 오른다.마사토 길을 걸어 7시 55분,헬기장에 올라섰다.거기서 구름 비낀 합미봉을 뒤돌아본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장계]
헬기장에서 오른쪽 장계(長溪)를 조망한다.덕유서봉에서 뻗어내린 깃대봉(930.3m) 일원으로 솜털같은 구름이 떠돌고 있다.

[헬기장에서 합미봉을 등지고]
구름 덮인 장계 일대를 훑어보다가 합미봉 쪽을 보니 그 상상봉이 홀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사진 왼쪽의 울퉁불퉁한 봉우리가 합미봉 동릉이며 그 어깨쭉지가 합미봉 정수리이다.할미봉 너머 육중한 산이 지난 구간 우리가 거쳐온 깃대봉(1,014.8m)이다.사진 왼쪽부터 이재화,이임자,송보경,손의선,김황세 그리고 한정문 씨가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헬기장에 올라온 현기와 기환이가 합미봉을 뒤에 두고 자세를 잡았다.이 사진을 찍자마자 합미봉은 다시 구름에 가려버렸다.

[전망바위 오름길에 올려다본 덕유서봉]
헬기장에서 합미봉과 장계 일대를 조망하고 오르막길을 하염없이 더터오른다. 지난번 종주 때 오르내려 한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등산로는 처음보다 몇 차례 다니다보면 같은 길이래도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드디어 8시 30분,우리가 한바탕 해프닝을 벌였던 그 1,260봉 전망바위에 다다랐다.잠시 다리쉼을 한 다음,밧줄을 타고 내려와 또 다리품을 팔기 시작한다 사진은 전망바위에 닿기 전 오름길에서 구름이 짙게 드리우다가 시나브로 구름이 벗겨지면서 모습을 드러낸 서봉 일원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구름 덮인 장계 일원의 산들]
다시 발품을 팔아 서봉으로 오르다 구름 덮인 장수군 일원의 산들을 조망한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예전에 시골마당 한 켠에 소리없이 자라던 풀이 있다.잡초인지 농사짓는 식물인지 구분도 않고,밭인지 화단인지 경계도 없이 대강 크고 있다가,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을 일이 생기면 갑작스레 생각나는 풀이 바로 배초향이다.
남쪽지방 사람들은 방아잎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배초향이 늦은 여름 막바지 꽃을 피워내고 있다.배초향은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한 번 심어 두면 두고두고 잎을 얻을 수 있으며 늦여름부터 가을 내내 고운 꽃구경도 할 수 있다.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이웃한 중국,대만,일본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산아래 낮은 곳에서부터 1,000m가 넘는 높은 산 정상까지 분포하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서 자란다.다 자라면 1m쯤 되는데 많은 가지를 만들어 내고 가지마다 잎과 꽃이 매달린다.꽃 한송이의 크기는 1cm도 안 될 만큼 아주 작고,게다가 잎술 모양의 길쭉한 꽃송이는 반쯤은 꽃받침 속에 가려져 있지만 그래도 작은 꽃송이들은 10cm정도의 원기둥 모양으로 둥글게 둥글게 모여 달린다.꽃빛깔은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보라색이며 꽃잎보다 더 길게 수술이 나와 있다.우리가 먹는 잎은 길쭉한 심장모양으로 생겼으며 두장씩 서로 마주 나는데 길이는 5~10cm정도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열매는 10월쯤 꽃차례 모양 그대로 익는데 꽃이삭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배초향은 향신채 음식에 잘 이용해 왔다.식물체 자체에서 방향성 냄새가 나므로 매운탕이나 추어탕같은 음식에 넣어 끓이거나 생선회와 곁들여 먹으면 생선 비린내를 없애준다.또 고기를 싸서 먹거나 봄철에 어린 순을 데쳐서 여러 번 우려서 무쳐 먹으면 깻잎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부드럽고 독특한 향기가 그만이다.쉽게 말해 우리 토종 허브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또 잘 말려서 차로 마시면 훌륭한 허브차가 된다.
한방에서도 여러 증상에 이 풀을 이용한다. 우리가 이용하기 쉬운 방법으로는 입안에서 냄새가 날 때 이물로 양치를 하면 좋다.물론 꽃을 보기 위해 심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키가 큰 편이므로 햇볕이 드는 정원 가장자리에 심어도 보기 좋고 꽃꽂이용으로 잘라 이용할 수 있다.
[덕유서봉 정수리에 올라]
서봉으로 닥아갈수록 안개는 짙게 깔리고 있었다.지난 구간 그렇게 많던 원추리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다 마주치는 원추리마저 꽃 대궁이 시들어 볼 품이 없었다.그 대신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붉은 산오이풀과 주홍색 동자꽃과 배초향이 만발하여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
서봉은 거대한 암릉이 하늘로 치솟아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9시 8분,마침내 장수덕유산(1,510m)이라고도 하는 서봉 정수리에 다다랐다.구름이 정상을 배회하여 사위는 어둡고 답답했다.우리는 서둘러 정상에 오른 감회를 사진으로 가름하며 서봉을 떠나 하산길에 들었다.
[애틋한 일화를 간직한 쑥부쟁이]
자채,홍관약,쑥부장이,마란 따위로 불리는 쑥부쟁이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히 자란다.7-10월 흰색에 가까운 연한 보라색 꽃을 피운다.전설에 의하면 "쑥을 캐러 다니던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어서 피어난 꽃이라서 쑥부쟁이라 한다.
가을의 우리 산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인데,흔히 들국화라 일컫는 꽃이다.가지가 아주 많이 갈라지고 꽃도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서 그 무게 때문에 땅에 비스듬히 누워 자라는 것이 대부분이다.이 쑥부쟁이 종류는 대략 15가지가 자라는데 구별이 쉽지 않다.까실쑥부쟁이,섬쑥부쟁이,개쑥부쟁이,참쑥부쟁이,갯쑥부쟁이,가은잎쑥부쟁이,왜쑥부쟁이 등이 6월부터 10월까지 피는데 번식력이 대단히 강해서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꽃은 구절초나 개미취에 비해 조금 작지만 무리를 이루어 작은 언덕배기를 온통 연한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물들인 모습은 참으로 바람부는 가을 산의 장관이다.단풍 든 먼 산과 티 하나 없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그저 바람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우리네 인생도 저렇게 유연하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램이다.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기다림인데 아래 전설을 읽어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다.이 때문에 그는 매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항상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이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이나 산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열심히 캐곤 했다.그래서 동내 사람들은 그녀를'쑥을 뜯으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이라는 뜻으로 쑥부쟁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다.노루는 고마워하며 언젠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졌다.그날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였다.한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쑥부쟁이가 치료해 준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다.
쑥부쟁이가 목숨을 구해 준 사냥꾼은 자신이 서울 박 재상의 아들이라고 말한 뒤,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했다.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왔다.쑥부쟁이는 사냥꾼과 만났던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올라갔지만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쑥부쟁이는 애타는 기다림 속에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끝내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다.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 해 갔다.그동안 쑥부쟁이에게는 두명의 동생이 더 생겼다.게다가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다.
어느 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갔다.그리고 흐르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정성스레 떠 놓고 산신령께 기도를 드렸다.그러자 갑자기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준 노루가 나타났다.노루는 쑥부쟁이에게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 주며 말했다."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말을 마친 노루는 곧 숲속으로 사라졌다.쑥부쟁이는 우선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소원을 말했다."우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완쾌되었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다시 산에 올라가 사냥꾼을 기다렸다.그러나 사냥꾼은 역시 오지 않았다.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주머니를 생각하고,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다.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다.그러나 그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둘이나 둔 처지였다.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그러나 쑥부쟁이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그에게는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 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다.
그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했다.세월은 자꾸 흘러갔으나 쑥부쟁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다만 동생들을 보살피며 항상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면서 나물을 캤다.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것이라 믿었다.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나물이라 불렀다.
[남덕유의 기환]
덕유서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순하디 순했다.짙은 숲속길이라 걷기에도 좋았다. 대간마루금 양쪽으로는 현란한 야생화가 피어 넋을 빼놓을 지경이었다.도라지과에 속하는 연자주색 잔대와 흰진범이 앞다투어 피어 있고,그 사이사이에는 연자주색 구절초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선두의 황세와 의선이는 바람처럼 남덕유 갈림길로 내려가버렸고,후미에선 나는 두 여성 회원과 한정문 씨와 함께 대간 길을 걸으며 일일이 야생화를 어루만지고 사진을 찍어가며 그들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9시 44분,남덕유와 월성치 갈림길(1,400m)에 다다르니,선두에 선 의선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의선이 홀로 그 갈림길에 남고 황세는 남덕유 정상으로 올라가버렸다는 것이다.9시 50분,후미 일행이 갈림길에 다다르자 우리는 배낭을 벗어놓고 남덕유 정상으로 오른다.정상에 거의 다다를 무렵,황세가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우리는 황세와 함께 남덕유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주위를 조망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視界)가 좋지 않자,한정문 씨는 몹씨 아쉬워했다.맑은 날 남덕유에서 사위를 조망하는 맛은 정말 일품인데,그 아쉬움은 어디 정문 씨 혼자만의 아쉬움이랴.
[덕유동봉,남덕유 정상 빗돌과 함께]
월성치로 내려간다.이 길에도 군데군데 야생초가 피어올라 밋밋한 산행에 더없이 값진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며느리밥풀꽃은 덕유서봉 오름길에서부터 삿갓재대피소에 이르는 대간 길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아마 까탈스런 할미가 며느리를 구박하여 그렇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을 만큼 헤아릴 수 없는 개체가 보였다.동자꽃도 보이고,백부자로 알려진 흰진범이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10여분 발품을 팔자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온다.나는 봉생크로바산악회 이임자,송보경 두 여성 산꾼을 멈추게 하여 사진을 찍었다.어두운 숲터널 저 아래로 밝은 양광이 쏟아져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월성치 내리막길에 선 여성회원]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진범은 여러해살이풀이며 한국 특산식물이다.진범이 짙은 보라색인데 비해 흰진범은 흰색깔이 섞여있고 얼핏보면 병아리같이 보이기도 한다.넝쿨식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줄기를 뻗어올린뒤 꽃을 피운다.유난히 길게 뻗은 가지가 쓰러질 듯 보이기도 하는데 의외로 줄기가 딱딱하다."용사의 모자"라는 꽃말을 지닌 흰진범은 백부자(白附子), 흰진교라 일컫기도 하는 유독식물이라 유의해야 한다.중부지방의 고산지대나 고원지의 초원지대,양지 바른 곳에 자생한다.
['용사의 모자'라는 꽃말의 진범]
10시 43분,월성치에 다다랐다.선두의 황세와 의선이 그리고 재화는 벌써 삿갓봉으로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이 월성치는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거창군 북상면 황점으로 탈출할 때 주로 이용하는 들목이기도 한다.사진 왼쪽부터 김현기,한정문,이임자 그리고 송보경 씨가 월성치 이정표를 사이에 두고 포즈를 잡았다.

난장이바위솔은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고산지대의 척박한 지대에 사는 식물답게 생명력이 끈질기다.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마치 이끼처럼 살아가는 난장이바위솔은 생명의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보통 한군데 옹기종기 모여사는데,습기가 있고 햇볕이 좋아보이는 남쪽 경사면에서는 제법 큰 군락을 이루며 살아간다.꽃말은 "근면"이며 사국와송(四國瓦松)이라 일컫기도 한다.전국의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의 바위표면이나 척박한 잔돌밭에 자생한다.
사진에 보이는 난장이바위솔은 삿갓골재대피소 건너편 바위 위에 이끼와 더불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내가 그곳으로 닥아가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대전 안내산악회를 따라온 중년의 한 유산객 아줌마가 난장이바위솔을 보곤 호들갑을 떨며 "아이,어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어 있담!" 하면서 난장이바위솔로 가더니 기어코 한웅큼 뽑아내 집으로 가져갈 테세다.나는 "아주머니,설령 그 꽃을 집에 가져가더라도 곧장 죽어버릴 테니 그대로 두세요." "이곳과 그곳의 환경과 생태조건이 다르니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게요."하고 타이르자 난장이바위솔을 그 자리에 두고 되돌아 오며 "미안해요,꽃이 예쁘다보니 순간적으로 충동이 일었군요."하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아지매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했으니 오히려 나은 편이다.
그런데 얼마전 금정산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야생초 채취꾼이 원추리를 뿌리 채 뽑아 한 망태기 가득 채우고 있었다.나는 이런 몰염치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성미인지라 "여보슈,왜 원추리를 뽑아내는 거요.당신 모가지를 그렇게 문질러 한 번 뽑아보면 좋겠소."하고 쏘아대자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마 제법 원추리에 대해 잘 아는 전문채취꾼인 듯 싶었다.자연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기실 자연 파괴에 앞장서는 풍토가 정말 아쉽다.난을 사랑한답시고 온 산을 쏘다니며 산을 벌집 쑤셔놓질 않나,수백만원 아니 수천만원을 호가 한다는 수석을 갖기 위해 강가나 냇가를 이잡듯이 뒤지질 않나.이 모든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분별한 자연파괴인지 그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그런 사람들은 필시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일 것이다.
[삿갓골재의 난장이바위솔]
이제 월성치(1,240m)에서 삿갓봉(1,410m)에 오른 뒤,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삿갓골재대피소(1,280m)까지 가야 한다.선두의 황세와 의선이는 또 줄달음쳐 보이지 않�다.우리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이제 한마장만 끊어타면 오늘 수업은 끝난다.
삿갓골재대피소에서 남덕유로 거슬러오르는 산꾼들과 마주친다.가벼운 목례에다 "수고하십니다."란 인사를 나누며 지나친다.그러나 차림새로 보아 오늘 대간을 종주하는 팀은 우리 이일산우회뿐인 것 같다.대간 길은 서서히 오르다가 맞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제끼는 바람재로 올라붙는다.
11시 8분,이 바람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12분 가량 발품을 팔자 북동진하던 대간이 왼쪽(북)으로 방향을 틀더니 전망바위가 나온다.전망바위에서 길은 다시 유순해지다가 11시 43분,삿갓봉 아래턱에 다다른다.우리는 삿갓봉 오르기를 생략하고 삿갓봉 왼쪽 산허리길을 따라 걸었다.여기서 삿갓골재대피소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다.많은 등산객들이 삿갓봉으로 오르고 있다.배낭은커녕 물병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등산화조차 신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말하자면,운동화를 신고 평상복 차림으로 삿갓봉에 오르고 있었다.이들은 등산객들이 아니라 필시 유산객(遊山客)들이 분명할 것이다.만약 예기치 않는 사고라도 나면 어찌 할 것인지 집행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12시 정각,우리 일행은 삿갓골재대피소에 다다라 오늘 종주를 마감했다.12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종주날머리,삿갓골재대피소에서]
내가 준비한 빵과 현기가 가져온 식빵으로 요기를 하고 기묵이가 기다리고 있는 거창군 북상면 황점으로 내려간다.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가량 걸었다.
많은 등산객과 유산객들이 삿갓골재대피소로 올라오고 있었다.다음 제7구간 끊어타기 때 우리는 다시 이 길을 올라와야 한다.계속 이렇게 가풀막지다면 대간 마루금에 올라서기도 전에 진을 뺄 터인데...걱정이 앞선다.그러나 쉼터에 다다라,얼굴을 씻고 뻘 투성이의 등산화를 털어내고 다시 길을 재촉하자 아주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오후 1시 27분 황점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이르자 기묵이가 마중나와 있었다.5분 뒤,우리는 황점마을에 도착하여 6구간 끊어타기를 끝마쳤다.
매번 그렇지만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가 부리나케 새벽 집결지에 오곤한다.종주를 할 때는 막상 긴장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그런데 종주를 마치고 차를 타면 웬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주체할 길이 없다.오늘도 봉고에 올라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깨어보니 낙남정간 종주 때 애용한 '양촌 목욕탕' 앞이 아닌가.
아마 몇 시간은 좋이 잠들었던가보다.1시간 가량 목욕을 하고나니 몸이 가뿐하다.진전면 양촌 목욕탕에서 마산으로 오는 길은 마지막 피서객들의 차량 행렬로 거북이 걸음이었다.어렵사리 마산 시내에 들어가 마산의 본전통이라는 오동동 "뜨락" 통술집 문을 두드렸다.
마산의 동기들,특히 최민석,여환부,김현기 동기가 즐겨 찾는 통술집으로 갖가지 해산물이 줄을 이어 나오기로 이름 난 술집이다.(아! 굵은 소금 뿌린 은빛 칼치에다 그 비싼 뽈락-이게 나오는 술집은 망하기 십상이라는데..).마산 근동의 낙남정간을 종주할 때 몇 번 애용하여 이 집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는 마음 편하게 술잔을 돌리며 대간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특히 오늘 처음 대간 종주에 동참한 한정문 씨가 대간 입문 기념으로 술값을 내는 바람에 회원들로부터 박수세례를 받기도 했다.뜨락의 마지막 메뉴인 해물수제비를 끝으로 산행뒷풀이를 마감한다.그리고 현기의 전송을 받으며 우리는 부산으로 가기 위해 기묵이의 봉고에 몸을 실었다.
[종주정보]
07:43 덕유교육원 갈림길(950)...07:50 헬기장(1,070)...08:30 1,260봉(전망바위)...2.0km...09:00 서봉(1,510)...0.8km...09:44-09:50 삼거리(1,400)...0.4km...10:06 남덕유(1,507.4)...0.4km...10:18 삼거리(1,400)...1.15km...10:43월성치(1,240)...1.09km...전망바위(1,340)...0.53km>...삿갓봉(1,410)...0.28km...12:00-12:12 삿갓골재 대피소(1,280)
*대간 종주거리:5.85km
*접근 및 탈출거리:6.3km
06:15 영각교(600)...2.5km...07:43 덕유교육원 갈림길(950)
남덕유 삼거리(1,400)...0.4km...남덕유(1,507.4) 왕복
12:12 삿갓골재대피소...3.0km...13:30 황점
*총산행거리:12.1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