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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굽네가족과 함께 한 내장산 단풍 유람

 

 

지난 4월 6일에 이어 오늘은 두번째 굽네가족 단풍 유람이다. 11월 첫날(월).업무를 마치고 오븐기 청소를 하고 나니 2일(화) 새벽 2시,서둘러 배낭을 챙겨 부산 구덕운동장 후문으로 간다.새벽 3시 굽네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2시 35분,그곳에 닿으니 길따라고속관광 25인승 차량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뒤,총무를 맡고 있는 동대 상용님 부부가 택시에서 내린다.바쁜 일상에서 언제 먹을거리를  그렇게  채비했는지 짐꾸러미가 여간이 아니다.조금 지나 모임의 회장인 송도 판동님 부부와 감천의 효순,성애님 형제가 잇달아 등장한다.이어서 서대의 이희환님이 얼굴을 내민다.희환님은 서대신점의 철수,성은님의 가게를 인수하여 굽네가족에 합류,새롭게 회원이 되었다.서대의 철수님은 정든 굽네를 떠나 다른 치킨점으로 말을 갈아탔으나 여전히 우리와 허물없이 교류하고 있다.이번 유람에 꼭 참여키로 했으나 뜻밖에도 집안 일이 생기는 바람에 불참했다.그리고 청학도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여 아쉬웠다.철수님이 맡았던 총무는 동대의 상용님이 이어받아 삼림살이를 도맡아왔다.주례의 수석님 부부를 태운 대절차량은 구덕터널을 빠져나와 옛도축장 맞은편에 멈춰선다.엄궁의 용수님 부부와 하단의 기순님을 태우니 일행은 모두 14명이다. 

 

신새벽 3시.잠도 자지 않고 굳이 내장산행을 고집하는데 대해 의아해하는 회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내장산 단풍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이들은 다 알 것이다.단풍이 절정이라는 요즘,방방곡곡에서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는 유람객들로 산길은 북새통을 이룰 뿐만 아니라.차량을 주차할 장소가 없어 애간징을 태우다 보면 입맛이 싹 가시기 때문이다.단풍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곧장 차머리를 돌리고 싶어진다. 우리는 이른 아침에 단풍을 감상하고 유람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내장산을 빠져나와야 한다.그래서 무박 유람을 결행하게 되었다.시간이 널널하면 또 다른 명소(名所)를 둘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진안 마이산 또는 진안의 용담호를 돌아 구봉산과 운일암,반일암을 거쳐 천반산의 죽도(竹島)를 염두에 두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나무 밑에서 터져나오는 탄성....▒  

 

대절차량은 부산을 떠나  4시간 가량 달려 전남 장성 땅으로 들어선다.내장산 남쪽  백암산 산자락 백양사로 들어갈까 하다 내장사를 품은 전북 정읍의 내장산으로 차머리를 돌렸다.남한 제일의 단풍 명산이라는 내장산국립공원은 3개의 산으로 이뤄져 있다.내장산(內藏山 763m),백암산(白岩山 741m),입암산(笠岩山 687m)이 그다.내장산 단풍은 구구한 설명이 새삼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름 높다.가을이 되면 산도 붉게,물도 붉게,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이른바 산홍(山紅),수홍(水紅),인홍(人紅)을 이룬다는  이 땅의 단풍 제일경이다.타는 듯 붉은 단풍이 길을 이루는 단풍터널 뿐만이 아니다.산 곳곳에 다른 산과 한눈에 다름을 느낄 수 있는 단풍나무 군락지가 있으며,노란색과 주황색으로 물드는 각양각색의 활엽수림이 밀집해 있다.이렇듯 단풍나무가 밀집한 지역의 크기,여러 단풍나무과의 수목이 어울려 빚어내는 가을색의 현란함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산은 역시 내장산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웃한 백암산 백양사 일대가 봄에 더 좋으며 가을엔 내장산 내장사 일대가 좋다는 말로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이라 즐겨 말하기도 한다. 백암산 단풍이 오히려 낫다는 사람들도 만만찮다.백암산에는 늘푸른 상록수림이 많은데 이 진초록 가운데 단풍이 들어박히듯 하여 한결 단풍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반면 입암산은 산릉이 아닌 계곡 단풍으로 유명하다.내장산이나 백암산 모두 한가지 단점이라면 계곡 경치가 별로라는 점이다.그러나 입암산 남창계곡은 계곡미가 아름답기 그지없어 손꼽을 만한 경관지인데다 계곡을 따라 단풍나무가 즐비하다,자칫 내장산국립공원의 수홍(水紅)이라는 단점을 완벽히 가려주는 산이 입암산이다.그러므로 내장산국립공원을 제대로 보려면 이 산들을 두루 밟아봐야 내장산 단풍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시 30분경 일행은 내장산 들머리 주차장에 다다랐다.벌써 유람객들이 줄지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우리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올해 내장산 단풍은 한마디로 기대치 이하였다.가뭄이 들어서인지 단풍 잎새가 말라 비틀어지고 때깔도 영 시원치 않았다.군데군데 황홀한 느낌을 주는 단풍이 없진 않았으나 내장산의 본색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했다.그렇지만 우중충한 도시의 일상 속에 갇힌 나날들을 벗어나 대자연을 마주하는 자체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고조된다.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나누어 지고 단풍터널을 밟아 산 안에 보물을 감췄다는 내장산(內藏山) 골안으로 들어간다.   

 

         ▒진초록 빛갈에 노랑,주황,갈색,연분홍 단풍이 어우러진 단풍터널을 걷는 일행▒

 

▒누가 저 가슴에 불을 질렀는가?▒

 

▒온갖 빛갈로 수놓은 단풍의 스펙트럼-단풍도 붉고 우리의 얼굴마저 물들었네▒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달리 보이는 단풍길-좌측 성애님,중앙 수영님,우측 춘선님▒

 

단풍 유람객들과 한데 어울려 발품을 팔고 있는 회원들-좌측 감천의 성애님,동삼 수영님,그리고 우측 송도의 춘선님.하루 종일 서서 주방일을 도맡던 춘선님은 무릎이 극도로 나빠져 수술까지 받았다.그러나 몸조리 할 겨를도 없이 일을 재개하다 또 큰 고생을 겪기도 했다.더 나빠지면 인공관절을 심어야 한다니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천성인 춘선님 얼마나 가슴 아프랴.특히 박스춤의 달인인 그녀의 멋들어진 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오늘 산행을 케이블카로 대신한 것도 저번 모산재 산행 때 힘들어하던 사모들을 배려한 코스였다.사실 말이 났으니 망정이지 어디 춘선님만 무릎에 무리가 왔으랴.회원 사모들 모두 어깨며,손목이며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건강이 재산인데 걱정이 앞선다. 

 

 

단풍터널을 한 구비를 돌자 노랑과 주홍색 단풍으로 물든 투명한 길이 나온다.송도 판동님이 카메라를 들이대 나도 모처럼 피사체가 되었다.내장산의 단풍은 변화무쌍하여 보는 각도,빛의 양,사진을 찍는 시간대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한다.   

 

▒배낭을 고쳐매고 있는 총무 상용,유양님 뒤로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먹을거리를 서로 나누어 짐을 가볍게 하고...▒  

 

▒우화정의 가을빛(秋色)과 산그림자(山影)▒

 

내장산 들머리에서 30분 가량 발품을 팔자 단풍을 감상하기에 멋진 뷰포인트이면서 사진 찍기 좋은 우화정이 나온다,평일인데도 장비를 울러맨 사진꾼들이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가을빛이 물든 산그림자가 물속에 투영되어 안온한 기운을 내뿜는 우화정 일대.건너편 산꼭대기 전망대가 아스라하고 그 왼편 산줄기를 따르면 푸른색 케이블카 정류소가 가늠된다. 이곳에서 산줄기를 계속 오르면 연자봉에 닿을 것이다.그리고 전망대 쪽 가파른 산등 너머에 천년 절집 내장사가 터잡고 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전망대에서 요기를 하고 내장사로 내려선 다음,내장산 들머리로 되돌아갈 참이다.산행도 아니고 한토막 산책에 지나지 않을 코스라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같은 날에는 내장산 종주가 제격인데 일행들의 편안함을 지켜야 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암릉 서래봉이 손짓하는구나.!!!▒

 

우화정을 뒤로 하고 케미블카 매표소로 가며 바라본 기암-돋올하게 솟아오른 서래봉이 눈길을 끌어당긴다.이 근처의 단풍은 말라 비틀어지고 색갈도 우중충하여 볼품이 없어 보였다.감천의 효순님,서대의 희환님,감천의 성애님이 뒤따른다.일행은 케미블카 매표소에서 입장권(왕복 6,000원/편도 4,000원)을 끊었다.몸이 불편한 송도의 춘선님과 동대의 유양님은 왕복표를 사고 나머지 회원들은 편도표를 샀다.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엄궁의 유화님,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내내 발치 아래 펼쳐진 멋진 경치를 보지 못하고 하늘만 올려다보는 그 모습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내려다본 삭도(索道)▒

 

▒전망대 계단을 더터오르는 일행▒

 

눈 깜짝할 사이에 케이블카는 매표소에 닿았다.그런데 뜻밖에도 산등엔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한기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했다.우리는 어디 바람이 불지 않는 잠풍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전망대로 간다.산길을 따라 잠시 발품을 팔자 음식점이 주리를 틀고앉아 길을 가로막는다.음식점 마당을 통과하여 계단을 더터오르니 전망대다.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일품이었지만 이곳도 요기를 하기에는 춥고 비좁아 마뜩치 않았다.우리는 할 수 없이 음식점으로 내려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전망대에서-옆 얼굴의 서대 희환님,동대 상용,유양님,엄궁 용수님 뒤로 내장산 주릉이 물결친다.▒

 

▒전망대의 여성회원-단풍보다 더 아름다워요!!!▒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체면치레로 오뎅을 시켜먹는다.그리고는 미리 양해를 구해 우리가 준비해온 족발에다 소주를 곁들이니 산중에 이만한 성찬이 어디 있겠는가.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심야 정기모임을 갖고,번개모임도 수시로 갖곤 한다.집사람들은 남정네보다 모임을 더 반기는 눈치다.주방일이란 게 매양 그러하듯 똑같은 일의 연속이다 보니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바쁠 땐 정신없이 일을 쳐내다가도 주문이 없으면 더 피곤하고 몸은 축 쳐지게 된다.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비록 새벽에 갖는 모임이지만 모임을 핑게로 사모들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모른다.서로를 알아주고 공감하는 대화속에서 끈끈한 정이 더욱 도타워지는 법.이젠 동지애를 넘어 형제애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들 혼사를 앞둔 얘주가 주례 수석님,서대 희환님,등을 돌린 엄궁 용수님]  

 

▒ 판동 회장님,내장사애서 언제 오셨수?

 

▒ 하산길 풍경-화려하기보다 단아한 단풍 빛갈이 더 좋네.▒

 

요기를 마치고 춘선님과 유양님은 케이블카로 되돌아간다,나머지 회원들은 내장사행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간다.하산길은 북사면이라 어둡고 칙칙하다.그래서일까. 이곳 숲속에는 아직도 단풍이 본격적으로 찾아들지 않은 모양이다.         

 

▒내장사 경내로 들어서는 회원들▒

 

한바탕 발품을 팔아 산길을 내려와 내장사 경내로 들어섰다.내장사는 1,400여년이나 된 천년 절집이지만 6.25동란으로 절이 소실되어 새로 복원한 건물이 대부분이다.하지만 내장사의 위치는 절묘하다.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원을 그리며 휘돌아나가고 신선,원적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는 그 한가운데에 있으니 가히 명당임이 분명하다.어디 그뿐이겠는가.단풍철 내장사 주변은 내장산 단풍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특히 절 앞의 거대한 단풍나무는 단풍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내장사 단풍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회원들▒  

 

▒내장사 단풍▒

 

▒속살마저 투명한 내장사 단풍-누구의 심장이 저리도 붉단 말인가!▒  

 

▒황금빛 가사를 입고 마지막 영광을 노래하는 절집 앞의 거대한 단풍나무.▒

 

 

내장사를 둘러보고 이제 편안하게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며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산책은 한가로운 유람이다.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아직 모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소화할 수도 있다.사유하는 사람에게 특히 걷기가 유용한 이유는 그 때문 일것이다.걷기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다. 사람이 걸을 수 없다면 곧 속박이요.부자유다.그래서 "걷다가 죽는 사람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오늘 우리는 짧은 산책이지만 걷기를 즐겼다.알게 모르게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꼈다.그런 여유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감천의 성애님,하단의 기순님도 밝은 얼굴에 웃음이 연신 묻어나온다.

 

 

우리는 포장도로 대신 잔디밭으로 난 푹신한 길을 따라 간다.때마침 노랑,주홍색 단풍나무가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일행을 그곳에 멈춰 서게 하고 사진 몇 컷트를 찍었다.  

 

 

▒ 얼굴 빨개져도 놓지마라.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져 낙엽이 되니...

 

 

잔디밭이 끝날 즈음,내장사 앞 큰 단풍나무보다 규모는 작지만 밑둥에서 아무렇게나 하늘로 가지를 치솟은 위풍당당 단풍나무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이곳에서 또 한번 단체사진을 찍었다.그러고보니 춘선님과 유양님이 보이지 않는다.아쉬웠다.아마 케이블카를 타고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간 모양이다.회원 여러분,오늘 모델료는 연말정산이니 그리 아세요.ㅋㅋㅋ   

 

▒물가에 있는 나무가 더 윤기를 머금었네!▒

 

▒저 앙징맞은 잎새들의 마지막 향연,빛을 받아 더 눈부시구나.

 

▒우화정의 단풍

 

단풍은 산홍(山紅),수홍(水紅),인홍(人紅)을 갖춰야 한다.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단풍의 극치가 완성된다.내장산에는 계곡에 물이 귀하다.물에 비친 아름다운 단풍(水紅)을 보기가 어렵다.물이 없으면 뭔가 메마른 느낌을 받는다.내장산 단풍의 아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이런 약점을 다소나마 위안해주는 곳이 바로 우화정이다.그래서 내장산을 찾는 많은 사진꾼이 이 우화정을 중심으로 포인트를 잡아 좋은 단풍사진을 만들어낸다.산과 물과 사람이 붉게,노랗게 물드는 황홀경을 보면 우리는  대자연의 장엄한 숨결에 곧바로 몰입된다. 

 

붉디붉은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기순님의 아름다운 자태▒  

 

▒ 옥순님의 트레이드 마크-익숙한 포즈로 환하게 웃는 얼굴,단풍보다 더 빨개졌네.

 

▒ 효순,성애님 두 손 꼭 잡고 훈훈하게,가지는 달라도 한 밑둥인 것을! 

 

▒ 그렇게 당당하던 푸르름,저렇게 벗어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 ▒

 

▒버려야 할 것을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드는!!!

 

▒ 나무는 불꽃입술이다.고통도 아픔도 함께 껴안아라,생은 피우는 만큼 붉게 핀다고,

 

부드러움과 편안함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우화정에서.▒

 

 

우화정을 떠나 숲길을 걷다가 차량이 다니는 포장도로의 단풍을 카메라에 담는다.이따금 공단 차량이나 절집 셔틀버스만 드나들 뿐 고즈녘해서인지 공기도 투명하고 분위기도 상큼하다.도심 매연 속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지금 10시 8분,우리는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내장사로 들어오는 인파가 점점 많아진다.

 

▒ 반쯤 물든 단풍숲 속을 홀로 걷는 저이는 누구일까?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단풍잎들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시인 이원규는 단풍이 드는 이유를 그렇게 노래한다.

 

 

 

이렇게 내장산 단풍 유람은 끝났다,

황홀하게 물드는 날.

활활 타올라라
마지막 한 잎까지.

 

▒정읍시 산외면 소재 산외장터 한우마을

 

오늘 두번째 탐방코스는 정읍시 산외면 한우마을. 11시 30분,내장사를 떠난 대절차량은 30분 걸려 12시 한우마을에 다다랐다.내장산에서 24km 떨어진 산외면 한우마을은 한적한 촌락에 지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많은 미식가들이 찾는 명소이다.

 

식육점에서 부위별로 고기를 산 뒤,식당으로 가면 상차림과 함께 구워준다.한우가격은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500그램에 32,000원에서 37,000원 선이며 식당에서 요리하는 비용은 8,000원 가량 든다.우리는 주차하기 편한 산외장터 한우마을 식육점에서 한우를 사고 그 집 식당으로 들어갔다.우리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손님이래야 고작 2 테이블밖에 없더니 잠시 뒤 너른 홀에 손님이 삽시간에 가득차버렸다.

 

 

우리가 맛본 정읍 한우는 등심과 갈비살 등이었는데 선도와 마블링은 괜찮아 보였는데 맛은 기대치 이하였다.내가 식육점을 잘못 골랐는지 아니면 오늘 나온 한우가 질이 떨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식후 회원들도 이구동성으로 합천 삼가의 한우보다 못하다는 평이었다.내가 정읍 한우는 고기질이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탐방코스에 넣었는데 회원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어쩌면 내장사 산중에서 먹은 족발 탓인지도 모르겠다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말이 났으니 망정이지 5일 뒤, 친구들과 가야산 만물상코스를 산행하고 합천 삼가 한우를 들었는데 정읍 한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최상급이었다.우리 회원들은 불과 7개월 전에 삼가 한우를 시식해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 터.합천 삼가도 소문이 자자한 한우마을인데 몇 년 전에 먹어본 그 맛과 지금의 그 맛이 한결같다는 건 업주의 마인드가 고객지향적이라는 점일 것이다.반면 정읍 한우는 워낙 유명세를 타다보니 몰려드는 고객들 탓에 품질관리에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진안고원의 상징,말의 귀를 빼닮은 마이산 원경

 

2시 정읍 한우마을 벗어나 다음 행선지인 진안 마이산으로 차머리를 돌렸다.잔뜩 기대에 부플었던 내장산의 단풍이 평년작에도 미치지 못하자 실망한 회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마이산을 택했다.처음엔 진안 용담호를 거쳐 구봉산과 그 인근 운일암,반일암을 구경하고 천반산 죽도로 가려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부귀산에서 바라본 동트기 전의 마이산    <출처:카페 목마름산악회> 

 

말이 귀를 쫑긋 세운 것처럼 암마이봉(686m)과 수마이봉(680m)이 봉긋하게 서 있는 마이산은 진안 최고의 볼거리다. 마이산은 철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고 해 ‘돛대봉’,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 사이로 솟은 용의 뿔을 닮았다 해서 ‘용각봉’으로 불린다. 겨울에는 설경 가운데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도 한다. 물론 정식 명칭은 가을을 일컫는 마이산이다. 

 

마이산은 진안고원 어디서 보건 진안의 상징이 된다. 하여 멀리서 보는 마이산 풍경이 도리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일교차가 큰 요즘엔 산허리가 안개에 휩싸인 마이산을 감상하기 딱 좋다. 그 대표적인 곳이 진안 서쪽에 있는 부귀산 등산로다. 해마다 이맘때면 근동의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이 진을 치는 곳이다. 새하얀 안개 속에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꼭 바다 위에 떠 있는 절해고도처럼 보인다. 부귀산은 해가 뜰 무렵 찾아야 한다.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 덩달아 안개도 사라지곤 한다. 그에 걸맞는 사진을 카페 목마름악회에서 빌어왔다.늦었지만 양해를 구한다.

 

 

3시 진안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다다랐다.입장권을 끊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여기서도 춘선님과 유양님은 대절차량을 지키기로 한다. 조금 발품을 파니 가파른 등산로에 나무데크 계단이 고개마루까지 뻗어오른디.내장산을 케이블카로 단번에 오른 일행들은 힘은 들지만 땀 흘리는 이 길이 싫지만은 않은 듯,잘도 오른다.오르내리는 산객들이 심심찮았지만 서늘한 숲속 기운은 오히려 상쾌했다.왼쪽 숫마이봉(동봉)과 오른쪽 암마이봉(서봉)이 만나는 고개에 다다르니 먼저 오른 엄궁 용수님 부부와 주례 수석님 부부,하단 기순님,서대 희환님은 휑하니 탑사 쪽으로 내려가버리고 없다.고개마루에서 거대하게 치솟은 숫마이봉에 중턱에 틀어앉은 화엄굴을 겨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뿔사 밧데리가 없단다.내장산에서도 말썽을 일으키더니 이젠 뾰족한 수가 없구나.

 

감천의 두 형제가 고개에 오르고 이어 판동 회장이 합류한다.동대의 상용 총무는 아직도 나무데크를 밟아오르고 있단다.고개마루에서 암마이봉 정수리로 오르는 등산로는 훼손을 염려해 폐쇄되었다는 안내문이 보였다,우리 내외와 감천 형제는 남부주차장 쪽 은수사로 길게 내리뻗은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은수사로 내려가다보니 암마이봉은 놀랍게도 꼭 산에 시멘트를 부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곳곳에 거인의 발자국처럼 깊이 패인 자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지형이라고 한단다.지금은 비둘기떼의 집이 되어 버린 이 신기한 벌집 모양의 굴들은 마이산의 신비로움을 한층 더해준다.      

 

   은수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미륵 형상의 숫마이봉

 

매년 마이산 산신제가 열리며 마이산의 뜨락처럼 안온한 절,은수사를 지나 평탄한 길을 한마장 내려서니 불가사의한 마이산의 탑사에 다다랐다.과연 인간이 만들었을까 하고 의심할만한 마이산 석탑.암마이봉 남쪽 아래에 위치한 이 탑군들은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줄줄이 배열되어 서있다. 당초 120여기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약 80여기가 남아있으며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는 탑이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신비한 돌탑,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로 먼저 내려와 절의 이모저모를 살피던 용수님 일행과 다시 만나 남부주차장으로 내려간다.하산길은 평탄하고 고즈녘하다.단풍도 간간이 숲길을 수놓고 맑고 온화한 기운이 감돌아 발걸음마저 가볍다. 금당사를 지나 탑영제에서 바라보니 기암봉인 봉두봉 좌우로 암,수마이산의 뾰족한 말 귀가 더욱 이채롭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빗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천길이 되는 데

연기와 안개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일을 생각하도다.

 

마이산을 두고 성종 때의 문인 점필재 김종직이 읊은 시 한구절을 되뇌이며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다다르니 이삼수 기사가 반갑게 맞이한다.다음 행선지인 거창의 가조로 가기 위해 4시 무렵,진안을 떠난다.

 

가조에 있는 할매추어탕 맛을 보기 위해서다.할매추어탕은 껄쭉한 전라도식과 달리 국물이 맑아 담백하고 구수한 경상도식이다.거창,함양,합천의 산을 타고난 뒤에는 꼭 찾아가던 오랜 단골식당이었다.다만 근래 몇 년동안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지긋한 할머니가 끓여내놓은 추어탕도 일품이지만 통미꾸라지조림은 이 집이 아니면 먹기 힘든 메뉴였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거창을 거쳐 가조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밤 길을 몇 번 헤맨 끝에 어렵사리 할매추어탕을 찾아냈다.그런데 간판이 우리추어탕으로 바뀌어 있었다.게다가 추어탕 뿐만 아니라 설렁탕도 취급한다니 뜻밖이었다.인근 가게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할머니는 연로하여 장사를 아니하고 며느리는 대처로 떠났다 한다.아뿔사! 이게 무슨 꼴이람.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부산으로 차머리를 돌렸다.저녁 9시경 서면 복개천 영광도서 위 유원오피스텔 맞은편 골목 장수돼지국밥에서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부산의 허구 많은 돼지국밥집가운데서도 이 집은 곰국스타일의 돼지국밥이 아니라 국물이 맑은 장국스타일인데 잡내가 없고 국물이 시원하여 내가 애용하는 국밥집이다.돼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치고나니 속이 든든하다.

 

오늘의 유람은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내 디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작 찍어야 할 사진을 찍지 못한 걸 송도 판동님이 대신해줘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아울러 이번 유람에 동참해준 회원 모두에게도 깊이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다.내년 꽃 피는 4월에는 남도 답사1번지 강진과 해남,보성을 찾아갈 요량이니 그때까지 다들 건강하소서.

 

봉래산 산자락에서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