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30구간<백복령-석병산-삽당령>
[생계령 가는 숲속,바야흐로 동이 트고 어둠이 사윈다.]
백복령-생계령-석병산 남봉-석병산-두리봉-삽당령 17km(2005년 7월 17일)
30차 대간 끊어타기가 1달 넘게 순연되었다.장마에다 산행대장인 내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두 차례나 미룬 나머지 오늘 종주에 들어갔다.이번 30차 끊어타기는 한마디로 대간마루에 부는 시원한 바람과 훼손된 자병산의 처참한 몰골,그리고 석병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교차되는 종주였다.
종주에는 나를 비롯 김익수,김현기,송원경,이재화,전기환,최금구 모두 7명의 동기가 참여했다.7월 17일(음력 6월 15일) 새벽 3시 30분,백복령에서 종주에 들어가 10분 뒤,42번 철탑이 있는 815봉에 다다랐다.그러나 이 봉우리에서 대간은 곧장 자병산 쪽으로 가지 않고 왼쪽(남서)으로 방향을 틀어나간다.
그 까닭은 한라시멘트가 석회석을 채취하느라 자병산 정수리 일원을 송두리채 망가뜨려 마루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날이 어두워 그 자연파괴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다.말로만 듣던 자병산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지 않은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자위해본다.그러나 이런 생각은 생계령을 떠나 826봉으로 오르면서 허망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번 파괴된 현장은 감춘다고 감춰질 일도 이니고 애써 모른 척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42번 철탑을 뒤로 하고 숲속을 헤집고 내려와 43번 철탑을 지나 3시 52분,비포장 도로에 올라서니 갑자기 대간마루가 사라져 황당했다.이 도로는 석회석 채취를 위해 만든 것으로 자병산 남릉 석회석 채취 현장으로 이어지고 왼쪽 백복령으로 길이 열려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동안 길을 찾기 위해 서성거렸다.그러는 사이 도로를 건너 간 현기가 막사 뒷쪽에서 마루금을 찾았다며 소리쳐 부른다.방화선을 따라 834봉에 올라서자 대간은 오른쪽(북서)으로 방향을 틀어나간다.4시 10분,44번 철탑이 있는 810봉에 다다르니 마침내 끊어졌던 자병산 남서릉과 만난다.
이 봉우리에서 대간은 한동안 숲속 길을 따라 서진한다.3분 뒤에 865봉을 거쳐 4시 25분,45번 철탑을 지나면서 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다가 703봉을 깃점으로 왼쪽(남)으로 크게 머리를 돌린다.10분 뒤,백복령쉼터로 빠지는 갈림길(700m)에서 10분간 다리쉼을 했다.이 갈림길에서 대간은 서진한다.헬기장에 있는 795봉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걸음을 재촉하니 동이 터오른다.5시 30분,묘지가 있는 765봉에 다다르자 대간은 오른쪽으로 급격히 꺾이며 북진하더니 677봉에 지나면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다.5시 51분,생계령에 다다랐다.
[생계령의 동기들(상)과 풀섶에 든 현기(하)]
생계령(生溪嶺)은 정선군 임계면 직관리에서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로 넘는 고개로,삽당령에 도로가 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빈번이 넘나들던 고개였다.예전에는 고갯마루에 주막이 있었다 하나 지금 그 길은 풀섶만 웃자라 길마저 희미했다.원추리가 만개한 생계령 풀속에서 현기가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05:57)
생계령(630m)을 뒤로 하고 826봉으로 오른다.숲이 짙어진다.8분가량 발품을 팔다 뒤를 돌아보니 마침내 자병산(紫屛山 872.5m)이 눈에 들어온다.20여년간 석회석을 채굴하면서 정상은 송두리채 사라지고 산 높이는 60미터가 낮아져 812m밖에 안 된다고 한다.왼쪽 아래 계곡의 숲은 흘러내린 폐석에 거의 묻힐 지경이 되었으니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마치 우리 가슴팍을 도려낸 듯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훼손된 자병산 오른쪽의 높은 봉우리는 865봉이며 그 산등성이 주위로 철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백두대간 훼손의 현장.자병산의 현재 모습: 사진-조선일보 최순호기자 촬영
(2005.6.27)-수려한 뼝대(암장)와 희귀 동식물의 보고였던 자병산!]
826봉 바로 아래턱에 다다르니 석회동굴인 강릉 서대굴(西臺窟 지방기념물 36호) 안내판이 나온다.안내판 오른쪽 깍아지른 벼랑길을 15미터가량 내려가면 동굴로 갈 수 있으나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고 험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워보였다.이 일대는 서대굴과 쌍벽을 이루는 동대굴을 비롯 옥계굴,비선굴 등 20여 개의 석회석 동굴이 반경 2km내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이들은 거의 수직동굴로 석병산 석회암층 내에 있기 때문에 종유석,석순,석화 따위가 아름답다.그리고 이 동굴들은 백두대간 임계와 백복령 지역에 분포하는 카르스트 지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카르스트 지형과 동굴의 형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6시 25분,826봉에 올라서자 서진하던 대간은 오른쪽(북서)으로 고개를 틀며 산죽밭이 시작된다.산죽밭은 이곳에서부터 종주날머리 삽당령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대간 길에 주위 조망은 전무하여 갑갑했지만 시원하면서도 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와 땀은 흘리지 않았다.이 무더위에 바람마저 불지 않는다면 종주는 배로 힘이 들 것이다.풋풋한 초목과 흙냄새가 그 바람 속에 실려온다.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펴지는 통쾌함을 맛보며 우리는 대간마루를 밟아나간다.
익수는 "이 바람은 태풍을 몰고 오는 바람일 거야.!"하며 불안한 기색이다."이게 바로 놉새바람이야,내륙의 더운 공기가 동해안의 찬바람을 맞받아치는 푄현상이란 것이지..."하며 원경이가 거든다.그래서 대관령이나 백복령 인근에 폭설이나 폭우가 빈번한 것도 바로 이 현상 탓인 것이다.아뭏튼 나무가 휘어질 정도의 강풍 때문에 우리는 여름날의 불볕 무더위를 피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15분쯤 그렇게 발품을 팔자 대간은 서서히 왼쪽(서)으로 방향을 바꾸고 잡목지대가 이어진다.6시 45분,터널같은 잡목지대를 벗어나자 두 그루의 기이한 생김새의 노송과 만났다.이 소나무도 오랜 세월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꼬이고 뒤틀어졌으리라.
[오랜 풍상을 견디어 낸 노송을 등지고]
기이한 모습의 노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한 구비 돌아나가자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마루금이 눈에 들어온다.사진 왼쪽으로 밋밋한 능선 위의 봉우리는 삼각점이 있는 900.2봉이고.그 뒷쪽 잘룩이를 품은 봉우리가 850봉인데,산계리 절골을 거쳐 석화동굴로 내려가는 고병이재다.고병이재 왼쪽으로는 석병산 남봉(916m)이 보이고 그 뒷쪽에 헌걸차게 치솟은 묏부리가 오늘 구간가운데 가장 빼어난 자태를 드러낸 석병산(1,055.3m)이다.석병산 오른편 저멀리 대간분기봉 두리봉에서 뻗어나간 만덕봉(萬德峰1,033.4m)이 하늘금을 갈랐고,석병산(石屛山) 왼편 뒤로 대간 분기봉인 두리봉(斗里峰 1,032m)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922봉 가는 길에 바라본 대간마루금]
대간이 서진하는 조망터에서 대간을 조망하고 922봉으로 오른다.표고 200미터가량 톺아올라야 한다.함께 가던 익수가 922봉 산세를 살피더니 "20분가량 걸리겠네..."하는 게 아닌가.나는 그의 예리하면서도 동물적인 감각에 흠칫 놀라며,"이제 도사가 다 되었구만!"하며 추켜세우자,그는 "이 정도는 기본이지.백두대간을 2년이나 탔는데.."라며 되받아친다.
그렇다.대간을 종주하면 산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진다.개별산을 제 아무리 많이 섭렵하더라도 대간을 종주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물론 대간 종주가 개별산 산행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다만 이 산의 맥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 지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방법은 대간 종주가 최상이라는 말이다.그런 뜻에서 이제 산행 5년차에 접어든 익수도 알게 모르게 제 나름대로의 산관(山觀)이 확립돼 가고 있는 것이다.
7시 8분,922봉에 다다르니 익수 말대로 정확히 20분이 걸렸다.대간분기봉 922봉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 김밥과 도시락으로 아침을 들었다.7시 40분 다시 석병산 남봉으로 발품을 판다.무성한 산죽밭을 헤치고 935봉에 올라 우리가 우리가 지나온 대간을 뒤돌아본다.전망바위가 있는 922봉 뒤쪽으로 불끈 치솟은 965봉에서 민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아랫쪽 사진은 나중에 삼각점이 있는 석병산 앞 암봉에 올라 돌아본 것으로 앞쪽 왼쪽으로 우리가 올라온 922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줄기는 민둥산에서 965봉을 거쳐 922봉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대간마루금이다.
[935봉에서 뒤돌아본 922봉(좌)과 민등산 능선]
그런데 우리는 민둥산에서 965봉을 거쳐 922봉으로 오지 않고 생계령에서 826봉을 거쳐 922봉으로 올라선 것이다.그런데 사실 대간은 생계령을 거치지 않고 민둥산을 거쳐 965봉으로 오는 또 다른 종주길이 있다.이는“대간마루는 오로지 하나”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람과 산"지에서 펴낸 백두대간 종주가이드는 이 희한한 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백복령에서 생계령을 지나 922봉까지는 임계 카르스트지형이 있다.이런 카르스트지형이 있는 구간에서는 또 다른 능선으로도 종주할 수 있다.카르스트지형이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물에 용해되어 지면이 침식하며 생기는 특이한 지형이다.침식작용에 의해 지면의 어느 부분 또는 지역이 움푹 들어가다 보니 그런 지형의 주변이 마치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모두 능선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카르스트지형 양쪽으로 이어진 두 개의 능선 중 어느 쪽으로 종주를 하던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생계령을 거치지 않고 또 다른 능선으로 종주하는 길은 865봉의 45번 송전탑에서 왼쪽 42번 국도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42번 국도 양쪽으로 농산물판매장이 있는 지점으로 내려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농산물판매장 앞의 42번 국도도 능선이며 현재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이용하는 45번 송전탑에서 796봉으로 이어진 능선도 똑같은 능선이다.그 두 능선 사이에 카르스트지형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능선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42번 국도 양쪽으로 본래의 취지와 달리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농산물판매장에서 카르스트지형 방향에 있는 농산물판매장 뒤로 능선에 올라 서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계속 진행방향으로 나아가면 갈고개 위에 있는 등갈산(796.4m)을 지나서 큰피원마을과 생계령 사이에 있는 비포장 농로고개에 도착하게 된다.농로고개 전 능선 주변은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었으며 밭 언덕에서 오른쪽 생계령 사이의 카르스트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 카르스트지형은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었다.농로고개에서 873봉을 지나 민둥산(938.7m)에서 오른쪽인 북쪽능선으로 진행하면 965봉을 지나 922봉에서 두 개의 능선이 다시 만나게 된다.
[석병산 남봉으로 가며 뒤돌아본 자병산]
전망바위가 있는 922봉을 깃점으로 대간은 거의 북진한다.8시 14분,삼각점이 있는 900.2봉에 다다라 산죽밭을 뚫고 820m 잘룩이로 내려섰다.다시 868봉을 올라 8시 37분,850봉의 고병이재에 다다르니 산행안내판이 세워져 있다.안내판에는 석병산 남봉의 헬기장까지 15분 걸린다고 적혀 있다.고병이재에서 오른쪽 갈림길은 석화동굴이 있는 절골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석병산 남봉으로 걸음을 옮기다 뒤를 돌아보니 자병산이 바라보인다.생계령에서 826봉으로 오를 때는 자병산 서쪽만 보였는데 여기서는 자병산 서쪽은 물론 북서쪽도 볼 수 있었다.
고병이재에서 10분쯤 다리쉼을 했다.고개에는 "백두대간과 석병산"이란 스테인레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8시 53분,석병산 남봉(916m)에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온다.그러나 이곳이 석병산 남봉을 알리는 아무런 푯말도 없었다.짙은 숲속을 헤쳐나간다.시원한 바람이 줄곧 불어와 종주하기에는 정말 좋았다.9시 37분,대간 오른쪽 절골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났다.2분 뒤에는 무덤 1기와 만났다.이제 석병산이 지척인 듯했다.9시 54분,석병산의 해묵은 헬기장(1,030m)에 닿았다.헬기장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헬기장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
[백두대간 안내판과 함께 고병이재에서]
[해묵은 헬기장을 지나며]
석병산 헬기장을 뒤로 하고 5분 뒤인 9시 59분 삼각점이 있는 석병산 앞 암봉에 올라 후미가 오길 기다리면서 사위를 조망한다.이 암봉 건너편에 석병산 정수리가 보이고 정상 바로 아래에는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보였다.칼날 같은 암봉으로 이뤄진 석병산 정수리는 사진 왼쪽에 있고 암장 아래 고사목 뒤로 치성꾼들이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석병산 앞봉에서 본 석병산]
10시 7분,석병산 정수리(1,055m)에서 사진을 찍었다.석병산에서 남서쪽으로는 노추산(1,322m)과 가리왕산(1,561m)이,서쪽으로는 발왕산(1,458m)이 눈에 들어오고 북서쪽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두리봉(1,032m),북쪽으로는 두리봉에서 뻗어나간 만덕봉이 지척이다.석병산 북릉 쪽 발치 아래로는 거대한 바위기둥 형상의 일월봉(日月峰)이 돋아나 장관이었다.
[삼각점이 있는 석병산 앞봉에서 본 석병산과 두리봉]
석병산(石屛山)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암장이 병풍을 둘러친 듯 빼어난 선세를 자랑하지만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리 깊은 오지에 터잡고 있는 탓에 그 전모를 보기란 쉽지 않다.게다가 대간마루금 자체가 조망이 터지지 않는 숲속길이므로 어디서 보더라도 석병산의 한 모습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석병산을 내려와 치성꾼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석병산 아래턱에 제단을 쌓고 무속인이 공을 드리고 있었다.그 가운데 스님 복장을 한 50대의 장한용 씨와 맞닥뜨렸다."석병산은 뭐가 좋은 산인가요.?"하고 말을 건네자,그는 "기운이 무척 센 산입니다.노추산과 오대산 노인봉,석병산이 강릉의 3대 명산인데,그 가운데서도 석병산은 영험한 산이죠."라고 한다.
강릉산악회 회원이며 풍수지리를 연구한다는 장 씨는 자신을 주봉(主奉)이라고 소개한다.20여년 동안 매년 서너 차례씩 석병산을 찾아와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두리봉으로 가면서 바라본 석병산 암장은 족히 300~400미터는 됨직했는데 장 씨에 의하면 그 모습이 할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석병산 정수리에 올라]
석병산 정수리에서 건너다본 일월봉의 모습이다.흡사 삼매에 든 부처님 형상을 한 일월봉으로 산악인들이 오르고 있다
[거대한 바위기둥인 일월봉-삼매에 든 부처 형상이다]
강릉의 풍수지리가인 장한용 씨와 헤어지려는데 그는 나에게 "아니,일월문은 구경하고 가야죠."한다.그래서 그가 일러준 대로 5미터쯤 내려서니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문과 마주쳤다.일월문이었다.장 씨는 일월문을 보고 "거울처럼 생기지 않았나요.?"하며 일월문(日月門)을 보고 절을 네 번 반 한 뒤,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절을 하고 내가 품었던 소원을 빌었다. 일월문을 보니 남해 금산의 쌍홍문이 연상되었다.부처님이 쌍홍문을 통과했다는 전설처럼,일월문도 거대한 문으로 일월성신이 넘나들며 거울처럼 맑은 기운이 넘쳐나는 듯했다.보름 날,이 일월문에 와서 일월문으로 비치는 달빛을 보면 가히 환상적일 것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월문을 뒤로하고 삼각점이 있는 암봉으로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후미대장 현기가 "신 대장~"하며 부른다.두리봉으로 가기 위해 5분이 넘도록 기다렸는데도 내가 나타나지 않자 나를 부른 것이었다.나는 강릉의 풍수지리가 장한용 씨 만난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들려주었다.
[삼라만상이 거울처럼 보인다는 일월문]
두리봉으로 간다.대간 길은 키낮은 산죽천지였고 숲은 울창해서 주위 조망은 할 수 없었다.그런 길을 12분쯤 발품을 팔아 1,021봉 근처에 이르자 오른쪽으로 조망이 터지면서 석병산의 거대한 암장이 한눈에 들어왔다.수백 길은 됨직한 석병산의 뼝대(암장)는 볼만 했다.뼝대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 빗돌이 있는 석병산 정수리이며,그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바위는 삼각점이 있는 암봉이다.그리고 정수리에서 비스듬히 뻗어내린 바위가운데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일월봉이다.일월문은 정수리 바로 아래 숲이 띠를 이룬 윗쪽에 자리잡고 있다.
현기,익수,그리고 기환이가 석병산 뼝대(암장의 이 고장 말)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았다.석병산 정수리 바로 아래 검은 부분에 일월문이 있다.
[1,021봉 근처에서 돌아본 석병산의 거대한 뼝대]
[1,021봉 근처에서 석병산 거대 뼝대를 등지고]
석병산 암장을 조망하고 두리봉으로 가는 길 또한 온통 숲속 길이며 산죽이 줄기차게 이어졌다.10시 35분 해묵은 헬기장이 있는 995봉을 지나면서 서진하던 대간은 오른쪽(북북서)으로 급격하게 꺾인다.10시 48분 두리봉 아래 991봉에 다다라 11시 10분까지 목마름을 추기며 간식을 들었다.
11시 16분,두리봉(1,032m)에 올라서니 나뭇가지에 두리봉 안내판이 걸려 있다.두리봉(斗里峰)은 그 생김새가 두루뭉실하다는데서 비롯된 산명으로,대간분기봉이다.대간은 서진(西進)하고 만덕봉은 북쪽으로 갈래쳐나간다.
[대간분기봉,두리봉에 다다라]
이제 두리봉에서 삽당령으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1시간 반 정도면 오늘 종주도 마감될 것이다.늘 그렇지만 마지막 종주날머리로 내려갈 때는 길고 긴 종주길을 밟고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거리며 스스로를 일깨운다.일종의 최면을 건다고나 할까? 길은 부드럽고 완만했다.
11시 27분,대간이 북서진하는 930봉을 지나쳐 산죽밭을 허위단심 헤쳐내려간다.10여분 발품을 팔았을까 말까,느닷없이 내 휴대폰이 올린다.기환이의 안사람 영란 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밧데리가 나간 기환이한테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자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기환이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병원의 응급환자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는 문의에다 어제까지만 해도 며칠 더 있겠다는 환자가 곧장 퇴원수속을 밟으려 한다는 둥,휴일인데도 전 원장의 업무는 쉴 사이가 없다.이 깊은 산중에서까지 세상은 그를 가만 놔 두지 않는다.의사 역시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임이 분명하다.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의사들은 휴일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병원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고자 하는가보다.
[휴일에도 원격진료를 하는 전기환 원장]
선두의 재화와 원경이는 휑하니 달려나가고 나머지 종주팀이 866.4봉 근처의 산죽밭에 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죽밭에서 잠시 자세를 취한 친구들]
두리봉에서 줄곧 남서진하던 대간은 삼각점이 있는 866.4봉을 지나 850봉에 이르면 오른쪽(북서)으로 방향을 틀어나가다 856봉에서 다시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 삽당령으로 서진한다.그리고 대간분기봉인 850봉에서부터 대간은 정선군과 헤어지고 올곧게 강릉 땅으로 들어선다.삽당령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 다다르자 시원스럽게 하늘로 뻗은 미끈한 몸매의 적송군락을 만났다.
[산죽밭을 지나 만난 적송군락]
[삽당령 인근 임도에서 만나 아름다운 동자꽃]
삽당령에 도착하기 직전 임도가 나오는데 그 지점에서 동자꽃을 만났다.오늘 종주 내내 심심찮게 동자꽃과 노루오줌풀에 눈길을 빼앗겠는데,뿌리에서 노루의 오줌 냄새가 난다는 노루오줌풀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뤄 지친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삽당령 인근 임도에서 만난 노루오줌풀]
이재화 산우회 총무의 주력이야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대간 종주에 겨우 세 번 동참한 송원경 동기의 끈기와 주력은 대단했다.이날도 선두의 재화와 보폭을 같이 했으니 우리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한때 갑상선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몸이 야위었으나 꾸준이 약을 먹으면서 운동을 통해 예전으로 돌아온 원경이-그의 백두대간에 대한 열정은 비록 시작은 늦었으나 그 누구 못지 않게 뜨겁다.
이순(耳順)이 가까운 나이에 자칫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점에서 백두대간이란 화두는 분명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그래서 원경이는 백두대간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대간꾼이 되었다.우리 나이에는 크든 작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삶의 목표가 없는 생활은 활력이 없고 무의미할 것이다.그런 뜻에서 백두대간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충전하는 청량제 노릇을 하게 된다.
원경이 화이팅!
[삽당령으로 내려서는 이재화 총무(앞)와 송원경(뒤)]
12시 45분,오늘 종주의 날머리인 삽당령에 다다르니 재화와 원경이는 벌써 고개마루 간이음식점에서 막걸리 잔을 비우고 있었다.15분가량 그렇게 우리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허름한 천막의 간이음식점에는 할머니가 막걸리와 메밀전병을 팔고 있었다.막걸리도 맛이 일품이었지만 메밀전병은 특미였다.현기는 맥주가 없나 싶어 기웃거렸지만 술이라곤 막걸리밖에 없으니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렇지만 막걸리 맛을 본 친구들은 오랫만에 맛 있는 막걸리를 마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삽당령(揷唐嶺)은 눈이나 비,또는 안개가 늘 끼여 있고,고개마루에 연못이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강릉의 옛 읍지 임영지(臨瀛誌)에는 구정선 군수의 묘비에 "삽당령(揷塘嶺)"으로 표기돼 있었다고 한다.삽당령 연못은 6.25동란 직후만 허더라고 고개마루의 습지에서 고장난 자동차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가 다음날 견인하러 갔더니 습지로 가라앉았다는 촌로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곧 삽당령 정상에 고원습지가 있었다는 것이다.도로를 넓히고 산림청에서 동물의 생태이동통로(육교)를 개설하면서 고원습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그러므로 음은 같으나 한자,즉,뜻이 다른 고개의 원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종주날머리 삽당령을 떠나 35번 국도를 타고 정선군 임계에 다다랐다.거기서 왼쪽 42번 지방도로 꺾어들어 다시 백복령을 넘어 동해시로 들어섰다.한때 이곳에 머물러 지리를 잘 아는 기묵이의 인도로 삼척시 근덕에 있는 장호항을 찾아갔다.피서철인데도 장호항은 붐비지 않고 한적했다.못난이 횟집에 자리를 잡아 땀으로 얼룩진 몸을 ?고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동해안의 횟감이야 이 여름철에 무엇이 있을까마는 도다리와 싱싱한 오징어회를 시켰다.원경이가 한턱 내는 바람에 우리는 작열하는 장호항의 땡볕을 등지고 종주뒷풀이를 했다.
[종주정보]
*때:2005년 7월 16일~17일(무박종주)
*참가자:김익수,김현기,송원경,신남석,이재화,전기환,최금구 7명
*이동수단:오기묵 동문 봉고
*차량 이동경로
부산~7번 국도~삼척시~42번 국도~백복령~임계~삽당령~임계~백복령~삼척~7번 국도~삼척시 근덕면 장호해수욕장~7번국도~경주~부산
(4)통과시각/지점 및 종주거리(2005년 7월 17일)
03:30 백복령(780m)...(0.25)...03:40 815봉(42번 철탑,좌-남서진)...03:48 43번 철탑...(0.25)...03:52-04:05 임도...834봉(우-북서진)...1.1km...04:20 810봉(44번 철탑,서진)...04:23 865봉...1.0km...703봉(남진)...(0.08)...04:35-04:45 갈림길(좌-백복령 쉼터)...755봉(서진)...05:05-05:10 795봉(헬기장)...1.25km...05:30 765봉(묘지,북진)...(0.38)...677봉(서진)...1.25km...05:51-05:57 생계령(630m,북서진,좌-피원/우-옥계면 영일)...0.9km...06:25 826봉(전망바위,북서진)...06:40 670m 갈림길(서진,좌-임도,영마루)...1.35km...07:09-07:40 922봉[전망바위,북진,좌->민둥산(938.2)]...07:55 928봉...935봉...870봉...1.25km...08:14-08:18 900.2봉(삼각점)...08:28 868봉...880봉(서진)..1.25km...08:37 916봉(헬기장)...1.25km...09:37 석병산 남봉(921m,헬기장,우-절골)...0.75km...09:54 석병산 헬기장...09:59-10:00 석병산(삼각점)...10:04-10:12 석병산(石屛山 1,055.3m,서진)...995봉(북북서진,두리봉 안내푯말)...10:35 991봉(헬기장)...1.5km...10:48-11:10 두리봉(斗里峰 1,032m,삼각점,서진,우->만덕봉 1,033.4)...11:19 1,018봉...0.88km...930봉(북서진,좌->944봉)...902봉...878봉...861봉...1.88km...12:10 866.4봉(삼각점)...0.5km...850봉..(북서진)...12:27 856봉(삼각점,헬기장)...0.89km...12:45 삽당령[690m,성황당.표석,35번 국도(정선 임계<->강릉 옥계)]
*종주거리/시간:17km/9시간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