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눈으로 본 태백산 눈산행<상>
“채민아,오는 일요일 태백산 눈꽃 산행인데 따라 갈래?
너 눈 사진 찍는 건 처음이잖니...내 디카가 고장이 나서 네 힘 좀 빌려야겠다.“
“아빠,천왕봉처럼 힘 들지 않나요?”
“힘들긴...가장 빠른 길로 천제단에 오른단다.
짐은 내가 질 테니 넌 카메라만 챙기면 되는 거야“
“그럼 따라 갈께요.”
거절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흔쾌히 승낙한다.아들 놈이 대견스럽다.곁에서 듣고 있던 아내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처지가 아니니 모처럼 아들을 데리고 산행을 한다고 하자 자기 일처럼 무척 반기는 눈치였다.채민이가 어릴 때는 내가 해외로 출장을 자주 다녀 집을 거의 비웠고 또 몇 년 해외에 주재하다보니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래야 얼마 되지 않았다.그러니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아내는 부자간의 산행을 퍽 잘된 일이 반색을 하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해주었다.
10년 전 지리산 천왕봉에 힘들게 오르고선 산을 멀리한 아늘 놈이 웬일인지 태백산 눈 산행에 귀가 솔깃한 모양이었다.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걸까.군에도 갔다 오고 키가 190cm인 채민이는 주력도 좋고 운동을 좋아해 이젠 듬직한 청년으로 장성했다.그런 아들과 함께 할 태백산 산행을 생각하니 태백이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게다가 심설산행에다 상고대나 눈꽃을 구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부산의 청마산우회 회원 18명과 동해안을 따라 가다 망양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버스에서 내렸다.그 틈을 타서 채민이는 짙푸른 동해바다를 건져 올렸다.팽팽한 수평선의 긴장감,해안선에 부딪히는 포말의 눈부심과 해조음이 귓전을 파고든다.
울진 나곡을 지나 삼척시 원덕의 호산에서 좌회전 416번 지방도로를 따라 간다.왼편 발치 아래로 가곡천의 유장한 물길을 보며 기곡,탕곡을 지나면 풍곡에 다다른다.풍곡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저 유명한 덕풍계곡을 거쳐 용소골로 스며들지만,우리는 우회전 동활리로 차머리를 돌린다.이곳에서 오른편 발치 아래로 동활계곡을 보며 신리 너와집 방면으로 가는 길 양 옆으로는 험준한 협곡을 이뤄 아찔한 장관을 연출한다.이 부근 춘밭골 사람들은 6.25때도 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지냈을 정도로 워낙 오지였다는 동활리-복두산(978m)과 사금산(1,092m)이 암릉 위로 가뭇하고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이제는 여름철이면 한바탕 폭서를 피하기에 최적의 납량터로 바뀌어가고 있다.
신리에서 태백으로 넘는 구절양장의 427번 도로를 따르면 도계읍 구사리 미인폭포를 지난다.호사가들은 이 땅의 그랜드캐년이라고고 부르는 미인폭포는 차창으로 잠시 얼굴을 보여준다.붉은 색 바위가 흡사 그랜드캐년의 협곡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낙동정맥의 산,백병산에서 흘러온 물이 여기 미인폭포에서 곤두박질치며 오십천을 이루다가 삼척의 죽서루를 휘돌아 동해바다에 몸을 섞는다.'구름도 창문으로 스며 넘어간다'는 통리를 지나 태백시로 들어섰다.대간을 종주하면서 무던히도 찾아왔던 태백,이제는 낯설기보다는 정겨운 땅이 되어버렸다.
태백시 황지동을 벗어나 화방재를 거쳐 영월의 상동읍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로 우회전하여 석탄박물관 들머리를 지나자 간간이 잔설이 보인다.백단사 입구를 지나 유일사매표소 앞 주차장에 다다르니 등산객들이 시장통을 방불케할 정도로 운집해 있다.오늘 '날을 잘못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매표소 직원에 따르면 오늘 만 명이 태백을 찾았다고 하니 아연실색이었다.오늘 태백으로 풍경님도 온다고 했는데 얼굴로 모르니 그저 같은 산에 있으려니 여기며 태백의 정기를 듬뿍 마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태백산으로 오른다.인파에 떠밀려 오른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채민이는 들머리서부터 디카의 셔터를 눌러댄다.잔설이 깔린 그 위로 이깔나무가 시린 하늘로 쭉쭉 뻗은 풍경을 담아낸다.나는 네가 좋은 구도를 찍어보라고 귀띔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일일이 이야기 해봤자 제 것이 아닐 것이므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채민이는 속보로 사람들을 앞질러나간다.천천히 가라고 해도 앞서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날 보고 천천히 오라는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난 그동안 제대로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고관절과 발목이 걱정스럽다.아주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다.뒷짐을 지고 허리는 곧추 세우고 가슴을 편다.무거운 배낭무게 때문에 예전의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갈라치면 그럴 때마다 두 손으로 엉치뼈를 지긋이 눌러 허리를 세운다.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많은 인파가 오르기 때문에 걸음은 자꾸만 지체된다.
[수많은 산객들이 밟아 다져진 잔설-검으튀튀하게 변했다.]
[장사진을 이룬 행렬 속을 오르는 청마산우회 회원들]
[태백으로 오르는 산객들의 행렬]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는 새하얀 눈이 소담스럽고...]
[역광을 받은 잔설은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다들 크램폰(아이젠은 상표 이름으로 진로가 소주의 대명사이듯)을 비끌어맨다.채민이한테 크램폰을 건네주니 필요 없단다.내리막길이 미끄러워 쉽지는 않겠지만 내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나도 크램폰을 채우지 않고 오른다.조금 오르니 드디어 처음으로 멋진 주목이 반긴다.길은 오르막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순하디 순하다.
유일사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쳐 오르막길을 올라간다.약간 오르막이어서 체증이 말이 아니었다.더군다나 내려오는 산꾼들과 교차할 때는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마침내 주목군락지에 다다랐다.그곳에서 채민이는 주목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아버지,주목나무가 뭐 예요.?
“응,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로 이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가운데 하나란다.저 늠름한 자태를 보려므나.기막힌 나무잖니?”
“얼마나 오래 사는데 그렇게 칭찬하나요?
“만 년쯤 산단다.생장이 느려 70~80년을 키워도 키는 10m가 안 되고,줄기의 지름이 20cm쯤밖에 되지 않아. 그런데 다른 나무 그늘에서는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자라는,생명력이 어지간히도 질긴 나무지.다른 나무 그늘에서 웬만큼 자라고 나면 그 때부터는 생장이 조금 빨라져서 천 년을 우습게 알만큼 장수를 누린단다.소백산 꼭대기 부근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된 주목 군락에는 천 년을 예사로 넘긴 아름드리 주목 1,500그루가 45,000평의 산비탈을 가득 채우고 있지.”
“그렇게 수명이 길어요.대단한 나무네요.사람은 고작해야 100년도 못사는데...전 오늘 주목을 만나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네요.”
“그렇단다.이 나무는 성질이 고고해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산꼭대기에 산다.한라,지리,태백,설악,오대,덕유,소백,치악,화악,발왕산,울릉도의 800m가 넘는 곳에 자라고,설악산에는 줄기가 옆으로 뻗어 정원수로 인기 있는 눈주목이 자란다.그런데 주목은 욕심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다 잘려나가고 이제 나라 안에 모두 합해봐야 수천 그루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에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에도 자생하며 정원목으로 키우기도 한단다.
“높은 산에만 자라는 한대성 식물이군요.지리산에도 있다구요.접때 제가 본 것은 구상나무잖나요.”
“맞아,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주목과 더불어 보호해야 할 나무지.지리에도 주목이 있단다.”
“다음에 지리산에 가보고 싶네요.구상나무와 주목을 구경하러...”
“알았다,다음에 가기로 하자.그런데 주목은 수형의 아름다움도 경탄할 만하지만,목재의 재질이 붉고 향기로우며 치밀하면서도 단단해 모든 재목 중에서 으뜸으로 치지.주목은 향기가 좋아 관을 만드는 데 쓰며 값이 무척 비싸단다.마를 때 쪼개지는 성질이 있으나 땅에 들어가면 도로 아물어 붙어서 굳기가 돌 같단다.”
“그럼,주목은 약재로도 쓰이겠네요.”
“그렇단다.독감에 효험이 있고 항암제로 쓰이는 택솔도 주목에서 나온단다.생장이 느리다 보니 주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지.택솔은 미국 태평양 연안에서 자라는 주목에서 추출하는데, 그 주목의 껍질에 0.01%밖에 들어있지 않아 환자 한 사람한테 필요한 양인 2g을 얻기 위해서는 서른 그루의 주목이 필요하단다.이 나무는 생장이 몹시 느려서 지름 7cm가 되는데 백 년이 걸려.그런데 이 땅의 주목은 미국에서 자라는 주목보다 그 성분이 22배나 많다고 한다.
“우리의 주목이 그렇게 탁월하단 말이예요!”
“그럼,이 땅에서 자라는 주목은 대단하단다.그리고 93년 우리나라 산림청의 임목 육종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주목 종자의 씨눈에도 택솔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주목씨눈의 인공 배양기술을 개발해 택솔을 양산하였지.96년 10월 한미약품이 중간원료물질에 사이드체인을 붙여 택솔을 만드는 반합성제조기술을 개발해 앞으로 파일럿 생산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9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상품화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단다.
“아,그래서 이 소중한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련번호를 붙여 보호하고 있네요.”
“그렇단다.”
“오늘 태백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주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고마워요.전 아버지가 허구한 날 산에 다니는 것을 달갑잖게 여겼는데...꼭 그런 건만은 아니네요.”
“예끼 이 놈아,전에도 말했지만 산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단다. 버섯만 찾아다니는 이들고 있고,야생화에 파고드는 사람도 많단다.넌 미술학도이니 알겠지만 한 컷의 산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한자리에서 기다리는 산꾼들도 있단다.”
“이제 알 듯하네요.왜 산에 다니는지."
"채민아,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짐작하는 건 위험하단다.그 사람이 진정 무엇을 하며 어떻게 열중하는지를 살펴봐야 하진 않겠니?“
“아버지,또 그 이야길...이젠 알았어요.”
장군봉으로 오르는 능선 곳곳에는 설원이 펼처져 있고 바람이 잠풍한 곳에는 어김없이 산꾼들이 모여 점심을 들고 있었다.아,드디어 함백산이 바라보이는 조망터에 이르렀다.그 오른쪽 멀리,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매봉산의 고랭지채소밭도 보인다.꿈결같이 중첩된 산그리매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오랜 풍상에 가지가 꼬이고 한쪽으로 누운 주목(珠木)]
[내장이 뚫려 시멘트 보형물울 채워 보호하고 있는 주목]
[어린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철책을 둘러친 보호림 일대]
[주목 보호지역 안에 자라는 어린 주목]
[주목을 뒤로 하고 장군봉으로 발길을 옮기는 등산객들]
장군봉에 올라선다.장군봉은 천제단이 있는 영봉에서 북쪽으로 약 300미터 지점에 있는 해발 1,568미터의 산으로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장군봉 정상에는 장군단이라는 사각형의 제단이 있다.자연석 규암을 대충 깨내어 쌓은 장군단은 가로 4m,새로 약 8m,높이 3m 가량의 직사각형 제단이다.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으나 치우천황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천제단과 무관치 않은 제단이다.천제단과 함께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회원들과 천제단에서 만나 시산제를 지내기로 했지만 뿔뿔이 흩어져 오르는 바람에 장군봉에서 이 총무가 일일이 오는 회원들을 안내해준다.
장군단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기막힌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구룡산과 천평(川坪) 일원이다.그때 채민이가 다가오더니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아버지,저건 눈썰매장이죠."하며 묻는다.
"아니란다.저건 미공군 폭격훈련장이야.폭탄 투하로 산정과 협곡이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맨땅이 그대로 드러났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폭격훈련장이 눈이 내리니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내놓고 만 것이다.
"정말이예요.아니 천제단이 가까운데 폭격훈련장이라뇨?"
"지난 79년 건설된 이곳은 태백산에서 남쪽의 구룡산(1,345.4m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능선 서북쪽 계곡을 포함하는 지역이란다.저기가 바로 천평마을(영월군 상동면)이란다.오늘은 일요일이라 미공군 폭격기의 굉음을 들을 수 없어.하지만 평일에는 폭격훈련이 재개돼 지축을 뒤흔드는 폭탄세례로 자연생태계 파괴는 물론,민족의 영산 태백산의 정기는 깡그리 말살되고 있지.그래서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될 수 없는 까닭이지."
천평은 예부터 정감록의 무대로 터잡고 살던 씨족은 없고 항상 주민들이 들고나며 살았던 곳이다.시절이 어수선하면 이곳으로 몰려와 살았고 세상이 좀 나아진 듯하면 곧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다.구한말에는 동학교도와 의병,우국지사가 이 땅으로 들어와 신분을 숨기고 살았고 관리의 횡포와 과중한 세금을 피해 �겨온 양민들이 보따리를 푼곳이다.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허물어진 천제단을 다시 쌓고 독립기원제를 지냈다.잠시 머무는 땅 천평에 그래도 뿌리를 내리려던 그들은 1979년 이곳에 공군부대의 전투기 사격연습장을 만들게 되면서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나갔다.
전하는 말로는,천평 땅을 떠난 사람들은 몇 년 안에 수십명이 죽었다고 한다.오염되지 않는 물과 공기를 마시며 바깥 세상과 동떨어져 있던 천평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자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 적응이 되지 않고 모든 병원체에 면역력이 약해 하나하나 죽어간 듯하다.약초를 캐며 살아가던 그들은 나중에는 고랭지채소도 심었으며 천평의 독일 감자는 머리통만 했다고 한다.천평(川坪)은 내뜨리라고 하는데,시냇가에 작은 들이 펼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그러나 원래는 천평(天坪)이라고 했다.태백산 꼭대기에 길에 있을 때 천령(天嶺)이라 했고,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은 천산(天山)이며,그 아래에 있는 들은‘하늘들’즉 천평(天坪)인 것이다.
[장군봉에서 바라보 태백영봉과 천제단]
[아들이 잡은 천제단 앞의 청산]
[장군봉에서 태백영봉으로 가는 산객들]
[장군봉 주목군락과 태백의산들]
[장군봉 장군단 전경]
[장군단의 옆모습]
[장군봉에서 조망한 당골과 태백의 연봉들-저 멀리 낙동정맥의 백병산이 보이고...]
[천제단에서 바라본 부소봉 능선]
[태백의 영봉에서 천제단을 등진 청마산우회 회원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