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숨결 어린 천성산을 찾아서<용마산악회 납회산행>
“높고 가파라 맑고 빼어나다.천 송이 부용꽃이 구름 속에 거꾸로 넘어져 있는 듯,북으로 취서산(鷲捿山)에 접하고 동으로 우불산(于佛山)에 연이어 중첩하여 얽혀나간다.”
대동지지가 그려보이는 천성산(千聖山)의 모습이다.여기서 우불산은 지금의 대운산을 이른다.경주 남산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남남서로 뻗어나가는 낙동정맥의 끝머리에 솟아나 있는 천성산.거기 정수리에 송곳 모양의 벼랑이 발달하여 여러 모양의 암릉이 치솟아 산을 이룬다.「세종실록지리지」는 그래서 이 산을 더러는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른다고 적고 있지만 지질학에서는 고제3기(古第三期)에 일어났던 단층운동의 결과라 하여 따로 불국사산지라 일컫는다.
그런데 대동지지는 물론,대동여지도,동국여지도,산경표 할 것 없이 옛 기록들은 한결같이 이 산을 북서쪽 취서산에 연이은 것으로 그리고 있다.취서산에서 한껏 자세를 낮춘 낙동정맥은 정족산으로 맥을 대기 전에 양산천이라는 단층 하상(河床)을 가로지르고 있다.묘한 것은 서쪽의 양산천이 이 산줄기 따라 남서로 흐르는데,동쪽의 회야강은 거꾸로 북동으로 흐른다.그만큼 이 산은 그 놓임새부터가 유별나다.
요즘에는 천성산(811.5m 지금의 천성2봉)에서 원효산(922.2m 지금의 천성1봉)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각각 천성산과 원효산으로 달리 불렀지만 워낙은 이 산 덩치를 모두 원적산(元寂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예전의 원적산이란 산이름은 지금은 미타암 뒤쪽에 솟은 원적봉에 그 자취가 남아 있을 뿐이다.물론 그 산이름들은 각기 그 아래 내원사,원효암의 산이름에서 따온 것이다.그러므로 이 산은 역시 이 산 품안에 둥지를 튼 사암들에서 유래를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11월 12일,오늘은 금년 한 해를 결산하는 용마산악회 등반대회 겸 납회산행을 천성산에서 갖는 날이다.40대 초반에서 70대 초반에 이르는 동문 180여 명이 참가한 이번 산행은 천성산 등산로 가운데서도 가장 짧고 평이한 코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해서 웅상읍의 영산대학교에서 최단시간에 천성산 주릉이자,낙동정맥 마루금에 올라 천성2봉을 거치지 않고,그 산허릿길을 돌아 상리천 상단의 잘룩이인 집북재에서 점심을 들고 성불암계곡으로 내려와 내원사매표소에서 산행을 마감하기로 했다.이럴 경우 산행시간은 휴식시간을 넣더라도 3시간 30분 가량 걸리는 게 일반이다.사실 산행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오늘은 축제분위기에서 동문들의 화합과 단결을 이루는데 더 큰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동문 180여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룬 2006년 천성산 납회산행-
영산대학교 주차장에서 천성산 주능을 배경으로 선 동문]
나는 이재화 동기한테 선두를 맡기고 산행부대장인 오기묵 후배에게 사진과 중위 그룹을 챙기도록 하고 김법영 부총무에게 후미를 맡겼다.지난번 설악 북주릉 종주 때 무리가 온 허리는 많이 부드러워졌으나 오른쪽 장단지는 여전히 당겨 베이스캠프를 보며 원격으로 산행을 지휘하기로 한다.[이를 우얄꼬!]
영산대학교 주차장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동문들이 산으로 들어간 뒤,2대의 대형버스와 4대의 25인승 버스를 산행날머리 천성산 서쪽 내원사 아래 매표소주차장으로 몰았다.그런데 마지막 가을을 즐기려는 산행객과 유산객들의 차량이 만원을 이뤄 우리는 주차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뒤돌려 나오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목욕과 산행뒷풀이를 하기로 한 통도사 근처의 해운관광자연농원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들고 집행부와 교신을 하며 190명 분의 저녁 식사준비를 챙겼다.그러므로 오기묵 후배와 김법영 부총무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이번 산행기를 쓰게 되었다.그리고 내원사 전경 사진은 다음 블로그의 호젓한오솔길 님의 제공에 힘 입었음을 밝혀둔다.산에 들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천성산은 내게는 더욱 높고 깊어 마음이 한자리에 있질 못했으니...이제 아쉽지만 사진으로나마 천성산의 속살을 따라 가본다.
[편안한 오솔길 같은 천성산 주릉 오름길-선배님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영산대에서 천성산 주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산길이지만 막바지에 이르면 한바탕 된비알을 톺아올라야 한다.40분가량 발품을 팔아 정족산에서 천성2봉으로 이어지는 주릉에 올라선다.여기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천성2봉으로,오른쪽 능선을 따르면 주남사거리를 거쳐 정족산으로 가게 되지만 오늘은 집북재로 가기 위해 오던 그대로 산허릿길을 밟아나간다.콧노래라도 부를 정도로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가면 샘터가 나온다.이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속 이어지는 산허릿길을 따르면 노전암으로 내려가는 산하동계곡과 만나게 된다.이 산하동계곡을 적시는 상리천은 수량도 많고 그늘이 져서 여름철 산행을 하며 쉬어가기에 아주 좋은 골짜기이다.집북재는 이 산하동계곡을 지나 6분쯤 치올라야 한다.
[집북재에 다다라 점심을 드는 대선배님들-70세가 넘었지만 늘 선두에 선다]
드디어 집북재에 올라섰다.이 집북재는 천성2봉의 지릉인 북서릉이 천성공룡으로 뻗어내리다가 잠시 수긋해지며 성불암계곡과 산하동계곡을 양분하는 상단 잘룩이다.
천성산을 대표하는 절집은 내원사와 원효암일 것이다.그런데 이 두 사암뿐만 아니라 이 산 둘레에 구름떼처럼 산재하는 사암들에는 모두 원효(元曉) 대사의 입김이 서려 있다.안적암,조계암,법수원,미타암,원적암,홍룡사,성불암,금봉암,익성암,노전암,금강암,그리고 대운산의 불광사,행자암,장안사,척판암,백련암,내원암.그리고 터만 남은 운흥사,이름만 전하는 불지사,대원사가 그것이다.그 많은 사암들에 일제히 때를 알리기 위하여 이 산 북서쪽 상리천의 상단 잘룩이 마루에 북을 매달아 쳤다고 해서 지금도 거기를 집북재(集鼓峙)라 부르고 있다.그런 집북재도 지금은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짙은 수림에 싸인 채 산객들의 쉼터 노릇을 하고 있다.
[집북재에서 군데군데 흩어져 점심을 들며 모처럼 여유를 즐기는 동문들]
[파장의 집북재-후미의 동문들이 하산길을 서두른다.]
집북재에서 점심을 들고 동기들끼리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혹은 낮잠을 즐겼다.1시간 뒤에 하산길에 들었다.나는 오후 2시쯤 재화한테 휴대폰을 넣어보았으나 통화불통 지역이라 교신이 되지 않았다.하산은 집북재에서 천성 공룡능선 왼쪽으로 빠지는 성불암계곡 길.성불암계곡 길은 산길이 부드러운데다 계곡미가 일품이다.
[성불암계곡 하산길-그 빛나던 푸르름은 다 어디로 가고?]
[가파른 구간에는 로프도 매여 있지만-하산은 늘 어려운 법이라]
[낙엽이 지천으로 깔린 성불암계곡-이제 가을빛도 점점 스러지누나]
[人山人海-동문들의 발길에 체증이 걸렸나?]
[단풍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마지막 가을을 담고]
가파른 곳에는 로프가 매어 있지만 대체로 순탄한 산길이 이어진다.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낙엽이 깊게 쌓여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은데다 물길이 가까워서인지 단풍의 때깔이 곱고 아름다웠다.올해 이렇게 불타는 듯한 단풍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성불암계곡의 단풍은 장관이었다.
[마지막 촛불처럼 이 가을을 불타오르게 하소서!]
[역광을 받은 단풍의 스펙트럼-황홀 그 자체구나]
[성불암계곡의 반영(返影)-산빛도 물빛도 한데 얼비치누나]
성불암이 가까워지면서 길은 두 갈래 길.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과 산허릿길을 따라 성불암으로 가는 길.두 길은 나중에 만나지만 대부분의 동문들은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이제 성불암계곡이 끝나고 산하동계곡의 상리천과 성불암계곡의 용연천이 두물머리를 이루는 합수점에 다다랐다.이곳은 저 유명한 천성공룡능선의 산행들머리이기도 하다.
두물머리의 단풍은 마지막 피크를 이루고 있었다.성불암계곡을 빠져나온 동문들은 산행으로 얼룩진 얼굴과 손을 흐르는 용연천에 씻고 잠시 물가 바위돌에 앉아 다리쉼을 했다.
[상리천과 용연천 두물머리에서 다리쉼을 하며]
한편 해운관광자연농원 측에 산행뒷풀이를 부탁한 나는 대절버스를 타고 하북면 용연리 삼거리에 차를 주차시켰다.그리고 선두의 재화와 후미를 맡고 있는 김법영 부총무에게 번갈아 휴대폰을 띄웠으나 아직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그래서 매표소주차장의 형편도 알기 위해 내려오는 차의 등산객들에게 물어보니 주차장은 아직도 초만원이어서 큰 차는 아예 올라갈 생각을 하지 말란다.
[성불암계곡과 노전암으로 가는 산하동계곡 들머리에서 올려다본 천성공룡 1봉과 2봉 산줄기]
[내원사 전경:자료출처/호젓한오솔길 님]
내원사는 매표소주차장 산신각이 있는 다리를 건너 3km 가량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한 터전에 자리잡고 있다.그 내원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 연기설화가 전해내려오고 있다.원효대사가 동래군 장안면 불광산(佛光山.지금의 대운산) 척판암에서 수도할 때의 일이다.선정에 들어 있던 원효가 무엇에 흘린 듯 벌떡 일어나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다.그러다 부엌의 문짝을 떼어“효척판구중(曉擲板救衆)”이라 쓰고 온 힘을 모아 공중으로 날렸다.
한편 중국의 태화사에서는 그 시간 스님,신도 천여 명이 법당에 모여 법회 준비에 부산했다.그런데 웬 널판지 하나가 경내 상공을 몇 바퀴 선회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마당에 털썩 떨어지는 것이었다.“대체 저게 무슨 물건이람.더구나 거기에 무슨 글이 씌여 있지 않은가?”호기심이 동한 나머지 법당 안의 스님들도 너도나도 뛰쳐나와 왁짜지껄하게 이 이상한 판자 주위를 에워쌌다.바로 그 순간 조금 전까지 스님들로 바글대던 법당이 절 뒤의 큰 바위가 굴러 내림과 동시에 일거에 폭싹 주저앉았다.
실로 간발의 차로 죽음에서 벗어난 스님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한 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판자에 씌여진 것처럼 그곳에서 천 리 밖에 있는 신라의 원효 대사가 급한 대로 판자를 던져 법당 안에 머물던 자신들을 밖으로 빠져나오도록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생명을 구한 스님들과 신도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질 수밖에.원효 대사가 지닌 도력의 깊이를 실감한 나머지 그 길로 제자가 되겠다며 한 스님이 말하자,곁에 있던 스님들 모두가 누구라 할 것 없이 해동의 원효 대사를 찾아가자고 난리들이었다.대사를 찾아온 스님은 무려 천 명이나 되었다.좁은 암자에서 수도중이던 대사로서는 제지들이 배움을 청하는 데 고맙기는 했으나 당장 이들이 머물 곳이 없어 쩔쩔매야만 했다.
대사는 우선 절 지을 만한 땅을 찾기로 했다.이산 저산 헤매며 절터를 고르고 있던 대사에게 어느날 갑자기 백발의 산신이 나타나 그를 마중하는 것이었다.한참을 동행하다가 산신은 지금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를 보니 천 명이 머물 만큼 넓고 평평한 것이 더없는 길지였다.
절은 곧 지어졌고 그 이름을 내원사(來遠寺)라 했다.중국에서 많은 스님이 찾아왔다는 뜻을 취해 그 이름을 지었다.이런 유래와 상관없이 오늘날에는 내원사(內院寺)라 바뀌쓰고 있다.내원이란 바로 석가모니불이 인도땅 카필라 성에서 태어나기 전에 머물던 도솔천 내원궁의 그 내원(內院)을 일컫는 말이다.[내원사 연기설화 출처:김승호]
내원사를 품고 있는 산을 천성산이라 부르게 된 데도 내력이 있으니 중국에서 온 천 명의 스님들이 지성으로 수행한 끝에 모두 성자가 되었으므로 그리 붙였다 한다.
내원사는 한편 선찰(禪刹)로도 이름 높았다.특히 현대 한국 선종을 중흥시킨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법제자 혜월(慧月 1861-1937) 스님이 이곳에 주석하면서 많은 선승을 배출시켰다.원효 대사가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면 혜월 스님은 천진도인(天眞道人)이라 할 만하다.천진하면 동심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한다 했다.해서 스님은 자연과 벗한다.소와 절친하게 지나는가 하면 구렁이 등의 뱀과 대화를 나눈다.그분의 입적하는 모습 또한 자연과 다를 바 없다.솔방울을 자루에 가득 담아가지고 절로 내려오다가 무심히 서서 열반에 드셨다니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공비들의 방화로 소실된 내원사는 1955년 비구니 수옥(守玉) 수님이 5년에 걸쳐 13동의 건물을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지금 대표적인 비구니 선원으로 옛 조사의 선풍을 잇고 있다.
[참고:화엄벌과 화엄늪-환경부에서 지정한 고원습지 지역으로
건너편 정족산의 무제치지늪과 더불어 휘귀동식물이 서식한다]
내원사에서 천성1봉으로 오르는 길은 물론 가파르다.더구나 천성1봉(예전의 원효산) 정상에 올라서 보는 산줄기는 실로 융융하다.그 중에서도 주능선을 따라 바위지대를 타고 내려와 만나는 화엄벌에는 지금까지도 원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는 듯하다.이 산 사암들의 스님네들을 모두 이 산꼭대기까지 불러다 올려놓고 화엄경을 강의한 원효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듯하다.사찰이 제자리를 잡고 난 뒤 천성산에는 자연히 사중의 내왕이 많아졌고 스님들 가운데는 칡넝쿨에 걸려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이런 불평을 전해들은 원효 대사가 어느? 산신을 찾아가 부탁했다.
“산에 칡이 중구난방으로 뻗어 봉변을 당하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요”그 뒤부터는 천성산 칡은 더 이상 사방으로 뻗어나지 않고 머리를 대신 위로 든 채 자라나게 되었다.이래저래 내원사는 원효 대사의 덕과 자비가 가득 서린 곳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화엄벌에 있는 화엄늪은 환경부가 지정한 고원습지로 끈끈이주걱,이삭귀개 등 희귀동식물이 서석하는 곳이다.학술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곳이며,목책을 쳐놓아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도룡농 소송으로 유명한 지율 스님이 천성산을 지키고자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곳의 생태계와 천성산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우리 동기들은 매년 정월 한해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이곳 화엄벌에서 지낸다.
[내원사 매표소에서 하북면 용연 삼거리로 이어지는 2km의 포장길]
오후 3시경 드디어 재화와 통화가 되었다.이제 막 선두가 매표소주차장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매표소주차장에서 용연 삼거리까지 2km를 20여분 걸어 내려오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주차장 상황을 물어보았지만 꼼짝 말고 삼거리에서 기다려 달란다.오늘 천성산은 수많은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이다.20여 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최고참 선배인 9회 선배 4분(70세 초)의 모습이 보인다.
“선배님 고생 많으셨죠.오늘 산행은 어떠 했는지요?”하고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하니,“신 대장,오늘 코스는 멋져,길도 순하고 단풍도 너무 아름다웠어.”하며 연신 함박웃음을 짓는다.“그렇게 단풍이 환상적이던가요.”“아마 올해 최고의 단풍을 성불암계곡에서 봤다네.”“형님들의 주력은 젊은이 못지 않으니 대단하십니더.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죠?”하고 힘주어 말하니,한동대 초대회장님은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면 누구나 다 그리 된다네.게으름을 피웠더라면 우리 나이에 벌써 양로원에 있을 걸쎄...허허허”하고 웃으신다.정말 그랬다.이렇게 모범을 보이며 후배들을 다독거리는 선배님들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했다.이번 천성산 산행을 기획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낙오나 사고도 없기를 얼마나 기원했던가.첫째도 안전이요,둘째도 안전임을 회장님과 집행부는 선결요건으로 삼았다.다행히도 아무 탈 없이 하산을 마쳤다니 기쁘고도 고마웠다.
동문들이 줄을 지어 삼거리로 다가온다.오는 순서대로 버스에 승차를 시키고 해운관광자연농원으로 버스를 출발시켰다.하영수 용마산악회 회장님이 중위그룹에 끼여 삼거리로 다가왔다.“신 대장,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빨리 해운관광자연농원으로 가보게.”“예,그리 하겠습니다.”산행뒷풀이 준비를 위해 해운관광자연농원으로 갔다.하 회장님은 나보다 4회 선배이지만 재작년 환갑을 맞아 백두대간을 형수와 함께 완주한 베테랑 산꾼이다.후배 산꾼들을 끔직히 사랑하여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아끼지 않는다.매번 산행지가 잡히면 나와 함께 반드시 답사를 하여 코스를 꼼꼼이 분석하기도 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자문을 하곤 하므로 나 역시 커다란 짐을 덜 수가 있는 것이다.산을 알고 중책을 맡는 것과 모른 채 단순히 무늬만 회장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선두가 용연 삼거리에 오고 40여분이 지나자 김법영 부총무가 이끄는 후미가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대규모 그룹산행의 3대 요건은 산행은 4시간이 넘지 않아야 하고,그 대상산이 명산의 풍모를 갖추야 하며,목욕이나 식당이 산행지로부터 지근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그리고 참가한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식당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설령 산행이 좀 어렵더라도 목욕이나 산행뒷풀이가 깔끔하게 처리된다면 무관하겠으나 아무리 산행이 수월하고 좋더라도 산행뒷풀이가 엉망이라면 두고두고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게 되니,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법이다.그리고 이 모든 과실은 결국은 산행대장의 무능력으로 귀결되니 나로서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있는 해운관공자연농원에 마련된 저녁식사]
오후 5시,해운관광자연농원에는 190인분의 식탁이 차려졌다.각 기수 별로 테이블을 배정하고 착석하니 그 기세가 대단했다.말끔하게 사우나를 하고 나온 동문들은 버섯전골로 저녁을 들며 회장님의 건배에 따라 올해의 등반대회를 시작했다.총동창회 회장을 대신하여 사무총장이 격려사를 했고 전임 회장의 인사말과 집행부 소개에 이어 등반대회 결과를 발표했다.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승학산-구덕산-엄광산-구봉산-모교로 이어지는 구간을 각 기수별 선수가 출전하여 우승을 다투었는데,사고의 위험도 있어 작년부터 1년동안 산행에 참여한 인원수를 집계하여 수상하는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선배기수들이 뒷풀이를 즐기는 모습-백두대간을 완주한 형수님도!]
[용마산악회의 발전과 단결을 위한 건배!]
[제7회 동창회장기배 쟁탈 등반대회에 앞서 한동대(9) 초대회장의 건배제의]
심사결과 대상에는 33회 삼삼산악회,우승에는 23회,준우승에는 회장님 기수인 17회가 차지했으며 산행에 참여한 모든 동문들에게는 무릎보호대와 고급 등산양말이 선물로 전해졌다.2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등반대회 뒷풀이는 선후배가 한데 어울려 내년을 기약하며 마지막 교가를 제창으로 끝을 맺었다.부산으로 돌아와 회장님을 비롯 집행부끼리 단합대회를 가져 한해를 결산하며 자축하였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위에 보이는 파이는 매표소주차장에서 용연천,신록이 피어나는 4월의 풍경이며,동문 가족들이 단풍을 즐기는 모습과 화엄벌,그리고 집북재를 한곳에 모았다.>
[천성산 산행정보]
*최고 인기 내원사 코스
천성산 자연을 대표하는 내원사계곡~내원사~깔딱고개 길을 따라 천성산 제2봉을 왕복(매표소 기준 4시간)하거나,혹은 성불암계곡이나 산하동계곡 또는 천성공룡릉을 거쳐 제2봉에 올랐다 내원사계곡을 내려서는 코스(5시간)에 가장 많은 산객들이 몰린다.35번 국도변 용연 삼거리에서 매표소 까지 2km 구간은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그러므로 20~30분 이상 걸어 들어가야 매표소에 이르게 된다.이런 불편을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용연리 삼거리 다리를 지나자마자 왼쪽 능선에 올라 금봉암을 찾아본 뒤 성불암계곡 합수머리로 내려와 공룡능선을 타거나 성불암계곡을 타고 오르면 된다.
매표소에서 약3km 떨어진 내원사주차장까지는 승용차 진입이 가능하다.양산시내에서 내원사까지 택시요금은 12,000원 안팎.내원사 문화재관람료 어른 2,000원,청소년 1,200원,초등학생 1,000원.주차료 대형 5,000원,소형 2,000원,매표소(055-374-6465)
*웅상 기점 코스
천성산 동쪽 웅상 기점 코스는 노선버스가 수시 운행하는 부산,울산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웅상읍 소주리 백동마을-원적암 입구~미타암~철쭉자생보호지역~임도~천성산 2봉~법수원계곡 상단부~능선길~보현사~백동마을 코스가 인기가 있다(5~6시간 소요),웅상읍덕계리~장흥저수지~무지개폭포~원효암~천성산~은수고개~임도~계곡길~장흥저수지 코스도 인기가 있다(장흥저수지 기점 5시간 소요)
*홍룡사 코스
홍룡사주차장~계곡길~원효암을 거쳐 천성산으로 올랐다가 북서릉을 타고 상북면사무소 앞으로 내려서거나 또는 화엄벌을 지나자마자 북서릉을 따르다 지프네계곡을 거쳐 용주사로 내려선다.(5-6시간 소요) 준족들에게는 홍룡사주차장~원효암~천성산~은수고개~천성산 2봉~주남사거리~정족산-삼덕공원을 거쳐 답곡리로 내려서는 종주코스(8시간 소요)를 권한다.
*일출맞이 원효암 코스
천성산은 한반도 내륙의 산봉 가운데 동해에서 떠오르는 새해 일출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일출맞이 명소는 천성산 정상 북쪽 억새 둔덕이었으나 올해 초 정상부의 군사시설물이 철거되면서 정상에서도 해맞이가 가능해졌다.새해 첫날 오전 5시부터 운행하는 원효암 셔틀버스를 이용한다면 해발 800m대 고지까지 차도로 접근해 30분 정도면 해맞이 장소까지 다가설 수 있다.하산은 다양한 방향으로 잡을 수 있다.매년 천성산 새해 일출 문의는 대전천문대(042-865-3332).새해 첫날 부산지역 일출 시각은 0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