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연재에 들어가면서
70년대 말엽,부산의 산꾼들 사이에서는 세칭 영남알프스 종주가 대유행이었다.요즈음은 교통편이 좋아져 당일로 지리산 종주가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리산에 접근하는데만 거의 하루가 걸렸을 정도였으니 지리 종주를 하기가 만만찮았다..그래서 웅장한 산세가 흡사한 영남알프스가 지리 종주나 설악 종주를 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무렵 나는 친구와 함께 한 첫 영남알프스 종주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나는 등산로 상태나 장비와 일기예보를 비롯,모든 것을 꼼꼼히 챙겼고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가스스토브를 새로 사기도 했다.날씨는 우중충했지만 우리는 기분 좋게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눈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였지만 11월이었으니 눈이 오기엔 조금 이른 편이었다.
우리가 가지산 능선을 6-7백 미터쯤 올라갔을 때 산길은 차츰 가팔라지면서 막영장비가 든 배낭의 무게는 어깨를 압박해 왔다.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서자 부드러운 미풍이 솜털 같은 가벼운 눈송이를 흩날렸다.눈송이들은 이내 큼직해졌고 입안에 넣을 정도였다.나는 두려운 눈빛이 역력한 친구에게 별로 위험할 것 같지 않다고 다독거렸다.30여분 더 발품을 팔자 바람이 거세지면서 눈발이 짙어지더니 소용돌이로 변했다.산길은 전부 하얀 벽으로 녹아들었다.그래서 나는 첫날 밤을 보낼 대피장소를 찾기 위해 나침반을 꺼냈다.우리는 삼면이 벽으로 된 곳을 찾아내 그 아래 가장자리를 따라 텐트를 쳤다.
바람은 텐트를 날려버릴 듯 거세게 몰아쳤다.텐트를 고정시키기 위해 텐트 안에다 여분의 쐐기를 단단히 박았다.통나무 쐐기(펙)에서 겨우 60센티미터 떨어진 텐트 문에 단단히 고정시켜 적어도 눈바람은 피할 수가 있었다.추위를 피하고 보온을 하기 위해 번쩍이는 새 가스스토브를 배낭에서 꺼내 휘발유를 붓고 불을 당겼다.내 친구는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이런 곳에서 내가 불쑥 연출하는 마술 같은 행동에 당황하는 듯했다.이런 행동은 내게는 그럴싸하게 보였을지 몰라도 친구가 볼 때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던 모양이었다.그것은 물줄기 같은 게 스토브 쪽으로 흘러들어왔을 때 분명해졌다.요리용 가스연료가 스토브 아래를 적시면서 우리와 텐트 입구 사이에 있는 바닥으로 흘러 넘쳤던 것이다.그런데 텐트 입구는 지퍼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옹졸한 산꾼은 흰 산에서 자만한다”라는 구절이 내 마음속에서 얼른 떠올랐다.그러자 그 순간 스토브는 갑자기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길은 텐트 벽으로 옮아붙었다.나는 젖은 수건을 더듬어 한 손으로는 스토브 아래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텐트 입구의 지퍼를 내렸다. 나는 이 뜻밖인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며 “쉬” 소리를 내는 불덩이를 입구 쪽으로 들어올려 얼결에 벽에 던지자 퉁 하는 소리를 내었다.이제까지 그저 무덤덤하던 친구도 사태를 직감했던지 수건을 쥐고 불길을 껐다. 의기양양하던 내 기세가 수그러들자 비로소 친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나는 말 할 수 없이 낙담했다.날씨는 우리에게 두 손을 들라는 듯 연신 몰아 부쳐댔다.폭풍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불고 난 뒤 잠잠해지자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그 주말 “흰 산”에서 지내면서 몇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실제로「미리 시험해보지 않는 스토브는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것과「텐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불을 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친구는 나에 대한 못마땅한 감정과 무관하게 자신의 안전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말하자면 내가 이 몹쓸 스토브에 불을 당기기 전부터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운 체험을 굳이 고백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그것은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 현지에서 그것을 행해보지 않고는 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어깨에 배낭의 중압감을 느껴 손잡이를 잡아 당겨봐야 하고,등산로의 먼지를 뒤집어 써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될 것이다.그럴 때 여러분은 겨울 심설산행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 다음으로는 상식을 받아들일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여러분 자신의 몸이 이야기하는 느낌과 충분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여러분 자신의 욕구를 위해 무엇이 가능한지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줄거움을 간직하라고 말하고 싶어요.오래 전 한 현자가 말하기를“나는 불편을 참기 위해 두메산골로 가는 게 아니고 수월하게 하기 위해 간다.”고 했지요.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 연재할「산행의 첫걸음」에 담겨질 것입니다.
이 작은 시도가 산행을 처음 시작하려는 여러분의 산행길을 더욱 더 수월하게 해준다면 얼마나 쫗을까요.이제 여러분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떠나도록 합시다.
산님들의 질책과 뜨거운 성원을 기대하며...
금정산 산자락에서 청산
*산행의 첫걸음[1]~[4]는 혜영이 님과 <함께쓰기>로 이미 선보였으나
번거로음을 피하기 위해 다시 제 방으로 옮겨 왔습니다.여러 산님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며 변함없는 성원과 채찍을 기대해 봅니다.
'[산행의 첫걸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과 하나되는 몸살림운동-대운산 시명계곡(08/5/3) (0) | 2008.05.03 |
---|---|
올바른 자세가 당신을 만듭니다.-생활속의 자세<1> (0) | 2007.03.05 |
산행의 첫걸음-걷기를 배우며[4] (0) | 2006.07.01 |
산행의 첫걸음-떠나기에 앞서[3] (0) | 2006.07.01 |
산행의 첫걸음-산이 거기 있기에[2] (0) | 2006.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