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품-천마산(天馬山)
맨 처음 내가 오른 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올랐다기보가 그저 걸어갔다고나 할까.나를 키워내고 살 찌운 부산,영도섬이 빤히 건너다 보이고 부산의 중심가,남포동과 광복동 그리고 남항과 송도 백사장,감천만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천마산(322.3m)이 내가 처음 오른 산이었다.
어릴 적 천마산 중턱에 살았던 나는 매일같이 동무들과 더불어 천마산을 찾았다.천마산 꼭대기엔 장군바우라 하는 높이 70m는 됨직한 바위벽이 있다.어른들이 말하길,그 위에 이순신 장군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장군 발자국이라 하는 내 신발 크기로 세 배나 되는 발자국과 말발자국이 움푹 패여 있다.그런데 이 흔적은 이순신 장군이 천마를 타고 단번에 영도섬으로 건너뛰면서 생겨났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그런 까닭에 산이름을 천마산(天馬山)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천마산 장군바우에 올랐을 때,어찌나 바람이 드센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 바위턱에 두 발로 서 있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시원함이나 우뚝함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다.또 손에 빤히 잡힐 듯 떠 있는 주전자섬,나무섬과 수평선 멀리 아주 까마득하게 보이는 섬(뒤에 알았지만 그것은 가덕도와 거제도였다!)과 대마도의 실루엣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두렵고도 황홀했다.
[천마산 전망대에서 건너다본 장군바우 옆모습]
천마산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바위를 오르내리고 이쪽 봉우리에서 저쪽 봉우리의 억새풀을 헤치고 달음박질치고,그러다가 지치면 풀섶에 드러누워 잠들기도 했다.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꽃과 새와 풀과 나무를 체험했고,곤충이나 뱀과 어울려 놀았다.내게 천마산은 그 어떤 산보다 소중했다.눈을 감아도 어디에 무엇이 있고,어디에 그늘이 있어 햇볕을 가릴 수 있음을 알았다.또 어디에 물이 흐르고 어느 골짜기에 가면 어떻고 어느 바위는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를 훤히 알고 있었다.한 번은 바위 끄트머리에서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나는 죽음 한발짝 앞에서 살아난 적도 있었다.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도 내 입술에 훈장처럼 남아 있다.
그래도 이튿날엔 산을 올랐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천마산에 빠졌던 것에 비하면 요즘의 내 산행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천마산에는 조그만 절집이 두 개나 있었다.내 친구 아버지가 주지라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어 절 분위기를 일찍 맛볼 수 있었던 것도 내겐 다행스런 일이었다.이 땅의 웬만한 산 치고 절이나 암자가 없는 산이 어디에 있겠는가.
천마산은 내개 산과 절을 동시에 가르쳐준 셈이었다.내가 살아오면서 이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본 적은 일찌기 없었다.어른이 된 지금도 산을 찾고 있으나 아무리 빼어난 명산이라 하더라도 천마산에서 느낀 그런 행복감에는 미치지 못하곤 한다.그만큼 내 가슴 속에 심어진 천마산의 무게나 자리를 뛰어넘지는 못하는 것 같다.그러니 천마산은 비록 작았을망정 옹골찬 내 세계였다.
[솔나무6길-시멘트길로 바뀌어 흥취가 반감된 가파른 오르막길]
오늘은 45년만에 그리운 천마산으로 가는 날이다.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었으니 얼마나 바뀌었을까 ? “아무리 세월이 흐르더라도 천마산으로 오르던 그 길은 그대로 일거야...바뀌면 얼마나 바뀌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미동 산복도로로 차를 몰아 남부민동과 초장동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라 도로 한켠에 차를 세웠다.
천마산을 바라보니 문득 가슴이 뛰놀고 야릇한 분위기마저 감돈다.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곳.내 어릴 적 추억이 오롯하게 남아 있는 이 공간.거기를 모처럼 찾은 탓에 가벼운 훙분마저 일었다.눈을 감아도 선하게 떠오르던 그 길.샘,집들,골목길,그리운 얼굴들...내가 수도 없이 오르내리던 그 길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들머리부터 벽에 부딛혔다.예전의 흙길은 깡그리 사라지고 시멘트도로로 바뀐데다 넓어져 있었다.집들도 낯설다.거의 달동네라 다닥다닥 붙어 있던 함석집들 사이로 미로같은 골목길이 있었는데 너무 바뀌어 어디가 어딘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10분쯤 오르면 샘이 나와야 하는데 샘도,그 많던 집들도 보이지 않고 곧장 숲길이 나온다.이게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 하며 40년 전에 만든 산복도로로 내려와 .솔나무7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오르니 새로 만든 산복도로와 마주친다.
[보문사 경내-예전의 그 절집은 사라지고...]
[보문사 경내에 핀 풍접초]
바로 그 곁에 내가 자주 드나들던 절집이 보였다.그런데 막상 그 절에 올라보니 예전의 절집이 아니었다.그런데 보문사란 이 절과 이웃하여 천부암이란 절집이 보인다.아,그 천부암이 내 친구의 부친의 절이었다.절 뒷쪽으로는 무성한 대숲과 수목으로 뒤덮여 그 옛날의 오솔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절에는 물어볼 사람마저 보이지 않는다.그리운 그 동무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도룡사 오름길에 만난 거목-중학교 때 우리가 조림한 나무도 있는데...]
다시 새로 난 산복도로로 내려와 왼쪽 숲길로 들어서니 풀섶 사이로 가녀린 숲속길이 보인다.그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처음에 올랐던 그 가파른 시멘트길과 만난다.그렇다면 조금 오르면 동네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던 샘터가 나와야 할 텐데 흔적조차 없었다.숲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도룡사란 안내판이 보인다.예전에 이 절에도 가끔 들른 기억이 있던 바로 그 절이었다.그때는 절 이름도 없었고 자그마한 암자에 불과했는데...그 암자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팔라 우리들은 가다가 쉬고 쉬다가 오르곤 했었지...그렇지만 이 일대는 민둥산인 천마산 가운데서도 그나마 숲이 가장 울창한 곳이었다.지금은 거의 한아름쯤 되는 오리나무와 벚나무,소나무가 울울창창하고 마지막 여름을 노래하는 매매소리만 귀에 쟁쟁하다.
[도룡사 산신각의 단청]
잠시 도룡사에 들렸다가 내려오니 갈림길에 중년의 마을 사람들이 쉬고 있다.가볍게 목례를 하고 마을 사정을 물어보니 그들도 저 아랫마을에 사는데 이곳 사정은 잘 모르고 있었다.나와 갑장이라는 그 분은 더듬더듬 옛 기억을 들추어내지만 정작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기억을 못했다.나는 그분들과 헤어져 갈림길 왼쪽 산길로 오른다.짙은 숲길이라 조망이 안 되어 마냥 오르기만 한다.예전에는 작은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고작이어서 한눈에도 천마산이 훤히 드러났는데...
15분쯤 오르자 산등이 평평해지면서 산등 날망에 이른다.예전에는 이 길은 없었다.우리는 이 길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용암사 앞으로 난 길로 올랐는데...숲이 울창해지면서 등산로를 이쪽으로도 낸 모양이었다.
[천마산 조각공원의 작품들]
그런데 산길이 끝나면서 천마산 조각공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많은 사람들이 츄리닝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고 새파란 잔디밭에는 군데군데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등산복 차림은 나 홀로였다.예전에 이 일대는 풀밭이었는데....여치도 잡고,필기도 뽑아 먹고,뜀박질에다 겨울이면 토끼몰이도 하던 곳인데 지금은 조각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조선 때는 목마장으로 쓰였고 오른쪽 봉우리 위에는 봉수대도 있었는데...지금은 봉수대를 알리는 돌탑만 보일 뿐,예전의 기억을 되살릴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천마산 전망대 오름길에 돌아본 조각공원 전경,송전탑 왼쪽 정수리는 봉수대터]
조각공원 남쪽으로 난 작은 봉우리로 오르니 전에 없던 전망대가 보였다.나는 전망대에 올라가 “장군바위”를 살피니 동쪽으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장군바위는 그대로 있었다.아! 얼마 만이냐,장군바우야! 이제 조금씩 옛 시간으로 빨려들어간다.
우선 전망대에서 영도(影島)과 송도(松島) 백사장과 감내라 부르던 감천(甘川)을 살폈다,그리고 부산 남항의 외항 위로 점점이 떠 있는 배 너머 수평선이 맞닿은 곳에 대마도가 아스라하다. 영도와 남부민동 사이 남항 외항을 이어주는 신남항대교가 건설중에 있었다.그리고 가덕도와 거제도의 검푸른 산등도 거뭇하게 보인다.오늘은 날이 청명하여 좀처럼 볼 수 없던 대마도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니 더욱 더 그 옛날이 간절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도와 장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감천만]
[천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남항의 외항 전경]
설레는 마음으로 장군바우에 오르니 70대쯤 돼 보이는 할배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역시 그 바람은 예전처럼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목례를 하고 “어르신,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 아시죠?” 하고 물으니,
“아니,모르겠는데...” (장군바우 입구엔 천마바위에 얽힌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천마를 타고 한달음에 절영도로 건너 뛰었답니다.”
"처음 듣는 얘긴 걸...“
“아무리 더워도 이 바위에 오르면 시원하죠.?”
"그래서 나도 매일 이곳에 오른다네“
”제 아무리 땡볕이 쏟아져도 여기만 오면 오장육부가 시원하다네?“
”어르신,그렇죠.우리나라에서 제일 시원한 곳이죠.“
이렇게 말하며 나는 부산의 중심가,남포동과 광복동,남항과 북항을 살펴본다.남항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공동어시장이 있고,북항에는 항도 부산을 대표하며 믈동량 제일을 자랑하는 부두가 빤히 바라보인다.그리고 그 너머로 새로운 명물인 광안대교도 눈에 들어오고..해운대도 아련하게 보인다.
[절영도(絶影島)에서 비롯된 영도-지금은 폐쇄된 영도다리가 명물이었다.]
천마바우라고도 하는 장군바우는 거대한 수직 암벽 끄트머리에 말 발자국과 장군 발자국이 움푹 패여 빗물을 담고 있었다.우리는 이 암벽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돌아내려서기도 했는데,알고 보니 6.25후에 금정산에 암장이 개척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위꾼들의 암벽훈련장이었으며,60년대 초 ‘견우와 직녀’라는 흑백영화를 찍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커다란 말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깊게 패인 장군바우]
[장군바위 윗쪽의 옆모습]
[징군바우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명소다.사진 출처:天眞]
[천마산에서 바라본 송도의 야경 사진출처:天眞]
[천마산에서 바라본 을숙도 일몰 사진출처:天眞]
'장군바우'에서 한참을 머물다 용암사로 하산에 들었다.용암사란 절도 우리가 자주 드나들었던 암자였는데 그곳의 물맛이 좋았던 것이 생각난다.조각공원을 벗어나 용암사로 내려오니 그곳에도 새로 단장한 대원사란 절이 보기좋게 세워져 있었다.이 절은 아닌데...하며 경내에 들어가보니 커다란 암벽 바로 밑에 용암사란 절이 대원사와 이웃해 있었다.대원사를 내려와 다시 돌계단을 딛고 오르니 용암사다.아무도 없다.경내에 있는 거목을 사진에 담고 하산길에 들었다.
[대원사 경내,오른족 암벽 아래에 용암사가 이웃해 있다.]
[대원사 경내의 능소화와 배롱나무]
[용암사 경내의 거목,예전에 내 키만 했는데...]
산복도로에 내려와 차의 시동을 걸고 송도로 갔다.천마산 장군바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송도로 가야 한다.산복도로가 끝나고 남부민동 윗길과 만나는 아리랑고개에 서서 천마산 장군바우를 화인더에 넣고 송도로 갔다.철은 지났지만 백사장에는 제법 유람객들이 눈에 띄었다.다들 숭용차를 갖고 이곳에 오기 때문에 주차할 공간이 변변치 않았다.
[송도로 넘는 아리랑고개에서 장군바우를...]
부산에서 제일 먼저 해수욕장을 연 곳은 바로 송도였다.인천 송도와 이름은 같지만 1950-1970년대 송도 백사장은 여름철이면 인산인해였다.바다 한가운데에 다이빙대가 있었고 백사장 동쪽의 거북섬에는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철 지나면 데이트 코스로 숱한 청춘남녀가 밀어를 속삭이곤 했던 낭만이 철철 넘치던 곳이었는데,그 자리를 이제는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이 대신하고 있다.근래 들어 송도는 새롭게 단장을 하고 면모를 일신했다.부산에 살았던 이들가운데 송도를 알지 못하거나 송도에서 여름을 나지 않은 사람은 정녕코 부산 사람이랄 수도 없고 아울러 송도의 낭만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송도백사장-제1사장에서 제2사장을 잡았다. ]
[송도란 지명이 비롯된 거북섬에서 남항을 보며..]
[거북섬에서 잡은 송림 우거진 송도공원-예전엔 데이트 장소였다.]
끝으로 송도 백사장에서 천마산의 장군바우를 끌어당겨본다.저 높은 암장의 산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던 어린시절,송도 백사장에서 바라보면 한없이 높고 웅장하던 천마산 장군바우,그 바위를 다시 찾고 이 송도를 찾은 오늘 나는 까마득히 잊었던 시간과 만났다.그리하여 천둥벌거숭이 시절로 돌아간 내 모습을 보았다.그러나 이제는 만화경 속의 그림들처럼 흘러간 흑백사진이 되어 그 시간이 내게로 돌아온다.
[송도 제1백사장에서 당겨본 천마산 장군바우]
우리가 산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 산들로부터 행복해진다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물론 산을 사랑하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많겠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산이 높다고 해서 기쁨을 더 많이 주고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높은 산에 오르면 낮은 산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구태여 말한다면 정신이 들어올려지는 숭고함이라 하겠다. 나는 산에 익숙해지면서 차츰 고도를 높여가며 산에 올랐다.처음에는 그냥 산이 좋아서 올랐다.높이를 따질 필요도 없었고,그저 산이 좋은 탓에 열심히 오르기만 했다.그런데 지리산과 한라산과 같은 산에 올랐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이를 수 없었다.높은 데서 낮은 데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고민꺼리와 같은 잡다한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진다.그리고 자신이 더욱 작아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커지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 천마산 장군바우에 서니 내 푸른 꿈이 아직도 저 흰구름 너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오,그리운 천마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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