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수필

산수(山水)에 대하여

청산신남석 2006. 12. 1. 01:43

 

 

                                      나는 여행자,산을 타는 사람이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하여

                      나는 더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 인간에게는 숨길 수 없는 애틋한 본능이 있으니 그 가운데 하나는「먼데바라기」라 할 것이다.먼데바라기의 요체는‘바다바라기’와‘산바라기’이다.끝간 데 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는 바다바라기가 수평의 행위라면,높디 높은 운평선(雲平線 skyline)을 바라보는 산바라기는 수직의 행위이다.

 

이를 일러 산수(山水)라 하는데,이처럼 산수는 날줄과 씨줄처럼 다이나믹하게 짜여져 있는 공간이다.바다바라기가 흐느끼는 바람이라면 산바라기는 타오르는 불꽃이다.그러므로 바다나 산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하여 우리는 몽상가가 되는 것이다.바람과 불꽃의 오묘한 조화에 따라 산수를 그리워하고 그 속에서 떠도는 행위를 우리 인간은 그토록 오랫동안 갈구해온 것이다.바람을 쫓으면 방랑객이 되고 불꽃을 쫓으면 시인이 되니,본디 우리의 심성은 거기로 돌아가고자하는 본능이 내재해 있는 셈이다.

 

 

바다는 내게 외로움을 심어주었고 산은 그 외로움을 형상화시켜주었다.바다가 내 유년의 터전이었다면 산은 내 장년의 터전이라 할 것이다.나는 한없이 퍼져나간 산들을 바라보며 매월당 김시습이 산에 대해 했던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대저 사람이 산에 이르면 먼저 그 높음을 배우려고 할 줄 알아야 하느니. 또 물을 만나면 그 맑음을 배울 걸 먼저 생각하고 돌에 앉으면 그 굳음을 배울 걸 생각하며,소나무를 보게 되면 그 푸름을 배울 걸 생각하고,일과 마주하게 되면 그 밝음을 먼저 배울 걸 생각하는 태도가 바로 머리를 제대로 굴릴 줄 아는 자의 모습이니라.허나 장차는 저인지를 따라가서 머리를 제대로 굴리려는 자가 매우 드물터인 즉,두고보면 알려니와 필경 산에 오르면 먼저 그 편한 것부터 알고자 기웃거리게 되는...

 

친구들에게 산행을 안내하면서 나는 내 나름의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물론 나 홀로 산행을 할 때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것은 되도록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산을 선택하는 것이었다.그리고 한 번 가본 산길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다시 찾지 않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설령 잘 알려진 유명산을 오를 때에도 나는,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호젓하고 엉뚱한 길이나 아니면 전혀 길이 없어보이는 곳에 새로 길을 만들며 나아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를 때 최선을 다했고,그러한 노력에 힘입었는지 함께 산행을 했던 그 누구도 자그마한 상처나 불상사를 입지 않았으며,누구 한 사람 산행의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았다.산행은 그저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가족의 품에 무사히 당도할 때까지가 진정한 의미의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근교산은 대개 하루치기 산행으로도 가능하지만 먼 산은 늦저녁이나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질주하곤 했다.비몽사몽간에 도착지에 다다랐을 때는 약간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안개 자욱한 강변이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곤 했다.특히나 밤낮이 뒤바뀐 요즘의 나는 산행들머리에 이르면 산행 그 자체보다도 밀려드는 졸음과 한바탕 씨름을 해대는 힘겨운 싸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정신이 맑아지고 원기가 탱천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그것은 아마 위대한 자연의 힘이 주는 혜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이렇게 숱한 산행을 통해서 체득한 것은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산에 오를 수 없고 그 산행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슬픔,또는 기쁨 역시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것이었다.아직도 올라야 할 산이 우리에게 너무 많고 내 발길을 기다리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요,죽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던 연산군 때의 풍류객 성현(成俔 1439~1504)의 말처럼 나 역시 내 삶이 다할 때까지 계속 떠돌 것이고,산을 밟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옛 사람들의 산행법은 어떠했을까.우리의 옛 선조들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거나 기념사진을 찍고,시지프스가 돌을 밀어올리고 나서 허무하게 산을 내려가는 것처럼,산을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다.


오늘날 웰빙 열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건강을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따라서 등산이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또한 세계의 높고 험준한 산을 정복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 승리로 여겨지며 매스컴의 각광을 받는 시대다.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산을 오를 때 등산이나 정복이라는 말의 사용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에 들어갈 때 배설물을 받아들고 나올 수 있도록 미리 그릇을 챙겨 들어갔다.어머니 몸체와 같은 산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또한 산중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노래를 하면 산신령이 노한다고 하여 조심하였다.따라서 산에 오를 때는 반드시 산에 든다하여 입산(入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뿐만 아니라 산에 들 때면 일부러 느슨하게 삼은 짚신인 오합혜(五合鞋)를 신었다.이는 행여 산길에서 적은 미물이라도 밟혀 죽지 않도록 한 배려였다.

 

그리고 그들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상투를 풀고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고 한다.1년 내내 망건으로 죄고 있어야 하는 머리를 풀고 바람 부는 방향에 서서 그 머리를 바람에 맘껏 날렸다.바람으로 빗질하는 이 풍습을 즐풍(櫛風)이라고 했는데,바람의 방향을 가려서 하였다.동풍은 좋지만 서풍이나 북풍에는 하지 않는 법이라서 그날 풍향을 살펴 산행을 하였다고 한다.


즐풍,즉 바람으로 머릴 빗질을 한 다음 거풍 단계로 접어드는데,바지를 벗어 하체를 노출시킨 다음 햇볕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즐풍과 거풍 습속은 은폐하고 얽어매놓았던 생리적 부분을 해방시키는 뜻도 있지만 그 목적은 실리를 취한 것이다.즉,자연 속에 산재되어 있는 정을 받는 동작이자 의식이었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정상에서 하체를 노출시켜 태양과 맞대면시켜던 거풍 습속은 해와 성기의 직접적인 접속으로 양기를 받는다고 믿었던 유감주술에서 비롯된 것이다.지금도 남도에서 거풍재.거풍암 등이 지명으로 남아 있고‘벼랑밭 반 뙈기도 못가는 놈 거풍하러 간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거풍이나 즐풍 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산을 찾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즐풍이나 거풍은 엄두도 낼 수 없을뿐더러 행여라도 그런 풍속을 즐기다가는 망신살이 뻗치는 건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