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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8구간<지름티재-희양산-이화령>

[종주들머리 지름티재에서]

    

                                    지름티재-희양산-시루봉 갈림길-이만봉-백화산-이화령(2004.7.18)

 

2004년 7월 18일 일요일,둘째날 우리는 새벽 3시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배낭을 꾸린다.3시 30분,"여보야식집"에서 동태찌개와 주먹밥을 가져왔다.4시 30분,기환이의 승용차로 은티마을로 들어가 마을 무료주차장에 차를 두고 백두대간 18차 종주에 들어갔다.구름이 낀 날씨였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설령 비가 온다 하더라도 이제 종주는 멈출 수 없는 일.


5시 2분,지난 구간 종주날머리인 지름티재로 오른다.봉암사와 희양산 출입금지 안내판 들목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다.어제 우리가 헷갈린 그 길을 찾아 5시 20분,계곡으로 들어섰다.비가 내린 이튿날,공기는 상쾌하고 수목은 더욱 더 생기를 머금었다.조금 오르자 태풍이 계곡을 훑고 지나가 절개지가 생긴 위험지역을 통과하여 5시 33분,희양산성 성터로 오르는 왼쪽 길을 보며 곧장 오른다.


5시 56분 드디어 지름티재에 올라섰다.지름티재에는 지난 구간 때,희양산을 오르지 못하도록 완강히 버티던 봉암사 스님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정적만 감돌았다.지름티재는 괴산군 연풍면에서 문경시 원북리에 있는 봉암사로 넘는 최단거리 지름길이라 하여 지름티재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지름티재에서 금줄이 쳐 있는 서낭당을 뒤로 하고 구왕봉 쪽으로 둘러서서 18구간 종주 기념사진을 찍었다.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숲속이라 사위는 어두컴컴했다.(6:05)

 

[목책이 둘러처진 희양산 쪽 지름티재]

 

이번에는 종주들머리인 지름티재에서 우리가 올라가야 할 희양산(동쪽) 쪽으로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그곳에는 봉암사 산문(山門)을 폐쇄하기 위해 나무울타리가 둘러처져 있다.17차 종주 때 지름티재에 다다르자 다섯 명의 스님들이 각목을 들고 봉암사 출입은 물론,희양산 산행을 막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06:05)

 

[희양산 오름길-전망바위에서 돌아본 구왕봉]

 

이번에는 왼쪽부터 김현기,최금구,전기환 동기들을 앞세우고 구왕봉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06:24)

 

 

6시 24분,전망바위에서 내려와 희양산으로 오른다.오름길에 커다란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나가자 개구멍바위가 나타난다.덩치가 큰 사람은 허리를 구부려 통과해야 한다.바위너덜길을 지나 6시 37분,드디어 가파른 바위 직벽구간이 가로막는다.말로만 듣던 험난한 구간으로 세미클이밍을 해야 된다고 종주안내서에 적힌 구간이다.바위 한가운데로 두 줄기의 홈이 패여 있었다.나는 그 홈통을 지그재그로 오르는데 비가 온 뒤라 무척 미끄러웠다.거의 2/3지점에 이르러 직등하는 것을 멈추고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으로 몸을 이동시켰다.다른 동기들은 아예 바위 홈 오른쪽으로 비알로 붙어 오른다.오른쪽에는 나뭇가지를 손잡이 삼아 오르게 돼 있었다.막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편 산비알로 닥아섰을 때 "꿩의 다리"군락이 피어 있어 잠시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지만 신통치 않았다.


"꿩의 다리"는 꽃 모양새가 꿩의 다리를 닮았다고 하여 그 이름이 비롯됐고 순백색이나 보라색 꽃이 핀다.그리고 삼지구엽초와 유사하여 한방에서는 신경쇠약,건망증,강장,강정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06:47)

 

 

꿩의 다리"무리를 카메라에 담고 첫번째 직벽을 올라서자 두번째 직벽이 나온다.한 가닥 로프가 걸려 있는 구간이다.금구가 로프에 의지하여 오름짓하기 위해 몸매를 추스린다.(06:50)
 

 

금구가 로프를 타고 오르자 이번에는 기환이가 로프를 팽팽하기 당겨 오름짓을 하고 있다.큰 나무 뒷쪽에 먼저 오른 금구의 손이 보인다.(06:51)

 

 

기환이가 로프에 의자하여 직벽을 오른 다음,현기가 로프를 잡고 오르려 하고 있다. (06:51)

 

 

두번째 직벽을 오르자 이번에는 3번째 가파른 직벽이 우리를 기다린다.금구가 로프를 잡아당겨 오름짓을 하고 있다.(06:56)

 

 

 

 

6시 58분,세번째 직벽을 무사히 올라서자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970m)이 나온다.이곳에도 어김없이 출입을 통제하는 경고판이 보인다.우리는 가파른 직벽을 오르느라 힘을 쏟은 탓에 목이 말랐다.시원한 얼음물로 목을 축이고 자두를 꺼내 요기를 했다.희양산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을 타면 백두대간 길이요,오른쪽 능선을 따르면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우리는 배낭을 갈림길에 벗어놓고 7시 6분,희양산 정상으로 간다.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난데없이 안개가 업습하여 등산로를 빼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10분쯤 산등길을 따라가자 바위전망대가 나온다.바위 가장자리에 돋아난 노송,그 사이로 배회하는 안개가 절경을 이뤄 흡사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장면이었다.(07:17)

 

 

 

다시 희양산으로 간다.민드름한 바위를 오르내린다.사진은 등산로에서 슬쩍 비켜 선 두 바위 사이로 한 줄기 밝음과 안개가 몰려오는 돌문 사이에 현기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 모습을 화인더에 잡았다.날이 밝으면 저 아래 봉암사가 그대로 내려다보여 멋진 전망대 노릇을 할텐데...이쪽은 세상은(此岸) 어두컴컴한데 저쪽 세상(彼岸)은 밝아 묘한 대조를 이룬다.(07:20)

 

 

희양산 정상이 지척이다.너럭바위를 타고 넘어서자 희양산 정수리다.우리는 정상에서 더 앞쪽에 테라스를 이루고 있는 너럭바위에 섰다.테라스 앞쪽으로는 높이를 알 수 없는 수직 단애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하지만 안개가 앞을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천하의 희양산 조망대도 별무신통이어서 못내 안타까웠다.이 바위에 앉아 주리를 틀고 삼매경에 들면 얼나마 좋을 것인가-우리는 이런 여유로움을 마냥 즐길 겨를마저 없었다.갈 길이 너무나도 멀기 때문이었다.(07:24)

 

 

너럭바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희양산 정수리로 돌아온다.희양산 정수리에는 희양산을 알리는 빗돌도 안내판도 없었다.단지 "희양산 999m"라고 쓴 조그만 돌판이 바위에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그 돌판을 가운데 두고 친구들이 포즈를 잡았다.금구는 희양산에 오른 감격을 이기지 못해 평소 독실한 불자이며,내자인 이순자 아지매한테 휴대폰을 넣는다.일년에 몇 차례씩 봉암사를 찾는 금구 내외는 봉암사 경내에서 희양산을 쳐다보았을 뿐 이렇게 몸소 희양산 정수리에 올랐으니 그의 기쁨은 뭐라 형용할 것인가.그래서 아지매한테 희양산 정수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띄웠으나 난청지역이어서인지 교신은 이뤄지지 않았다.하늘 끝까지 닿은 희양철도 999에서..(07:25)

 

 

희양산 정수리에서 배낭을 두고 온 갈림길로 되돌아간다.그런데 희양산 정상을 벗어나자 공교롭게도 안개가 한풀한풀 벗겨지기 시작한다.희양산 정상으로 가던 길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동기들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골짜기가 바로 봉암용곡이다.사진은 금정산의 금샘처럼 구덩이 패인 바위턱에 다다른 동기들의 모습이다.(07:27)

 

 

희양산 갈림길로 되돌아가다 또다시 구왕봉이 바라뵈는 전망바위에 다다라 구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구왕산은 희양산의 마주보기로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멋진 산이다.(07:28)

 

 

구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5분 가량 발품을 팔자 봉암사가 훤히 내려다뵈는 전망바위에 다다랐다.전망바위에 앉은 친구들 뒤로 봉암사가 엿보이고 그 뒷쪽으로 성골계곡이 얼비친다.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 산자락에 있는 봉암사(鳳岩寺)는 신라 헌강왕 5년(879)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이며 고려 초에 정진대사가 중창했다.극락전은 목탑의 형식을 갖춘 건물로 신라의 경순왕이 피난 때 기원 드리던 원당(願堂)으로 세운 유서깊은 전각이라고 한다.


봉암사는 신라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로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했다.희양산 일대는 경관이 수려해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이 여러 곳에 전한다.또한 희양산문은 당나라에서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선(禪)지식의 교단이라고 높이 평가되었다고 한다.

 

천년 전통의 봉암사가 새롭게 태어난 것은 1947년.성철스님을 중심으로 청담,자운,향곡,월산,혜암,법전 등 일단의 수좌들이 해방 이후 봉암사로 모였다.조선 500년,일제 36년간 짓밟히고 망가진 불교의 제 모습을 찾고자 "스스로 밥하고 농사짓고 나무하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청규를 철저히 지켜나갔다.봉암사 결사는 6.25로 중단될 때까지 3년 동안 계속됐다.이때 함께 수행한 사람 중에는 4명의 종정과 6명의 총무원장이 나왔고 이들의 수행 가풍은 전설로 남아 불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전쟁 후에는 향곡,서옹스님에 이어 서암스님이 봉암사의 선풍을 이끌었다.


지금도 봉암사는 불교 부흥의 진원지로 많은 스님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그리워한다.해마다 여름과 겨울 3개월씩 용맹전진하는 안거(安居)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100여 명의 스님들이 선방에 들어와 화두를 잡는다.많게는 하루 22시간씩 참선하는 봉암사 선방에는 오늘날까지도 봉암사 결제의 기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백두대간 희양산이 간직한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이십년 넘게 굳게 걸어 잠근 문을 일년에 딱 한번 초파일에만 연다.수행하는 납자들의 청정도량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신도들조차 드나들 수 없다.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봉암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그러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행락객들 때문에 희양산 자락과 봉암사 옆 40리 계곡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사찰 주변 환경훼손은 차치하고라도 국보급 문화재들마저 손상될 정도로 청정도량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말 위기에 처했다.신라 시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이자,1945년 봉암사 결사의 성지로서 봉암사 명성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자 마침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수행자들이 나섰다.산문 폐쇄 10년이 지나서 사람의 자취가 지워지고,20년째 접어들자 산천이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07:34)

 

[친구들 뒤로 봉암사가 희미하게 내려다보이고..]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구왕봉] 

 

봉암사를 조망하고 7시 37분,희양산 갈림길(970m)로 돌아와 배낭을 메고 발품을 판다.희양산 갈림길과 희양산 정수리 일대에는 그 흔한 리번을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특히 대간을 종주한 산악회에서는 반드시 종주리번을 붙이기 마련인데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스님들이 모두 거둬들인 듯하다.


희양산 갈림길에서 대간은 오른쪽(북동)으로 틀어나간다.등산로는 숲이 우거져 쾌적했다.조금 가자 조릿대군락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이내 활엽수림으로 바뀐다.7시 43분,신라 때 쌓았다는 희양산성터가 시작된다.2분 뒤,성터갈림길인 잘룩이(850m)로 내려서니 이곳에도 산문을 폐쇠하여 목책을 쳐놓고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 있다.이 갈림길은 은티마을에서 지름티재로 오르다 왼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이곳에 다다르게 된다.그러나 지름티재와 이 성터갈림길 두 곳을 폐쇄하면 희양산은 결코 오를 수가 없다.아마 이곳에도 스님들이 눈을 부릅 뜨고 지킬 게 분명하다.사진은 900봉 오름길에 대간 왼쪽으로 열린 은티마을을 조망한다.멀리 은티마을과 그 앞쪽 봉우리 왼편에 성터 갈림길로 오르는 계곡이 보인다.(07:55)

 

 

첫번째 900봉을 지나서 두번째 900봉에 닥아설 즈음,시루봉과 967봉 사이 배너미평전 근처의 대간마루금을 조망한다.사진 뒷쪽에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967봉이며,그 왼쪽이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그 사이가 배너미평전으로 길을 잃기 쉬운 곳이다.대간마루금은 967봉과 배너미평전 사이의 시루봉갈림길을 지나게 된다.다시 말하면 대간은 시루봉 산자락 오른편으로 에돌아 배너미평전을 거쳐 967봉으로 올라붙는다.사진에 보이는 967봉 앞쪽 능선을 가로지르는 골짜기가 바깥성골이다.(07:59)

 

 

전망바위에 다다라 967봉과 배너미평전,그리고 시루봉 일원을 다시 바라보니 안개가 967봉 정수리를 휘감고 있다.(08:01)

 

 

8시 2분,두 번째 900봉에 올라 6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시루봉 갈림길로 간다.다시 6분 뒤,890봉에 다다랐다.890봉에서 시루봉 아래 자락까지는 완만한 능선길.8시 24분,대간과 시루봉 산자락이 만나는 810m 지점에 다다르니 계곡물소리가 우렁차게 울린다.대간 왼쪽 발치 아래,시루봉 계곡에서 콸콸 쏟아지며 흐르는 물소리는 무더위를 식힐 만큼 시원하다.


우리는 배낭을 갈림길에 벗어놓고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소금끼 어린 등산용 손수건을 물에 적셔 깨끗이 빨아 머리에 동여매니 금세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아뭏튼 대간 바로 곁에 계곡물이 흐르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시루봉과 대간이 만나는 지점에 다다라 동기들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곳은 수림이 울창해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했다.(08:37)

 

[시루봉 갈림길 아래 810m 지점에 다다라]

 
시루봉 계곡과 대간이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서 8시 33분까지 땀을 식힌 다음 시루봉 갈림길로 오른다.8시 50분,시루봉 갈림길에 다다르고 보니 왼쪽길은 시루봉(914.5m)으로 오르는 길이 열려 있고 대간은 오른쪽 967봉으로 갈라진다.이곳이 바로 배넘이평전이다.이 일대의 생김새가 마치 넓은 평원처럼 생겨 그런 이름이다.
 
그런데 대간은 967봉으로 오르지 않고 967봉 왼쪽 산허릿길을 따라 간다.그 산허릿길은 햇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돌마다 이끼가 시퍼렇게 끼여 미끄럽다.8시 54분,왼쪽 주주리 분지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 9시 3분,967봉과 산허릿길이 만나는 930m 잘룩이에 다다랐다.이곳에는 산행을 하다 위급한 경우에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이만봉 제8번지점이란 안내판이 서 있었다.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면 여기서 다리쉼을 했다.(09:12)
 

 

이제 용바위로 간다.제8번 구조요청 안내판을 지나 채 1분 가량 발품을 팔았을까 대간 왼편으로 구름이 희롱하는 문경의 진산 주흘산 일원이 바라뵌다.(09:14)

 

 

구름 비낀 주흘산을 감상하고 5분쯤 발품을 파니 이번에는 대간 오른편으로 희양산의 모습이 처음으로 잡힌다.친구들은 암장으로 이뤄진 희양산을 손으로 가리키며 탄성을 지른다.(09:19)

 

 

희양산의 모습을 클로즈업한다.희양산 능선이 오른편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다 잠시 수긋해지는 곳이 지름티재에서 오르면 만나는 희양산 갈림길이며 그 곳에서 산줄기가 급격히 꺼지는 부분이 희양산성터 갈림길이다.희양산 너머에 구왕봉이 봉긋한 봉우리를 내밀고 있다.(09:20)

 

 

희양산을 뒤돌아보고 대간 길을 가다 앞쪽에 헌걸차게 솟은 백화산을 바라본다.구름에 싸인 백화산이 아득하기만 하다.시루봉 갈림길을 지나면서 대간은 이만봉을 거쳐 백화산까지 거의 남동진하게 되고,백화산을 기점으로 대간은 거꾸로 방향을 틀어 이화령까지 북서진하게 된다.따라서 시루봉과 백화산,그리고 이화령을 잇는 말굽새 형태의 대간 사이에 긴 계곡을 만들어 놓았다.시루봉에서 이화령까지 직선거리로는 3km도 채 안 되지만 백화산을 거쳐야 하는 대간은 무려 13.5km를 돌아가야 한다.참으로 특이한 지형이다.(09:21)

 

 

백화산을 조망하고 6분쯤 발품을 팔자 용의 비늘처럼 생긴 "용바위"에 다다랐다.(09:27)

 

 

용바위를 거의 빠져나가면서 용바위에 올라선 기환이를 한 컷트한다.용바위의 비늘과 굴참나무의 묘한 대조가 시선을 끌었다.(09:28)

 

 

용바위를 지나자 마당바위다.마당바위를 지나서 전망바위에 이른다.여기서 다음 구간 우리가 종주할 조령산과 포암산을 바라본다.구름이 끼여 시계가 좋지 않은 탓에 화면이 선명하지 못한 게 유감이다.맨 앞쪽 아래 능선이 백화산에서 이화령으로 이어지는 대간이며 왼쪽 구름에 가린 산이 조령산이다.조령산 오른쪽 울퉁불퉁한 능선이 하늘재에서 포암산으로 나우리치는 대간임을 일별할 수 있다.(09:32)

 

 

전망바위에서 금구의 얼굴을 비껴 조령산과 포암산 등 대간마루금을 바라본다.제1선이 백화산-이화령으로 이어지는 대간이며,두번째 능선이 조령산,세번째 능선이 포암산을 거치는 대간이 하늘금을 그었다.(09:36)

 

 

포암산 일원의 대간마루금을 클로즈업한다.두 번째가 포암산 능선이다.(09:38)

 

 

9시 44분,이만봉(二萬峰 990m)에 올랐다.이 산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그런 이름을 얻었고,또 옛날 이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이 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얘기가 전한다.우리 일행은 이만봉 정수리에서 지난 구간부터 금구가 준비해온 미싯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09:49)

 

 

이만봉에서 9시 59분까지 15분간 쉬고 곰틀봉(970m)으로 떠난다.곰틀봉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미끄러웠다.비 온 뒤의 암릉지대는 미끄럽기 때문에 하산에 신경을 써야 한다.사진은 이만봉에서 곰틀봉으로 내려오다 곰틀봉과 구름으로 뒤덮인 백화산을 바라보았다.곰틀봉 너머 잘룩이는 사다리재다.(10:09)

 

 

이만봉에서 곰틀봉 가는 길의 대간에는 솔나리 개체가 많이 보였다.아주 예쁜 분홍색꽃을 피워올린 솔나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덕유산 이북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북방계 식물인 솔나리는 희귀 자생식물로 분류되어 환경부가 보호식물 제6호 지정하여 채취,재배를 금지하고 있다.(10:11)

 

 

이만봉에서 곰틀봉으로 가는 길에는 희귀종인 솔나리를 비롯하여 꿩의 비름과 돌양지꽃이 많이 보였다.이 돌양지꽃은 바위 서리서리에 앙징맞게 피어 지친 대간꾼들에게 잠시나마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져다주었다.


돌양지꽃은 몹씨 작아서 잘 눈에 뜨지 않으나 돌확에 착 달라붙어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돌양지꽃의 샛노란 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양지꽃은 양지바른 산과 들이면 이 땅의 어느 곳에서든 어김없이 자라고있는 아주 친근한 우리 풀이다.


줄기는 위로 서지 않고 옆으로 늘어지니 키는 커봐야 한 뼘을 넘지 못하지만,옆으로 둥글게퍼져 마치 꽃방석을 만들 듯 큼직한 포기를 만들기도 한다.장미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그냥 보아도 밝고 곱지만 자꾸 자꾸 들여다보아도 여전히 예쁘다.병아리처럼 노란 빛으로 봄이면 피어나는데, 때론 한 쪽에선 피고 지고 다시 옆에서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 여름까지 이어지기도 하니 아름답고도 단명하지 않고,까다롭지 않아 좋다.

 

장미과의 특성에 맞게 꽃잎은 5장,수술이 많다.잎은 본래 작은잎들이 3장에서 9장까지 장미의 잎이 달리듯 그렇게 달려 있다.만일 이 작은 잎들이 모두 3장씩 달려 있다면 그것은 '세잎양지꽃, 5장씩 동그랗게 모여 있다면 '가락지나물'이 되고, 잎이 아주 갈게 갈라지면 '딱지꽃', 돌틈에 붙어 피고 있으면 '돌양지꽃'이기 쉽다.모두 형제가 되는 식물들이다.


예전엔 예사롭지 않게 여기던 양지꽃을 두고 요즈음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다.워낙 식물 자체가 강건하여 다른 식물들이 살기 어렵다 싶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꽃이 오래 피며 그 꽃이 지고 나도 지면을 덮고 있는 잎 모양이 괜찮아 관상용으로 가치를 높게 재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10:13)

 

 

이만봉에서 곰틀봉으로 닥아가다 오른쪽 계곡을 내려다본다.저 멀리 성골계곡과 홍문정마을이 실날같이 보인다.홍문정은 봉암사로 들어가는 들머리이다.왼쪽 산줄기는 대간의 973봉에서 갈래쳐나간 뇌정산 산자락이다.(10:14)

 

 

10시 18분,곰틀봉에 다다랐다.잠시 숨길을 고르고 우리가 내려온 이만봉을 뒤돌아본다.이만봉은 마치 거대한 집채처럼 두리뭉실하다.(10:21)

 

 

곰틀봉에서 사다리재로 내려가다 전망바위에서 북쪽에 있는 조령산 일원을 조망한다.(10:22)

 

 

곰틀봉에서 사다리재로 내려서다 바라본 백화산과 대간마루금이다.사진 오른쪽의 높은 봉우리가 대간분기봉인 973봉으로 여기서 뇌정산(雷霆山991.4m)이 갈라진다.구름에 가린 백화산 정상은 사진 왼쪽에 보인다.(10:25)

 

 

10시 36분,사다리재(830m)에 다다르니 좌우로 갈림길이 나 있다.왼쪽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안말,오른쪽은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로 빠지는 길이다.사다리재를 지나 874봉 오름길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어 흡사 성터를 연상케했다.10시 43분,874봉에 오른 다음부터 10여분가량 부드러운 대간 길이 이어진다.11시 25분,오른쪽으로 뇌정산이 갈래쳐나가는 973봉에 올라섰다.

 

973봉을 내려와 11시 44분,평전치(890m)에 다다르니 이정표에는 백화산 50분,분지리 안말 1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다.사진 뒷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뇌정산 갈림봉인 973봉이고,그 앞 작은 봉우리 사이의 잘룩이가 평전치이다.(12:03)

 

 

평전치(890m)에서 백화산(1,063.5m)으로 오르는 대간 길은 뜻밖에 오르내림이 심했다.990봉 오름길에는 암릉을 딛고 넘어야 했다.12시 20분,990봉에 올라서니 앞쪽에 1,013봉이 보인다.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1,013봉은 암봉이었으나 990봉에서는 수림이 가려 그저 평범한 봉우리처럼 보였다.

 

990봉에서 1,013봉으로 오르는 길은 1,013봉을 바로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1,013봉을 돌아가면서 보니 거대한 암장이 1,013봉을 휘감고 있었다.1,013봉 능선이 돌아오는 길과 만나잠시 발품을 팔아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12시 33분이었다.


이 봉우리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손수건으로 훔치고 갈증을 축이며 대간을 뒤돌아본다.맨 앞쪽 암봉이 바로 오르지 않고 돌아온 1,013봉이고 그 뒤의 봉우리가 990봉,세번째 봉우리는 뇌정산 갈림봉인 973봉이다.그리고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암봉이 바로 희양산(999m)이다.(12:38)

 

[백화산 오름길,1013봉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대간]

 

금구가 대간마루금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았다.이 구도에서는 희양산이 보이지 않았다.(12:42)

 

 

1,013봉 지난 전망바위에서 12시 40분까지 7분쯤 다리쉼을 하고 이제 백화산으로 오른다.백화산으로 닥아갈수록 햇빛이 쨍쨍 내려쬐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12시 50분,드디어 백화산 정수리에 올라섰다.

 

백화산은 이화령에서 잠시 수긋하던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향해 치달리기 전에 솟구친 산이다.백두대간이 문경 쪽으로 한참을 치고 들어갔다 빠지며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고,백화산은 그 정점에 위치해 있어 흔히들 봉황이 나는 형국이라고 한다.특히 문경쪽으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 있어 부리 구실을 하고,정상은 새가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 보듯이 인근 산과 들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조망의 명당이다.

 

백화산은 봉황이다.성인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다.그 발치에 봉생(鳳笙),왼쪽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오른쪽에 신라시대 고찰인 봉암사(鳳岩寺)를 두고 뒤로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봉황이다.믿기지 않거든 정수리에 서서 볼 일이다.

 

북으로 성채처럼 우뚝한 주흘산,돌기둥 뚜렷한 부봉,조령산의 빛나는 바위면 뒤로 월악산이 환상의 성처럼 떠오를 것이다.남으로 눈을 돌리면 희양산의 눈부신 암벽 저편에 속리산 톱날능선이 무쇠처럼 검다.운달산 너머로는 소백산이 아스라하다.이렇게 많은 명산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이땅에 달리 없으리라.이곳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서기(瑞氣)어린 부분이기 때문이다.4단으로 된 정상 남벽에는 근동사람들이 명당자리로 꼽는 기도터가 있다.

 

문경 사람들이 즐겨찾는 백화산에는 이날도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우리가 정상에 다다랐을 때 점촌에서 왔다는 중년의 두 등산객은 심심하면 백화산에 오른다고 했다.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그들은 우리한테 "대간꾼들이냐."며 반갑게 맞곤 물을 좀 얻고 싶다.고 하자 얼린 큰 페트병을 선선히 내주어 고맙기 그지 없었다.정상 빗돌을 중심으로 선 우리 네 사람의 사진도 그들이 찍어준 것이다.

 

우리는 새벽에 야식집에서 배달해온 주먹밥을 펼치고 정상 빗돌 부근에서 점심을 먹어보지만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잘 넘어갈 리가 없다.오히려 금구가 가져온 미싯가루가 술술 넘어갔다.점심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등산객들이 속속 정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12:55)

 

[백화산 정수리에서-필자는 왼쪽에서 두번째]

 

백화산 정수리에서 오후 1시 28분까지 점심을 들고 이화령으로 간다.백화산 정상을 내려서니 이내 헬기장.이 헬기장 주위에는 가을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마타리꽃과 꿀풀이 제법 많이 피어 있다.그가운데서 "궁궁이"가 단연 돋보였다.

 

천궁,백봉천궁,토천궁,다형당귀 따위로 불리기도 하는 궁궁이는 산골짜기 냇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키의 식물이다.오래 된 줄기는 짙은 갈색을 띠기도 하며 속은 텅 비어 있고 특유의 냄새가 나서 쉽게 찾을 수 있다.여름부터 가을까지 무덤 모양의 작은 꽃무리들이 다시 큰 무덤 모양의 꽃으로 한데 어울려 피는 모양(복산형화서,즉 우산을 편 듯한 모양이 두 번 이루어짐)이 참 보기 좋다.

 

가끔 책에서나 위의 딴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궁궁이를 천궁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궁궁이는 야생으로 자라는 식물이고 천궁은 중국 원산의 약초용 재배식물이다.따라서 둘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천궁은 왜당귀(일본당귀 또는 일당귀라함)와 비슷한 잎을 가졌고 키도 30-60Cm 정도밖에 안됩니다.이 궁궁이의 특징은 꽃대를 감싸는 <포>라고 하는 잎이 달걀처럼 둥글다는 점이다.그런데 바로 이 특징 때문에 어떤 책에서는 구릿대와 혼동을 하곤 한다.

 

그러나 구릿대는 줄기가 녹색이며 거의 3-5Cm정도까지 굵고 위로 갈수록 급격히 가늘어지면서 포가 동글동글한데 비해 궁궁이는 줄기가 굵어봐야 1Cm를 넘지 않고 포가 길쭉한 모양이라는 점이 다르다.어린 잎을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고,뿌리와 열매로는 산후출혈, 치질로 인한 출혈,빈혈, 일반 부인병 등에 달여 약재로 처방한다.(13:35)

 

 

 

헬기장에서 특이한 이름의 "궁궁이"를 카메라에 담은 뒤,옥녀봉 갈림길로 발품을 판다.1시 38분 옥녀봉 갈림길을 지나 앞쪽에 우뚝 솟은 990봉 암봉을 바라본다.이 암봉은 오늘 구간가운데 마지막 바위지대로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 있다.(13:51)

 

 

990 암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로프를 잡고 올라 990봉에 닿는다.1시 56분,헬기장이 나온다.거기서 왼편으로 우리가 밟은 대간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희양산이 아아하다.(13:56)
 

 

희양산을 조망하고 말굽새 모양의 대간 사이에 질러져 있는 괴산군 연풍면 주주리 분지마을 일대를 굽어본다.왼쪽 시루봉과 오른쪽 이화령 사이의 고샅에 분지저수지가 보인다.(13:56)
 

 

분지마을을 굽어보고 황학산으로 간다.2시 1분,오른쪽 마원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 2시 8분, 황학산 앞 913.6봉에 올라선다.사진은 913.6봉에 다다르기 전 대간 길의 풍경을 잡았다.백화산을 떠나 990 암봉을 지나고나서부터 대간 길은 아주 평탄하면서도 부드러워 마치 하이킹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14:07)

 

 

913.6봉에서 황학산으로 가는 길 오른쪽 비탈은 조림지역이라 조망은 거칠 것이 없다.사진은 문경의 진산 주흘산을 바라보니 주흘 정상은 구름이 덮여 신비로운 모습이다.(14:15)

 

 

황학산(910m) 정상에 가까이 닥아서다 대간마루금을 뒤돌아본다.황학산에서 913.6봉으로 이어지는 왼쪽 산비알은 온통 조림지역이며,913.6봉은 숲에 가려 가늠하기가 어렵다.대간은 990 암봉 뒤로 수긋해지다 백화산을 일으켜세웠다.백화산 오른편 송곳처럼 날카로운 봉우리가 1,013 암봉이며,백화산을 정점으로 대간은 급격하게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나간다.(14:23)

 

[황악산 오름길에 돌아본 대간마루금]

 

황학산 정상(910m)은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그저 평범한 봉우리에 지나지 않았다.거기서 우리는 2시 25분부터 2시 33분까지 다리쉼을 했다.이제 곰봉(784m)으로 떠난다.7분 뒤 흰드뫼로 내려가는 왼쪽 갈림길을 지나 2시 44분,862봉을 지나면서 대간마루 왼편 비알은 양탄자 같은 사초군락이 시원스럽게 펼처진다.이렇게 드넓은 사초군락은 난생 처음이었다.사초군락은 대간이 북서쪽에서 90도 왼쪽(남서쪽)으로 꺾여 곰봉으로 가는 길목까지 이어져 약 800미터는 족히 됨직했다.사진은 기환이가 862봉을 지나 대간이 90도로 방향을 틀기 전 사초군락지에 다다라 이제 막 꽃을 피우려하는 비비추의 꽃망울을 살피고 있다.(14:54)

 

 

기환이가 비비추의 꽃망울을 살피고나자 금구와 현기가 들이닥친다.나는 이 드넓은 사초군락지에 친구들을 제일 편한 자세로 앉게 하고 포즈를 잡게 했다.사초는 흔히 말풀이라고도 하는데 바람이 불면 한 곳으로 말풀이 누워 장관을 이룬다.지금은 바람이 없어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으나 짙푸른 녹색의 초원에 누운 친구들이 대간을 종주하며 고역을 치른 모습은 사라지고 잠시나마 즐거움에 빠져들고 있다.(14:56)

 

 

우리는 사초군락지에서 느긋하게 게으름을 부리다가 다시 발품을 판다.3시 3분,북서쪽으로 진행하던 대간이 갑자기 90도 왼쪽(남서쪽)로 방향을 트는 지점에 이르렀다.넓은 등산로에는 주먹만한 돌멩이가 깔려 있고 대간 왼쪽 산비알에는 여전히 사초가 눈부시게 펼처져 있다. 5분 가량 발품을 팔자 사초군락은 성글어지고 대간 오른편으로 낙엽송군락이 하늘로 쭉쭉 뻗어 시원스럽다.

 

3시 12분,대간 길 오른편에 늪지가 나타나면서 제법 큰 연못이 나온다.평소에는 물이 미미하나 아마 요 며칠 사이에 폭우가 따르는 바람에 수량이 많아진 듯하다.그 연못을 지나 곰봉(784m) 가는 길의 대간 풍경이다.금구 오른편으로 낙엽송군락이 시원하게 서 있고 왼편으로는 사초가 드문드문 보인다.산길은 너무나 부드러워 걷기에 는 안성맞춤이었다.(15:14)

 

 

3시 16분,오른쪽 문경읍 각서리 풍덕동 굴뚝메기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 4분 뒤,해묵은 헬기장이 있는 곰봉(784m)에 다다랐다.곰봉을 지나 3시 26분 헬기장에 이르러 백화산을 등지고 동기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이화령으로 떠난다.3시 34분,돌무더기가 있는 760봉을 지나면서 참호가 보이기 시작한다.이화령 근처에 군시설물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여기까지 그 영역이 미치는 걸까.아뭏튼 등산로는 완만하여 속보로 가기 그저그만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가는 반대편에서 등산객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화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그럼 "여기서 이화령까지는 얼마나 걸리죠?"하고 물어보니 그는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그런데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대간 길은 거의 50분이 걸렸다.하기야 산에서는 정확한 시간개념이 없어지곤 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해야지 100% 믿을 바는 못된다.시간이 늦어지면 그만큼 산속에 더 있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4시 3분,헬기장이 있는 조봉(671m)을 지난다.조봉을 지나 681.3봉으로 가다 대간은 그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산허리길을 따라간다.군시설물이 있는 681.3봉 우회길이다.4시 6분,그 산허리길을 따라 이화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를 뿐만 아니라 비온 뒤라 굉장히 미끄럽다.4시 17분,드디어 이화령 도로가 내려다뵈는 지점에 이르렀다.시멘트계단을 내려와 4시 19분,경북쪽 이화령에 다다랐다.

 

 

나는 충북쪽 이화령휴게소로 갔다.6분 뒤,우리 일행이 다 모여 시원한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백두대간 18구간 끊어타기를 마무리했다.

 

[종주정보]

 

05:02 은티마을---->05:56-06:05 지름티재(647m)...1.0km...06:55-07:06 희양산 갈림길(970m)...0.25km...07:18 희양산(999m)...0.25km...07:32 희양산 갈림길(970m)...0.5km....07:45 성터 갈림길(850m)...900봉...900봉...08:13 890봉...1.25km...08:50 시루봉 갈림길(810m)...0.63km....배너미평전....08:54 967봉 지나 분지저수지 갈림길...0.63km...920 갈림길...09:25 용바위...09:28 마당바위....0.62km...09:44-09:55 이만봉(989m)...0.5km...10:18 곰틀봉(970)...0.57km...10:36 사다리재(830m)...10:43 874봉...1.5km...11:25 973봉...1.3km...11:44-12:00 평전치(890m)...12:20 1,013봉...0.87km...12:50-13:28 점심,백화산(1,063.5m)...1.25km...14:08 913.6봉...0.5km...14:16 황학산(910m)...0.5km...14:44 862봉...1.62km...15:08 곰봉(784m)...1.38km...15:48 조봉(671m)....1.0km...16:06 681.3봉...0.5km....16:19-16:25 이화령(584m)


*대간 도상거리/시간:16.12km/9시간 48분
*진입거리;2.37km/1시간 35분
          1.87km:은티마을--->지름티재/1시간 3분
          0.5km:희양산 갈림길<--->희양산 정상 왕복/32분
*총종주거리/시간:18.49km/11시간 2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