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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내연산 청하골을 찾아서<1>

 

[들어가면서]
 

주왕산을 지나 청송군과 영덕군을 경계지으며 남하하던 낙동정맥은 포항시의 죽장과 기북을 가르는 성법령에 이르면 동해로 곁가지를 뻗어내린다.이 곁가지는 청하에서 상옥으로 넘는 샘재(620m)에서 내연산 산줄기와 천령산 산줄기,둘로 나뉜다. 

북쪽으로 매봉(810m)과 향로봉(930m)을 거쳐 동진하다 삼지봉(710m)에 다다른 내연산 주능선은 또 다시 북으로 동대산(791m),바데산(646m)으로 뻗어내리다 옥계로 빠져들고,삼지봉에서 동남으로 가지친 산줄기는 문수산(622m)과 보경사를 품에 안고 동해안으로 스며든다. 샘재에서 동쪽으로 날개를 펼치며 삿갓봉(716m)을 거친 천령산(775m) 주능선은 청하면을 아우르며 이 땅의 호랑이꼬리 호미곶,영일만에 발끝을 담근다.

이렇듯 샘재~매봉~향로봉~삼지봉~문수산~보경사 능선과 샘재~삿갓봉~천령산~보경사로 이어지는 두 능선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그 모양새가 프랑스의 빵 크로와상과 흡사하다.두 능선의 서쪽 분기점인 샘재에서 동쪽 들머리 보경사를 에워싼 고샅에는 깊고 긴 아름다운 계곡,청하골이 반달처럼 질러져 있다.          

지난 여름은 불볕더위가 용광로의 쇳물처럼 온누리를 달아오르게 했다.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컥컥 막히곤 했다.입추를 지나서도 무더위는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태풍 나비가 비껴가면서 다소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또 다시 막판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나비가 스쳐간 직후인 9월 11일,우리는 12폭포로 이름난 내연산 청하골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연산(內延山)은 안으로 길게 끌어당긴다(內延)는 이름 그대로 30여리 길고 깊은 골짜기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예로부터 청하골을 품은 내연산 28경가운데 이름난 12폭포는 영남사람들이 내세워 자랑하는 보배로 이 고을에 부임한 수령이나 풍류객들이라면 꼭 거쳐가는 곳이었다.

조선 숙종도 이곳을 찾아 12폭의 아름다운 모습을 시로 남겨 이 산들머리 보경사 경내에 남겨 놓았다.굳이 왕이나 지체 높은 이들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고단한 세상에 지친 이들을 추스르기에 적당한 더없이 차고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 그 이름도 "청하골"이다.그리하여 여름이면 청하골에는 이글거리는 쇳물같은 도시의 열기를 피해 찾아드는 숱한 유산객들의 발길이 멈추질 않는다.  

보경사(寶鏡寺) 매표소를 거쳐 숲속 황톳길을 벗어나면 내연산 12폭포로 이름난 청하골이 시작된다.

 

장장 30리에 이르는 청하골-상생폭,관음폭,연산폭,은폭 등 12개 빼어난 폭포가 연이어지고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과 짙은 수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은 비경(秘境)을 연출한다. 

 

 

청하골을 거슬러 연산폭포로 오르는 길과 문수암을 거쳐 내연산 삼지봉으로 오르는 갈림목에 이른다.

 

청하골을 버리고 내연산 오름길로 들어선다.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왼쪽 숲 사이로 청하골이 내려다보인다. 잠시 뒤 왼쪽 발치 아래로 시야가 열리면서 두 물줄기를 토해내는 "상생폭"이 내려다보이고 그 위쪽에는 "삼보폭"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문수암으로 오르다 왼쪽으로 트인 청하골과 저 멀리 구름에 싸인 향로봉(930m)을 바라본다.

 

문수암으로 오르다 청하골 건너편 천령산(天嶺山) 우척봉 775m을 조망한다.사진 앞쪽의 두 능선은 용치등,그 뒤 뾰족한 봉우리가 천령산 정상인 우척봉이며,천령산에서 오른쪽으로 뻗어내린 산등은 음지밭등이다.

 

문수암 오름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한마장 발품을 파니 쉼터다. 문수암 일주문에 다다랐다.지난번 태풍 나비의 여파로 보경사의 사암인 문수암의 지붕이 날아가버려 휑뎅그레하다.

 


문수암을 뒤로하고 504봉에 올라서면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나오고....

 

 

504봉 쉼터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은 사라지고 완만한 능선길로 바뀐다. 드디어 문수산 갈림길이다.문수산(622m)은 송이철에는 출입이 금지된다.등산로는 오던 그대로 평탄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

 

 

문수산 갈림길에서 잠시 발품을 팔면 문수샘에 닿는다.갈증을 축이기에 좋은 샘터다.

 

문수샘에서 첫번째 하산길이 나오는 '수리더미'갈림길로 가는 길 또한 완만하면서도 편안한 산길이다.문수샘에서 15분가량 더 가니 청하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왼쪽으로 빠지면 수리더미를 거쳐 청하골 은폭 아래로 내려서게 된다.

 

 

수리더미 갈림길을 지나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내연산(內延山) 삼지봉 710m에 오른다.

예전에 종남산(終南山)이라 일컫어지던 내연산 삼지봉은 내연산 주봉(主峰)이다.삼지봉 서쪽 능선을 타면 내연산 일대에서 가장 높은 향로봉(930m)에 이르고,북쪽 능선을 따르면 동대산(791m)과 바데산으로 가게 된다.

삼지봉은 산높이로는 향로봉에 휠씬 못 미치지만,주봉으로 대접 받는다.삼지봉은 향로봉과 동대산을 갈래치는 분기봉이며,산자락에는 천년사찰 보경사(寶鏡寺)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지봉으로 오르지 않고 수리더미로 하산키로 했다.수리더미 갈림길에서 은폭 갈림길인 청하골로 내려서는데는 40분이 채 안 걸린다.

20여분 숲속 길을 헤치고 내려오니 예전에 절터였던 '수리더미'에 이른다.감나무에는 땡감이,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려 있어 사람이 살았던 자취가 역력하다.이곳에서 10여분 다리쉼을 하고 내려오니 좌우로 갈림길이 나 있고 청하골이 보인다.

 

오른쪽 길을 따라 지계곡을 건넜다.저 아래 청하골의 시끌벅적한 등산객들을 피해 우리는 오른쪽 지계곡으로 숨어들었다.지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니 작은 폭포가 반긴다.그 폭포에서 올해 마지막 물맞이를 했다.(

그런에 지계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오면 갈림길이 좌우로 열려 있다.청하골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반드시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청하골 본류로 내려와야 한다.

왼쪽 길을 따라가면 연산폭과 관음폭 건너편 산허릿길을 타고 학소대에 올라 보현암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청하골의 비경을 놓치게 된다.그렇지만,청하골로 내려와 은폭 갈림길에서 청하골의 수량이 불어나 물을 건너지 못할 때는 이 왼편 학소대 길을 택해야 안전하다.

 

지계곡을 벗어나 청하골 본류로 내려오면,내연산 정상에 올랐다가 '거무나리'를 거쳐 내려오는 하산길과 만난다.이 갈림길에서 청하골을 따라 오르면 금세 은폭에 닿는다.

은폭을 보고나서는 청하골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은폭에서 청하골을 계속 따라 오르면 복호폭,시명폭을 비롯,멋진 풍광이 이어지다가 죽장면 상옥(上玉)으로 넘는 샘재(天嶺)의 "내연산수목원"에 이르게 되지만,3시간 가량 걸리기 때문에 은폭에서 발길을 되돌려야 한다.

 

 

 

 

 

 

익수의 응급처치가 성공리에 끝났다.이 날 뜻밖의 사고로 말미암아 은폭을 보려던 계획을 바꿔 우리는 곧장 하산길에 들었다.

은폭 갈림길에서 청하골 계곡물을 건넌다.9월 7일,태풍 나비 직후,  오기묵 아우가 내연산을 답사하러 왔을 때는 이곳의 수량이 엄청 불어난데다 물살이 빨라 도저히 물길을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그러나 오늘은 수량이 잦아들어 계곡물을 건너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비가 온 뒤 계곡물이 불어났을 때는 매우 조심해서 물을 건너야 하며,도저히 물을 건널 수 없을 때는 수리더미 지계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학소대를 거쳐 보현암으로 이어지는 산허릿길을 타야 한다.

 

청하골은 저 아래 보경사에서부터 내연산수목원까지 30리에 이르는 긴 계곡으로 "연산골" 또는 "보경사계곡"이라고도 일컫어지는데,사시사철 어느 때나 다 좋지만,특히 만추의 계절,가을에 오면 더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계곡물을 건너면 완만한 숲속 길이다.산우회 정영천 회장이 느긋하게 발품을 팔아 천령산 우척봉 갈림길로 닥아가고 있다. 

 

 

예전에 신구산(神龜山)이라 불렸던 천령산 우척봉(775m) 갈림길에 다다랐다.오른쪽으로 열린 등산로를 따라 음지밭등을 타고 하늬재를 거쳐 천령산 정상인 우척봉으로 오른다.하산은 하늬재로 되돌아와 갈림길에서 음지밭등 반대편 등산로인 용치등으로 내려서면 보경사 매표소 건너편 서운암에 이르게 된다.

 

준족이라면 천령산(天嶺山) 정상에서 북서릉을 타고 매봉 삼거리인 청하골로 내려서서 시명폭,복호폭을 거쳐 은폭으로 해서 관음폭,연산폭을 둘러보고 매표소로 내려가기도 한다.또 천령산에 올라선 다음,남서릉 따라 삿갓봉(716m)을 거쳐 샘재에 다다른 뒤,내연산수목원에서 북서릉으로 방향을 틀어 매봉과 향로봉을 거쳐 청하골로 내려오는 코스는 9시간이 넘게 걸린다.

 

 

친구들은 등산로를 따라 가고 나는 등산로 왼쪽 발치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청하골의 소담스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계곡 끄트머리에 연산암 오른쪽 절벽지대인 선일대가 아련하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늦은 가을,이 계곡에 들어서면 불타오르는 단풍의 황홀한 색갈과 청하골의 맑은 물이 조화를 이뤄 선경을 방불케한다.

 

계곡물을 따라 가다 뒤돌아본 청하골의 모습이다.이렇게 완만한 물흐름은 관음암에 이르러 수십길 벼랑으로곧두박질치듯 쏟아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청하골을 디카에 담고 다시 등산로에 올라서서 1분 가량 발품을 팔자 드디어 관음암 위 갈림목에 다다른다.배낭을 벗고 왼쪽 바윗길을 내려와 아찔한 암장 위에 올라서서 청하골 최고의 폭포인 연산폭을 굽어본다

 

암장 위에서 내려다보는 연산폭포는 장관이었다.거센 물줄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일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심연(深淵)으로 곤두박질치니 천지가 진동하고 땅이 흔들거릴 지경이었다.사진 오른쪽 관음암 아래 구름다리 전망대에서 폭포를 감상하는 등산객들이 왜소하게 보인다.  

 

 

연산폭포 위 관음암 갈림길에서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이 갈림길에서 관음암 오른쪽 벼랑길을 조심스럽게 돌아 내리면 관음폭포가 나온다.

 

 

관음암 바윗길을 내려서면 관음폭이 눈에 들어온다.관음폭은 두 눈이 뻥 ?린 인골(人骨)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위로 연산폭포로 가는 구름다리,연산적교가 걸려 있고,그 밑으로 두 줄기 세찬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청하골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관음폭 주변이다.
 

 

 

관음폭과 연산폭을 가르는 거대한 암장이 관음암(또는 비하대)이다.이곳이 포항 바위꾼들의 암벽훈련장이요,모암(母岩)인 관음암이다.
 

 

연산폭을 보러 구름다리를 오르다 건너편 선일대를 바라본다.
 

 

구름다리를 건너 전망대에서 쉬임없이 떨어지는 연산폭포를 감상한다.연산폭은 왼쪽 관음암(또는 비하대)과 오른쪽 학소대가 있는 연산암 사이를 뚫고 20여미터를 솟구쳐내린다.
 

 

구름다리 건너기-주위 풍광이 압권이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구름다리 오른편 깎아지른 암릉이 선일대다.
 

 

연산폭을 감상하고 구름다리를 내려오면 관음폭 아래 소를 이룬 맑은 물이 곧추선 벼랑으로 떨어진다.무풍폭이다.이어서 직벽으로 거대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잠룡폭이 보인다.그러나 잠룡폭은 말 그대로 폭포가 묘하게 비껴 있어 전모를 볼 수 없다.

 

잠룡폭 바로 아래쪽에는 영화 "남부군"을 촬영한 곳이다.남부군의 목욕 장면을 잠룡폭에서 찍은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제 등산로는 청하골을 오른편 발치에 두고 이어진다.10분가량 내려가면 보현암에 이른다.이곳에는 소담스럽고 아담한 보현폭을 볼 수 있다.

 

보현폭을 보고 4분쯤 내려가면 두 물물기가 쏟아져내리는 상생폭에 이른다.이 상생폭은 문수암 갈림길을 지나 문수암으로 오르다 굽어본 바로 그 폭포다.

 

 

내연산으로 오르는 문수암 갈림길에 다시 돌아왔다.여기서 다시 청하골을 돌아본다.이번에는 문수산에서 보현암으로 뻗어내린 암릉의 칠성등과 청하골을 조망해본다.

 

문수암 갈림길을 지나 오른편으로 청하골을 두고 보경사로 가는 길은 황톳길,청하골 맑은 물이 수로따라 등산로와 함께 흐른다.

 

보경사 입구의 송림-송림 앞쪽에 내장을 드러낸 채 쓰러진 고목 주위로 철책이 처져 있다.이 고목이 보경사의 상징이자 지킴이였던 수령 1,000년이 넘었다는 "회화나무"다.하지만 2004년 불어닥친 태풍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보경사를 찾을 때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던 회화나무를 이젠 다시는 볼 수 없으니 못내 아쉬웠다.

 

내연산 보경사(內延山 寶鏡寺) 들머리에 있는 천왕문(天王門)-사천왕이 보경사를 지키고 있다.

 

보경사 경내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멋들어지게 늘어진 반송(盤松)  

 

오층석탑 

 

보경사의 대웅전-

신라 진평왕 25년(602),진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왕에게 아뢰어 "동해안의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팔면보경을 묻고,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략을 막고 장차 삼국을 통일하리라."하자 왕이 기뻐하며 포항을 거쳐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데 오색구름이 덮인 산을 보고 찾은 곳이 내연산이며,그 연못을 메우고 팔면보경을 묻고 절을 세워 "보경사"라 하였다고 한다.

 

보경사 들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