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하순의 무제치1늪인 용늪-생태관찰로에서 바라본 풍경]
드디어 정족산이 바라보이는 660봉에 올라섰다.정족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상반된 두 가지 상념에 빠진다.정족산 서편의 솥밭산 공원묘지와 그 보다 더 규모가 큰 삼덕 공원묘지의 무덤들이 산기슭을 온통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이 엄청난 죽음이 이룬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주눅이 든다.사람들의 삶터 그늘진 곳에 호젓하게 자리잡은 죽음의 자리는 늪처럼 가라앉아 있다.그래서 이를 두고‘삶의 늪’이라 했다던가.그렇다. 늪이란 고요한 세계이며,공포스러운 깊이를 가진 음습한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나 산 위의 늪이라는 무제치늪으로 가는 길은 그런 길이 아니다.살아있는 늪으로 가는 것이요,생동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시인 최승호는“비”라는 시에서 그 세계를 이렇게 예찬한다.
“물은 부드러움만으로 예찬받는다.
용수염 같은 아지랑이의 가벼움으로
그칠 줄 모르는 샘솟음으로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섬으로 예찬받는다.
변기의 물은 샘에서 온다.
물은 어스럼과 하나되는 투명성으로 예찬받는다.
가없는 스며듦으로 ,스스로 맑아지는 성품으로
풀잎 위의 덧없는 보석으로 예찬받는다.
똥덩어리가 든 변기를 높이 들어
구름에 경배하라.
우리가 물에 바칠 것이라곤
똥밖에 없으니....
[660봉에서 바라본 정족산]
우리는 그 지극한 예찬의 세계로 간다.1995년 10월에 발견된 무제치늪.무제치라는 이름은 울산지역에서 지내온 기우제와 관련이 있다.이 지역에서는 기우제를 무우제(舞雨祭)라 하며,그 제사를 지내던 곳을 무제치(舞祭峙)라 했다고 한다.기우제는 주로 이 산의 늪에서 지냈다.다른 데는 다 말라도 이 지역은 언제나 습지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제사터로는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인근에서는 예부터 이곳을 <물티>,곧 물이 많은 곳이라 불렸다고 한다.[경상도 지방에서는 뚱뚱하면서도 힘없이 잘 자빠지는 사람을 물티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데,이때 물티란 물살이 많은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정족산 아래 거미줄처럼 얽힌 임도]
늪은 울산시 상동면 조일리 지역에 많지만 웅촌면 은현리 지역에도 일부 있다.이들 늪 가운데 제1늪과 제2늪은 1998년 말에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1999년 8월에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자연에 줄 것이 똥밖에 없다 할지라도,[그런 의미에서 똥의 의미는 새롭게 조명해야겠지만]산 속에서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섬으로써 죽음조차도 늪의 일부가 되어 살아나는 일에 끼어드는 그 기막힌 세계로 가는 것이다.
660봉에서 무제치늪과 정족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못미쳐 마를 대로 마른 억새풀 속으로 한 가닥 희미한 산길이 열려있다.나는 그 길을 따라 풀섶을 헤치고 내려선다.그 억새풀밭 사이로 질펀하게 물이 흐르는 습지가 나온다.
[산상늪지-정족산에는 이런 습원이 부지기수다]
정족산 일원에는 이런 습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흔하다.물이 잘박하게 머물러 있어 밟으면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습지,그 바닥에는 검은 진흙같은 이탄층이 금세 드러난다.비가 오면 이 습지는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 발목까지 빠지기도 한다.무제치늪은 이같은 늪지가 더 큰 규모로 펼쳐져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그래서 산상습지를 연상할 때 창녕의 우포늪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때론 늪이었다가 건조기에는 그저 맨땅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다.바로 이것이 산상습지가 사람믈의 눈에 잘 띄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산상습지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비나 눈이 오면 물이 고여 더 낮은 곳으로 내려섬으로써 습원을 이루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에 무제치늪이 발견될 당시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는 이미 임도가 개설되었고 차량통행이 가능하여 것잡을 수 없을 만큼 훼손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누구도 이 습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샘터에서 쿠제치3늪으로 오르는 임도]
우리는 이 작은 습지를 지나 정족산에서 내려오는 임도로 내려섰다.차량이 다닌 흔적과 폭우로 유실된 임도의 참혹한 모습을 보며 샘터로 내려간다.두 그루 소나무가 있는 암도 쉼터 건너편,660봉 산기슭 억새밭에서 흘러나오는 샘터에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철 마르지 않은 이 샘의 물맛은 달착지근하면서도 시원했다.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들고 본격적인 무제치늪 탐사에 들어간다.
[검은 이탄층이 허물어져 그대로 드러난 모습]
샘터에서 정족산 아래 무제치3늪으로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 양옆으로는 폭우로 물이 흘러내리면서 토사가 휩쓸고 가며 검은 이탄층(泥炭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정족산으로 오르는 임도와 무제치늪으로 가는 임도 갈림목에 다다랐다.그 너머가 바로 무제치3늪인데 억새와 억새보다 더 작은 진퍼리새가 마를 대로 말라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나는 <샘늪>이라는 제3늪 가장자리로 올라가 늪의 전경을 살폈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이 늪의 전모을 보려면 역시 정족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샘터에서 임도따라 무제치3늪으로 오르며]
[임도따라 무제치3늪으로!]
[무제치3늪 임도 가장자리의 토사층]
[무제치3늪 전경-아직은 황량한 모습이다.]
[무지치3늪 임도 가장자리에 앙상하게 뿌리를 드러낸 벚나무]
[무제치늪으로 가는 삼거리를 향해]
[정족산에서 내려다본 무제치4,3늪 -한가운데 임도 왼편 오목한 지형이 늪지임]
[정족산 동편 산등에 있는 기우제를 지냈던 용바위]
[무제치늪,조일리 용암사 갈림목-이곳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다.]
제3늪 가장자리를 끼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660봉과 무제치늪으로 가는 660봉 북동릉 삼거리에 다다랐다.길이 좋아 걷기는 쉽지만 임도가 자꾸 맘에 거슬렸다.전국의 산마다 임도(林道)가 뚫려 있다.
임도(林間道路)란 말 그대로 나무를 위한 길이다.벌채 때 베어낸 나무들을 끌어오기 쉽게도 하지만,현재 우리나라의 산마다 닦아놓은 임도는 화재가 나면 불끄는 차나 인원이 접근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임도가 나면서 공공근로자들을 동원,산을 간벌로 온통 정리하러 드는 일도 생겼다.
임도와 간벌은 인간의 시각으로 만든 길이며 가지런함일 뿐이다.인간의 편의를 위해 길을 내고,보기 좋고 큰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간벌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도시 주변의 야산이 온통 간벌과 임도로 거덜이 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간벌로 산의 깊이가 속속들이 드러나자 제일 먼저 그곳에서 살던 짐승들이 사라지고 숨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임도가 산의 원래 보습을 바꾼다는 것이다.무제치늪만 하더라도 이 늪이 발견할 당시에도 임도가 닦여 있었다.임도를 통해 물이 빠르게 흘러내리면서 토사가 늪으로 흘러들게 된디.
무제치3늪 임도 가장자리에도 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임도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벚나무의 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가슴이 아팠다.우리는 천천히 임도를 따라 삼거리로 걸음을 옮겼다.이 갈림목에서 오른편 임도를 따라가면 낙동정맥 마루금으로 운흥옹천에서 우리가 올라온 길이고,왼편으로 가면 무제치1,2늪으로 가게 된다.왼편 임도로 발품을 팔자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는 너른 공터에 다다른다.이곳에서 산등을 타지 않고 왼쪽으로 열린 시멘트도로를 따르면 울산시 상동면 조일리 용암사로 내려가게 된다.
[무제치늪 지형도-1.2늪은 보전지역,3,4늪은 비보전지역이다.]
[생태계 보전지역인 무제치2늪의 보호목책]
[무제2늪의 보호목책]
[무제치2늪에서 1늪으로 가는 생태관철로]
삼거리에서 소나무를 등진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고,남암지맥이라는 산줄기를 따라 잡목을 헤치고 들어가니 산불감시초소와 만났다.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빙 둘러 있어 전혀 조망이 되지 않았다.10여분 발품을 팔자 조망하기에 좋은 바위가 나온다.이곳에 올라서서 무제치늪을 살피니 조금 더 가서 제2늪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 더 가서 오른쪽 산비알로 2늪으로 내려가는 길을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할 수 없이 등산로를 따라가다 2늪과 1늪 사이로 내려가는 희미한 하신길을 찾아내려간다.참나무 숲속을 빠져나와 평탄한 곳으로 내려오니 지형이 오목하게 꺼진 느낌을 준다.이곳이 바로 <자늪>이라 부르는 무제치2늪이었고 오목한 지형의 반대편으로는 목책이 줄러처져 있었다.
[무제치1늪 들머리에 설치된 강우측정기]
무제치늪이 왼편으로 보인다.늪은 살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무제치늪은 아직도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황량하기만 했다.마른 억새와 진퍼리새가 연한 황토 빛깔을 머금고 용의 수염처럼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흡사 잠들어 있는 듯했디.
[생태관찰로 따라 무제치1늪을 바라보며]
늪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비록 죽어 있는 듯 다소곳하지만 그 속에서는 여전히 생명이 계속 자라는 것이다.이런 생성의 기미는 매우 중요하다.이 늪은 한반도 내에서 그래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희귀한 늪이라고 한다.
[늪지는 건조하다.꽃도 물소리도,작은 동식물도 보이지 않고...]
[억새와 진퍼리새,그리고 아직도 나목이 늪을 에워싸고 있다.]
이 늪은 빙하기 이후 한반도 동남부 지역 자연의 역사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놀라운 자료이다.생물학자들은 늪을 두고 “유전자 풀”이라 하기도 한다.유전자의 보고란 뜻이다.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온갖 동식물들의 생태자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늪과 주변에는 검은 이탄이 층을 이루고 있다.이탄(泥炭).즉 뻘은 이 지역에 살던 식물들이 죽어 쌓인 흙이다.이를 분석하면 각 층마다 당시의 숲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한다.
[3월 25일의 무제치늪]
[4월 하순의 무제치1늪인 용늪의 풍경]
처음 이 늪이 발견되었을 때 늪의 역사가 6천 년이라 했으나,다시 조사한 결과 1만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갔다.창녕의 우포늪이 2천 년,대암산 용늪이 4천 년인데 비하면 이 늪이야말로 국내 최고의 늪인 셈이다.제대로 보존된 자연이 희귀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자연환경 스스로 이런 기록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 늪은 인간이 자연을 간섭하기 이전의 상태를 자신이 간직한 자료를 통해 유추하게 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얼마 되진 않지만 그 영향력이 큰,인간이 간섭하기 시작한 이후의 상태로 생생히 보여준다.그리하여 이 늪은 과거와 현재를 선명한 화면으로 그려낼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역사물이다.우리는 흔히 크고 희귀한 것만을 선호한다.그런 눈으로 보면 이 산 속의 습지는 참으로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그런 시각부터 우선 바꾸어야 한다.
정족산이라는 나지막한 산에 깃들인 이들 크지 않은 10여 개의 습지가 기실은 한반도 동남부가 지난 1만 년 동안 겪어온 지연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허황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4월 하순의 용늪-생명의 기운이 늪을 감돌고 있다.]
[무제치늪의 대표적인 식충식물-끈끈이주걱]
[용늪을 뒤덮고 있는 진퍼리새=머잖아 그 속에서 생명의 용트림이 시작될 것이다.]
[관리사무소로 가다 뒤돌아본 생태관찰로 ]
[생태관철로 주변 모습]
[무제치1늪 아랫부분-졸참나무와 오리나무,개옻나무가 많다.]
국내 고산지역에 발달한 늪지들 가운데 가장 남동쪽에 위치한 이 늪은 과습한 산지습원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풍화작용으로 인한 침식에 의해 분지가 만늘어지면서 형성왼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는 무제치늪.이곳은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지역으로 꼽힌다.이 점도 늪의 형성과 유지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이런 사실들을 캐들어가면 한반도 전체의 기후변천과 지형발달의 과정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이처럼 중요한 환경 근거 자료의 보고인 늪이 한 개의 산 안에 10개나 남아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한반도에서 지난 1만 년 동안의 식생과 기후의 역사를 규명할 자료로는 이곳이 유일하다.무제치늪이 절대적으로 보전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제치늪 주위엔 봄의 전령사,양지꽃이 피어나고...]
얼마나 많은 식물들과 곤충들,수생식물들과 물을 많이 머금는다는 참나무와 나무들이 이 늪을 빛나게 하는가.현호색,각시붓꽃,광대나물,둥글레,동의나물,미나리아재비,광대수염,꿀풀,까지수염,선씀바귀,양지꽃,엉겅퀴,얼레지,원추리,잔대,꿩의바람꽃,참취,처녀치마 따위도 늪 주위에 보이지만,땅귀개,끈끈이주걱 같은 식충식물로 많다.광릉요강꽃,깽깽이풀 같은 희귀종도 있다.은방울꽃과 야생란이 큰방울새란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양지꽃만 보일 뿐이었다.
최근 이 늪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들 휘귀식물를을 캐가는 이들이 수시로 드나든다고 한다.알려진 바로는 이곳의 희귀 야생란 미기록종 20여 개체가 그 동안의 불법채취로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그리고 국내에서는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꼬마물잠자리와 큰물자라가 이곳에서 재발견되기도 했다.
[무제치늪 보호안내판]
[무제치늪 관리사무소]
그러나 이곳이 새삼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무제치늪3,4늪과 무제치1,2늪 사이 땅속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 천성산터널공사에 있었다.무제치늪을 지키려는 이들과 경부고속철 관계자들 사이에 팽팽한 대립각이 세워져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제치늪의 습원인 이탄층은 평균 1미터 50센티에 이른다고 한다.이곳을 지키려는 환경론자들은 이들 늪 아래로 터널을 뚫으면 물을 머금고 있는 습원이 빠져 끝내는 늪지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개발론자들은 비록 터널을 뚫더라고 습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결국 볍원은 지난해 말 개발론자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그동안 연기되었던 고속철터널공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아직은 그 결과를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천성산 1봉 아래의 화엄벌,천성산 2봉 아래의 밀반늪과 정족산 일원의 대성큰늪,안적늪을 비롯하여 무제치늪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습원벨트,<신들의 정원>이라는 산상습지는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인지 적잖아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무제치늪 관리사무소에서 바라본 삶의 늪이라는 솥발산 공원묘지]
우리는 무제치늪의 속살을 더 이상 보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무제치늪 관리사무소에서 은현마을로 하산을 서둘렀다.하산길은 길었지만 부드러웠다.은현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대숲을 지나고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은현리 서리마을로 내려섰다.이곳 은현리에서 은현시사를 열고 시를 짓고 있는 정일근의 무제치늪의 봄을 떠올리며 산행을 마무리했다.결국 무제치늪은 봄을 지나 한 여름철과 가을철에 또 다시 들러야 할 곳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2007년 3월 25일.
무제치늪의 봄
마음을 열어야 손이 순응하는 법이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위해 봄은 오고
바라볼 줄 아는 손을 위해 꽃은 핀다.
물이 만든 물의 나라 무제치(舞祭峙)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도 물이니
물은 다투지 않고 평등하게 스며들고‘
겸허하여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봄을 기다려 삼월 봄이 오고
봄을 가다려 사월 꽃이 피는
그 착한 물들이 빚어내는 빛나는 물
이제는 오랜 마음의 친구가 내미는 손처럼
그 따스한 손 꽉 잡아보는
무제치늪의 봄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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