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흘리에 있는 진부령 대간 빗돌을 뒤로 하고 대간 내려잇기 그 첫 걸음이 시작된다.]
그 옛날 동서를 잇는 오솔길이었던 진부령은 "1632년 간성 현감이던 택당 이식이 인근의 승려들을 동원해 좁은 길을 넓혔으며,1930년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했고,1987년 2차선 도로로 넓혔다."는 고개마루 빗돌의 글은 진부령의 유래를 어렴풋이 전해주지만,정작 진부(陣富)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부령(525m)은 한계령(1,004m),미시령(770m)과 더불어 설악을 대표하는 고개다.그러나 두 고개와 달리 진부령은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고 험준하지도 않다.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는가 하면 가게들이 마을을 이루어 백두대간의 고개로는 통 믿기지 않는다.고갯마루가 마을을 이루었으니 예로부터 부르기를 ’조쟁이’라 하였다.지난날,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곡물이 마주 올라와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선다.’는 뜻으로 얻은 이름이다. 요즈음 부르는 이름으로 흘3리(屹三里)이며 고성군 간성읍을 따른다.
고성과 간성이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그만 남북으로 갈라졌다.고성은 북녘 땅이 되고 간성은 남녘 땅이 되고,남녘 땅에 붙여진 고성군의 명칭은 창졸간에 코앞의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는 이름이다.진부령 길은 이제 46번 국도로 바뀌어 제법 오가는 이의 발길이 늘었지만,알고 보면 마치 몸뚱이의 절반을 쓰지 못하는 반신불수의 운명처럼 아주 가엽고 애처로운 길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름도 그럴싸한 알프스의 추억으로,스키장의 낭만을 떠올리고,겨울이면 으레 눈이 키보다 높게 쌓이는 고산지대의 설원을 그리며 마음이 들뜨지만,정작 그 고갯길로 말미암아 저 통곡의 금줄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이 시작되고 있음에는 관심이 없다.더더구나 남도의 끝자락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물경 1천6백80리를 거슬러 오르다가 분단선에 가로막혀 그만 속절없이 주저앉은 백두대간의 슬픔은 더욱 모른다.아니다.너무나 잘 알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그렇다.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늘과 땅이 갈리고 세상과 세상이 나뉘어 오른팔과 왼팔이 서로 마주보며 닿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랴.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녘의 백두대간!
45분 여 발대식과 시산제를 끝내고 5시 8분,저 통곡의 금줄 앞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리며 백두대간 대장정의 첫걸음을 뗀다.
[33산우회 지창근(좌) 총무와 용마 김종만 부총무-대간 들머리를 등지고 서다.]
부흥식당을 오른편에 끼고 계단길을 밟으면 포장도로에 올라선다.대간마루금은 도로를 건너 곧장 가파른 절개지로 이어진다.이곳을 종주해본 이들이라면 대간마루금을 따라가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들 한결같이 아쉬움을 털어놓는다.마루금이 개인사유지인 탓에 펜션이 들어섰거나 목장이어서 철조망이 처져 있기 때문이다.굳이 마루금을 따라 숨바꼭질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그냥 도로를 따라 걷기로 한다.첫 구간 들머리부터 싱싱한 숲길을 기대했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하지만 어쩌랴.1천6백80리에 이르는 대간 마루금 곳곳은 상채기가 나서 훼손되기도 하고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아설 뿐더러 봉우리가 몽땅 사라져버리는 비운을 목도하게 될 터이니...이것이 오늘날 백두대간의 현주소인것을!
[선두의 하영수 백두대간 위원장과 동문들이 계단을 더터오른다.(05:09)]
[일렬로 늘어선 용마의 행보]
제아무리 궁벽한 오지일망정 일단 포장도로가 뚫리고 나면 필연적으로 마을은 옛 모습을 잃고,도시문화에 동화되기 마련이다.진부령도 예외가 아니다.결국 지리적인 단절과 거리가 오지(奧地)의 첫째 조건이며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그런 뜻에서 무엇 때문에 대간을 종주하는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하리라.직선과 광속(光速)의 도시문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도시문화에서 동떨어질수록 오지에 가까워지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지금 이 땅 어디에 그런 곳이 남아 있기나 할까? 산간벽지까지 포장도로가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면서 급속하게 변모해가고 있다.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오지라 하던 곳도 가보면 도시와 다름없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그런데 대간마루금은 적어도 도시와 단절된 그 무엇이다.그렇지 않은 곳도 없지는 않지만 대간마루금만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유일한 보고(寶庫)이다.대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루금,즉 능선만을 고집한다.계곡으로 내려간다거나 물을 건넌다면 대간이 아니다.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마루금을 따르는 길은 오직 한 길뿐이다.그러니 아슬아슬 외줄타기다.나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좋아한다.그래서 대간마루금에 서면 더 없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선두 이종태(28회) 동문의 배낭에 대간종주 리번이 선명하다.]
[스키 장비대여점을 지나며(05:25)]
고개를 넘어 '밖흘리'에 있는 스키장비 대여점을 지난다.밖흘리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키장에 기대어 생계를 꾸린다.길 가에는 스키장비 대여점이 즐비하고 북구의 양식으로 지은 화려한 건물들이 딴 나라에 온 듯한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긴다.흘리는 본래 불밭(火田)으로 따비밭을 일구어 옥수수와 감자 따위 잡곡이나 겨우 먹고사는 산꼭대기 오지마을이었다.그 흘리에 스키장이 생기고 어언 30여년이 흐르는 동안,토박이들은 대부분 이 땅을 뜨고 이제는 스키장을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 도회지 닮은 마을을 이루며 산다."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은 영락없이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이 되었다.한때 그렇게 유명세를 타던 알프스 스키장마저 이젠 쇠락할 대로 쇠락해 황량한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마을의 영욕 또한 세월의 부침과 함께 한다는 말이 과시 틀리지 않음을 실감할 수가 있다.
[인적마저 끊겨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환화콘도-금년엔 복원한다지만...(05:39)]
[환화콘도 앞마당에 핀 꽃들-사람의 간섭이 없으니 더 아름답다.]
[오 부대장이 잡은 선두- 한화콘도 앞마당으로 접근하고 있다.]
[환화콘도 앞마당의 용마-그 너머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아하다.]
[민통선 안의 칠절봉과 향로봉 사이에 있는 둥굴봉이 손짓한다.]
[눈물고개의 오른쪽 키 큰 전봇대 너머로 향로봉(1,296.3m)이 아스라하다.]
[마산(馬山 1,051.8m)으로 오르기 직전의 용마]
선두는 진부령을 출발,30분만에 환화콘도 앞마당에 다다랐다.10분 가량 몸을 풀며 후미를 기다린다.눈물고개 너머로 칠절봉에서 둥굴봉을 거쳐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본다.저 능선 너머에 분단의 상징,휴전선이 남과 북을 가를 것이다.그 산줄기를 등지고 이제 본격적인 대간 길로 들어선다.
[종주들머리로 들어서는 선두(05:50)]
5시 50분,한화콘도 왼쪽 들머리 백두대간 마산(馬山)을 알리는 안내판을 뒤로 하고 숲속으로 스며든다.숲길은 훤히 열려 있다.조금 오르니 오른편 발치 아래로 알프스 스키장 리프트가 보이는가 싶더니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린다.스키장을 만들면서 대간마루금 바투 아래까지 절개지가 형성되었다.부드러운 흙길이지만 가풀막지기가 한량이 없다.가파른 오르막에선 몸에 신호가 오기 마련이다.초장부터 힘을 소진하지 말고 자신의 걸음걸이로 천천히 올라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후미대장인 현기한테 무선을 넣어 동문들한테 보폭을 조절하라고 일렀다.
[마산 오름길에 잡은 동화속 그림같은 흘리와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칠절봉 산줄기-26용마 배기호 촬영(06:04)]
늘 그러하듯 28용마 이종태 동문이 앞장 서고 9회 차진환 선배와 17용마 송승구 선배,울산의 14용마 전부길 선배,하영수 고문과 오기현 왕대장이 선두를 이뤘고 21용마 객원으로 참여한 대간순이 마산의 이성선,부산의 김성귀,22용마 김일준 회장,김성재 용마 감사가 그 뒤를 잇는다.첫번째 쉼터에 오르면서 뒤돌아본 흘리는 분단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흡사 동화속에 나오는 성곽처럼 신비하다.그 너머로 매봉에서 칠절봉을 거쳐 둥굴봉 향로봉으로 물결치는 남녘 휴전선 산줄기가 병풍처럼 가로막아선다.저 장벽이 사라져 북녘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아볼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살아 생전에 그리 될까?
[첫 쉼터에서 오기현 왕대장,하영수 고문,김성재 부회장,김일준(22) 동문이 간식을 들며 다리쉼을 한다.]
30여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첫번째 쉼터에 올라 다리쉼을 한다.하나같이 가팔라 힘들었다며 물을 마시고 요기를 한다.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벌써 지치지 않아야 할 텐데,걱정이 앞선다.그렇지만 숲속을 떠도는 나무와 꽃들의 에테르가 싱그럽기만 하다.몸 안팎의 경계가 서서히 지워지고 교감하기 시작한다.이럴 땐 새소리도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마련이다.일상에서 무디어졌던 오감이 살아나는 느낌이다.그러는 사이 33용마들이 차례로 올라오고 그 뒤를 대간을 세 번이나 종주한 23용마 박수갑 용마산악회 수석부회장이 오른다.
[차진환(9) 선배,송승구(17) 선배,앉은 자세의 전부길(14) 선배-선두를 지킨 대단한 고수들이다.]
[쉼터로 오르는 33산우회 김동환,이철관 동문-표정이 환하다.]
[용마의 마스코트,33산우회의 김미란,김태훈,박수갑(23) 용마 수석부회장]
[13용마 이일희,이태랑 선배와 33용마 이철관,28용마 이종태 동문이 숨을 고른다.]
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집행부가 제일로 삼은 원칙은 선두와 후미가 20~30분 이상은 차이가 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이 가이드라인은 물론 실행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후미를 독려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그래서 선두가 빠른 걸음으로 달리지 않도록 무시로 무전을 통해 통제하곤 했다.이 원칙은 대간령까지는 그런대로 지켜졌지만 신선봉을 오르면서부터 워낙 후미가 처지는 바람에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결국 종주를 끝냈을 때 후미가 2시간 가까이 늦게 종주들머리에 다다랐다.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선두와 후미가 아무리 차이가 나더라도 1시간이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다음 종주부터는 더 세심한 주의와 소통을 통해서 이를 최소화하기로 다짐했다.
후미의 현기가 첫 쉼터에 다다랐을 무렵 선두는 마산으로 걸음을 옮겼다.산행은 대개 초반 30분이 중요하다.아직도 산이 요구하는 몸의 상태,근육이 풀리고 가쁜 숨길이 제자리를 잡는데는 대개 반시간은 지나야 한다.첫 쉼터에서 7분 가량 쉰 선두는 땀이 식어 몸이 차거워지기 전에 걸음을 옮긴다.몸이 풀리면 느린 걸음이라 해도 꾸준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마산 정수리에 선 전부길(14),차진환(9),김일준(22),김성재(22) 동문(06:48)]
선두는 한결 편해진 걸음으로 6시 48분,마산(馬山1,051.8m) 에 올라섰다.진부령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쾌청했는데 마산에 올라서자 서서히 안개가 스멀거리기 시작한다.이러다가 비는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또 다시 밀려온다.마산 정수리 암장 바로 아래,예전 군부대 터의 잔해는 말끔히 치워져 풀을 심고 울타리를 둘러쳐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후미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마산 주위를 살펴보니 붉은색이 감도는 흰 꽃의 참조팝나무가 보였다.자세히 살펴보니 꽃잎과 꽃술 하나하나 신비스런 색갈과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그리고 좀처럼 꽃을 보기 어렵다는 박새도 보였다.
[마산 정수리의 23용마-최인표 산행대장,김상경 총무]
[21용마로 참여한 준족의 대간순이-김성귀,이성선]
[참조팝나무-꽃잎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함축돼 황홀하다.]
[참조팝나무의 그윽한 모습]
[마산 정수리 아래 군 막사가 있던 자리에서 후미를 기다리는 선두.]
[산생불이(山生不二)-산과 삶이 둘이 아니라는 지론의 차진환(9) 대선배-스틱 대신으로 우산을 들었다.]
[용마산악회를 이끄는 정영천 회장-지리산에 서는 그날까지 여여하기를!]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홀로 종주하고 있는 송승구(17) 선배-대단한 산행능력과 열정을 지녔다.]
[마산 정수리 아래 빈터에서 포착한 민들레 홀씨]
[좀처럼 꽃을 보기 어렵다는 박새]
[33산우회 일행이 마산 정수리 아래 공터에 다다라 여유를 즐긴다.]
[마산 정수리의 정영천 용마회장,오기현 왕대장,박수갑 수석부회장 일행과 만면에 웃음짓는 하영수 고문 뒤로 병풍바위가 우뚝하다.]
[용마의 막내둥이 44회 이승철,37회 윤태훤 동문 ]
[오늘의 히어로 13용마 제병민 고문-벌써 상의가 땀으로 젖었네요!]
[21용마 최금구,26용마 서울의 배기호,21용마 김현기 후미대장이 마산에 오르다.]
[박수갑(23) 용마산악회 수석부회장의 느긋한 모습-대간종주 세 번이나! 역시 경험이 제일!]
[23용마 이병훈 동문-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산꾼이다.]
[마산으로 오르는 13용마 이일희 선배]
[13용마 이태랑 선배,그 뒤로 33용마 이철관 후배가 세월의 나이를 잊은 채 마산에 오르다.]
[마산 군 막사터에서 다리쉼을 하는 동문들]
30분 넘게 마산 정상부에서 시간을 지체하자 후미가 합류한다.7시 25,선두는 병풍바위가 있는 1,060봉으로 출발한다.그런데 이곳에서 독도를 게을리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마산 정수리에서는 오른쪽 숲속 90도로 방향(남쪽)을 틀어야 하는데 무심결에 오던 그대로 훤히 트인 등산로(북동쪽)를 따라가면 죽변봉으로 빠져 알바를 하게 된다. 사진을 찍다 나도 이를 깜박하여 되돌아오는 수고를 했으니 부끄러웠다. 병풍바위로 오르는 등산로가 숲속으로 뻗었다.싱그런 초록 내음이 물씬 풍기는 숲속으로 맑디 맑은 새소리가 울려퍼진다.볼륨을 한껏 높여 아침을 노래하는 산새들-곤히 잠든 숲속을 깨우고 한 걸음씩 더터오르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준다.
[마산에서 병풍바위로 오르는 산길-초록내음이 물씬 풍기는 청량한 ?길이다.]
산은 오래된 것들이면서도 늘 새롭다.잊어버린 사랑이다.거기서 에너지를 얻곤 한다.오르막을 오르며 육체는 땀을 만난다.정신은 공기와 목욕을 한다.한 걸음 한 걸음에 혼신의 힘을 실어오른다.오른 만큼내려와야 한다.산행은 이처럼 정직한 걸음이다. 7시 33분,어느 새 병풍바위에 올라선 나를 발견한다.
미운 것이 안개라더니 이곳에 올 때마다 시계불량이다.멀리 볼 것도 없이 나와 가까운 곳,더 나아가서 흐릿한 내면을 살피라는 뜻일까.정작 거울속 제 모습도 보지 못하면서 멀리 볼 수 없음을 탓하는 어리석음을 또 들켜버렸으니 갈 길이 멀구나.병풍바위에 싱그런 6월의 연초록 바람이 분다.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열린다.등줄기를 적시던 땀을 식히고 요기를 한다.오래된 미래의 이 산중에서 선후배가 한데 어울리는 정겨움과 끈끈함은 질박하다.그 가운데서도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대간 식구는 단연 김법영 총무.아내와 아들,게다가 처남이 함께 했으니 대간 종주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대간은 두려움으로 시작하여 고통으로 걷고 희열로 마무리한다는 말처럼 부디 완주하기를 기원해본다.
[병풍바위(1,060m)의 송승구 선배와 병풍바위 남릉-길을 잘못 들기 쉬운 지릉이다.(07:33)]
[병풍바위 사면에 보석같이 돋아난 칼바위]
[창 넓은 모자를 쓴 33용마 김태훈 동문-걸어다니는 꽃박사다.]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 26용마 서울의 배기호 동문-우리산줄기 답파를 위해 1대간 9정맥을 종주하고 있다.]
[동문들의 부러움을 산 김법영 총무의 대간 식구들-아내 김미란,아들 김현일,처남 김창동]
[병풍바위가 있는 1,060봉에서 다리쉼하는 33용마]
[병풍바위에서 선후배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다.]
15분여 병풍바위에서 머물다 7시 48분,대간령으로 하산한다.그런데 이 병풍바위에서도 알바를 하기 쉽다.병풍바위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멋들어지게 줄달음치는 지능선-그곳을 밟고 싶은 유혹을 억눌러야 한다.대간마루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파른 병풍바위 하산길-하 고문님이 시간을 보며 동문들의 운행을 확인한다.]
[890봉에서 올려다본 병풍바위를 품은 1,060봉]
대간은 병풍바위 조금 못미쳐에서 동쪽으로 내려서야 한다.병풍바위(1,060m)에서 830미터 잘룩이로 내려와 암봉인 890봉까지는 가파르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흙길이다. 30분 가량 발품을 팔아 890봉에 올라선다.이제부터 830봉 전망바위까지는 설악산의 전형적인 바위지대,너걸겅을 통과해야 한다.그런데 암봉인 890봉에서 건너편,동남쪽에 우뚝 치솟은 안개 드리운 신선봉과 상봉을 바라본다.그순간 불현듯 시계가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토성군 문암에서 대간령으로 안개가 띠를 이루어 몰려든다.2년 전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내려올 때도 지금과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너덜겅은 비록 짧지만 조심스런운 구간이다.발 놓을 곳을 잘 찾아야 하고 균형을 잃어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
[대간령 내려가는 길의 너덜겅]
[조심스럽게 발품을 팔며 너덜겅을 지나는 동문들]
[삽시간에 대간령으로 밀려드는 안개-자연의 조화는 오묘하다.]
[890봉에서 내려다본 너덜겅과 전망바위가 있는 830봉]
[890봉에서 바라본 신선봉과 상봉-불현듯 안개가 드리운 산빛이 농담을 연출한다.]
[병풍바위를 내려와 대간령 너덜길 들머리 890봉에서 숨을 고르는 정영천 회장]
[13용마 제병민 고문-힘든 구간을 소화해내고 890봉에서 은근하게 미소를 짓다.]
[김법영 총무,아내 김미란,아들 김현일 일가족,등 너머 신비로운 안개가 신선봉을 휘감고...]
[890봉 너덜에 오른 김종만 부총무와 지창근 33산우회 총무-오늘의 포토제닉상을 받을 만한 멋진 구도다.]
[야생화 박사라는 33용마 김태훈 동문이 발견한 '등대시호'-희귀식물로 지정된 소중한 식물자원이다.]
[턱수염이 이채로운 23용마 이병훈 동문이 너덜겅을 내려오고 있다.]
[설악산 너덜겅 맛보기인가?-조심스럽게 균형을 잡고...]
[불교에 정통한 33용마 정영학 동문-다음에는 아들과 함께 하면 어떨런지!]
[평소 안 쓰던 근육을 밀고 당기고,균형을 잡아가며 너덜을 통과하는 선두]
[대간 길 내내 카메라를 든 17용마 승승구 선배-멋진 사진 보여주세요.]
[너덜길을 통과한 뒤 숲속에서 올려다본 기이한 칼바위]
[너덜을 통과하여 올려다본 너덜지대-890봉 꼭대기엔 동문들의 모습이...]
[대간령 바로 위 830봉 전망바위에 다다른 선두]
[830봉 전망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두]
[21용마 객원으로 참여한 김성귀 대간순이가 선두에 서서 대간령으로 내려서다.]
[대간령에 일착으로 내려온 차진환(9),전부길(14)선배와 22산우회 김일준 회장이 다리쉼을 하다.]
[23용마 김성재 용마산악회 김사가 대간령 돌확에 앉아 숨을 고르다.]
[대간령의 오기현 왕대장(20),지창근(33),정영학(33),김미란(33) 동문]
[대간령(650m)-동해와 인제를 이어주던 옛 고개길]
9시 8분 대간령(大間嶺 샛령 650m)에 다다르니 풀섶에 커다란 돌무지가 흩어져 있다.성황당이었다.대간령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옛길로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진부령과 미시령보다도 사람들의 왕래가 더 빈번했던 고개였다.경사가 완만한 데다 거리도 지금의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이었던 탓이다.예전에는 석파령(石坡嶺)이라고도 했고,한때 사자원(獅子院)이 있어서 원기령(院基嶺)이라고도 했다는 대간령,지금은 대간꾼 외에 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소간령(小間嶺 작은샛령)은 진부령 아래서 샛령을 향해 골짜기를 거스르다 만나는 고개인데 오름길이 된비알이라 이곳 사람들은 "된박재"라 부른다.
해방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샛령 정상 성황당에서는 매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성황제를 지냈다고 한다.그러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돌무더기는 여기저기 돌담을 짓느라 흩어져 있었다. 대간을 남북으로 이어 걷는 대간꾼들이 하룻밤을 머무느라 그랬을 것이다. 나뭇가지에는 온통 빨갛고 노란 표지기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대간령 돌확에 앉은 선두는 후미가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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