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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아! 무제치늪으로 가는 길,정족산<상>

 

 

오늘은 청마산우회와 함께 정족산(700.1m)으로 간다.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정족산은 천성산과 이웃해 있지만 등산객들로부터 거의 외면당하고 있는 산이다.그 까닭은 이 산 북사면은 온통 공원묘지로 들어차 있고 산세마저 천성산의 너른 품에 비해 초라한데다 등산로마저 짧아 정족산만 오르기에는 마땅찮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낙동정맥을 종주하거나 천성산을 종주하는 산꾼들이나 찾아들곤 하는 한갓지기 이를 데 없는 산이다.


오늘 우리는 정족산과 정족산에서 갈래치는 남암지맥을 거쳐 고원습지로 알려진 무제치늪을 살피며 울산시 울주구 검단리 은현마을로 내려가기로 한다.산행시간은 대충 6시간 걸릴 것이다.당초 산행코스는 정족산에 올라,통도사에 버금갔다는 거찰 운흥사터가 있는 운흥동천을 거쳐 반계마을로 내려올 요량이었으나 박승훈 대장이 코스가 짧다며 운흥동천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다.꽃 피는 봄날 운흥동천을 거슬러 무제치늪으로 다시 가고자 한다.   

 

산행들머리는 양산시 하북면 용연교.이 다리를 지나 2km 가량 안으로 들어가면 내원사매표소가 나온다.그러나 우리는 용연교에서 왼쪽 산등으로 바로 치고 오른다.그러므로 산행 내내 용연천과 산하동계곡을 오른편 발치 아래로 내려다보며 걷게 된다.등산로는 산등으로 열린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순한 솔숲길이다.묘지도 나오고 전에 없던 납골당도 만난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산길이 서서히 고도를 높일 즈음,겹겹이 실루엣을 그리는 중첩된 천성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대동지지에 그려보이는 “높고 가파라 맑고 빼어나다.천 송이 부용꽃이 구름 속에 거꾸로 넘어져 있는 듯,북으로 취서산(鷲捿山)에 접하고 동으로 우불산(于佛山)에 연이어 중첩하여 얽혀나간다.”는 천성산의 진면목은 이를 두고 한 말인 듯싶었다. 산속에서는 산을 제대로 볼 수 없듯이 천성산을 비켜나서 천성을 바라보아야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리라.천성산 주봉 아래 화엄벌에서 바라보는 천성산의 절묘한 속살도 장관이지만 정족산으로 오르는 여기서 바라보는 천성산의 빼어난 자태는 가슴이 요동치듯 황홀하였다.무릇 천성산을 찾는 이들은 필히 이곳을 찾아볼 일이다.

 

 

한가운데 봉우리가 산하동계곡과 내원계곡 사이의 중앙능선이며,하늘금을 긋는 능선은 천성북릉에서 천성2봉으로 이어지는 천성공룡능선이다.흡사 연꽃이 벙으러진 모습이다.그 내밀한 곳에 청정도량 내원사가 터잡고 있음에랴.원효대사가 독충과 맹수가 우글거리는 위험을 물리치고 거기 무명(無明) 밝혀 숱한 사암을 일구었으니 절로 옷깃이 여며진다.산에는 절이라는 말처럼 흔한 게 절집이라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절이 들어서는 건 아니다. 이름 난 산 가운데서도 “티없이 맑고 깨끗해서 속세의 오예(汚穢)가 미치지 않을 만큼 깊은 골안,황새가 깃을 치고 물보라치는 천길 벼랑 끝에 용이 용트림 치는 늪이 시퍼런 어간,봉우리에 둘러싸였으되,어두워도 안 되고,그렇다고 헤벌어져도 안 될 뿐더러 깊으면서 밝고 그늘졌으면서도 정갈해야 한다.”고 시인이자 산악인이었던 김장호 선생은 밝히고 있다.청정도량 내원사는 그렇게 내밀한 자리에 터 잡고 있는 셈이다.    

 

 

카메라의 촛점을 앞쪽에 맞추니 천성산 봉우리들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천성산을 조망하고 봉우리에 올라선다. 서쪽으로 통도사를 품고 있는 독수리 부리처럼 돋올한 영축산이 장엄하고 그 앞으로 양산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이 선명하다.양산천과 회야강이 분수령을 이루는 낙동정맥의 지경고개도 가늠되며 영남알프스의 영축산 오른편에는 신불산이 헌걸차다.

 

 

다시 가파른 봉우리 바위에 올라 천성산의 기묘한 릿지인 천성공룡을 바라본다.앞쪽의 송전탑을 돌아 금봉암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산허리를 잘랐고 제2선은 천성공룡,제3선은 천성산 중앙능선,맨 뒤 하늘금을 긋는 능선은 정족산에서 천성2봉으로 물결치는 천성주맥이다.

 

 

 

다시 벼랑 바위턱에 돋아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천성산을 담아본다.이제 정족산으로 발품을 판다.제법 가파른 봉우리를 지난다.이 봉우리에서 오른편 산등을 타고 내려서면 노전암과 성불암으로 갈라지는 갈림목에 이르고 곧장 천성공룡으로 오를 수 있다.내처 직진하니 임도가 나오고 이내 억새밭이 나오는 잘룩이에 다다른다.이 잘룩이에서 억새밭을 헤치고 왼편 정골로 내려서면 정족산의 산지습원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백록늪>으로 갈 수 있다는데...  

 

이제부터 등산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간다.등산로 왼쪽 산비알에는 삼덕공원묘지가 상기 공사를 하고 있다.10년 전만 하더라도 6부 능선쯤 묘원이 들어섰는데 이젠 거의 9부 능선까지 잠식해버렸다.낙동정맥의 주맥과 만나는 봉우리에 이르니 커다란 암장이 기다린다.그곳에 올라 우리가 밟아온 능선을 뒤돌아본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때론 “산에서도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야 한다.”고 고등학교 때의 스승이자 산악인인 김중하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그리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을 헤아려 보며 스스로의 여력을 점검해봐야 한다.그 말씀이 오늘 어찌 그리 가슴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전망바위에서 천성산으로 눈을 돌린다.하늘금을 긋는 맨 뒤의 능선이 천성1봉(예전의 원효산 922m)이며 그 오른쪽 바로 아랫쪽이 화엄벌이다,그리고 바로 앞쪽 능선은 천성북릉인데 흔히 천성공룡능선이라 부르며,오른쪽 아래 고샅으로는 산하동계곡이 깊게 패여 휘감아 돈다.

 

 

 

 

전망바위를 뒤로 하고 정족산이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영축산과 신불산,고헌산이 한결 가깝다.그런데 정족산 북쪽으로 말로만 듣던 경부고속철 공사 현장이 눈을 아리게 한다.원효터널 공사가 재개되면서 정족산 밑을 통과하여 상동면 조일리 보쌈마을 쪽 산허리를 꿰뚫고 있는 모습이 선연하게 들어온다.

 

 

다시 시야를 왼쪽으로 돌려 천성2봉(예전의 천성산 812m)에서 천성1봉으로 이어지는 장중한 산그리매를 조망해본다.

 

 

이제 동쪽 산줄기에 솟은 정족산과 그 왼편의 주남고개를 바라보며 발품을 판다.정족산으로 가는 길 산마루에는 너른 임도가 열려 있어 진흙길은 질척거렸다.

 

 

정족산 정수리에서 본 임도-회원들이 그 길을 걸어오고 있다.정족산 곳곳에는 이같은 임도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 자연경관울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정족산 북쪽에는 삶의 늪이라 할 솥발산 공원묘지가 들어서 이미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심했다. 어디 그뿐인가.정족산 동편 산자락에는 트럭이나 레저용 차량이 오르내릴 수 있는 비포장도로마저 개설되는 바람에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고원습지인 대성늪과 안적늪을 비롯 무제치늪의 보존에도 심각한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정족산 정수리(사각 태극문양의 동판)쪽에서 본 서릉-솥발산공원묘지가 9부 능선까지 침범하다]   

 

 

[정상 바위을 내려서는 박대장-위험구간이다.]  

 

정족산(鼎足山 700.1m)은  울산시 울주구 상동면과 양산시 하북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산 위에 있는 바위들이 솥발처럼 솟아 있다 하여 솥발산이라고도 부른다.또한 이 산은 옛날에 천지가 개벽할 때 다 물천지가 되어서도 이 봉우리만은 솥발만 남아 찰랑거렸다고 한다.

 

 

[이날 정상 빗돌을 인근 민드름산악회에서 세우다-곁에 태극문양의 정상석이 있는데..] 

 

그런데 우리 일행이 사각형의 태극동판이 있는 정수리에 올라서서 바위를 타고 오른쪽 암장으로 건너가자 인근에 거주하는 민드름산악회라는 데서 정상 빗돌을 막 심어 시멘트를 바르고 하산하려고 한다.평소 같으면 내 고약한 성미가 발동해“정상 빗돌이 저기 있는데 뭐 하러 또 쓸데없이 정상석을 심느냐.”고 일갈했을 텐데,오늘은 웬일인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아마 그랬더라면 그들과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내가 그들의 완력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너무 어처구니 없어 할 말을 잊은 탓이었다.


사실,정상석을 세우는 것은 사람의 편의에 따르는 것이지 산과 무관한 것이다.일제 때 명산의 봉우리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를 말살했다고 흥분했던 우리는 과연 지금 우리 산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고 싶다.자연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요 보호이다.인간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면 야금야금 허물어져 종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게 자연 아니던가.그 산악회는 아마 정족산을 자신들의 모산(母山)으로 알고 받들어 모신다고 문패를 다는 것일 것이다.이런 사례는 실례를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삼도봉 꼭대기에 설치한 대형 조형물과 광장일 것이다.명분이야 그럴 듯하다.충청,전라,경상 3도가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란다.삼도봉 정수리는 편히 쉬고 싶을 것이다.그 거대한 대리석 석조물을 하루 빨리 치워달라고 신음하고 있을 것이리라.

 

이런 생각이 임도를 마음대로 개설하고 산자락을 제멋대로 파헤지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정족산과 천성산이 망가질대로 망가지는 참담한 현실은 우리 모두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편에서는 천성산의 고원습지이며 생태계의 보고라는

                       무제치늪과 그 주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