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포암산-부리기재-대미산-차갓재-작은차갓재(2004.8.15)
하늘재여,오 잊혀진 하늘재여!
한밤을 도와가며 하늘재로 간다.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하늘재 길을 찾아간다.2천년 가까이 사람들을 묵묵히 받아내던 그 고갯길을 찾아나선다.오래된 것일수록 잊혀지기 쉬운 게 사람살이요 역사가 아니던가.그래서 하늘재 오르는 길은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길이다.
우리는 대낮도 아닌 한밤중에 그 길을 찾아가고 있다.문경읍에서 하늘재에 이르는 길은 오른편 위쪽으로 원을 그리며 이어진다.성주봉(961.8m)을 오른쪽에 끼고 우거진 솔밭을 관통하는 산세가 빼어난 코스다.문경온천 앞을 지나 내를 낀 오른쪽 산에 하늘재 길의 들머리 성이었던 옛 고사갈이성으로 짐작되는 요성이 있고,조금 더 가면 오른쪽 단산 산꼭대기에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활공장을 볼 수 있다.
다시 10여분 달리면 갈평삼거리가 나오는데,여기서 좌회전하면 관음리이고 곧장 가면 동로,예천으로 이어지는 최근 새로 뚫린 301번 지방도이다.그러나 이런 자세한 설명이야 밝은 날이나 가능하지 지금처럼 컴컴한 한밤중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일,그래서 우리는 문경읍 근처에 다다라 몇 차례나 길을 잃고 허둥댄 끝에 겨우 갈평삼거리에 이르렀다.
하늘재 바로 밑 마을 관음리 포암(布岩)은 포암산(布巖山 961.7m)에서 따온 이름으로 옛날에는 문막(門幕)이라 불렀다.신라가 고구려와 대치하던 시절 관문을 막아 낮에는 열고 밤이면 닫아던 곳이다.이름이 그러하듯 하늘재 일대에는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융숭했던 불교문화의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절터를 비롯하여 반가사유상,약사여래돌입상,석불좌상,5층석탑 등이 있고 미륵리로 넘어가면 3층석탑,미륵사지 등 보이는 모든 것들이 불교유적들이다.관음불은 현세불이고,도탄에 빠진 중생 구제를 위해 미래에 오는 부처가 미륵이다.그렇다면 하늘재는 현세에서 미륵의 세계로 통하는 길인 셈이다.하늘재를 깃점으로 경북과 충북 도경계가 나뉘는데,관음리 쪽에서 오르는 포장길이 20여리이고,충북 쪽 미륵리로 내려가는 비포장길은 10리쯤 된다.
하늘재는 새재,이화령처럼 더 넓고 빠른 길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에게는 까마득히 잊혀진 고개다.고개 만당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다.오!,하늘재여.
하늘재의 지명은 이 길이 ?린 신라 때(서기156년)에는 계립령(鷄立嶺)으로,고려 때에는 미륵리 절에 원(院)이 생기면서 대원령(大院嶺)으로,조선 때에는 마골점(麻骨岾)으로 등장한다.계립이란 껍질을 벗긴 삼대를 뜻하는 겨릅(마골)을 한자어로 옮기면서 생겨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이들 이름이 시대의 변화와 한자 표기에 따른 지명이라면 하늘재는 민간에 회자되어온 고개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하늘재가 당시로서는 가장 먼저 ?린,가장 높고 먼 고개였던 만큼 사람들에게는 하늘 만큼 높은 고개로 인식되어 그렇게 불리지 않았나 여겨진다.
8월 15일 새벽 3시 30분,우리는 그 하늘재 고갯마루에 올라섰다.강원도 강릉산악회의 대간팀을 실어나르는 대절버스와 봉고가 주차되어 있을뿐 칠흙같이 어두운 새벽,사람 그림자라곤 찾을 길이 없다.하늘재유허비 앞에 섰다.부산에서부터 김한규 동기의 9인승 트라제를 운전해온 김유건동기와 최금구,김익수,전기환,김현기 동기가 나란히 포즈를 잡았다.(03:33)
[하늘재 종주들머리에서]
하늘재에서 종주에 들기에 앞서 장비를 챙기고 있는데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한다.우리는 비옷을 꺼내 입고 충주 미륵리 쪽 종주들머리로 닥아가 다함께 섰다.이번 종주는 여러가지로 뜻 깊었다.휴가철을 맞아 김한규 동기가 차량을 선뜻 빌려주었으며,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여행가 김유건 동기가 운전을 도맡는 바람에 우리는 오로지 종주에만 몰두 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자신의 차를 몰다 혼쭐이 나 내리 세 구간을 빼먹은 김익수-그도 한규의 차량지원에 힘입어 종주에 동참하게 되어 우리는 외로움을 떨칠 수가 있었다.다만 이재화 산우회 총무가 몸이 여의치 않은 탓에 불참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아뭏튼 이 자리를 빌어 김한규,김유건 두 동기한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03:59)
[하늘샘에 다다라]
새벽 3시 59분,드디어 포암산으로 오르기 위해 첫걸음을 디뎠다.이번 구간은 하늘재-작은차갓재(17.6km)와 작은차갓재-황장산-벌재(6.23km),2개의 소구간으로 이뤄져 있다.오늘 벌재까지 종주를 마친다면,21구간 끊어타기는 벌재-저수령-죽령까지 한달음에 종주를 마칠 수가 있다.그렇지 않다면,죽령까지 2번에 걸쳐 종주해야 되므로 가능하면 벌재까지 가야만 한다.하지만 일행들은 이 무더운 날씨에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미리부터 의아심을 내비친다.아뭏튼 종주를 하면서 결정하자고 일행을 다독이며 포암산으로 오른다.잠시 발품을 팔자 참호가 잇달아 나타나더니 4시 6분쯤에는 신라 때 쌓았다는 옛 성터인 하늘재산성(또는 대원령산성)과 만난다.
그리고 4분 뒤에는‘하늘샘’에 다다랐다.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자연 샘물인 하늘샘은 잘 정비돼 있으며 쉼터로 적당하다.샘 표지석과 주변엔 너럭바위가 있다.이 샘물은 바위틈에서 나는 물을 활성탄 숯으로 걸러 파이프를 통해 나오도록 해 좋은 물 맛을 최상으로 만들어 놓았다.(04:13)
[포암산(布巖山 961.7m) 정상 빗돌을 중심으로]
비가 그친다.몸에 칙칙 감기고 무덥기 짝이 없는 비옷을 배낭에 챙겨넣는다.시원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하늘샘을 뒤로 하고 포암산으로 오른다.저기압에다 안개마저 잔뜩 낀 어둡고 무거운 대간 길을 더터오른다.하늘샘 왼쪽 너럭바위를 지나 5분 뒤,가파른 경사길을 오른다.허물어진 성터를 따라 오르다가 너덜지대를 거쳐 바위 비탈 전망대에 올랐으나 어두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4시 30분,30미터 거리에 있는 돌탑을 지나 또 다시 나무전망대를 지난다.땀이 비 오듯하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종주들머리부터 이렇게 체력을 소진하면 벌재까지는 고사하고 작은차갓재까지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한가닥 불안감이 스친다.
4시 48분,포암산 능선갈림길(790m)에 올라섰다.이정표에는 포암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0.8km라 적혀 있다.여기서 포암산 정상 오름길은 거의 직등코스로 힘이 무척 들었다.로프가 걸려 있는 바위 비탈 오름길은 비가 온 뒤라 무척 미끄러웠다.새벽 5시 10분,포암산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 오른 친구들은 숨을 거세게 몰아쉬며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고 만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얼음물을 연거푸 들이키고 과일로 요기를 하고 한참동안 다리쉼을 했다.정상에서는 주위 조망을 전혀 할 수 없었다.아직 어둡고 안개가 잔뜩 끼여 가시(可視) 거리가 짧은 탓이었다.
항상 밝은 기운이 맴도는 포암산은 이 고장 사람들은 베바우산,비바우산 이라고도 부른다.하늘을 가득 채우고 우뚝 치솟은 포암산이 마치 큰 삼베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희게 우뚝 솟은 모습이 껍질을 벗겨 놓은 삼의 줄기인 삼대,즉 지릅같이 보여서인지 이 산을 마골산(馬骨山)이라고 한 옛 기록도 보이며 계립산(鷄立山)이라고도 한다.(05:26)
[관음재 지나 대간 길의 기묘한 소나무에 다다라]
5시 26분,포암산을 뒤로 하고 하산길이다.포암산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963봉으로 간다.멀리서 포암산을 보면 마치 쌍봉처럼 보이는데 포암산과 이웃한 963봉이 바로 그것이다.잠시 잘룩이로 내려선 다음,950봉을 거쳐 5시 35분,963봉 정수리에 올라섰다.포암산에서 963봉에 이르는 대간길은 포암산 오르는 까꿀막진 바윗길과는 딴판으로 부드러운 흙길이다.
드디어 동이 터오른다.그러나 구름이 하늘을 가려 해돋이를 볼 수 없고 구름장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붉은 여명만이 보일 뿐이다.5시 41분,키낮은 산죽밭이 계속 이어진다.8분 뒤인 5시 49분,관음재(805m)가 있는 봉우리에 다다르니‘월악13-04’라는 구조안내판이 보인다.5시 55분,억수리 갈림길을 지나 6시 842봉에 올라섰다.대간 길은 너무나 평탄하고 안온하다.사진은 대간길 곁에 서 있는 한 그루 두 갈래의 금슬 좋은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06:13)
[충주,제천,문경시 경계봉(855m)에 다다라]
한 쌍의 금슬 좋은 소나무를 벗어나 대간 길을 간다.길은 굴곡이 없고 민듯하다.발걸음이 빨라진다.그러나 포암산을 오르면서 체력을 많이 소모한 탓인지 생각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6시 20분,853봉에 올라서서 6시 27분까지 허기를 때우기 위해 아침 요기를 한다.
6시 31분,충주시와 문경시,그리고 제천시를 가르는 855봉에 다다랐다.이 봉우리를 경계로 이제부터 대간마루 오른쪽은 문경 땅,왼쪽은 충주 땅을 벗어나 제천 땅을 지나가게 된다.이정표에 왼쪽으로 가면 지리산,오른쪽으로 가면 백두산이란 화살표는 우리가 한발 한발 발품을 파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산의 조종(祖宗)인 백두산 가는 길임을 문득 일깨워주고 있다.(06:36)
[941봉에서 구름 덮인 포암산 바라보기]
충주,문경 그리고 제천시 경계봉(855m)에서 800m 잘룩이로 내려와 만수봉 갈림길로 가는 오름길에도 산죽밭이 이어진다.그런데 대간 길은 산등성이를 오르지 않고 그 오른편 산허릿길을 따른다.6시 44분 만수봉 갈림길인 850m 잘룩이에 이르니 갈림길 안내판이 서 있다.왼쪽으로 가면 만수봉(983.2m),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대간 길이다.
940봉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상쾌하다.조금 가자 대간 길은 잠시 수긋해지더니 7시 2분,941봉에 이른다.날씨만 쾌청하다면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그런데 이게 웬 행운일까? 우리가 밟은 대간을 무심코 바라보는데 구름이 희롱하는 포암산의 모습이 일순 시야에 들어온다.참으로 장관이었다.포암산 쌍봉이 뚜렷하고 저멀리 주흘산이 구름 위로 둥둥 떠 흐른다.우리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암산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이 장면 이후로는 두번 다시 포암산의 모습은 커녕 백두대간 주변의 경치를 결코 볼 수 없었으니...(07:07)
[941봉에서 구름 덮인 포암산 크게 바라보기]
포암산을 클로즈업한다.포암산 정수리(961.7m)에는 구름이 오락가락 하고 그 오른쪽으로 포암산의 마주보기 963봉이 솟구쳐 있으며 두 봉우리 사이로 950봉이 보인다.마치 뫼 산(山)자 형국이다.구름이 포암산 산허리에 걸려 있고,구름 아래쪽으로 대간마루가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있다.그리고 포암산 왼쪽 하늘 멀리 구름 위로 주흘산이 아스라하다.(07:07)
[888봉 가는 길에 내려다본 관음리 궁골 풍경]
포암산 일원을 조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시야를 가려 포암산은 흔적없이 사라진다.그래서 카메라를 왼쪽(남)으로 돌려 궁골계곡을 바라본다.사진에 보이는 골짜기가 궁골이며 계곡 저 아래 발치에 문경읍 관음리 문막마을이 있지만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07:09)
[만수봉 갈림길로 가며 바라본 만수봉 능선]
[899봉 가는 길에 클로즈업한 만수봉]
만수봉 갈림길 지나 대미산 가는 길에는 며느리밥풀꽃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었다.이맘 때쯤이면 웬만한 산에는 이 며느리밥풀꽃이 한 두송이 피지 않는 산이 없지만,이곳에는 유독 며느리밥풀꽃이 군락을 이뤄 일대 장관이었다.며느리밥풀꽃을 이렇게 많이 본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이 꽃에는 아주 아주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오랜 옛날에 외동아들이 장가를 들었는데 새색시랑 금실이 엄청 좋았다는군요.두 사람의 사랑이 깨가 쏟아지다보니 홀어머니에게는 좀 소홀했구요.그러다보니 시어머니는 아들을 뺏어간 새 며느리를 미워했을 건 뻔했지요.그러다 무슨 일이 있어 아들이 장기간 출타를 했어요.그 시어머니,며늘아기에 대한 구박이 어떠 했겠어요.한참이 지나 아들이 돌아와 보니 색시가 죽고 없더랍니다.무덤 주위에 이런 꽃만 피어 있고…시어미가 구박하느라 밥도 제대로 안 주어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인데 몰래 밥을 먹다 시어미에게 들켜 맞아 죽었다나요.
[슬픈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
7월부터 9월까지 이 꽃이 여기,저기에 많이 보이지요.꽃잎 가장자리에 보면 하얀 점이 두개 보이는데 며느리가 죽을 때 미처 삼키지 못한 밥알 두 개가 묻어 있는 것이라는군요.‘꽃새애기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식물도감에는‘새며느리밥풀꽃’‘애기며느리밥풀꽃’또는‘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07:47)
[899봉 지나 잘룩이(790m)로 가는 숲속길]
잠간 안개가 벗겨진 틈을 타서 포암산과 궁골,그리고 만수산 일원을 조망하고 다시 발품을 판다.전망이 좋은 888봉에 올라섰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810m 잘룩이로 내려선 다음,7시 34분,899봉을 지난다.899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그 오른쪽 산자락에 궁골을 빚어놓았다.7시 43분,899봉에 다다르면서부터 며느리밥풀꽃이 군락을 이뤄 지천으로 피어 우리를 즐겁게 했다.이제 아주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사진은 안개 자욱한 숲길을 걷는 친구들의 모습을 담아보았다.(07:54)
[899봉 지나 잘룩이(790m)로 내려서는 바윗길]
이제 서낭당이 있는 790m 잘룩이로 내려선다.포암산 이후 처음으로 바윗길이 나온다.위험할 것까지야 없지만 비가 온 뒤라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내려서야 한다.(07:59)
[899봉 지난 잘룩이(790m) 서낭당에 다다라]
8시 790m 잘룩이에 내려서니 서낭당이 나온다.대간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열렸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서면 관음리 수새골로 떨어지게 된다.(08:01)
[843봉 못미쳐 전망바위에 다다라]
790m 잘룩이에 있는 서낭당을 떠나 8시 4분,820봉에 올라서니 대간 오른쪽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나오고 멋진 소나무가 서 있다.시간으로 보나 장소로 보나 이곳이 아침식사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금구는 햄버거가 입에 맞지 않는다며 깁밥을 들었고 우리는 햄버거로 아침을 때웠다.8시 22분까지 아침을 들고 다시 발품을 판다.8시 36분,843봉 못미쳐에 있는 너럭바위에 다다라 기환이와 익수를 카메라에 담았다.
8시 44분,843봉에 다다라 하산길에 드니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로프가 걸린 바윗길이 가로막는다.평소 같으면 무난히 내려설 수 있지만 비가 온 뒤라 바윗길이 몹씨 미끄러웠다.두 가닥 로프를 잡고 몸을 옆으로 틀어 균형을 잡으면서 살며시 내려서야 한다. (08:49)
[1,034봉 너덜지대에서 월악을 보며...]
843봉 바윗길을 내려오니 다시 바윗길 오르막이다.8시 58분,꼭두바위봉(840m)에 올라섰다.꼭두바위봉은 대간 오른편 산자락에 있는 꼭두바위 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꼭두바위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무척 길이 좋았다.9시 3분,880봉 오름길에는 돌들이 산재해있어 마치 허물어진 성터처럼 느껴졌다.880봉을 지나면서 다시 휫파람길이다.9시 27분 1,034봉에 가까이 다다랐 때 대간 왼편 숲을 헤집고 너덜지대로 들어섰다.
이곳은 월악산 일원의 산들과 용하구곡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대간 길에서 슬쩍 비켜나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우리 일행도 곧장 1,034봉으로 올라가려는 것을 소리쳐 너덜지대로 오게 했다.그러나 그놈의 안개 때문에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그 대신 배낭을 너덜에 부리고 땀을 식히며 다리쉼을 한다.이 너덜지대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큰 구들장 같은 돌들이 산비알을 덮고 있었다.이곳을 찾아온 산꾼들은 그 돌들을 탑처럼 세워 자신의 염원이나 바램을 빌어보곤 한다.(09:40)
너덜지대에서 9시 40분까지 다리쉼을 하고 대간길을 잇는다.너덜지대를 나와 1,034봉에 올라서니 대간은 급격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콧노래라도 부를만큼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그러다가 대간길에 핀 동자꽃을 발견한다.
우거진 숲속마저 때론 덥게 느껴지는 한 여름.그 공간에서 빛을 내는 존재들은 많지 않을 듯한데,그래도 풀 숲에 피어난 고운 주홍빛 동자꽃은 아름답기만 하다.소박한 듯 숨겨진 화려함이 돋보이고,평범한 듯하지만 곳곳에 많은 매력을 감춘 동자꽃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오래도록 가슴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동자꽃은 석죽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나 제주도 같은 멀리 떨어진 섬이 아니라면 전국의 어디서나 만날 수있다.하지만 그렇다고 평평한 땅에서 만나는 그런 들꽃들은 아니고 깊지 않아도 숲으로 우거진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산꽃이다.보통 무릎 높이 정도로 자라지만 허리춤까지 크기도 한다.한 여름 줄기끝에 달리는 꽃송이는 아주 예쁜 빛깔을 가지고 있으며,모양도 독특하다.꽃잎 하나 하나마다 그 끝이 아주 오목하게 패여 있어 마치 하트 모양처럼 달린다.동자꽃의 꽃잎을 닮은 심장을 가진 사람은 분명 마음도 그 모습도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동자꽃은 전추라화(剪秋羅花)라고 부르는데,학명 라이크니스(Lychnis)‘눈 붓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우리말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겨울 채비를 하러 마을로 내려간 스님이 큰 눈으로 산사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는데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이 죽은 자리에 핀,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이 바로 동자꽃이었다는 이야기다.이로 미뤄볼 때 숲 속에서 만난 동자꽃에서 붉고 귀여운 동자승을 떠올려 붙인 이름인 듯 하다.
동자꽃은 최근에 관상적인 가치가 인정되면서 사람의 손에 의해 재배되고 있다.특히 다소 습기 많은 숲 가장자리에 다른 나무와 풀들을 자연스럽게 심어 정원을 만들면 작은 숲을 마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09:54)
[묵은 헬기장의 1,062.4봉에 다다라]
너덜지대와 이웃한 봉우리인 1,034봉을 지나 9시 52분,1,038봉을 지난다.대간 길은 평탄하면서도 부드러운 흙길이다.맨발산행을 하기에 정말 좋은 길이다.대간 길에 피어 있는 주홍색의 아름다운 동자꽃을 감상하고 10시 4분,1,062.4봉에 다다르니 정수리에는 해묵은 헬기장이 나타났다.헬기장에는 햇빛이 잘 들기 때문에 마타리꽃,꿀풀 따위 양지식물이 앞다투어 피고 있었다.(10:07)
[870m 잘룩이 가는 길에 만난 거목]
대간 길에서 만난 기이한 생김새의 거목을 감상하고 10시 23분,870m 잘룩이로 내려섰다.그 잘룩이에는 좌우로 갈림길이 나 있었다.오른쪽은 문경읍 중평리 밖마,왼쪽은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용하구곡으로 빠지는 하산길이다.여기서 우리는 3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부리기재로 간다.부리기재 오름길은 작은 바위산이었지만 무난히 넘어섰다.
10시 26분,부리기재에 다라라 기념사진을 찍었다.이정표에는 대미산까지 40분이 걸린다고 적혀 있다.부리기재는 대미산 정상에서 포암산 방향으로 40분 거리에 있다.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와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와의 경계를 이룬다.대미산을 오를 때 문경읍 중평리 밖마를 통해 부리기재를 거쳐 정상에 이르거나,아니면 보통은 중평리 여우목 마을을 거쳐 대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의 두 가지가 있다.어디로 가든지 길이 잘 나 있고 무난한 코스라 하겠다.덕산면 방향은 희미한 길이 있으나 용하구곡의 긴 계곡이 있고 길이 멀어 잘 이용을 하지 않는다.이 고개 역시 옛날에는 이곳 중평리와 월악리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었으나 지금은 등산로로서 그 기능을 유지할 뿐이며 이 고장 사람들이 나물을 캐는 통행로로 이용되기도 한다.(10:32)
[대간길의 야생화-흰모싯대]
대미산 가는 길에 흰모싯대를 발견했다.자주색꽃의 모싯대는 흔히 볼 수 있으나 흰모싯대는 좀초럼 보기 힘들다.모싯대는 초롱꽃 식물로 전국의 깊은 산 숲속 아래나 계곡 또는 산기슭 따위 다소 습한 곳에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
모싯대는‘모시나물’이라고도 하며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봄 산나물이다.줄기를 꺾으면 흰 우유즙이 나오지만 독성이 없으며 맛은 순하고 담백하다.봄에 어린 잎 줄기를 따서 생으로 무침도 하고 튀김도 만들며,국거리로도 이용하며 데쳐서 나물로 무치기도 하며 기름에 볶아도 맛있고 샐러드로도 이용한다.또 삶아서 말려 두고 묵나물로도 쓰인다.꽃도 향기로워서 튀김에 쓴다.뿌리는 육질이어서 쌉쌀하지만 도라지나 더덕처럼 조리하는데 생채로 무침 구이도 맛있고 삶아서 볶음으로도 조리한다.
뿌리는 옛날에 구황식량 구실도 했다.모싯대는 잎이 살구나무 잎과 닮았고 뿌리는 더덕이나 잔대 같아서 중국에서 杏葉菜(행엽),또는 杏葉沙參(행엽사삼)이라 한다.그러나 모싯대는 뿌리를 제니라 하여 한방에서 거담제,해독제로 귀히 여기는 약제이며,멧돼지가 독 화살에 맞으면 얼른 모시대 뿌리를 파 먹고서 스스로 해독하는데 사람이 그 지혜를 갖지 못했다고 고대의 중국의 명의가 개탄했다고도 하는 약재다.한가지의 약으로 많은 독을 동시에 푸는 것은 제니즙(濟尼汁)뿐이라고 하며 모든 약을 다릴 때 함께 넣고 달이면 그 약의 독성분은 스스로 다 풀어져 버린다고 했다.그 약효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민간약으로 종기나 벌레 물린데 뱀에 물린 데 베인 상처 따위에 해독제로 다려서 먹는 약초다.(11:00)
[대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돼지릉]
흰모싯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다가 다시 발품을 판다.10시 38분,삼거리(1,030m)에 다다랐다.왼쪽 용하구곡으로 빠지는 하산길이 열려 있다.이제 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 대미산으로 이어진다.
11시,한바탕 땀을 흘린 끝에 마침내 대미산 정수리(1,115m)에 올라섰다.제법 너른 공터에 정상 빗돌이 세워져 있는 대미산에서 날씨만 좋다면 월악산을 비롯하여 주변의 산들을 조망하련만 안개에 가려 지척의 산들만 눈에 들어온다.대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나간 돼지릉을 조망한다.시계(示界)만 좋다면 돼지릉 너머로 공덕산(912.9m)과 천주산(836m)이 보일 텐데 아쉽기 그지 없었다.(11:10)
[대미산에서 바라본 문수봉 일원]
대미산 정수리에서 북쪽에 솟구친 문수봉(文繡峰 1,161.5m)을 바라본다.문수봉 정상은 구름이 기려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11:11)
[대미산에서 바라본 황장산과 대간마루금]
11시 11분,대미산 정수리에서 동쪽으로 다음 구간 우리가 밟을 황장산과 대간을 조망한다.
[대미산(大美山 또는 黛眉山 1,115m) 정상에서]
대미산은 문경시를 지나는 백두대간의 산들 가운데 모산(母山)이다.조선 영.정조 때 간행된“문경현지”에는 대미산을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라 적고 있다.대미산에서부터 문경구간의 백두대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와 함께 문경의 산들 중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다.“산경표”나“문경현지”에 기록된 지명은 黛眉山(대미산) 즉,검은 눈썹의 산이다.어디에서 보거나 크게 두드러져 뽐내는 모양이 아닌 그저 있는 둥 마는 둥 두리뭉실한 능선이 흐른다.정상부에 꼭 눈썹만큼의 봉우리를 돋아 놓았을 뿐이다.부드러움으로 대변되는 대미산은 오름길이 가파른 곳도 있지만 험악한 모양새를 한 곳은 없다.(11:19)
[눈물샘 갈림길에 다다라]
대미산 정상에서 11시 26분까지 머물다 눈물샘으로 하산에 들어간다.이제 햇빛이 눈이 부실 만큼 쏟아지고 있다.대미산 내리막길은 가파르지도 험하지도 않았다.10분 가량 발품을 파니 눈물샘 갈림길에 이른다.둥근 나무판을 나뭇가지에 매달이 놓아 눈물샘 하산길을 가리키고 있었다.(11:36)
[눈물샘에서 (눈)물을 받는 기환]
눈물샘은 눈물샘 갈림길에서 오른쪽 가파른 비탈로 70미터 가량 내려가면 나온다.대간팀들이 야영지로 자주 쓰이는 곳이기도 하다.이곳은 능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아늑한 장소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차가운 겨울철에도 대간마루가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기 때문에 바람이 잠풍한 곳이다.물을 항상 구할 수 있고 텐트 두 동 이상을 칠 수 있는 평탄한 공간이 있어 대간꾼들에게 야영지로 인기가 높다.
눈물샘-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약간 ?내음이 나는 게 옥에 티지만 물맛은 깔끔하고 어찌나 차거운 지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하다.'검은 눈썹 같다’는 대미산(黛眉山)의 산명이 뜻하듯 눈썹 아래에서 나오는 물은 바로 눈물이므로‘눈물샘’이라 부르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샘표지석에는“黛眉山 눈물샘-백두대간 종주를 위하여.”라 적혀 있다.대미산(大美山)이란 산명은 퇴계 이황이 이곳을 지나다 붙인 대미산의 애칭이며 대미산(黛眉山)은 예부터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본디 이름이다.이 눈물샘에서 심마니골을 따라 내려가면 용이골과 만나게 되고 용이골 하류에는 종주날머리인 작은차갓재에서 우리가 하산할 안생달 마을이 있다.(11:42)
[눈물샘 유래 안내판과 현기]
문경산들모임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꾼들을 위해 옹달샘이던 눈물샘을 정비하고 눈물샘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을 달아놓았다.현기가 그 눈물샘 유래 안내판 곁에서 자세를 잡고 있다.(11:43)
[눈물샘 곁에서 미싯가루를 개는 금구]
친구들의 물병에는 물은 바닥이 났지만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이 들어 있다.특히 현기가 애용하는 2리터 짜리 물병에는 얼음이 반쯤 얼어 있어 물만 채운다면 시원한 얼음물로 변하니 미싯가루를 타 먹기에는 최고다.희양산 종주때부터 동료들로부터 최고의 간식으로 칭찬을 받아온 금구의 미싯가루가 또다시 등장한다.사진은 금구가 각종 재료가 들어 있는 미싯가루와 설탕을 한데 섞어 골고루 개고 있다.미싯가루는 목마름을 축이는 데는 말할 나위도 없고 배고품을 다스리는 데도 최상의 음식이었다.금구 아지매,순자 씨-이렇게 멋진 미싯가루를 제공해준데 대해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소.언제 대간에서 한 번 보입시더.(11:51)
[대간길의 야생화-큰산꼬리풀]
눈물샘에서 12시 19분까지 미싯가루를 마시고 다리쉼을 한 뒤,눈물샘 갈림길로 올라간다.눈물샘에서 눈물샘 갈림길(1,000m)로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은 거리는 비록 70미터밖에 안 되지만 몹씨 힘이 들었다.이제 문수봉 갈림길로 걸음을 옮긴다.12시 29분,문수봉 갈림길(1,046m)에 올라섰다.여기서 오던 그대로 직진하면 문수봉(1,161.5m)에 이르지만 대간은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튼다.갈림길에서 불과 3-4미터의 거리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 헬기장에는 햇빛이 잘 들기 때문에 황금빛 마타리꽃을 비롯하여 큰산꼬리풀을 만나는 행운을 안겨주었다.화려함이란 진한 원색의 꽃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진하고 강하지 않은 색과 꽃들이 풍겨내는 화려함이야말로 가슴을 크게 움직이며 오래 남는다.
큰산꼬리풀이 바로 그런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풀이다.지상의 무더위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고,큰 산의 바람이 일렁이는 높은 산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가슴이 서늘토록 아름답다.큰산꼬리풀은 현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키가 1m쯤 되도록 시원하게 큰다.자라는 곳도 높은 산에서 볕이 드는 능선이나 정상 부근이다.그래서 이 풀을 만나려면 태백산,설악산,점봉산,태기산 같은 강원도의 깊은 산으로 가야 하고,이즈음이면 만날 수 있다.게다가 특산식물이어서 그 가치가 특별하다.잎도 시원하다.길이는 10㎝쯤 되고 너비도 2㎝가 넘는 길고 끝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마주 달린다.특별히 보기 좋은 것은 꽃이다.
한여름에 피어 여름이 가도록 꽃이 피어있다.오래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식물의 장점이다.꽃들은 멀리서 보면 꼬리처럼 쭉 빠진 꽃차례들이 하늘을 행해 자유롭게 올라간 듯 보인다.키도 크고 산에서 자라며 꼬리모양을 닮아 이름이 큰산꼬리풀이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눈에 잘 뜨이지만 꽃송이 하나하나는 아주 작다.꽃빛은 아주 연한데 남색인 듯도 하고 보라색인 듯도 하고.그래서 그 느낌이 더 시원한 듯하다.작은 것이 모여 크고 아름다운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보기 좋다.열매는 삭과이고 뿌리는 굵고 오래 묵어 나무질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있다.
희귀하기만 한 식물일 것 같지만 요즈음엔 자생식물을 심어놓은 정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기 좋고 꽃이 오래 피니 좋고 키가 큼직하여 화단의 뒤쪽이나 숲 가장자리에 무리 지어 피면 때론 배경처럼,때론 주인공처럼 자연스런 풍경을 보여주어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더욱이 특산식물이니 우리의 관상자원으로는 이래저래 유리한 점이 많다.키우려면 여느 고산식물들처럼 까다롭지 않아 물 빠짐이 잘 되는 땅에 볕만 충분하면 잘 큰다.가을에 채취한 씨앗을 바로 뿌리거나 잘 퍼지는 포기를 나누어 심어도 좋다.다만 야생성을 고려해야 하는데,너무 비옥한 곳에 심으면 잎과 줄기만 너무 무성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종류들을 일지향이란 생약명으로 쓰기도 한다는데 가래나 담을 없애주는 효능 등이 있어 만성적인 기관지염 치료에 이용한다고 한다.생각해 보면,이 넓은 세상에 오직 우리 땅에만 살고 있는 풀들이 존재하며,나의 두 발로 디디고 서서 이땅에 이런 색깔의,이런 모습의 풀들이 발견한다는 일,한 포기의 풀들이 펼쳐내는 장대하거나 또는 섬세한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일이 놀랍고 감사하다.(12:31)
[새목재 가는 숲길에서 발길을 멈추고]
문수봉 갈림길 옆 헬기장에서 마타리꽃과 큰산꼬리풀을 카메라에 담고 새목재로 발품을 판다.새목재 가는 대간 길은 아주 부드럽고 평탄한 흙길이 계속 이어진다.사진은 헬기장을 떠나 얼마 가지 않은 숲속길을 걸어오는 친구들의 모습을 찍었다.눈물샘에서 물을 보충하고 충분히 다리쉼을 한 탓인지 친구들의 얼굴은 고통스런 그림자는 사라지고 한결 생생해보인다.(12:34)
[차갓재(740m)에 다다라]
12시 49분,새목재에 다다르니 이곳에도 헬기장이 있고 뜻밖에도 헬기장 한복판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다.새목재 헬기장을 벗어나 920봉 오르막길 서늘한 숲속에 다다라 12시 56분부터 오후 1시 29분까지 점심을 들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오늘 두 번째 소구간인 작은차갓재에서 황장산을 넘어 벌재까지 종주는 도저히 무리라며 꼬리를 내린다.하늘재에서 1시간 늦게 출발한데다가 또 1시간 넘게 일정이 지연되었으니 작은차갓재에 빨리 도착해도 오후 3시,벌재까지 종주한다면 7시쯤 돼야 마무리가 될 듯하다.그러니 어느 누구도 종주를 하겠다고 내비치는 사람이 없었다.이쯤 되자 나로서도 친구들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어디 그뿐이랴,우리의 주력도 이미 바닥이 나가고 있으니 작은차갓재를 종주날머리로 선택할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점심을 마치고 920봉에 오르니 오후 1시 40분이었다. 펑퍼짐한 920봉 정상을 벗어나 1시 58분,880m 잘룩이에 이른다.여기서 986봉 오름길이 오늘 구간의 마지막 힘든 코스였다.힘들게 발품을 팔아 오후 2시 11분,986봉에 올라섰다.986봉 된비알을 더터오르느라 우리는 한바탕 땀깨나 쏟았기 때문에 정상에서 3분 가량 목을 축이고 다리쉼을 했다.
이곳에서 나는 김유건 동기를 휴대폰으로 불렀다.여행통답게 그는 충북 청원군에 있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집에 있다고 했다.우리가 작은차갓재에서 안생달로 하산할 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하자 유건이는 1시간쯤 걸리겠다고 한다.986봉 하산길도 가파르기는 마찬가지.오후 2시 24분,927봉에 다다라 20분 가량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840봉이다.2시 48분,800m 잘룩이 사거리에 이른다.잘룩이에는 좌우로 갈림길이 열려 있고 전신주도 보인다.이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안생달로,왼쪽은 명전리 차갓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이 800미터 잘룩이 오른편 발치 아래 숲속으로 안생달의 집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대간은 이 잘룩이에서 90도 왼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북동진한다.평탄한 숲길을 따라 2시 54분,차갓재(740m)에 다다르니 송전탑이 나오고 대간 오른쪽 나뭇가지에는 종주팀들의 리번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차갓재는 작은차갓재에서 대미산 방향으로 15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이 고개는 문경시 동로면 생달2리(안생달,안산다리)와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를 잇는 이용도가 높은 고개다.생달리 쪽으로는 많이 이용을 하고 있으나 차갓을 거쳐 명전리 쪽은 잘 이용하지 않지만 길은 잘 나 있다.차갓재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오른쪽 생달리로 내려가는 탈출로로 자주 쓰이며,옆에 헬기장이 있는 작은차갓재를 통해서도 생달리로 빠지기도 한다.생달리까지 내려가는데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덧붙이는 글]
986봉 급경사지대를 내려와 927봉으로 가는 어간에서 후미의 현기,기환이와 익수는 남녘 백두대간의 절반지점(367.3km)이라는 표지판을 봤다고 했다.이 표지는 포항셀파산악회에서 50미터 줄자를 이용하여 실측한 것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대간의 도상거리는 대략 690km이지만 포항셀파산악회에서 실측한 거리에 따르면 734.65km라 한다.오늘 그 절반지점을 우리가 넘어섰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다.아울러 백두대간 종주꾼들을 위해 포항셀파산악회에서 쏟은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15:06)
[종주날머리,작은차갓재에 다다라]
차갓재(740m)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마지막 봉우리인 806봉으로 올라간다.3시 12분,806봉에 올라 8분 뒤 3시 20분,오늘의 종주들머리인 작은차갓재(740m)에 다다라 종주를 마감했다.
작은차갓재 역시 차갓재와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같은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다.문경시 동로면 생달2리(안생달,안산다리)와 동로면 명전리를 잇는 고개다.생달리에서 황장산을 오르는 첫 번째 고갯길로 이곳에는 헬기장이 있으며,잠시 다리쉼을 하기에 좋은 장소다.안생달에서 작은차갓재 오르는데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하산에 앞서 김유건 동기한테 휴대폰을 넣으니 그는 청원군 운보의 집을 떠나 안생달 마을에 온 지 제법 되었다고 한다.(15.15:23)
[안생달 하산길,황장산 묏등바위를 배경으로]
작은차갓재에서 안생달(또는 안산다리)로 하산한다.10분 가량 걸어내려오니 베창골 가장자리를 따라 폐광된 활석이 집채만큼 높이 쌓여 있었다.하산길은 그 활석더미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데 등산로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15분 가량 내려오다 작은차갓재 쪽을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황장산 아래 묏등바위가 마을을 굽어보며 병풍처럼 서 있었다.기환이와 금구 뒤쪽으로 보이는 곧추선 커다란 바위가 다음 구간 작은차갓재에서 오를 묏등바위이며,그 오른쪽으로 황장산(黃腸山 1,077.3m) 정수리가 있으나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16:03)
[안생달 하산길,황장산 묏등바위 크게보기]
묏등바위를 클로즈업한다.곧추선 거대한 암벽을 가로질러 나무가 띠를 두른 듯하고 바위면에는 사람의 형상이 얼비치기도 한다.이 묏등바위 바로 앞 오른편‘베창골’을 따르면 황장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열려 있기도 하다.
묏등바위를 뒤돌아보고 베창골을 따라 안생달로 내려간다.그러나 베창골에는 물이 전혀 없었다.움푹 패인 계곡 바닥에는 돌멩이만 앙상하게 드러날 뿐이었다.아니면 물줄기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세차게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적잖이 실망했다.그런데 3분쯤 내려왔을까 말까,잡초가 우거진 등산로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골짜기 암반 아래로 세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금구와 나는 약속이나 한듯 배낭을 벗어던지고 물가로 닥아가 얼굴을 씻고 수건을 빨았다.일행이 다 모이자 우리는 그 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시키는대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말았다.상쾌하다.이제 살것만 같다.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덕유산 서봉 하산길에 이어 두 번째 입수(入水)였다.
30분이면 안생달 마을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안생달 마을 한백주제조장에 다다랐다.그곳에는 김유건 동기가 평상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다가 "왜 그렇게 늦었느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해한다.우리는 시큼한 땀냄새 나는 몸으로 김 기사(?)의 차에 오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입욕했다고 하니,그는 피익 웃음을 흘린다.
유건이는 한백주제조장 사무실 냉장고에 시원한 캔맥주를 넣어놓았으니 갈증을 달래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캔맥주를 반기는 친구는 어디 현기뿐이었으랴.우리는 캔맥주로 갈증을 축인다.머루주와 복분자주,그리고 상황버섯주 따위의 민속주를 만들고 있는 한백주제조장에서 익수는 민속주를 구입한다.이번 구간에 차량을 지원해준 한규와 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유건이한테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 2세트,그리고 아버님한테 드릴 1세트,모두 3세트를 샀다.(16:06)
[종주정보]
*때:2004.8.14-8.15(둘째주 일요일)
*참가자:김익수,김현기,신남석,전기환,최금구 5명
*차편:김한규 트라제 9인승(김유건 동기 운전)
부산....북상주IC...문경읍....갈평삼거리....하늘재
동로면 안생달....생달....갈평삼거리....문경읍....북상주IC....서대구....현풍IC...현풍 할매곰탕....현풍IC....서마산....만덕터널....동래지하철역
*종주시간/종주코스
03:59 하늘재(520m)...04:08-04:14 하늘샘...0.63km...04:48-04:51 790 능선 오르막...0.5km....05:11-05:29 포암산(961.7m)....963봉...0.55km......05:53 관음재...0.35km....842봉...06:15-06:27 835봉...0.88km....06:34 858봉(문경,충주,제천시 경계)...0.5km...06:45 만수봉 갈림봉(850m)...06:55 940봉...0.62km...07:02 941봉....마골치(870m)...0.5km...888봉...07:42 899봉...0.88km...08:00 809봉...08:04-08:22 820봉...0.75km...08:32 843봉...0.35km...08:54 꼭두바위봉(840m)...880봉...1.12km...09:27-09:40 1,034봉...09:52 1,038봉...1.62km....10:05 1.062.4봉(삼각점)...0.94km...10:23-10:26 870m 잘룩이....0.5km...10:30 부리기재(910m)....0.6km...10:37 삼거리(1,030m)...0.5km....11:04-11:22 대미산(大美山 1,115m)...11:33 눈물샘 갈림길...0.07km...11:35-12:05 눈물샘...0.07km...12:18 눈물샘 갈림길....0.9km...12:33 문수봉 갈림봉(1,046 헬기장)...1.0km..12:48-12:49 새목재(826.4m,삼각점)...0.63km...12:56-13:29 점심 920봉...13:58 880m 잘룩이....0.75km...14:11-14:17 986봉...0.48km...14:24 927봉...14:44 840봉...1.3km...14:55 차갓재(740m)...15:10 816봉...0.75km...15:20 작은차갓재(740m)---1.5km-->16:00 안생달 한백주제조장
*도상거리/시간:17.6km/11시간 39분
*탈출거리/시간:1.5km/30분
*총산행거리/시간:19.1km/12시간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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