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山을 내려놓고-정우일
[사진출처:고둔치 님]
山行 1
꽃이 남기고 간 나무를 껴안은
열매들
앞길을 막아
눈길이 더 나가지
못하고 감긴다
아직은 아니다
俗塵을 걸쳐 입은
내 몸으로는
山行 2
몸을 낮추어 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새들이 알아보고
자리를 비켜준다 아직도 아니다
숲의 고요를 깨는
몸짓으로는
[사진제공:심재후]
山을 내려놓고
妙香山 새벽안개 仰天의 孤雲*天符經 독송
천지사방 떠돈 지 누천년.금정산 보름달
금샘에 들어 앉아 한 몸 되는 우리.이제 알았다고
시작과 아침이 어디서 오는가를 山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놓고,사람의 숲으로 사라져간
저기 落日의 기다림이 별을 떠오르게 하는
정우일(鄭宇一)
*고운(孤雲):신라 말의 대시인 최치원
시인 정우일(鄭宇一)은 누구인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친구 정우일은 속초로 피난와 유년을 보내고 부산으로 옮겨와 젊은 시절을 보냈다.몇 년 전 정읍으로 훌쩍 떠나더니 이젠 서울에서 4년째 머물고 있다.언제 그는 서울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지,아마 또 인연따라 그곳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그는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방랑벽을 지녔다.그의 기벽만큼이나 삶 또한 치열했다.그래도 부산에서 머물었던 시간이 가장 길었을 것이다.그에게서 황해도 구월산과 그의 아버지가 속했던 구월산 유격대원에 대해 들었고 속초를 알았다.그리고 그는 눈빛이 형형하며 예리한 필력을 지닌 검객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그와 나는 말이 필요 없었다.눈빛이면 충분했다.우린 그렇게 젊은 날을 지새웠다.
타고난 시인기질을 지닌 그는 시를 쓰면서도 늘 변방에 머물렀다.시집 내는 것을 몹씨 꺼려하였다.80년대 그와 함께 제주의 중문 색달리에서 100일을 보내며 쓴 30여편의 소중한 시를 몽땅 잃어버린 게 어쩌면 동기였지도 모를 일이다.30년간 시를 쓰면서 몇 년 전 처음으로 <티끌세상 하늘보기>란 시집을 냈을 뿐이었다.지난 12월 9일 큰 아들의 결혼에 즈음하여 예전의 시를 손질하여 같은 제목으로 시집을 선보였다.
오래 전부터 그의 일관된 주제는 우주와 교감이다."詩는 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작은 우주에서 광대무한의 열린 우주를 왕래하는 암호다.시인은 그 암호를 만드는 고독한 장인이다.우리가 어느 순간 참다운 시인으로 불려지기 바란다면,본디 시인임을 버리고 자신의 존재안에 은밀히 감추어진 우주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 거듭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위에 소개하는 세 편의 시는 그러한 그의 주제가 이 땅에서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