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다시 찾은 덕유산<하>

청산신남석 2007. 2. 6. 21:54

  

향적봉~설천봉~스피츠 슬로프~설천하우스

 

향적봉에서 설천봉으로 내려간다.하산엔 자신이 있다며 현영이가 앞장을 선다.향적봉 바로 아래 암장을 돌아 내려서면서 설천봉을 담아본다.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이 거리가 지난번에는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으니 자연의 오묘한 변화를 그 누가 알아차리겠는가.그뿐이랴? 1주일 전 그 많던 눈은 다 어디로 가고 나뭇가지에는 봄을 준비하는 눈망울이 싹을 틔운다.


봄기운 머금은 햇살과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으로 빚은 바람의 연금술.투명한 사슴의 뿔인 것도 같고,하늘에서부터 드리운 고드름 같기도 한 얼음꽃의 아름다움. 그 절정은 바람결에 부딪치는 얼음꽃의 합창으로 완성된다.편종 소리 같다 싶으면 풍경소리 같고,실로폰 소리 같다 싶으면 마림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 지상의 어떤 악기로도 흉내낼 수 없는 은빛 세상은 이제는 벌써 추억속으로 들어갔으니... 

 

 [설천봉과 상제루 전경-그 뒤로 무주리조트 뒷산,김해산이 우뚝하다.] 

 

 [고사목마저 아름답게 보이던 은세상은 어디로 가고...]

  

 [경이로움마저 들었던 주목엔 푸르름만 가득하고...]

 

[설천봉 상제루 앞의 슬로프와 칠봉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코스] 

 

설천봉 조망대인 상제루 앞으로 돌아드니 그 아래로 초보자용 슬로프가 펼쳐지고 설천봉에서 실크로드 코스를 거쳐 칠봉으로 나우리치는 능선에는 햇빛이 들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4시 30분,설천봉 휴게소 앞에 다다르니 숱한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러 줄을 서서 기다린다.

 

[설천봉 상제루와 곤돌라를 타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인파]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대장님,31회입니다.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덕유산 눈 산행을 왔다네.헌데 눈이 별로 없어 섭섭하네.

  그래서 스키 슬로프로 하산하러 가는 길이라네.“

“네,그렇군요”그 후배는 용마산악회 산행 때 자주 보던 낯익은 얼굴이어서 우정 반가웠다.

“총동창회 용마산악회 산행대장님이란다.”하면서 동기들과 가족들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며 나를 소개한다.

“후배 여러분 반갑습니다.좋은 산행 오래 간직하세요.3월에 적석산에서 봅시다.”

“대장님도 산행 잘 하세요.”곤돌라를 타러 가는 후배 일행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스피츠 슬로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사목과 주목 앞에서 포즈를 잡은 익수와 현기]

 

[설천봉 곤돌라를 지나 스피츠 슬로프로 가며 재화,현영,현기]

 

 [왼쪽 고사목이 홀로 서 있는 곳으로 가면 스피츠 슬로프가 나온다.] 

 

 설천봉 곤돌라 승차장을 지나 직진한다.고사목과 주목이 서 있고 그 위로 곤돌라가 지나간다.우리는 게걸음을 것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스피츠 슬로프를 알리는 검은색 간판이 보인다.조금 더 발품을 팔자 “이곳은 위험하오니 출입을 폐쇄한다.”는 경고판이 나온다.나는 이쯤에서 친구들을 불러세우고 사진 한 컷을 담는다.그때 곤돌라 쪽에서 안내원이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며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나는 사진기를 흔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는다는 시늉을 했다.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재빨리 나를 따라 오라고 말하곤 속보로 걸어 내려갔다.  

 

[무주리조트 스키슬로프 개념도-스피츠 슬로프는 곤돌라 바로 아래 상,하단으로 나뉜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스피츠 슬로프 상단 들머리에는 집채만한 눈이 둔덕을 이뤄 무릎까지 빠진다.나는 왼쪽 가장자리로 붙어 둔덕에 올라서니 저 아래 스피츠 슬로프 하단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며 가벼운 어지럼증마저 일 정도였다.아마 경사가 50도 가량은 되는 듯했다.이 슬로프를 폐쇄한 것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슬로프 가장자리로 다가가자 그곳에는 사람들이 내려간 흔적과 또 설천봉 쪽으로 올라온 등산화 발자국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산행 다음날 확인한 일이지만 이 발자국은 산인님의 발자국이었단다. 토요일 홀로 설천하우스에서 이 까꿀막지기 한량없는 오르막 슬로프를 걸어 올랐다는 것이었다.산인님의 친구인 도솔산인님에 따르면 이 코스는“익스트림 코스”라 할 만하다며 동계 백두산 원정 때 이곳에서 심설훈련을 하기도 했다는 곳이다.내가 이 슬로프로 내려가게 된 것도 두 분의 산행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이 자리를 빌어 두 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본격적으로 슬로프를 내려오는 현영이와 친구들,]

 

[은빛 설원엔 지나간 발자국이...] 

 

 [푸른 하늘이 흰 눈에 투영되어 푸르스름한 색갈로 변한 설원의 사진] 

 

 [눈이 깊은 곳엔 허리춤까지 빠지고...]  

 

내가 앞장을 서서 눈을 헤치고 나간다.재화와 현기가 뒤따르고 현영이와 익수가 후미에서 내려온다.앞 사람이 밟은 눈 구덩을 피해 신설을 밟았다간 그대로 허벅지까지 빠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앞 사람의 발자국을 밟아나가야 지치지 않는다.그렇지만 움푹 꺼진 곳에서는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아도 무릎 이상으로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경사가 매우 급한 곳에서는 저절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기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후미에서 오던 익수는 급한 슬로프에서 미끄러지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때마침 현영이가 굴러오는 익수를 막아서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다며 앙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옆에서 잡아본 슬로프의 경사-곤돌라 버팀목도 보이고..]

 

 [일렬로 슬로프를 내려오는 친구들]

 

 [첫번째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서며...]

 

[후미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눈길을 헤치는 익수]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가파른 곳을 지날 때 미끄러워 절로 썰매를 타듯..]

 

 [백설의 설원에서 흡사 스키를 타듯이..]

 

 [선두에 선 현기와 재화의 뒷모습]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스틱도 없이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오다가 나도 엉덩방아를 찍었다.일부러 넘어진 것도 아니어서인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아들놈이 애지중지하는 카메라에 눈에 스며들까봐 조심스러웠다.그러는 사이 현기와 재화가 앞서나간다.

 

 [슬로프 오른쪽 가장자리 풍경]

 

[주목지대를 에둘러 내려가는 재화]

 

[슬로프 하산길,머리 위로 지나가는 곤돌라의 행렬]

 

[스피츠 슬로프 하단으로 걸어가며..저멀리 김해산엔 햇볕이 들었네]

 

 [하산길에 올려다본 슬로프 왼쪽 능선에 늘어선 나무들]

 

 [스피츠  슬로프 하단에서 올려다본 슬로프 상단]

 

슬로프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어떤 곳은 눈이 깊었다.사람들이 다닌 곳은 눈이 다저져 밟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전인미답의 눈을 밟을라치면 쭈욱 빠지는 바람에 스틱에 의지하여 다리를 빼내야 했다.이렇게 안간힘을 쓰다보니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고 숨길도 가빠진다.슬로프 왼편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오다가 눈 덮인 잔돌밭을 가로질러 오른편 가장자리로 건너갔다.이제 슬로프 하단이 지척이다.이쯤에서 우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우리가 내려온 슬로프 상단을 뒤돌아본다.정신없이 슬로프를 치내려온 탓에 찬찬히 생각할 겨를마저 없었는데 눈으로 목욕을 한 듯한 상쾌함에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슬로프 하단에 다다라 한숨 돌리고 선 익수,현영,현기]

 

 

이제 곤돌라 운행은 멈춰 섰고 슬로프 하단의 초급코스인 에코코스에도 스노보드와 스키어들은 철수해버렸다.그렇지 않았다면“스키장을 걷는 이상한 등산객”이란 눈총을 받았을 텐데 다행이었다.우리는 여유롭게 에코코스 가장자리를 밟아 내려온다.제설차량이 코스를 돌며 눈을 다지고 있었다.설천하우스에 도착하니 5시 40분이었다. 1시간 15분 가량의 심설산행을 마치고 크램폰과 스패츠를 벗었다.양말 속으로는 스패츠가 밀려내려오면서 눈이 들어가 축축했지만 기분만은 탱탱했다.어둠이 몰려오는지 사방에 불빛이 밝아진다.우리는 서둘러 차의 시동을 걸었다.  

 

 [설천베이스에서 스피츠 슬로프와 설천봉을 등지고 선 친구들] 

 

설천봉에서 설천하우스까지 약 6km 거리를 숨돌릴 틈도 없이 내려오자 친구들은 이제 불안하던 안색이 펴지며 비로소 여유를 찾는 듯했다.실로 오랫만에 맛보는 심설산행은 나름대로 변화무쌍한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 주었다.

 

땀으로 얼룩진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며 산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나는 현영이의 승용차를 몰아 함양군 안의로 달렸다.대간을 하면서 목욕을 했던 안의탕과 그때 자리가 없어 삼겹살로 대신했던 안의갈비탕집이 퍼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30여분 차를 몰아 안의탕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고 광풍정 바로 곁에 있는 안의갈비탕으로 직행했다.한우로 만든 갈비찜을 시켜놓고 술추렴을 한 뒤,모처럼 국물맛이 시원한 갈비탕으로 속을 채우니 이제 살 것만 같았다.   

 

덕유산은 유학자들의 은거지요 은사(隱士)의 산이었다.수많은 선비들이 덕유산에서 은거하며 덕을 수양하였는데,그들은‘군자는 숨어 닦고 쉬며 노닌다’는 뜻을 덕유산에서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들 선비 가운데서도 중종 때의 문인이엇던 신권은 학자로서 성리학에 밝았고,산천에 은거하면서 안빈낙도하며 몸을 닦았다.그는 1540년에 구연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며,현지에는 그의 사후에 세워진 구연서원과 그 문루인 관수루(觀水樓)가 있다.‘관수(觀水)’라는 뜻은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연유한 것으로,‘흐르는 물의 성질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고 하여 학문을 수양함에 있어서의 올바른 지표와 자세를 가리킨 것이다.


관수루 곁의 계곡에는 수승대로 잘 알려진 거북 모양의 거북바위 혹은 구연대가 있어 아름다운 계곡미와 수석미를 드러낸다.이곳은 덕유산에서 발원한 성천,산수천,분계천과 갈천이 합류하여 위천으로 모여서 빚어 놓은 덕유산 계곡의 절경 중의 하나다.신권은 이곳의 아름다운 산천미와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자가 산수 간에 있으니(亭於山水間)

물을 사랑하고 산을 잃은 것은 아니네(愛水非遺山).

물은 산의 가에서 흘러나오고(水自山邊出)

산은 물을 따라 둘러 있는데(山從水上還)

신령한 구역이 여기에서 열리니(靈區由是闢)

즐거운 뜻이 더불어 관련된다네(樂意與相關)

그러나 인(仁)과 지(智)의 일을 생각하면(然爲仁智事)

모든 것이 오히려 부끄럽네(擧一猶唯顔)

 

친구들이여!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덕유산 산행을 하며 그 후덕함을 다시 느꼈듯이 이제 우리는 모름지기 자연을 벗하며 산수간을 노닐었던 옛 선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