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눈으로 본 태백산 눈산행<하>
[하늘로 통한다는 천제단을 뒤로 하고 선 청마산우회 회원]
태초에 하늘나라 하느님,환인의 아들,환웅 천황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았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이로써 우리 민족은 하느님의 아들이 내려온 산을 하늘로 통하는 길로 봤고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와 같은 곳으로 믿게 되었다.그래서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내려온 그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고 신비하고 영험스런 신산(神山)을 태백산이라 이름 하고 성역으로 숭배해 온 것이다.
그후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와 분열에 따라 원래의 태백산인 백두산은 제 기능을 잃고 또 다른 태백산이 파생되었다.민족은 분열되어도 풍습은 같아 남쪽으로 이동한 우리 민족(삼한)은 북쪽의 백두산과 지리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산을 찾아 태백산이라 이름하고 그 산 꼭대기에 제단을 쌓고 옛 풍습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그것이 지금의 태백시 소도동에 있는 태백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천하의 명산이 삼한 땅에 많은 가운데 그 삼한의 경승은 동남쪽이 최상이요,또 그 동남의 가장 큰 덩치로는 태백산으로써 으뜸으로 친다.”고 이르니 말하자면,태백산은 삼한의 지붕이라는 뜻이다.“크게 밝은 산”이며“한밝뫼”라 일컫는 태백산은 그리하여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모산이다.신라 때는 오악 가운데 북악으로 신성하게 여겨 제를 지냈다.단기 2471년(서기 138년) 일성왕이 몸소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낙동강과 한강을 이루고 삼척의 오십천이 되니 반도 이남의 모태가 되는 뿌리산이다.태백산의 산역(山域)은 약 700리로 북으로는 두타산 오대산까지 이어지고,동으로는 동해 바닷가까지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고치령을 거쳐 소백산에 닿아 있고,남쪽으로는 청량산 일월산까지 이어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수많은 산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는 큰 산이다.
[죽어 백마를 타고 태백 산신이 되었다는 단종의 비각]
영봉에 회원들이 모였으나 워낙 바람이 세차게 불고,영하 12도의 추위에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산객들이 많아 시산제를 지내지 못하고 곧장 망경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나는 오르막은 그런대로 올라왔지만 내리막에서는 다리에 통증이 오지 않을까 염려되었다.특히 가파른 눈길에서는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조금 내려오니 억울하게 삼촌의 손에 죽어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단종을 모시는 단종비각이 나온다.태백 산신이 단종이라면 소백 산신은 금성대군이다.이들 삼촌과 조카는 양백(兩白)의 산신이 되어 이 고장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며 유일사 지나 새길치에도 보부상들이 산령각을 지어놓고 단종을 기리는데,이같이 민초들의 바램과 영혼 속에 그들은 누대로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단종비각에서 굽어본 당골과 태백의 산들]
[망경사-문수보살 석상과 용정의 샘물 맛이 일품이라.]
이곳에서 잠시 숨을 둘리고 건너편 망경사로 발길을 돌렸다.정암사를 일군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석상이 출현하였다는 이곳에 와 그 석상을 모시고 불법을 지폈다는 망경사-그 망경사 경내에는 많은 산객들이 추위와 바람을 피해 점심을 들고 있었다.그 석상 바로 아래의 용정(龍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샘이다.물이 솟아나오는 지점은 해발 1,470m 정도의 고지대로 이 땅의 100대 명수(名水) 가운데서 가장 차고 물맛이 좋고 가장 높은 곳에서 솟은 샘이다.샘에다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올리므로 용정이라고 한다.예부터 이 우물물로 천제를 지내는 제수(祭水)로 사용하였다.
청마산우회 황선정 회장은 축대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시산제를 지내자며 자리를 편다.민족의 영산 태백산 천제단에서 내려온 것이 못내 섭섭했지만 그냥 물러설 회장이 아니었다.우리는 북쪽으로 제물을 차려놓고 차례에 따라 시산제에 들어갔다.우리 민족의 오랜 이념인‘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재(三才)에 바탕을 둔 삼태극의 조화로운 이념으로 자연과 합일하였던 선조들과 태백산 산신령께 고하는 순서로 제례가 이어졌으며 회원들의 무사산행과 가정에도 두루 화평하기를 빌었다.
[잠시 제주가 되어 술잔을 받고 천지인에 고하며...]
[문수봉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는 망경사 문수보살 석상:사진출처-BKinside.com]
[거목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구도가 조화롭다.]
[반재로 발품을 파는 청마 회원들]
끝으로 음복을 하고 제물을 나누어 먹은 뒤,하산을 서둘렀다.점심도 거른 채 빈속으로 산행을 하였으니 회원들의 성화가 여간 아니었다.반재로 내려오는 길에는 비닐 포대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눈썰매를 즐기는 산객들도 제법 있었으나 대부분의 산객들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그냥 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크램폰을 차지 않고 스틱도 없이 내려가는 산길은 몹씨 미끄러웠으나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고관절 근처가 조금 아파왔으나 산행을 하기에는 괜찮았다.채민이에게 음달에서 눈 사진을 찍어보라고 이르고 반재에 다다르니 먼저 내려온 전임 회장 일행이 오뎅에다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다들 속이 허하여 건네주는 막걸리를 마다 않고 들이킨다.
소도당골에서 태백산 정상까지 가는데 절반 가량 되는 지점에 있는 낮은 산등인 반재-백단사가 있는 혈리에서 태백산으로 가는 길로도 절반 지점인데,소도와 혈리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옛날에는 반재는 고개가 아니라 물바우골 산등으로 올라오는 산허리에 지나지 않았다.
[반재 이정표-백단사와 당골 하산길이 갈래친디.]
반재에서 오른쪽 당골로 틀어 내려가는 길에는 산객들의 체증이 심해 거북이걸음을 걸어야 했다.당골 상류로 내려서서 평탄한 길로 접어들자 음달이어서인지 계곡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띄는 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 청량감을 느끼게해준다.
당골계곡은 태백산 정상에서 소도동 쪽으로 뻗어내린 계곡으로,망경사의 용정에서 발원한 물과 여러 골짝에서 발원한 물이 섞여 개울을 이루며 흐른다.주변의 숲과 절벽,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며,가뭄에도 계곡물이 크게 줄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1982년 계곡을 따라 1km 가량 포장도로가 열렸고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었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작은 부락이 있었는데.당골마을이라 일컫었다.이는 계곡따라 많은 당집이 있어 무속의 근거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1980년 이전에는 대왕암,백남사,천지암,용화사 등의 암자와 당집이 있었으나 1979년 모두 철거되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당골계곡은 육산인 태백산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기암 절경으로 신선암,병풍암 등의 명소가 있다.약 3km에 이르는 계곡은 경사가 완만하고 반석이 많아 머물기 좋고 계곡물은 한여름에도 손발을 1분도 담가둘 수 없을 만큼 차겁다.
채민이는 이곳에서도 은세계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계곡물이 흘러가는 곳에는 눈에 녹아 묘한 대조를 이루고 돌확 위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소담스럽게 얹혀 있다.이럴 때 눈이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잔뜩 찌프린 날씨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반재에서 뻗어내린 계곡 오른편 능선에는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당골과 사뭇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산객들의 자취가 없는 문수봉 들머리]
[반재서 뻗어내린 능선,당골 왼쪽 산비알에 흘립한 정군바우]
[단군성전 앞마당에서 선 산객의 모습이 엄숙하다.]
철다리를 지나고 문수봉에서 내려오는 등산로를 지나쳤으나 문수봉 하산길에는 산객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단군성전을 지나 드디어 당골광장에 다다르니 많은 인파와 차량이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우리를 실어온 박명지 기사의 전화를 받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얼음조각을 빚는 외국인들이 거대한 톱으로 얼음을 깎아내고 있었다.눈꽃축제를 위해 작품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이하게 만든 얼음조각 앞에 멈춰서서 채민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톱으로 얼음을 켜는 외국인 얼음조각가]
[기묘한 얼음조각을 등지고 모처럼 아들과 함께]
[기이한 형상의 얼음조각]
우리는 대절버스에 타고 내가 미리 예약해둔 태백의 황지동에 있는 태성실비식육식당을 찾아갔다.해발 600~700미터에 이르는 고원에서 키우는 태백의 한우는 풍미가 뛰어나기로 이름나 있는 데다 양도 많고 값도 저렴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태백시에는 곳곳에 한우전문점이 즐비하다.내가 오래 전부터 단골이 된 태성실비식육식당도 그 가운데 한 곳.1인분 250그램(작년에는 300그램)에 21,000원인데 성인은 1인분이면 충분하다.태백은 불의 고장이다.연탄 직화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워내는 한우등심은 입안에서 살살 녹아 그 맛이 일품이다.그래서 평일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차례가 올 만큼 이젠 태백의 명소가 되었다.
아침도 먹는둥마는둥 점심도 거른 채 산행을 해서 잔뜩 출출한 터에 태백의 한우는 그저 그만이었다.19명이 17인분으로 배불리 먹었으니 아마 대도시라면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치뤘으리라.
“오늘 태백산 산행은 괜찮았니?”부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채민이한테 물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산행이라 기억에 남을 겁니다.그런데요,태백산 산행은 너무 싱거워요.3시간이면 충분하니까요.산도 밋밋하고...”
“얘야,출발지점이 600미터이어서 그렇지 1,600미터급의 산이란다.가볍게 보지 말거라.”
“그래도 주목과 눈,곳곳에 나타나는 유적은 눈길을 끌더군요.”
“넷째 주에는 덕유산엘 가려는데 이번에 찍지 못한 상고대와 눈꽃은 거기 가면 장관이란다.”
“아버지,태백에서 경험을 쌓았으니 덕유에 갈래요.”
이렇게 채민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쏟아지는 잠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덕유산을 아들과 함께 하는 하얀 그리움을 꿈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