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가 우리 산꾼들의 꿈이듯,미국의 산꾼들은 평생 도전하고 싶어하는 종주길로서 아팔라치아산맥 종주(Appalacian Trail)를 꼽는다.동남부 조지아주에서 동북부 메인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는 이 종주길은 거리가 무려 3,500km,산행일수만 꼬박 6개월이 걸리는 엄청난 코스다.
이렇듯 길고 험난한 코스에 해마다 1,500여명이 도전하여 10%가량 완주에 성공한다고 한다.이들 완주자 가운데는 물론 전문 산악인도 있지만 정년퇴직자를 비롯해서 70대의 노익장들도 적지 않다.미국판「오딧세이」라 하는 아팔라치아산맥 종주를 들먹일 때면 으레 전설적인 인물 두 사람이 등장한다.’얼 세이퍼(Earl Shaffer)’와 ’빌 어윈(Bill 1rwin)’이 바로 그들이다.
’세이퍼’는 아팔라치아산맥을 단독종주한 최초의 인물이다.당시 그의 나이는 30세.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전쟁의 상흔(傷痕)을 떨치기 위해 1948년 종주를 시작하여 4개월만에 완주했다.조지아주의「스프링거산」에서 메인주의「카타딘산」까지 2,160마일의 거리였다.그 뒤 17년이 지난 1965년에는 99일만에 그 코스를 거꾸로 완주하여 기염을 토했다.그러나 세이퍼의 종주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그의 나이 80세 때인 1998년,자신의 첫 종주기념 50돌을 맞아 ’세이퍼’는 또다시 아팔라치아산맥 종주에 도전,미국의 산악계는 물론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연일 매스컴에 세이퍼의 종주 소식이 소개되면서 그의 불굴의 정신과 투지가 생생히 전해졌다.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복장과 장비가 50년 전 첫 종주 때와 거의 비슷했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텐트도 버너도 휴대하지 않았다.대부분 산꼭대기에서 한둔(비박)을 하며 매일 20km씩 강행군을 했다.음식이라곤 밀빵과 오트밀,땅콩버터 그리고 자연식품이 전부였다.
종주가 끝난 뒤 ’세이퍼’는 ABC뉴스와 인터넷 대담을 가졌다."종주를 위해 어떤 훈련을 했나요?" 라는 네티즌(Netizen)의 물음에 세이퍼는 "평소 집에서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훈련이 따로 필요치 않아요.산행 그 자체가 훈련이죠."라고 대답했다.이어서 "50년 전과 비교할 때 나이가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고 묻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한결같답니다."라고 말했다.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세이퍼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신 적도 없답니다.쉬지 않고 일을 했지요.그래서 늘 건강을 유지해왔죠.지난 60년 동안 몸무게도 3kg 이상 차이가 나지 않았답니다. 이것이 내 건강의 비결이요,내가 원했던 일을 하게 한 것이랍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시인이요 골동품상인 세이퍼,그는 지금도 종주길 근처에 살며 아팔라치아 등산협회의 일원으로 헌신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지치고 굶주린 아팔라치아산맥 종주꾼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음식과 음료,따뜻한 잠자리와 심지어는 차편까지 제공받는다.종주꾼들 세계에서 이렇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을「등산로의 천사」라고 부른다.이런 천사들 가운데 ’빌 어윈’이 등장했다.앞을 못 보는 ’어윈’은 50살이 던 1990년,장장 9개월에 걸친 역투로 아팔라치아산맥을 완주했다
’오리엔트’라는 길잡이 개를 앞세우고 악전고투 끝에 종주에 성공한 것이었다.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한편의 인간 드라마였다.종주를 하면서 ’어윈’은 수많은 ’등산로의 천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신문에 실린 그의 종주기사가 한몫하기도 했다.그래서 ’어윈’이 지나가는 근동에 사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를 도왔다.
종주가 끝난 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어윈’ 자신도「등산로의 천사」가 되어 종주꾼들에게 음식과 편의를 제공하곤 한다.때로는 아내와 함께 인적 드문 산길에서 1주일 동안이나 텐트를 치고 종주꾼들을 도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윈’은 원래 화학선생이었다.그런데 불행하게도 1968년 퇴행성 눈병에 걸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4년 뒤에는 나머지 눈의 시력마저 잃어버렸다.요즘 그는 "난 행운아랍니다.더 이상 추한 것을 볼 필요가 없으니까." 라고 껄껄 웃으며 말한다.그런 그도 한동안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그래서 폭음에다 하루 5갑 이상 담배를 피워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 때도 있었다고 한다.그러다 마약중독에 걸린 아들과 함께 죽으러 간 마지막 여행에서 종교적인 심안(心眼)이 열려 자신의 삶에 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지금은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어윈’"아팔라치아산맥 종주는 진정 영적인 순례였다"고 그는 술회한다."눈 먼 사람 홀로 아팔라치아산맥을 종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종주를 했어요." 종주를 마친 ’어윈’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눈 먼 자의 용기」라는 책을 펴냈다.이때부터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팔라치아산맥 종주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완주자 가운데 많은 이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몸을 갖춘 것도 아니고 전문 산악인도 아니라는 점이다.’어윈’이 그러했던 것처럼 종주를 하면서 몸을 만들고 정신을 연마해나갔던 것이다.그리고 "종주의 성공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산행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처음부터 베테랑이 없고 태어나면서부터 산을 잘 타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세이퍼’의 말처럼 산행이 곧 훈련이요,’어윈’의 그것처럼 산행은 영혼을 일깨우는 순례길이다.
나는 일개 산꾼으로서 두 사람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 반향은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다.『산행에는 결코 정년은 없으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늙었다고 생각할 때,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실은 산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인 것이다.그리고 산행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면 평생토록 산을 사랑하고 산을 그리워해야 한다.
이를 두고 부산이 낳은 위대한 산꾼이자 시인인 장호(章湖) 선생은 "산행은 발로 오르되 머리로 아니 가슴으로 올라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궁극적으로 산행은 몸을 단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주:얼 세이퍼는 1918년 펜실바니아 요크주에서 태어나 절친한 산친구였던 데이비드 도날슨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2002년 5월 잠들었다.)
ARTICLE[1988년 아팔라치아 산맥을 3번째 종주
하며 다리쉼을 하는 얼 세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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