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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32구간<대관령-진고개>(하)

 

동해전망대-매봉-소황병산 분기점-노인봉-진고개 12.52km(2005년 8월 7일)

 

분홍바늘꽃은 대간 길에서는 좀체로 보기 힘든 꽃이다.오늘 나는 이 꽃을 두 번이나 만났으니 감격스러웠다.한 번은 동해전망대 빗돌 근처였고 또 한 번은 소황병산 분기점 근처의 초지에서였다.

 

동해전망대 근처에서 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때는 삼양목장에서 목초 씨앗을 외국에서 들여올 때 함께 따라온 외래화이겠거니 여겼다.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가파른 비탈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살펴보니 극히 일부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는 희귀식물,분홍바늘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재빨리 전망대로 올라왔다.

 

한여름의 더위도 다가서지 못하는 높고 깊은 산에서 아주 드물게 자라는 풀.게다가 바라보는 순간 감탄사를 늘어놓을 만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꽃이 바로 분홍바늘꽃이다. 분홍바늘꽃을 만나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절로 알 수 있다. 꽃이 분홍색이며 씨방이 바늘처럼 아주 길게 자라기 때문이다.이처럼 씨방이 아주 긴 식물들은 모두 바늘꽃과에 포함되는데 이 집안 식물들이 보통은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우리가 잘 아는 달맞이꽃과 분홍바늘꽃이 단연 꽃이 크고 화려하며 그 중에서 분홍바늘꽃은 고고하기까지 하여 단연 돋보인다.

 

남한의 산에서는 적어도 해발 1,000m 이상은 되어야 하고 볕이 드는 풀밭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곳이다.다른 말로 두메바늘꽃이라고도 하고 큰바늘꽃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이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은 깊고 깊은 두메산골이며 다른 바늘꽃 종류에 비해 식물체 전체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한자로는 유란(柳蘭)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화이어위드(Fireweed)라고 부른다. "화이어워드"란 말은 불탄 자리에 자라는 바늘분홍꽃을 뜻한다.존 허시는 원폭투하 1개월 후의 히로시마중심가 풍경을 ‘Panic Grass(기장 벼)’ 와 ‘fewfew (여름 흰붓국화꽃)’로 표현했다.특히 벽돌조각이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새로 돋아난 Sickle Senna(석결명꽃)가 번듯이 꽃밭을 이룬 모습을 “원자폭탄이 식클센나 꽃씨를 뿌린 것은 아닌가”로 표현했다.

 

불탄 자리에 자라나는 풀이라는 이름의 일반성은 2차 대전 당시 런던에서 숱한 공습 후에 피어난 꽃이라는 것으로 더 알려졌다.미국에서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파이어위드는 수림이 불탄 후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 나무의 정령이라고 한다.나는 분홍바늘꽃을 만난 것만으로도 오늘 종주는 매우 훌륭했다고 단언하고 싶다.

 

 

동해전망대 빗돌 오른편에 간이매점이 있고 나무식탁도 마련되어 있었다.매점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무식탁은 우리들한테는 최고의 식탁이었다.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느긋한 아침식사였다.

 

3년전 대간 종주를 시작하고나서 처음으로 격식을 갖춘 아침식사였으니 기분이 쨍이었다.이런 분위기에는 현기의 걸쭉한 한마디가 빠질 수 없으렸다."대간을 종주하고서 이렇게 멋진 식사는 처음이야~"하며 연신 입심을 돋군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은 최상의 산중만찬이었다.숲속 산등성이 아니면 돌확에 어줍잖게 자리를 깔고 앉아 벼락같이 아침을 들거나 점심을 먹곤했으니 그런 찬사가 쏟아져도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해전망대에서 서쪽에 있는 황병산과 삼양 대관령목장이 있는 삼정평 일대를 바라본다."목초는 우유와 고기입니다."란 푯말 너머로 골안개가 피어오르고 두 골짜기가 만나는 곳이 1단지 축사가 있는 삼정평이다.

 

 

동해전망대에서 동쪽으로 강릉시가지를 조망했지만 시계가 좋지 않아 원경이 희미하다.

 

우리가 아침을 들고 있는 사이에 동해전망대에는 많은 산꾼과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제법 시끌벅적 했다.그들 가운데 순천의 한백산악회에서 온 대간팀을 만났다.대형버스를 타고 종주에 온 이들은 2진이었으며 1진 세 사람은 선자령에서 만났던 주력좋은 그 사람들이었다.나중에 함지목에서 3진을 만났는데 선두와 후미의 주력 차이가 1시간 반 가량 벌어져 있었다.7시 40분,매봉으로 다리품을 파는 동기들의 뒷모습을 디카에 담았다.동기들 앞쪽으로 절반은 숲,절반은 초지로 이뤄진 매봉이 바라보인다.

 

 

동해전망대를 떠나 함지목(1,035m)으로 내려오니 왼쪽으로 갈림길이 나 있다.함지목을 지나 매봉으로 닥아가니 대간은 황톳길을 벗어나 초지 가장자리를 따라 곧장 능선으로 오르게 돼 있었다.

 

그러나 선두의 재화와 원경이,익수와 금구는 약속이나 한듯 임도를 따라 간다.기환이와 현기,그리고 내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며 소리쳐 불러도 친구들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유유히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기환이는 "고생 좀 하겠는데..."하며 아쉬워 했다.친구들은 임도를 따라 가면 매봉 너머에서 우리와 다시 만날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초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다 동해전망대를 돌아보니 그림같은 장면이 펼쳐졌다.푸른 초지에 선 기환이와 현기 뒤로 동해전망대가 아슴하고 초지 사이로 황톳길이 꾸불꾸불 이어진다.


 

 [매봉 아래 초지에서 동해전망대를 등지고]


초지를 벗어나 숲속으로 오른다.매봉으로 오르는 숲속 양지 바른 길에는 마타리꽃이 군락을 이뤄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을의 대표적인 꽃-마타리는 꽃은 곱지만 뿌리에서는 악취가 난다. 뿌리를 코에 대면 썩은 된장 냄새와도 같고 수십 년 묵은 재래식 뒷간의 냄새와도 같은 냄새가 진동했다.

 

이 구린내 나는 뿌리를 약으로 쓴다.마타리 뿌리를 한자로 패장(敗醬)이라고 쓴다. 뿌리에서 잘 익은 된장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그래서인지 마타리 군락지에 다다랐을 때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이상야릇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타리는 대장질환과 부인과 질병에 요긴한 약재다.또한 마타리는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고름을 내보내고 오래 된 어혈을 삭이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하는 작용이 있다.치질이나 지루에도 마타리를 말려 막걸리와 함께 마시면 효능이 좋다고 한다.

 

 

매봉은 초지로 된 공터였다.정수리에 오른 기환이와 현기가 황병산을 등지고 섰다.그런데 매봉 정상(1,173.4m)은 우리가 오른 공터가 아니라 좀 더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었다.하지만 정상에 이르러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형도에 있는 삼각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매봉에서 황병산을 등진 기환,현기]


매봉을 지나 숲속 길을 빠져나오니 또 다시 광활한 초지다.대간 길은 숲과 초지의 경계선인 대간마루금을 따르지 않고 왼편 초지로 빨려든다.조금 더 내려가자 잔돌이 깔린 임도가 나오고 갈림길과 마주쳤다.

 

여기서 나는 우리와 헤어진 일행이 궁금하여 왼쪽 갈림길로 해서 언덕에 서니 매봉 서릉 위에 친구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우리로부터 400미터는 좋이 떨어져 있었다.그곳에서 매봉 서릉을 타고 내려가면 삼양목장 축사로 빠진다."금구야,여기야 여기"하며 소리쳐 불렀다.일행은 그 순간 내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우리를 보는 듯했다.그러나 바람 탓인지 이쪽으로 오지 않고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으로 익수를 불러 임도를 따라 오게 했다.5분 뒤,헤어진 일행이 합류했다.머쓱한 표정을 짓는 일행을 보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소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공터에서 5분 가량 목을 축이며 다리쉼을 한다.그리고 소황병산으로 전개되는 목장을 디카에 담았다.

 

사진 왼쪽 정수리에 뾰족한 첨탑을 이고 하늘금을 긋는 황병산(1,407.1m),그 오른쪽 아래 초지로 된 산등성이의 소황병산(1,337m),그리고 숲과 초지를 가르는 대간마루금이 뚜렷하다.

 

[매봉 너머 임도에서 바라본 대간마루금]


소황병산으로 발품을 판다.대간마루금은 왼쪽은 삼양목장의 초지,오른편은 원시림을 연상케하는 숲의 경계선을 따라간다.울울창창한 숲 때문에 동해바다는 그림의 떡이었다.그런데 매봉을 넘어서면서부터 목초지는 손질을 하지 않아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매봉에서 초지로 내려와 올려다본 매봉의 모습이다.매봉 정수리는 사진 왼편 숲속에 있고 오른편 숲이 끝나는 목초지에서 숲 가장자리를 질러 임도가 열려 있다.우리와 헤어졌던 일행은 바로 이 매봉 서릉의 초지에서 서성거리고 있엇다.

 

 [삼양목장 초지에서 뒤돌아본 매봉]


답답하던 숲길을 따라가다 갑자기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강릉의 경포대로 유명한 경포호가 조망되었다.비록 시계는 좋지 않아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릉시가지가 어슴프레 눈에 잡혔다.다시 2분간 발품을 팔아 ’강우량관측탑’을 지났다.

 

8시 54분,오른쪽으로 빠지는 갈림길에 다다르니 표지판에는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이 하산길은 청학동 소금강으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들머리가 희미했다.햇볕이 쨍쨍 내리쬔다.삼양목장 초지를 걸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덥고 땀이 흐를 지경이었으나 숲속으로 들어가면 서늘했다.숲이 인간에게 베푸는 위대한 힘을 다시 실감했다.


 

9시 목장 초지와 헤어지면서 대간 길은 숲속으로 빨려든다.1,135봉을 지나 오른쪽 능선을 타고 9시 15분,1,150봉 너머 잘룩이에 다다르니 소황병산과 청학동소금강 산행안내판이 반긴다.초지를 벗어나면서부터 속보로 내달았기 때문에 온몸이 불덩어리였다.그래서 여기서 15분가량 거친 숨길을 고르며 땀을 식혔다.

그런데 이 잘룩이(1,140m) 바투 오른편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대간마루금 바로 곁으로 흐르는 계곡 물은 처음이었다.지름티재~희양산~이화령 구간을 종주하면서 배너미평전에 이르자 대간마루금 왼편 4~5미터 아래에서 계곡 물을 발견한 적은 있었지만 이곳처럼 바짝 대간마루에 붙어 있지는 않았다.나는 계곡으로 내려서다 참당귀를 발견하곤 적잖이 놀랐다.

약초 캐러 간 남편이 3년째 돌아오지 않자 남은 부인은 가세가 기울었고 끝내 재가하고 말았다.그 뒤 부인은 병이 들어 거의 다 죽어갈 무렵 전 남편이 이름 모를 약초를 캐어서 다시 나타났다.부인은 이 약초를 먹고 회생했지만 이미 재가한 뒤라 전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했다.그는 떠나며 "마땅이 돌아와야 했다" 즉,장부당귀(丈夫當歸)란 말을 남겨 당귀란 이름이 붙었다는 고사다.


 

당귀는 참당귀(한국당귀),일본당귀,당당귀(중국당귀),유럽당귀로 나뉜다.참당귀(當歸)의 뿌리가 바로 당귀이다.당귀를 다시 움에서 길러 튀운 싹도 승검초라고 하는데“그 깨끗하기가 은비녀 다리 같다”며 꿀에 찍어 먹으면 향기롭다고 했다.옛 양반들에게 이 승검초는 설날의 별미였던 모양이다.

 

또 섣달그믐 밤에 당귀뿌리를 삶은 물에 목욕을 했다.몸에서 미묘한 향기가 난다.깨끗한 몸으로 설날 아침 차례를 올리기 위해서다.기(氣)를 보하는 것이 인삼이라면 혈(血)을 보하는 데는 당귀이다.한방에서는 감초 다음이다.그래서 승검초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한약방의 독특한 냄새가 바로 당귀의 냄새다.생약 중 녹용과 함께 보혈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약제이다.꽃대가 나오면 숫당귀,나오지 않으면 암당귀,실뿌리가 많은 것은 채당귀라 했다.

 

8월께면 자색의 꽃이 핀다.전초(全草)에서 향기가 나지만 특히 뿌리에 향이 많다. 어린싹을 채취해 나물로,기름에 볶아 튀김을 해 먹었다.줄기를 뜯어 잎자루를 씹으면 달고 맑은 향이 일품이다.이내 물을 마셔보면 물맛까지 달다.한방에서는 혈압강하제,관절염,진통 등 보혈제로 썼다.월경불순과 자궁발육부진,산후조리 등 특히 여자에게 더 좋다고 했다.작약을 보내면 이별,당귀를 보내면 만남과 초청,기약을 암시한다는 꽃말이 전해온다.

 

 

9시 30분,소황병산으로 오른다.오늘 구간가운데 가장 힘든 오르막길이었다.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가고 오름길은 점점 가팔라졌으나 다행스럽게도 대간 길은 곧장 오르지 않고 산등을 이리저리 돌아 오른다.

 

9시 38분,서진하던 대간이 왼쪽(남서)으로 크게 방향을 꺾는 1,190봉에 올라서니 울창하던 숲은 사라지고 그 대신 잡목지대로 변한다.그런 길을 따라 14분가량 발품을 팔자 초지가 나온다.소황병산이 지척이다.

 

이 산등의 초지는 매봉에서 바라보았던 바로 그 초지였다.초지 오른편으로 열린 길을 따라간다.그런데 소황병산 정상(1,337m)은 대간 길에서 왼쪽으로 약250m가량 벗어나 있었다.거대한 고분을 연상케하는 소황병산과 노인봉으로 갈라지는 대간분기점(1,320m)에 다다라 사진을 찍고 10여분 다리쉼을 했다.

 

  [대간분기점에서 소황병산을 등지고]


이제 오늘 구간가운데 최고봉인 노인봉(1,338.1m)으로 올라가야 한다.그런데 북서쪽의 노인봉 일대는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음산한 분위기였다.금세라도 한 줄기 쏟아질 듯 잔뜩 찌푸렸다."오후부터 장대비가 쏟아진다더니..." 하며 우리는 10시 18분,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황병산 대간분기점에서 바라본 안개 낀 노인봉]


소황병산 대간분기점(1,320m)에서 노인봉까지 남은 거리는 약 3.8km.빠른 걸음으로도 1시간 넘게 것릴 듯했다.그렇다면 정오에 진고개에 도착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당초 계획보다 50여분 늦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새벽녘 풀섶 길을 뚫고 나오면서 바지가 젖어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가더니 마침내 오른발 뒷꿈치가 벗겨졌다.연고와 반창고를 발랐는데도 걸을 때마다 아리고 쓰렸다.그러자 이를 지켜본 익수와 기환이가 신 대장은 맨발산꾼이니 신발을 벗고 걸어보라는 주문을 했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신발을 벗고 나니 살 것만 같았다.

 

노인봉 오름길은 굴곡이 없는 완만한 길에다 흙길이어서 더욱 맨발로 걷기가 좋았다. 1시간가량 발품을 팔아 공터에 다다른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친구들 주위로 마타리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11시 28분,노인봉 아래 노인봉산장(1,260m)에 도착하니 산장 안에서 등산객들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우리는 산장 입구에 배낭을 부리고 다리쉼을 한다.

 

산장 입구 마당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동자꽃을 비롯하여 큰산꼬리풀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큰산꼬리풀은 더운 여름날,보기만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다.연한 보랏빛 또는 하늘빛이 나는 꽃빛이 청량감을 주며 쑥 자라 뽑아 올린 꽃차례도 그러하고 무엇보다도 꽃을 피우는 곳이 대부분 높은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큰산꼬리풀은 워낙 아름답고 청아하기 때문에 우리 꽃을 심어 키우는 정원이나 식물원같은 곳에서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큰산꼬리풀은 현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자라는 곳은 지리산을 포함하여 이보다 북쪽,그중에서도 높고 깊은 산에 주로 난다.적어도 해발 800m이상 되는 곳에 대부분 분포한다.키는 다 크면 허리높이쯤까지 자란다.굵고 튼실한 줄기에 길이가 10cm쯤 되는 긴 타원형의 잎이 마주 달린다.꽃은 한여름이 되면 그 줄기 끝에 긴꽃차례를 만들어 달린다.사실꽃 한송이의 크기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지만 꼬리처럼 늘어지는 긴 꽃차례에 정말 꼬리처럼 달린다.그래서 식물의 이름이 큰산꼬리풀이라고 한다.꽃빛이 하늘색이라고도 연한 보라색이라고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고운 빛의 꽃송이들이 피어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노인봉산장 입구 갈림목에서 동기들이 함께 했다.선두의 재화와 금구는 우리를 기다리다 노인봉으로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대산국립공원 노인봉산장의 산장지기 털보 성량수 씨.2002년 5월 성씨는 매일 40∼50㎞의 거리를 하루도 쉬지않고 8∼10시간씩 달려 백두대간 총 897㎞의 거리를 18일 만에 주파해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원래 계획은 16일만에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추풍령과 죽령을 넘어 월드컵개막을 이틀 앞둔 29일 강원도 설악산 향로봉에 도착하려 했다.월드컵 성공 개최와 조국의평화통일을 기원하기위해 그는 민족혼 어린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다 보면 하늘도 무심코 지나쳐 버리진 않으리라 믿고 백두대간을 달렸다 한다.  


 

산은 어려서부터 가장 좋은 친구였다는 그는 태백산맥 동계 단독 초등,차령산맥 하계 단독 종주,지리산 마라톤 종주 등 산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인간한계에 도전해 왔다.어려서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던 그가 본격적으로 산에 의탁한 것은 지난 81년.계속되는 독재정권 하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부끄러워 9년여의 교직생활을 미련없이 버린 직후였다.


86년 홀연히 오대산국립공원으로 입산(入山)한 성씨는 2년 뒤 등산 중 조난당한 미모의 대학원생을 만나게 된다.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11년이라는 나이 차이도 잊은 채 결혼에 성공했다.지금도 성 씨는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을 산이 그에게 내린‘선물’이라 여기고 있다.나는 백두대간의 사나이 성 씨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그러나 시간이 축박한데다 두 동기마저 노인봉으로 가버린 탓에 우리는 털보 산장지기를 만나지 못하고 노인봉으로 오를 수밖에 없어 아쉬움을 더했다.


 

우리들 사이에서 홀로 사진을 찍는 것을 씨니컬한 표현으로 "영정"사진 찍는다고 말한다.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좀 보기좋게 찍어달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우리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는가? 내일모레면 미수(60)가 될 테니 그도 그럴 것이리라.

그가운데서도 꺾다리 현기와 가젯트 기환이가 제일 많은 영정사진을 보유하게 되었다.산에 관한한 기환이의 열정은 그 누구 못지 않다.일과 후에는 안사람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온천천 수변공원을 걷곤한다.또 대간과 산에 대한 책을 탐독하여 산행정보를 늘리고 자신의 홈피에 글을 올린다.그러니 그가 백두대간 종주에 쏟는 열정은 오죽하겠는가!

 

수가 큰산꼬리풀을 등지고 노인봉산장 섬돌에 앉았다.해맑은 얼굴에 구김살 없는 동안(童顔)의 익수-더러 게으름을 부려 몇 차례 대간 끊어타기를 빼먹었지만 산이 좋고 친구들이 좋아 동참한다는 멋진 산꾼-넉살 좋고 재치 넘치는 그의 유모어가 없는 날,우리는 우울해진다.

 

 

후미대장을 맡고 있는 현기-그의 활약은 분부시다.그가 없다면 지금까지 종주가 가능했을까? 늘 맨 뒤에 처져 체력이 바닥난 친구들을 보살펴 완주시키고,무거운 짐과 쓰레기는 몽땅 그의 몫이니 그는 본디 타고난 산꾼인가보다.1미터 90센티에 이르는 껑충 큰 키에 머리 위까지 치오른 배낭을 짊어지고 정상으로 오르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하다.


 

11시 32분,노인봉으로 오른다.노인봉 오름길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고 있어 노인봉과 청학동 소금강의 유명세를 짐작케했다.노인봉을 찾는 등산객들은 진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원점회귀를 하는 게 일반이지만 준족들은 그 유명한 청학동 소금강으로 하산하기도 한다. 노인봉에 가까워지자 대구에서 왔다는 아지매 일행이 보여 "혹시 저 위에 두 노인이 계시지 않더냐?"고 농담조로 말을 거니 "예,두 분이 있습디더" 라고 한다.노인봉의 산명에 빗대어 내 친구들의 근황을 물어보았을 뿐이다.

 

11시 45분,회색빛이 감도는 노인봉 암릉에 이르니 금구와 재화가 정수리에 앉아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재화는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하산할 참이었다"며 정수리에 오르는 우리한테 일침을 놓는다.


노인봉(老人峰)은 오대산국립공원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진고개를 경계로 서쪽 오대산지구와 동떨어진 청학동 소금강지구의 주산(主山)이다.노인봉은 정수리에 기묘한 바위가 우뚝 솟아 멀리서 보면 흡사 백발 노인처럼  인다고 해서 그런 산명을 얻었다고도 하고 또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심메마니에게 산삼밭을 알려주었다 하여 노인봉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인봉 정수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아,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우리는 서둘러 정수리 암장을 내려와 오른편 노인봉 서릉으로 닥아가니 "등산로 아님"이란 팻말과 함께 출입지역이다.우리는 할 수 없이 노인봉산장 갈림길로 내려왔다.

 

11시 59분,오른쪽 진고개 하산길로 들어서서 쏜살같이 내닫린다.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져 배낭커버를 씌운다.남서진하던 대간이 서쪽으로 머리를 틀다 다시 남서진 하는 1,250봉에 다다르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비옷을 꺼내 입었다.그런데 1,250봉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다.게다가 갑자기 불어난 흙탕물이 내리쏟아지면서 하산길은 매우 미끄러웠다.선두의 재화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날 즈음 왼쪽으로 평창군 도암면 개잔마을의 집들 보이고 초지와 함께 고랭지채소밭이 눈에 들어온다.이제 종주날머리 진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대간 길은 시멘트포장길로 바뀌고 초지 사이로 이어진다.드세던 빗줄기도 한풀 꺾인다.

 

12시 46분,서진하던 대간이 왼쪽(남서)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980m)에 이르니 대간 왼편으로 고랭지채소밭이 나온다.이곳에서 동기들이 오길 기다렸다.안개가 짙게 드리운 채소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으려 하자,현기는 "신대장,디카가 또 고장 날려고 그래,그만두라"하며 손사래를 친다.디카에 물이 들어갈까봐 하는 현기의 염려였다.그러나 나는 이 멋진 장면을 놓칠 수가 없어 셔터를 눌렀다.

 

 

고랭지채소밭을 지나 3분쯤 발품을 팔자 진고개휴게소와 진부에서 강릉시 연곡으로 넘는 59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왔다.12시 53분,진고개휴게소에 다다라 종주를 마감했다.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50분가량 늦은 9시간 11분이 걸렸다.

 

  [비에 흠뻑 젖어 진부령휴게소로 들어오는 종주팀]


[주1: 종주기에 표기된 산높이는 1/25,000 지형도에 따랐으며 1/50,000 지형도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지형도에 나타나지 않은  산높이는 등고선을 감안하여 표기하였다]

 

[주2: 다음 백두대간 끊어타기는 3구간을 건너 뛴 미시령~진부령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