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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금정산 마애불-의상대를 다녀와서

2월 26일,일요일부터 남부지방에 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생각보다 동기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게다가 토요일 밤 늦게까지 바둑과 당구대회가 이어지는 바람에 참석율이 저조한 것을 어찌 탓하랴.


날이 밝자 비는 그치고 뜻밖에도 날씨는 청명하다.산행들머리에 이르니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아 우리의 염려를 떨쳐버렸다.비 온 뒤의 산은 신선했다.공기는 맑고 하늘은 푸르디 푸르렀다.잿빛 시멘트에 갇혀 지내던 내 몸도 비로소 살아 숨쉰다.“금정한의원으로 오길 잘 했다.”며 10명의 동기들은 금정산 코스가운데서도 인적이 드문 마애불능선으로 간다.


상마마을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자마자 산객들이 붐비는 원효봉 코스를 벗어나,오른쪽 은밀한 숲길로 스며들었다.30분쯤 가파른 오르막을 치올라 범어사 방장이 주석하는 원효암의 철조망을 끼고 매봉으로 닥아간다.

 

                                        [마애불과 봉황바위를 등지고] 

 

매봉을 오르기 전 왼쪽 비탈로 내려서니 숲 속에 숨어 있던 마애불이 모습을 드러낸다.조성된지 오래 되지 않은 마애불은 고풍스런 멋은 없으나 조각 솜씨는 그런대로 볼 만했다.마애불 왼편 바위 위에는 봉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모습이 역력하고,그 아래에는 석문이 있고 마애불 앞 제단에는 누군가 촛불을 지펴놓았다.

 

                                              [봉황바위]

                                                  [마애불 석문]   

 

석문을 통과한 우리는 마애불 위 마당바위에 올라 계명봉을 살펴보고 매봉에 올라섰다.저 아래 상마마을에서 보면 매봉은 첨탑같은 형상이라 쉽게 눈에 들어온다.


                                        [마애불 위 너럭바위에서 계명봉을 등지고]

 

매봉에서 사진을 찍고 두리뭉실한 바위를 타고 넘는다.암릉 날등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와 전 회장의 모자가 그만 암벽 아래로 날아가버린다.우리는 시쳇말로“금정한의원에 모자를 헌납했네...”라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암릉 옆구리를 감아돌아 숲 속으로 빠져들었다.

 

                [상마마을에서 보면 유난히 뾰족한 바위지만 옆에서 보면 물개형상 같다.] 

                                    [매봉에서 건너다본 원효봉 가운데능선]

                                    [매봉 근처의 기이한 바위들]

                            [한 그루 노송 돋보이는 매봉 능선의 기암에 기대어]

 

원효봉능선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이르니 바람이 다소곳하다.이곳에서 점심을 들기로 했다. 낙엽 위에 자리를 깔고 김밥에다 도시락을 펴고,근장이가 라면을 끓이고...이 코스를 몇 차례 찾은 창민이는 이 암봉을 "숨은바위"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매봉“이라 하자 ”그렇군...“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재화도 여러 번 올라보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산행 이야기에다 저 아래 세간사를 함께 풀어놓으며 웃음꽃을 피웠다.특히 새로 총무를 맡은 성집이의 재담에 우리는 연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곤 했다.즐거운 점심시간은 거의 1시간이나 이어졌다.

 

                                  [원효암으로 가며 올려다본 고당봉]

                                         [원효암으로 가며 바라본 장군봉] 

 

배낭을 다시 꾸린다.원효봉능선으로 붙지 않고 그냥 숲길로 오르다 오른편 철조망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여 조릿대 숲길로 들어섰다.이 은밀한 길은 원효암 가는 길.작은 개울을 건너 산등성이를 돌아가니 반듯한 산길과 만난다.북문 쪽에서 내려오는 길이다.오른쪽 산등에는 집채 만한 암릉이 우뚝 하다.원효암 후문 가는 갈림길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범어사와 원효암 갈림길이다.

 

                                          [의상대에서 건너다본 매봉]

 

범어사로 하산하는 왼쪽 길을 버리고 곧장 바위 능선으로 올라섰다.부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바위전망대이다.부산의 8대가운데 하나라는 의상대(義湘臺)를 찾았다.8대란 몰운대(沒雲臺),태종대(太宗臺),신선대(神仙臺),오륜대(五倫臺),해운대(海雲臺),강선대(降仙臺 덕포동 소재),겸효대(謙孝臺 망미동 배산성지)와 의상대(義湘臺)가 그것이다.

 

 

의상대는 범어사를 일궈낸 신라 고승 의상대사의 숨결이 스민 곳이다.원효암에서 왼편 길을 따라 바위를 타고 30m쯤 오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그 옆에 가로 20m 10㎝,세로 1m인 10여도 경사진 타원형 화강암에 행서체로 "의상대(義湘臺)"라고 음각되어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있다.사방이 트인 이곳의 전망은 남으로 멀리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아련히 보이고,북쪽으로는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이 의상대를 지켜보고 있어 가슴이 활짝 열리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의상대 부근의 암장과 단애]

 

여기 의상대는 꽤나 넓은 반석이 널려 있고,바로 밑에는 천길의 벼랑을 이룬 요새에 듬성듬성 서 있는 곰솔로 둘러싸인 단애다.의상대사가 금정산에서 수도 하던 석대가 바로 이곳 의상대이고,이 대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절경을 사람들은 "의상망해(義湘望海)"라고 불렀다.의상대에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글을 남겼다.그 당시 의상대는 속세와 떨어진 금정산에 있어 신선이 살다가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천지의 장관인 절승지라고 표현하고 있어,이 대가 얼마나 아름다운 명당터며 하늘,산,바다가 어우러진 곳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의상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이나 조망을 즐긴 뒤,본격적으로 의상대능선의 암릉길을 내려간다.잠시 숲길이 나오더니 이내 숨가쁜 바윗길이 연이어진다.더러는 암릉을 타고 넘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금구가 맨 앞에 서서 바위 날등을 타고 넘는다.곳곳에 막아서는 바위봉우리를 요리조리 넘어서자 이번에는 5미터 가량의 로프가 걸린 절벽과 마주쳤다.

 

 

 

 

                                [의상대능선에서 건너다본 계명봉과 계명암]

 

로프를 잡고 수직으로 하강할 수도 있고 오른편으로 돌아내리는 우회로도 있었다.동기들은 우회길을 택해 바위 구간을 내려섰다.로프를 타고 내려온 재화는 아직도 오후 2시가 안 되었으니 계명봉이라도 더 타자고 했지만 또 다시 바위길이 나오는 바람에 동기들은 왼쪽 우회길로 내려가고 성집이와 금구,나는 바위 날등을 타고 넘어 동기들과 합류했다.

 

 

바윗길은 비록 짧았지만 금정산에 이같은 코스가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 성집이와 금구는 “언제 다시 이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철조망을 넘어 상마마을 도로로 내려선 우리는 한바탕 씨름을 벌인 바윗길을 올려다보니 헌걸차게 치솟은 바위가 까마득하다. 

 

 

 

 

우리는 범어사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하사촌으로 가는 계곡길로 접어들어 흐르는 물가 돌확에 전을 벌이며 막걸리와 두부로 갈증을 축인다.이곳에서 거의 50분 가량 또 다시 이야기 꽃을 피우고 팔송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금정산은 등산로가 실로 다양하다.그 가운데서도 마애불~의상대코스는 한갓지기가 이를 데 없어 시끄러움을 피할 수 있고,아름답고 싱싱한 바위가 곳곳에 서 반겨주기 때문에 멋진 암릉 산행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모처럼 바위를 타고 오르내린 덕분에 어깨죽지가 시큰하고 숨길이 차오름을 느낀 흔치 않은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김상덕,김익수,김창민,박순양,이성집,이재화,최금구 동기와 박근장이 산행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