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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첫걸음]

자연과 하나되는 몸살림운동-대운산 시명계곡(08/5/3)

[시명사 뜨락에 선 몸살림교실 양정수련원 도우들] 

  

오늘은 지난 1년 4개월 동안 동고동락한 몸살림교실 부산 양정수련원 도우들과 산행을 하는 날이다. 거의 일 년 동안 벼른 끝에 이루어진 일정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동참한 도우(道友)는 나를 비롯하여 5명이었다. 목적지는 서창,대운산 남서쪽 고샅의 시명계곡이었다.대운산은 사시사철 녹음이 우거지고 물이 많은데다 산길이 유순해 많은 산객들이 찾아드는 산이다.

 

부산의 진산(鎭山) 금정산이 등산 인파로 북적거릴 때,코스만 잘 잡으면 대운산은 한갓져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그렇다 보니 년중 대운산만 파고드는 대운산 마니아도 적지 않다.내가 코스를 잡은 탓에 차편은 물론,먹거리도 내 몫이었다.산행이 주 목적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나들이이므로 정상에 오르지 않고 시명계곡 좌골 7부쯤에서 자리를 펴기로 했다.등산로에서 슬쩍 벗어난 그곳에는 폭포가 있고 수림이 울창한데다 야영터까지 겸비해 한나절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온천장 지하철역에서 만난 우리는 오후 2시 선약이 있다는 장상원 도우의 차와 내 차에 나눠타고 서창 명곡리에서 오른편으로 꺾어들었다.웅상성당을 끼고 명곡저수지를 돌아 꾸불텅 비포장도로를 훑어 올라간다.청룡사를 지나 시명사에 이르러 대웅전 앞 주차장에 주차를 시켰다.날씨는 청명했다.오전 10시 15분,햇살이 투명할 정도로 대기는 맑았다.오월의 신록은 숲의 바다를 이뤄 탄성을 지를 지경이었다.연초록에서 진초록에 이르는 형언할 수 없는 빛깔이 어우러진 산색은 빼어났다.

 

배낭에다 먹거리를 잔뜩 넣고도 모자라 막걸리며 안주꺼리를 포장하여 들고 시명계곡을 오른다.몸살림교실 인술반을 마치고,몸살림 마지막 정규코스인 5기 종합정리반이 끝나자 마냥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아쉬워한 도우들-송유권 도우의 제안에 따라 매주 화요일 부산 양정수련원을 빌어 서로 교정을 하면서 몸살림의 새로운 기법을 익히는데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부산 양정수련원이 개원하자마자 함께 수련한 도우들은 초급반인 체술1반 둘째 주부터 회합을 갖고 연장자인 나를 회장으로 않혔고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막내 우한승 도우를 총무,또 여성 총무에는 정경애 도우를 만장일치로 낙점했다.그때부터 우리는 자주 모임을 갖고 우의를 다져왔다.각자 하는 일은 달라도 몸살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인지 진정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다.우리보다 한 기수 늦은 장상원 도우와 얼마 전 인술반을 마친 정해윤 도우도 한식구가 됐다.

 

몸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 공부도 이뤄지는가 보다.그런데 우 총무가 회사 사정으로 몇 개월 동안 수련을 거르자 송유권 도우가 앞장서서 총무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여기에 몸살림교실 정규 4기인 이진규 선배도 후배들을 이쁘게 보았는지 자주 수련에 참석하여 자신이 익힌 교정법과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으니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다.아울러 우리에게 몸살림을 전해준 김철 선생님의 특강에도 참관하여 몸살림의 진면목을 체득하니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아득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시명계곡 들머리 풍경]

 

[바위와 숲,그 현묘한 어울림]

 

아흔아홉 굽이를 자랑한다는 홈통골 시명계곡은 들머리부터 멋들어진 풍광을 드러낸다.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을 무척 좋아했다는 정경애 총무는 헤벌어진 계곡에 들어서자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오! 저 빛나는 햇살,푸르름이 절정을 이룬 신록,맑디 맑은 대기와 물을 보고 어찌 탄성을 지르지 않으랴.모처럼 산행을 하고 지난 화요일 모임에 참석한 그는 온 몸이 결리고 굳었다며 하소연하자 이진규 선배가 거의 30여분 굳었던 독맥과 근육을 풀고 교정을 해준 뒤 *공명을 틔워주었다.우리는 때론 피교정자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교정자가 되기도 하면서 한 발이라도 더 몸살림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애를 쓴다.그런가운데 서로를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아마 다른 모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가 아닐까 한다. 

 

*공명(空明):몸살림에서는 공명을 척추, 오장육부와 더불어 인체의 3대  근본기관으로 본다. 누워 배꼽에서 손가락을 세 개 포갠 만큼 밑의 정중앙 부분을 손가락을 모아 누르면 부드러운 느낌으로 빨려 들어가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공명이다.공명이 막혀 있으면 빨려 들어가지 않고 딱딱하며 찌릿하니 아프게 느껴진다.이곳을 하단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공명은 그렇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정확한 위치는 충수 옆, 방광 위다.공명이 막히는 것은 몸이 심하게 굽어 오장육부가 아래로 처져 공명이 있는 빈 공간을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몸이 펴져 처져 있던 오장육부가 제자리로 위로 올라가야 막힌 공명이 트인다. 그러면 처져 있던 장기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 공명이 트이게 된다. 공명이 트이면 창백하던 얼굴에 핏기가 살아나 불그스레해지고 없어졌던 기운이 되살아나 귀찮게만 여겨지던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러므로  몸살림에서는 말한다. "척추가 바로서고 오장육부가 제자리에 있고 공명이 틔여있어야 건강하다.". 고.  

 

[벼랑길을 넘고 있는 송유권,정경애 총무] 

 

[잠시 포즈를 취한 정경애,송유권 총무] 

 

 [푸르름과 빛나는 햇살,어둠을 등지고 선 장상원,정해윤 도우]

 

들머리에서 길은 두 갈래길,하나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우리는 자연스럽게 계곡과 나란히 따라간다.벼랑길을 넘어서자 비로소 물길이 나온다.그 물에 놓인 징검다리 돌들을 건너 오른편 산길로 들어선다.

 

[맑디 맑은 청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튼튼한 신갈나무 숲길-초록의 향연이다.]

 

잠시 뒤 우리는 다시 왼쪽 숲속으로 빨려들어 간다.신갈나무를 비롯 활엽수가 그윽한 정향을 뿜어내는 숲속 길은 향기롭다.느긋하게 발품을 팔며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걷는 즐거움이야말로 도심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일 것이다.예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묵밭을 지나 계곡과 헤어져 왼편 산길로 올라선다.산길을 더터 오를수록 물소리는 더 우렁차게 울린다.오른편 발치 아래 숲 사이로 하얀 물길이 언뜻언뜻 내비친다.

 

[배낭을 풀고 몸살림 운동의 하나인 "온몸운동"에 돌입한 송 총무] 

 

산길은 모롱이를 휘감아돌아 완만하게 열려 있다.마침내 카다란 바윗돌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지점에 다다랐다.그 바위를 돌아 텐트 한 동은 치기 적당한 반반한 공터에 내 배낭을 부렸다.오늘의 목적지다.큰 바위 바투 아래로는 5미터쯤 되는 폭포가 가녀린 물줄기를 흘려보낸다.내 친구들과 한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자주 피서를 보내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대운산 계곡가운데서도 이곳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후미진 장소임을 밝혀둔다.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송 총무는 버릇처럼 "온몸운동"을 시작한다.

 

온몸운동은 몸살림 팔법가운데 첫번째 운동이다.발을 어깨 넓이로 벌려 서고 고개를 15도 정도 위로 든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편다.양손은 깍지를 낀 후 배 앞에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 거리를 두고 놓는다.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삼각형 모양을 이루게 한다.발을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게 밀착시키고 발목에서 머리까지 온몸을 좌우로 가볍게 돌려 준다.배에서 가슴 높이까지 손의 높이를 바꾸어 가며 동작을 해 본다.

 

책상에 오래 앉아 공부나 일을 하고 일어설 때 이 운동을 하면 좋다.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이 운동을 하면 몸이 상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이 운동은 사지 관절 및 척추를 유연하게 해주며, 반복해서 하다 보면 발목에서 목까지 모든 관절을 움직여주는 동작임을 느끼게 된다.어느 부위에 이상이 있었다면,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제자리를 잡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다시 말하면,팔을 제외한 전체 관절의 마디를 풀어주고 제자리를 잡게 하므로 다른 운동 전이나 후에 하면 효과가 뛰어나다.

 

[계곡에서 올려다본 폭포 전경] 

 

 [폭포 아래 계곡 풍경-다래와 단풍나무가 얽히고 설켰다.]

 

[폭포 윗쪽 지계곡의 작은 물줄기]

 

나는 배낭을 열어 삼겹살과 오뎅,떡국,만두를 꺼낸다.당초 8~9명이 온다는 짐작으로 먹거리를 준비했으므로 절반 정도만 요리를 시작한다.반듯하면서도 납짝한 돌을 구해 버너에 불을 피우고 돌을 올려 달군다. 그리고 삼겹살을 듬성듬성 썰어 돌판에 올린다.돌이 달아 열기가 오르면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기 시작한다.기름기가 쫙 빠지며 돌에서 원적외선이 나와 굳이 소금을 치지 않더라도 간이 배이게 된다.삼겹살이 익어갈 즈음,막걸리광인 정해윤 도우가 술잔을 돌린다.돌판애다 구워먹는 삼겹살은 누가 뭐래도 단연 최고.육고기를 즐기지 않는 정해윤 도우는 잘 익은 삼겹을 한 입 넣고는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갈채를 보낸다.송 총무도 정 총무도 정말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신선한 공기와 수려한 풍광의 숲속에서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는 더욱 더 구미를 당기게 하는가 보다.    

 

평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장상원 도우를 위해 다른 버너에 얼른 오뎅탕을 끓인다.아내가 준비해준 육수를 넣고 오뎅의 원조,부산에서도 맛 있기로 소문난 수제 오뎅과 물만두,떡,다진 파를 함께 넣는다. 정 총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푸짐한 오뎅탕을 대령한다.장상원 도우와 나는 운전을 해야 하는 처지라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정 총무도 송 총무도 한두 잔으로 그만.결국 정해윤 도우 홀로 막거리를 축내며 몸살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몸살림 진도가 나아갈수록 얼마나 익숙하게 교정을 하느냐,피교정자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스므스하게 교정이 이뤄지느냐 하는 것은 실제로 몸을 많이 만져봐야 된다는 사실에 다들 공감을 했다.교정은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호흡과 내 호흡이 일치될 때라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법이다.아직은 서툴지만 낮은 자세로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요체다. 

 

[망중한을 줄기며 담소를 나누는 도우들]

 

[송유권 총무의 열변에 손을 들어 화답하는 정해윤 도우] 

 

[몸살림의 기본은 평소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라!]

 

우리 산꾼들은 산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부상으로 시달리게 된다.발목을 삐거나 접질리기도 하고,무릎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산행경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무릎 부상을 당하기 쉽다.그리고 다리에 쥐가 나거나 근육경직이 오는 경우,호흡곤란을 겪는 경우,저체온증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이럴 때 몸살림을 알고 있다면 대개는 그 자리에서 간단히 자가교정을 하거나 타인교정을 통해 쉽게 회복할 수가 있게 된다. 

 

발목을 삐었을 때는 걸을 수는 있겠지만 접질리면 아예 걷지를 못한다.깊은 산중이나 험한 산길에서 발목이 접질린다는 것은 치명적이다.부목을 대거나 심하면 119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뼈가 다른 뼈에 슬쩍 얹히게 되는 걸 접질린다고 하는데 이때는 발목교정을 통해 접질린 뼈를 본디 자리로 돌아가게 해주면 말끔히 해결되고,다시 걸음을 걸을 수가 있다.다리에 쥐가 나거나 근육경직 또는 근육강직이 오면 이 또한 큰 문제다.이럴 경우에도 허벅지나 장단지 뒷쪽에 있는 독맥과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물론 근육을 풀기 전에 고관절이나 무릎을 살펴 먼저 교정해주면 더욱 더 좋다.

 

무릎통증은 산꾼들의 영원한 숙제이다.산을 오를 때 통증이 오는 경우에는 장단지뼈가 바깥으로 틀어진 것이며,하산할 때 무릎통증은 대개 슬개골[무릎을 덮고 있는 뼈] 이 처져 있는 탓이다.몸살림에서는 근본적으로 고관절이 빠지거나 틀어져 무릎이 틀어진 것으로 본다.먼저 고관절을 제 위치에 넣어준 다음,무릎을 교정해주고 슬개골을 올려주면 크게 효험이 있다.호흡곤란이나 저체온증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다.아무튼 산행을 통해 몸이 잘못 된다면 이를 해소할 방책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그런 의미에서 우리 산꾼들은 스스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시원한 청류에 탁족을 하는 송유권 총무] 

 

술도 거의 동이 나고 음식도 어지간한지 다들 뒤로 물러난다.정 총무는 참외를 깎아 돌린다.참외로 입가심을 하고 된장커피를 끓여 마무리를 한다.송 총무가 탁족이나 해야겠다며 물가로 건너가 양말을 벗어 청아한 계류에 발을 담근다."송 총무,엄지발가락 교정이나 하지 그래요,"하고 소리치자 그는 엄지발가락을 벌여 그 사이로 나를 들여다보며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엄지 발가락 교정을 하는 건지,세상을 비틀어보는 건지ㅎㅎ]

 

송 총무는 체술1반 때부터 몸살림의 효과를 그다지 믿지 못하며 늘 반대편의 입장에 서곤 했다.많은 도우들이 몸의 변화를 들먹일 때에도 그는 반신반의했다.아내가 오랜동안 수지침을 해오면서도 정작 본인의 어지럼증은 해소하지 못하고 있단다.그런 그가 아내한테 떠밀려 수련원에 오게 됐다는 것이다.인술반을 졸업하고나서도 몸살림의 효과를 별반 믿지 않더니 최근에 들어서 크게 바뀌었다.이제 그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깊이 있게 수련하고 있다.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변증법이 그에게도 통하나 보다.

 

몸살림은 너무 쉽고 간단하다.그래서 사람들이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한 방에 끝내주는 기적을 바라는게 범인들의 바램이다.매일 숙제를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그래서 조금 운동을 시작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거나 시들해지는 게 몸살림이다.우리들은 방석운동을 평생동안 수련해야 할 숙제로 본다.그래서 방석운동이라 하지 않고 방석숙제라고 부르는 것이다.이 점만 보더라도 끈기와 인내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몸살림온동이다.

 

[폭포에서 내려다본 계곡-물 위에 얼비치는 녹음이 장관이다.] 

 

[저 오묘한 자연의 변용,위대한 섭리여!] 

 

[물 위에 초록이 스며들었네!] 

 

[물가에서 웃음짓는 도우들]

 

 [정해윤 도우의 춤사위 같은 활달한 몸짓]

 

[낮잠 자기 좋은 큰바위를 걷는 장상원 도우]

 

[파장 무렵] 

 

[바위 틈서리의 이끼와 계류-도처엔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리를 뜨는 정해윤 도우] 

 

오후 2시 15분,앉았던 자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워담고 하산을 시작한다.장상원 도우가 선약이 있어 그를 홀로 내려보내기가 멋적었다.같은 길이라 하더라도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오를 땐 오르는데만 집중하여 주위가 잘 보이지 않지만 내려갈 때는 산속에서 익숙해진 탓에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사물이 선명하게 보인다.또 밝고 어둠도 분위기를 조절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숲을 벗어나 물길을 건넌다.예전에 집터가 있었던 묵밭으로 내려오자 햇살이 따겁다.환한 밝음에 눈에 부셨다.연초록과 진초록이 어우러진 나무들은 더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이럴 땐 가슴은 넓어지고 후각은 더 예민해져서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묵밭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는 정경애 총무]

 

[묵밭을 지나는 송유권 총무] 

 

[시명계곡 하산길의 송유권,정경애 총무] 

 

계곡 오른편 숲으로 들어서서 평탄한 숲길을 밟아나간다.키 큰 활엽수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햇살을 밟고 걸음을 옮기는 듯하다.길가에는 가막실나무가 화려한 꽃을 터뜨리며 반긴다.저 꽃술 하나하나는 소우주다.그 속에 탄생의 비밀이 농축되어 있고 에너지가 우주로 발산되고 있다.우리도 그들과 동떨어진 존재라기보다 하나로 연결된 존재다.다만 우리의 눈과 귀가 닫혀 그들의 언어를 해독하지 못할 뿐이다.저 위대한 자연을!    

  

[가막살나무의 화려한 꽃-꽃술 하나하나가 우주 그 자체다.]

 

 

하산길이 위험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항시 조심해야 한다.그리고 뒷처리를 말끔하게 해야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 오르막에서는 웬만해서는 사고가 생기지 않지만 내려오는 길에서는 조금만 방심헤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평탄한 곳에서도 미끄러지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으니, 나는 이런 사고를 여러 차례 목격했고,내 자신도 그런 부상을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지만 바쁘게 설치다 보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는게 인생살이다.    

  

[시명사 건너편 첩첩산중의 신록]  

 

벼랑길을 넘어 숲을 빠져나왔다.시명사 경내로 들어서자 지열이 후끈 달아오른다.시명산에서 줄달음쳐 내려오는 능선과 지능선 사이의 첩첩한 골짜기로 눈길을 돌리니 푸른 이내가 감돌고 싱그런 신록이 파노라마를 이룬다.산행은 시명사에서 끝났다.아침에 주차를 한 내 스타렉스는 열을 받아 후끈거린다.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며 이제 몸살림 도우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장상원 도우의 승용차에는 정경애 총무,내 차에는 송 총무와 정해윤 도우가 탑승하였다.대운산 시명계곡 산행에 동참해준 도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5월 눈부시게 찬란한 신록의 숲길을 걸어 도우들과 함께 한나절 시름을 덜고 자연과 합일한 산행-자연이 가르쳐주는 대로 우리도 그 길을 가리라 다짐하며,시명사를 떠났다. 

 

[시명사에서 올려다본 시명산] 

 

[시명사 앞마당의 은행나무] 

 

 

*내가 체험한 몸살림 이야기

 

지나간 1년 반은 내 삶에 분수령을 이루었던 기간이었다. 나로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시련의 계절이기도 했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삶의 바지랑대를 잃고 필시 표류했을 것이다. 아울러 산꾼으로서 산과 결별했을지도 모를 만큼 절박했다. 그런 만큼 반성과 회한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무엇이 내 건강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과연 나는 온전한 길을 걷고 있었던가. 산행은 과연 내게 무엇이었던가? 이런 자문에 괴로워했다. 당장 산으로 가지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산행이 내 신앙이 되었고 산행이 나를 지켜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러한 내 믿음은 송두리 채 흔들렸다. 산꾼이 산에 가지 못한다면 그건 항해사가 배를 타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나날이 거의 3개월가량 지속되었다. 그 발단은 2006년 10월 백두대간 설악산, 미시령-마등령 구간을 종주하면서였다. 날씨도 악천후였지만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했다.11시간 넘게 안간힘을 쓰며 가까스로 설악동으로 내려왔을 때는 온 몸이 마비가 된 듯 초죽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허리와 다리 통증이 엄습하여 평지에서도 50미터도 걷기가 힘들어졌다. 명색이 산행대장인 나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으니 부끄러웠다. 제 한 몸 지키지도 못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산을 안내한다니, 말이나 되겠는가. 


이때부터 나는 산행에서 물러나 몸을 다스리기 위해 눈물겨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니 별반 문제는 없었다. 그저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퇴행성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산행을 중지하고 수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딱히 원인은 모르겠지만 요추가 약해져 "퇴행성"이니 조심하라는 처방이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반신반의하면서도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갔다. 침도 맞고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차도가 없자 신장이 약해서 요통이 온다며 한약을 몇 첩 먹으라는 것이었다. 통증은 잠시 완화되는가 싶더니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나는 친구 소개로 추나요법에 정통하다는 분을 찾아 광주까지 달려가 교정을 받기도 했다. 아무 소용도 없었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심한 자괴감에 휩싸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다가 우연히 재화의 소개로 몸살림운동을 알게 되었다. 대간 동료인 재화 역시 허리가 좋지 않아 늘 고전하곤 했다. 몸살림운동이라.? 그게 뭔데...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내 허리통증을 방석숙제로 고칠 수 있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절박하면 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가 권한 방석숙제를 해보았다. 


너무 쉬운 운동이었다. 방석을 접어 접힌 부분을 엉치뼈에 맞물리게 놓는다, 두 다리는 뻗고 두 손은 만세 부르듯 바닥에 대고 10분만 누워있으면 되었다. 이 자세는 우리 몸이 이완되는 가장 편한 자세다. 첫 날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방석이 허리에 압박을 가해 통증이 뒤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장단지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찌릿 신호가 왔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오른쪽 엉덩이와 장단지, 발목에 통증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뭔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더러는 예리한 통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나흘간이나 되풀이됐다. 닷새날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도 간헐적으로 예의 그 반응이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재화가 권한 두 번째 운동은 깍지 끼고 고개 들어 20분 동안 제자리 걷기였다.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선다. 어깨를 으쓱 올리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깍지 낀 손을 엉덩이까지 내린다. 두 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15도 들어 제자리에서 걷기를 한다. 아주 단순한 운동이다. 그런데 처음 해보니 목이 아프고 어깨죽지가 당겨 고통스러웠다. 그만큼 그 부위가 굳었던 것이다.5분도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없었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내 몸은 이렇게 경직되어 있었다. 어디 목과 어깨뿐이랴. 다리도 허리도 모두 굳었으니 눈에 보이지 않은 오장육부는 또 어떻겠는가. 우리 몸은 부드러워야 한다. 딱딱하게 굳는 순간부터 몸에는 병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몸살림운동은 힘을 빼고 해야 한다.우리 몸에 힘이 들어가면 근육은 긴장한다. 근육이 늘상 긴장을 되풀이 하면 경직된다. 그리 되면 그 근육 주변의 신경도 압박을 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뼈대까지 틀어지거나 접질려 본디 자리에서 이탈하면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실 뼈대가 틀어지면서 근육이 굳어지는 것이지만 말이다....오장육부도 예컨대 뼈대와 근육의 영향을 받는다. 늑골인 가슴우리가 좁아지면 심장을 압박하게 되어 협심증이나 부정맥 같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실제로 부정맥에 걸린 이들은 하나같이 오른쪽 가슴이 꺼져 있다. 고혈압도 가족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허리를 바로 세우고 가슴을 펴면 그런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법이다.


몸살림운동은 스스로 하는 운동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몸을 알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아프거나 병이 나면 약을 먹거나 병원을 찾는다. 제 몸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에 따르면 된다. 따라서 의사가 죽을병이라면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약이나 병원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이를 병원 이데올르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몸살림은 몸의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여 예방하고 고친다. 그런 병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살림에서는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병원에서는 잘못된 부위가 있으면 그곳을 잘라내거나 인공장기로 대체한다. 우리 몸을 객체로 보는 시각이다. 몸살림은 우리 몸을 유기적인 생명체로 본다. 일테면 허리디스크가 있으면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서 거추장스러운 디스크를 잘라낸다. 반면에 몸살림에서는 그 근본원인을 찾아내 교정을 한다. 허리에 문제가 생긴 것은 거의 다 고관절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관절을 교정하고 엉치를 올려주고 등뼈를 바로 잡아준다. 그리고 방석숙제를 시킨다. 그러면 허리통증은 사라지게 된다. 관점의 차이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잇는 요추를 치료하지만 몸살림에서는 틀어진 고관절과 등뼈를 교정한다. 몸살림은 이렇게 우리 몸을 하나로 본다.   


각설하고 나는 3주가량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석숙제와 깍지 끼고 걷기를 실천했다.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통증에서 해방되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신기했다. 숙제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운동은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달랑 방석 하나만으로 통증이 호전되다니! 내가 생각해도 믿기 어려웠다.


나는 내 몸의 잘못이 어디에서 왔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왼손잡이인 나는 하루 종일  왼쪽 팔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8년째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넘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해왔다. 일상에서는 몸을 구부린 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허리는 완만한 "S" 자 만곡을 그리지 않고 일자였으며 등은 앞으로 굽어 있었다. 늘 만성 두통에다 어릴 적부터 비염에 시달려 왔다. 환절기만 되면 콧물이 나고 감기도 잘 걸리는 편이었다.


우리 몸이 완벽하게 대칭이 되거나 좌우가 균형을 이룬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 균형미를 지닌 사람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씩 균형이 무너져 있다. 우리는 이를 대수롭게 생각한다. 그런데다 고칠 방법을 모르니 그냥 그렇게 죽을 때까지 감내하며 살아간다. 일테면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길면 오른쪽 발목이 잘 접질리기도 하고 힘도 없다. 어떻게든 두 다리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접질리는 것도 어쩌면 몸의 자구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로 왼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생활하게 된다. 정도가 심하면 다리통의 굵기도 달라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다보면 요추도 틀어지고 등뼈도 휘어지거나 틀어진다. 당연히 목뼈에도 이상이 온다. 그럴 경우 우리는 내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풍에 걸린 사람들을 연상해보면 쉬이 납득이 갈 것이다. 몸살림운동을 수련하면서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우리 몸에 대해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


내 몸이 호전되면서 나는 몸살림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때마침 2007년 1월 중순 부산에도 수련원이 문을 열었다. 나는 초급반인 체술1반에 등록했다. 이때 내 몸은 거의 나아 있었다. 다만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체술1반은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몸을 교정하는 <자가교정>이 주류를 이뤘다. 3개월 뒤에는 <타인교정>을 배우는 체술2반,또 3개월 뒤에는 타인교정을 심화한 <인술반>을 수료했다. 끝으로 몸살림운동의 마지막 코스인 종합정리반(예전의 강사반)을 지난 2월에 마쳤다. 이제 몸살림운동으로 정해진 교육은 모두 마쳤다, 지금은 양정수련원에서 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뼈대의 구조라든지, 그 뼈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이라든지, 신경과 장기의 역할과 연관성...아직도 의문 투성이다. 아울러 사람마다 몸의 특징이 다르고 체형도 같지 않다.교정을 할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되는 건 아니다.교정을 노련하게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내 몸은 그동안 내가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영위해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몸살림은 체험이 중요하다. 자신이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지 않은 것을 믿기란 쉽지 않다. 몸살림은 체험의 과학이다. 몸으로 느끼면 마음도 따라 오는 것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한 법이다. 마음 공부도 중요하지만 몸공부가 우선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몸살림을 수련하면서 평생 고질이었던 비염이 나았다. 그리고 시력은 좋지만 늘 눈이 침침했는데 이것도 자가교정으로 호전되었다. 그리고 피로가 쌓이면 한 10분 방석을 깔고 누워 있으면 금세 좋아진다.82세의 어머님은 갑상선에다 당뇨에 걸려 있었는데,방석숙제와 걷기를 1년 넘게 하여 당뇨는 거의 사라졌고 갑상선도 크게 호전되었다. 그래도 근력이 약하고 체력이 떨어진 어머님은 100% 완벽하게 치유되지는 않았다, 고관절을 교정해도 근력이 약해 또 다시 틀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몸이 찌뿌둥 하다고 호소하면 내가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만져주고 교정을 해준다. 그 덕분에 어머님은 마실도 다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당신이 십 년만 젊었어도 산에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는데 몸살림을 너무 늦게 알았다." 며 빙그레 웃으신다. 평생 어머님에게 해준 것도 없이 불효만 저질렀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나도 자랑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아내도 아들도 모두 몸살림운동을 일과처럼 실천하고 있다. 처제는 운동을 싫어하는 타입이라 전신비만에 걸려 있다. 키 1미터 55cm에 몸무게는 무려 63킬로였으니 전신비만이 틀림없었다. 2개월가량 내가 집중적으로 방석숙제와 걷기를 지도해주었다. 병원에서는 지방간으로 판정을 받고 다급한 나머지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2개월만에 지방간은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몸무게도 3kg이 빠졌다. 전에는 등짝을 만져보면 손톱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물렁살로 변해 체중이 하루가 다르게 빠지고 있다. 그리고 일자이던 허리곡선은 서서히 "S" 만곡을 이루기 시작했다. 처제는 놀라운 변화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처제가 조금씩 호전되자 처제와 소원하던 정도 더 돈독해졌다. 우리 가족도 이전보다 더 폭넓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몸살림은 자연의 흐름에 따른다.부자유스러운 것은 반드시 인체에 역행하기 마련이다.따라서 자연과 합일하는 삶,어쩌면 그것이 몸살림의 근본일지도 모르겠다. 푸르름이 짙어가는 오월의 문턱에서 시명계곡 청류를 벗 삼아 내려오면서 몸을 살리자는 몸살림운동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끝으로 우리에게 몸살림운동을 전해준 김철 선생님과 양정수련원의 손용환 사범,이진규,김광빈 선배,그리고 도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몸살림 취지대로 미약하지만 나도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추가 바로 서고 오장육부가 제자리에 있고 공명이 틔여있어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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