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내 육체와 영혼 속에 우뚝 솟은' 천관산(天冠山) 찾아가기

청산신남석 2006. 10. 15. 21:24

 [구정봉(九情峰)이라 일컫는 천관산 주능선 기암봉의 파노라마.

문수보현봉,대세봉,관음봉,선재봉,노승봉이 하늘로 치솟았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용전리 탑동에서 바라보는 천관산의 모습은 이 고장 출신 소설가 한승원의 말처럼 고기 비늘같은 구름 몇 자락이 걸쳐 있을 뿐 맑았다.새털구름이 지나는 가을하늘 자락에 듬직한 산등성이가 동서로 가로지른다.그 산등성이 서쪽 끄트머리 어름에는 흡사 가시처럼 삐죽 솟구친 암봉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이런 천관산의 육중한 모습은 중천에 뜬 해 때문인지 장천재 골짜기는 푸른 이내에 싸여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9월 13일 수요일,천관산 답사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천관산(天冠山 723m)은 장흥 땅에서 으뜸으로 치는 산이다.지리산,내장산,능가산,월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제암산을 지나 사자산으로 이어져 바다로 빠질 듯하던 호남정맥이 다시 고개를 북으로 돌려 일림산으로 이어질 때 사자산에서 슬쩍 가지 친 산줄기 하나가 억불산과 부용산을 지나 남진하다 마지막 바닷가에서 잔뜩 솟구쳐 올린 것이 바로 천관산이다.산 북쪽 관산마을에서 바라보면 동서로 길게 드리운 정상능선은 족히 십리는 돼보인다.그 능선의 서쪽 끄트머리쯤에는 수십 개의 침봉이 자리잡아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또 정상능선에서 갈래 친 세 개의 능선마다 각양각색의 기암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산 남쪽 마을 대덕이나 회진에서 바라보는 천관산은 그냥 둥글넙적한 육산의 풍모를 지녔다.곳곳에 너덜지대가 보이지만 북쪽에서처럼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회진면 상산리 한갓진 포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한승원은 탑산사 입구 문학공원 시비에 새긴 글에서 천관산을 이렇게 적었다.

“이 관내 모든 학교의 교가 속에 우뚝 솟아 있듯이 내 육체와 영혼 속에 이 산이 들어와 우뚝 솟아있다.”그가 뛰놀며 아침저녁 우러르던 천관산! 그 산을 바라보며 필력을 키운 문인들이 어디 한승원뿐이랴.송기숙,이청준,김석중,이성관,이대흠,이승우 등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이 산자락에서 나고 자랐다.이들의 육필원고를 모아 남쪽자락 탑산사 앞에는 문학공원이 조성돼 있다.


천관산의 역사와 경관을 가장 잘 기록한 것은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지제지(支提誌)일 것이다.관산읍 방촌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조선 후기 호남실학의 대가 존재는 이 책 서문에서“큰 액운이 겹쳐 사람도 비고 형태도 변하여 89암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신선이 옮겨놓았던 신령스럽고 찬란했던 절은 주춧돌 잔해만 남아있고,수도승의 발길도 끊어져 기암수봉으로 오르는 길마저 묵어 막혀버렸다.아! 이것이 천관산의 본 모습이랴! 내가 만일 탄식만 하고 매몰된 채 내버려둔다면 저 돌무더기들이 반드시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을 것이니 어찌 나의 허물이 아니겠는가.“라며 탄식했다.

 

89암자가 다 사라지고 사찰은 주춧돌만 남았고 기암수봉으로 오르는 길이 막혀버린 것은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자주 출몰했던 왜구 탓이다.지금이야 간척사업 덕분에 해안이 멀어졌지만 당시 관산은 해안가 포구마을이었다.왜구는 마을과 사찰을 불태우고 노략질을 일삼았다.사람들은 그때마다 천관산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싸웠다.존재가 수학했던 장천재(長川齋) 오르는 입구에는 아직도 회주산성터가 남아있다.


구룡봉에서 연대봉에 이르는 십리 안팎의 주능선에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다.4만 여 평에 이르는 이 드넓은 산등성이를 온통 차지한 것은 억새다.억새로 뒤덮인 늦가을 천관산 정취는 이제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져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나무 대신 억새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왜구와 무관치 않다.고려 말 원나라의 강요에 의해 일본정벌에 나서기 위한 배 900척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린 탓이다.관산리 죽청에는 배를 만들던 조선장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천관산 주변 고을 역시 민중들의 저항이 치열했던 곳이다.임란 때는 관산.대덕 출신 의병장들이 수십 명에 달했고,철종 때는 부패한 관아를 습격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동학 최후의 격전이 치러진 석대뜰 싸움에서는 관산출신 동학군이 26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천관산은 민중들과 함께 수난의 역사를 함께 한 '큰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억새와 더불어 천관산을 대표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암봉들이다.산 곳곳에 자리 잡은 이 기암기봉들은 자칫 밋밋했을 이 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존재는 이 형상을 지제지에서‘입석과 기암의 볼만한 바위가 무려 천 가지나 되며 모나고 둥글며 빼어나고 비기고 기울어진 것들과 높고 낮고 걸치고 포개진 것들,넓은 골짜기와 일그러진 모양 그리고 반반하게 되사린 것과 울창한 것들,또한 웅장하고 험악하면서 신령스러워 그 경관이 천태만상으로 항상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라고 썼다.천관산 바위의 모습은 존재가 그려낸 것이 가장 적확하다.


천관산 산행은 이른 봄이나 늦가을이 제격이다.북쪽 산 아래 장천재 부근의 동백 숲과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진달래 능선은 봄의 화원이다.남쪽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춘풍이 일깨운 화심을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 있을 것이니 그저 꽃길을 허정허정 걸으면 된다.

 

늦가을 천관산은 억새의 바다다.연대봉에서 구룡봉까지 십리쯤 되는 정상능선에는 하얗거나 누런 억새의 군무가 파도처럼 출렁댄다.이제는 천관산의 간판이 되어버린 이 억새밭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축제가 열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이 능선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 한가롭게 억새밭 사이를 거닐며 사방을 구경할 수 있다.북쪽으로 뻗어내린 능선마다에는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았고,남쪽으로는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섬들이 흩뿌려져 한없이 정겹다.서쪽 강진만 어간으로 노을이라도 물든다면 그 붉고 검은 그림자를 향해 허위허위 걸어도 좋다.그 억새밭에 달이라도 둥실 뜬다면 그대로 넋을 빼앗겨 달빛을 쫓아도 좋은 것이다.


천관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엔 봉수대가 있다.제주도 한라산의 신호를 내륙으로 전하는 곳이었다니 날씨만 좋다면 그대는 이곳에서 한라산을 보는 행운을 맛볼 수도 있으리라.


봄이나 가을이 아니라도 천관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언제나 기이한 암봉의 향연에 초대된다.선인봉,종봉,석선봉,대세봉,관음봉,천주봉,잔죽봉 대장봉..,멋대로 깎아 세운 돌 기둥들이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불쑥 불쑥 나타나 인사를 건넨다.건너편 구멍바위인 금수굴을 향해 불끈 솟은 양근암,원숭이 모양의 불영봉과 다채로운 형태의 정원석,저절로 생긴 것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육왕탑(阿育王塔),등성이마다 어디에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그 바위들은 한결같이 모나고 둥글며 일그러지고 뒤틀렸으며 기울어지고 쭈글쭈글하다.사라진 89개의 암자가 모셨던 불상들이 어쩌면 그 바위들인지도 모른다.산에서 내려와 이제 이 땅의 정남진(正南津) 회진포구로 가서 이 가을 고소한 전어회에 소주 한 잔 마시며 천관산을 바라보아도 좋을 것이다.

 

 [탑동에서 바라본 천관산 전경-우측 뾰족한 능선이 대세봉~환희봉에 이르는 3코스

  제2선이 금수굴 능선의 2코스,제3선이 연대봉-양근암-장안사에 이르는 1코스다.

이 3코스 모두 산행들머리는 장천재이다.]

 

남도의 산행은 늘 설레인다.섬진강을 지나면서 차창으로 열리는 풍광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순천을 지나 보성으로 들어서면 이제까지 고만고만하던 산세는 홀연 춤을 추는 듯한 당찬 암봉들이 군데군데 치솟아 탄성을 지르게 한다.장흥 땅으로 들어선다.진달래로 유명한 제암산을 끼고 장흥읍내로 스며들면 왼편으로 억불봉의 우람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읍내를 관통하는 탐진강 감천교를 지나면서 강진행을 버리고 23번 도로를 따라 남진하다 솔치재를 넘으면 둥그스럼한 산등성이 하나가 가로막아 선다.천관산이다.장흥군 관산읍 용전리 탑동에 이르면 천관산의 모습이 비로소 세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차장을 벗어나면 '탑묘'라는 뜻의 지제산<천관산>을 알리는 빗돌이 반긴다.]

 

  [장천재로 가는 길 가장자리에는 단풍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졌다.]

 

 [장안사(좌)와 장천재(우) 갈림길-오른쪽으로 좀더 가면 장천교다] 

 

여기서 23번 도로를 버리고 장천재 쪽으로 들어가면 장천재 주차장이 나온다.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한없이 높아가는 초가을,숲 터널 길인 장천재로 들어선다.평일이라서인지 산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오르자 장천교 앞에서 세 갈래 길이 나뉜다.장천재 주차장을 깃점으로 천관산을 오를 경우 각각 능선에 따라 세 개의 코스가 정상능선으로 이어진다.장천교에서 양근암을 거쳐 연대봉으로 오르는 코스와 체육공원에서 갈라져 금수굴을 지나 닭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체육공원에서 대세봉을 지나 환희대로 오르는 코스,3개의 등산로가 모두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거나 할 염려가 없다.세 코스 모두 오르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군데군데 조망이 조망이 좋은 바위와 기암이 많아 지루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장천교 부근의 샘터-왼쪽으로 장안사를 거쳐 양근암,연대봉 오르는 길이 열렸다.]  

 

답사팀은 기암괴석이 연달아 이어지는 선인봉~대세봉~환희대 코스로 산행에 나섰다.장천교를 건너자 굵은 소나무 숲이 이어졌다.

 

[장천교를 지나 풍호대 갈림길을 거쳐 장천재와 체육공원에 이른다.]

 

장천교부터 장천재(長川齋)에 이르는 100미터 정도의 계곡은 존재 위백규 선생이 청풍담(淸風潭),백설뢰(白雪瀨),도화량(挑花梁),세이담(洗耳潭).명봉대(鳴鳳臺),추월담(秋月潭),청령뢰(淸靈瀨),와룡홍(臥龍弘),장천8경이라 이름붙인 장천동(長川洞)이다.

 

 [풍호대 갈림길-정남진 조망대라 적혀 있지만....]  

 

길 오른쪽에 풍호대(風呼臺)란 전망대가 있었다.정남진 조망대라는 설명이 있으나 정남진의 조망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정남진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든다는데 이곳 풍호대는 뭔가 잘못된 자리에 있는 듯 싶었다.

 

 [장천재를 향해 몸을 기울인 수령 600년의 태고송]

 

풍호대를 지나자 600살이 넘는다는 태고송이 장천재를 향해 몸을 기울인 채 우리를 맞이한다.그런데 이 거송에는 겨우살이처럼 다른 나무가 기생하여 기이한 모습이었는데 이를 어찌 설명할까? [짙푸른 솔잎과 연초록 기생목의 잎사귀가 대조적이다.] 

 

 

장천재는 장흥 위씨 문중이 영은암이란 암자를 헐고 지은 문중 사우(祠宇)로 위백규 선생을 비롯 여러 학자들이 수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짙푸른 잎사귀뿐이만 봄철 동백꽃은 알아주는 일품이다.]   

 

장천재 근방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동백 숲이다.지금이야 짙푸른 잎사귀뿐이지만 이른 봄이면 동백꽃이 장천재의 고색창연한 기와며 담벼락 아래를 핏빛으로 수놓을 것이다.고창 선운사의 동백도 유명하지만 장천재의 동백도 그에 못지 않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진 체육공원]

 

 [금수굴 능선과 대세봉,환희대 갈림길 이정표] 

 

장천재와 이웃한 체육공원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오른쪽 능선의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니 짙은 숲길이 이어진다.

 

 [선인봉,금강굴,대세봉,횐희대 가는 짙은 숲길]   

 

  [장천골-이 계곡 오른편으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장천골을 건너고 다시 잡목 숲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는 동안은 그저 매미소리만 요란할 뿐,답답한 숲길을 걸어올라야 했다.어디에도 가을이 닥아온 느낌은 들지 않았다.그러다가 잡목 숲을 벗어나자 답답함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답답한 숲속을 헤쳐나가다 문득 눈앞에 열리면서 왼쪽 금수굴 능선이 닥아온다.]

 

선인봉 아래에 이르자 암릉길이 시작되었고 사방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동쪽 금수굴 능선의 암릉이 지척이고 머리 위로는 갖가지 기암들이 늘어섰다.

 

 [선인봉 오름길에 돌아본 관산마을과 용산마을]

 

[선인봉 오름길에 돌라본 용산벌]

 

 

환희대에서 연대봉에 이르는 정상능선도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발 아래 관산읍내 풍경도 누렇게 물들기 시작한 들판과 어울러져 정겹게만 보였다.

 

 [너럭바위에서 선인봉을 등진 답사팀]

 

이제 이어지는 산행은 답답하거나 지루할 새가 없었다.전망 좋은 바위를 하나 지나면 쉬어가기 좋은 너럭바위가 나타났고,기묘한 형태의 암봉들이 연달아 길을 막아섰다.그런 곳에서는 어김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답사팀은 그때마다 쉬어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인봉 아래에서 건너다본 기암이 돋아난 금수굴 능선]

 

 

선인봉을 왼쪽으로 돌아 능선에 올라서니 커다란 바위가 흡사 개구리 형상을 닮았는데 목을 길게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싶었다.우리는 이 바위 아래에서 점심을 들기로 했다.그곳에서 천관산 능선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구정봉의 기묘한 바위가 하늘로 쭈볏쭈볏 치솟아 기막히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선인봉에서 올려다본 구정봉의 아름다운 풍광-천관산 암릉의 백미다.] 

 

[선인봉 너머 갈림목에 있는 개구리바위]

 

그런데 숲을 헤치고 선인봉 뒷 바위에 올라보니 그곳에도 커다한 개구리 형상같기도 하고 거북 형상 같은 바위가 구정봉을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뒷쪽에서 바라본 선인봉-거대한 거북 또는 개구리 형상이다.]

 

점심을 끝내고 구정봉으로 발길을 옮긴다.그런데 천관산 산행로는 기기묘묘한 바위군을 직등하지 않고 모두 우회하기 때문에 초심자라 하더라도 무리없이 산행을 할 수 있다.겉으로 보기엔 힘들 성싶지만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천관산 바윗길이다른 골산과 다른 점이라 하겠다.

 

 [종봉 앞에 선 답사팀-전혀 종같은 생김새가 아니지만 뒷쪽에서 보면 종을 닮았다]

 

숲길을 따라 종봉으로 가며 주능선을 바라보니 기묘하게 생긴 바위군이 훌립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종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종봉에 이르러 사진을 찍었지만 종 모양이라 믿기 어려웠으나 종봉을 돌아서 돌아보니 과연 그 생김새가 딱이었다.  

 

[뒷쪽에서 돌아본 종봉-비로소 종봉이란 뜻을 알 듯하다] 

 

종봉을 돌아내려서니 작은 굴이 하나 있었다.금강굴로 불리는 이 굴 안에는 여기저기 치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굴 안쪽에서 석간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무계단을 딛고 종봉 왼편을 돌아오르자 두 마리 물고기 형상의 바위에 지나는 이들이 올려놓은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었다. 

 

 [두 마리 물고기 형상의 바위에 소원을 비는 돌을 얹어놓았다]

 

돌탑을 뒤로 하고 오르니 노승봉이란 암봉이 나타났다.가만히 들여보다보니 과연 쭈글쭈글한 늙은 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노승봉 앞에 올라 숨을 고르며 지나온 산길을 돌아보니 종봉 부근의 거대한 암봉 너머 관산벌 뒤로 보성만이 펼펴진다.

 

 [노승봉에 올라 돌아본 종봉과 관산벌,가운데 능선은 금수굴 능선이다.] 

 

  [돌고래가 거북등에 업혀 선재봉(善才峰)으로 오르고 ...]

 

노승봉을 지나면서부터 숨가쁘게 이어지는 기암들의 모습에 홀려 느긋하게 발품을 팔 겨를이 없었다.대세봉 앞에서는 천관사를 기점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였다.천관사 쪽 능선에도 몇 개의 기묘한 암봉이 솟아올랐다.

 

  [천관사 능선(우)과 갈라지는 대세봉 갈림길] 

 

 [대세봉에서 뒤돌아본 능선 위의 기암-선재봉 정수리에 물이 고였다.] 

 

 [흔들바위처럼 바위에 올라앉은 기암-강한 바람이 불면 굴러갈 듯하다. ]

 

대세봉부터는 저절로 걸음이 빨라졌다.솜털구름이 지나가는 파란 하늘을 이고 늠름하게 혹은 찌릇 듯 솟은 암봉들 사이를 돌아가는 것은 억누르기 힘든 즐거움이었다.이 암봉을 지나면 어떤 형상의 바위가 또 나타날까 하는 호기심이 자꾸만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대세봉 옆모습-환희대로 가는 길은 대세봉 왼편 아랫자락을 돌아간다.] 

 

 [천관산 능선길에는 신상봉,홀봉이 수를 놓고,,,.] 

 

 [천관사 능선 끄트머리에 돋아난 기암들]  

 

 [문수보현봉 옆의 기암-바위벽이 서로 포개고 비틀어 몸을 부비고 있다.]

 

  [문수보현봉 가는 길에 흘립한 기암들-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듯 잠심에 잠겼다] 

 

  [문수보현봉으로 닥아가는답사팀] 

 

[문수보현봉을 지나며-성과 속을 넘나드는 문수보살의 모습이 장엄하다.] 

 

억새와 더불어 천관산을 대표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암봉들이다. 산 곳곳에 자리 잡은 이 기암기봉들은 자칫 밋밋했을 이 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존재 위백규는 이 형상을 두고 지제지에서 ‘입석과 기암의 볼만한 바위가 무려 천 가지나 되며 모나고 둥글며 빼어나고 비기고 기울어진 것들과 높고 낮고 걸치고 포개진 것들,넓은 골짜기와 일그러진 모양 그리고 반반하게 되사린 것과 울창한 것들,또한 웅장하고 험악하면서 신령스러워 그 경관이 천태만상으로 항상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라고 썼다. 

 

 [환희대가 있는 대장봉(大藏峰)으로 가며 돌아본 기암들]  

 

  [하늘을 받쳤다는 천주봉]

 

 [천주봉에서 바라본 환희대가 있는 대장봉]  

 

 [천주봉에서 본 환희대~진즉봉 능선-석선봉(石船峰)이라 하는 오른쪽엔 사람 형상이..]  

 

 [횐희대-지장봉 능선 끄트머리머에 솟은 기암-그 뒤로 부용산 능선이 둘러졌다.] 

 

 [대장봉 아래에 있는 사람 얼굴을 한 큰바위-왼쪽 아래로 연대봉이 억새에 가렸다.]

 

 [환희대(725m)가 있는 대장봉의 기묘한 모습]

 

 [횐희대에서 돌아본 구정봉의 기암-천관산 암릉의 하일라이트다-대세봉이 단연 돋보인다]

 

 

천주봉을 지나 드디어 환희대에 다다랐다.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여 만 권의 책이 쌓여 있는 것 같다는 대장봉(大藏峰) 정수리에 있는 평탄한 석대다.이 곳에 오르는 이는 누구나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 본다는 횐희대-이곳에 올라서면 주변을 둘러보기 좋고 지나온 능선의 바위들을 모조리 볼 수 있었다.그리고 동쪽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억새의 바다가 드넙게 펼쳐진다. 

 

 [답사팀이 환희대에서 구정봉의 아름다운 기암을 등지고 섰다.]

 

 [환희대서 바라본 진즉봉~지장산 능선의 암릉들]

 

환희대에서 멀지 않은 구룡봉.억새숲 위에 길에는 서쪽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지장봉 능선에 자리한 진죽봉이 세세히 드러났다.존재 위백규 선생이 지은 <지제지>에는‘관음보살이 석가모니의 말씀을 따르고자 진불(眞佛)을 돌배(石船)에 싣고,바다 건너 천관산으로 가서 그 불경을 내려놓은 곳이 대장봉,돛대가 진즉봉,돌배가 석선봉이라 한다.’고 전한다.진즉봉의 돌 돛대가 바람에 펄럭일 듯했다.

 

 

[환희대의 이정표-천관산의 4대능선-연대봉,지장봉,구룡봉,대세봉이 여기서 갈래친다.] 

 

 [환희대에서 닭봉을 거쳐 천관산 정상,연대봉으로 이어지는 십리 억새밭]

 

 

환희대에서 천관산 최고봉인 연대봉까지의 펑퍼짐한 능선에는 이제 막 패기 시작한 억새이삭이 허옇게 일렁이고 있었다.바닷가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아직 푸르른 억새 잎을 흔들어대자 그 푸르고 허연 일렁임은 마치 파도처럼 서걱이며 눈이 부셨다.

 

 [환희대 주변의 야외조각장-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널부러져 장관이다.] 

 

  [닭봉으로 가며 뒤돌아본 환희대] 

 

 [닭봉으로 가며 뒤돌아본 대세봉을 비롯한 기암능선의 구정봉] 

 

 [멀기만 하던 연대봉이 어느 새 가깝게 닥아온다.] 

 

 [닭봉에서 바라본 대덕면과 조약도,고금도 일원의 다도해]

 

  [10월 초순 만개한 닭봉 근처의 억새-바닷바람에 은빛 물결이 일렁인다.] 

 

연대봉을 행해 억새 밭 사이 길을 따라 걸었다.키 큰 억새가 지나갈 때마다 서걱거렸다.연대봉까지 주능선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이 이어졌다.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연대봉을 향해 서편제 가락처럼 유연한 억새능선을 느릿느릿 걸었다.어느새 헬기장이 있넌 닭봉을 지났고 길은 연대봉 가는 길과 금수굴 능선으로 나뉘었다.이 억새 무성한 정산능선에서 해마다 10월 초순이면 억새축제가 열려 전국의 등산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어디 억새 무성한 산이 천관산 ‘뿐이겠냐마는 억새밭 사이사이의 기암괴석과 그 너머로 보이는 다도해의 풍광을 따라올 산이 또 있으랴.

 

 [억새제가 열리는 10월 초순-닭봉 오름길에 핀 은빛 억새바다!]

 

 [닭봉 삼거리의 안내판-이곳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서면 문학공원이 있는 탑산사길] 

 

[예전에 옥정봉이었던 연대봉-한라산의 봉화를 받아 병영의 수인성으로 전달했다.]

 

정상 능선에서는 어느 곳으로도 막힘없이 통쾌한 조망이 펼쳐졌다.그중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인 듯싶었다.그런 풍광을 보며 자랐을 한승원,송기숙,이청준이 타고난 이야기꾼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거금도와 금당도,금일도,생일도,조약도,고금도,신지도...수많은 섬들이 겹쳐져 육지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어려웠다.그중 고흥반도 끝자락에 있는 소록도를 애써 찾아보았다.구룡봉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이청준은 소록도를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으로 감았다.  


억새밭 사이 감로천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 뒤,이윽고 연대봉 정상에 올랐다.천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연대봉에서는 지난 86년 복원한 봉수대가 있었다.고려 의종 3년(1149년) 봉수대를 처음 쌓아 개축을 거듭했고,왜적의 침입을 장흥의 억불산(510m)과 병영면 수인산(561m)으로 알렸던 곳이다.

 

봉수대 정상에서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하늘은 온통 검은 빛이어서 어제 보았던 다도해며 소록도의 모습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하물며 한라산을 모습을 보길 어찌 기대하랴.연대봉 봉수대는 과거 한라산의 봉화를 내륙으로 연결하던 곳이라 전한다.그리하여 날씨만 맑다면 한라산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그러나 역시 우리에겐 인연이 없었는가 보다.

  

 [연대봉에서 바라본 정원석~양근암~장안사 코스]  

 

[양근암 능선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첫번째 사모바위]

 

파도처럼 일렁이며 해조음을 들려주던 억새밭을 뒤로 하고 장안사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접어들었다.여전히 능선에는 갖가지 사연과 이름의 바위들이 나타났고,다채로운 형상으로 등산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정원석의 틈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이 또 무수했다.작은 돌탑을 하나 만들며 작은 소망하나를 기원했다.

 

 [연대봉~정원석~봉황봉으로 이어지는 하산코스-양근암은 왼쪽능선이다]

 

[기이한 형상의 암릉-지나는 이들이 얹은 돌마다 소원이 듬뿍!]  

 

[기이한 모습의 정원석-흡사 산중의 수석을 연상케 한다.]

 

[양근암 하산길에 건너다본 봉황봉에서 뻗어내린 호두봉(虎頭峰)]

 

 [건너편 금수굴과 쌍벽을 이루는 양근암!]  

               

[뒤돌아본 양근암과 주변 암릉] 

 

정원석을 지나면 나타나는 것은 양근암이다.뒤에서 보면 전혀 연상이 되지 않지만 앞에서 보면 제법 위세가 그럴 듯한 남근석이다.건너편 능선의 금수굴과 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어 그 음양의 조화가 제법 신비롭게 여겨졌다. 

 

 [닭봉-금수굴 능선에 있는 금수대 아래의 금수굴-양근암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양근암에서 바라본 천주봉-대세봉의 기암군과 중앙의 금수굴능선] 

 

 [북바위라고도 하는 석고(石鼓) 바위]

 

 [양근암 부근에 있는 석문바위] 

 

 [양근암에서 조금 내려오면 만나는 평평바위-저 멀리 북바위가 보인다.]

 

[연이어 나타나는 전망바위]

 

양근암을 지나면서 이제 기암이나 암릉은 아니 나오겠지 하고 지레 짐작한 내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등산로는 비록 그런 바위를 교묘히 돌아가곤 하지만 하나의 바위를 지나면 또 다시 기암이 나오기를 계속했다.나는 그때마다 할 수 있으면 그 바위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고 디카에 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망바위의 틈새를 밟고 벼랑 끝에 이르면 나비처럼 살포시 암릉에 앉은 바위가...]

 

 [청정한 푸른 소나무 지키는 너럭바위에 이르러]  

 

  

 [코끼리바위 콧자락에 있는 석문-이곳을 지나는 여인은

선녀가 된다는데...]

 

이제 마지막 바위인 코끼리바위에 다다랐다.콧자락으로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데 이곳을 지나가는 여인들은 선녀가 된다는 일화가 전해온다.이 바위를 끝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던 암릉은 주춤하고 부드러운 육산으로 바뀐다.조금 더 내려오니 갈림길이다.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장안사로 빠지는 길인데 친구들은 그쪽으로 내려가고 나는 곧장 날등을 타고 내려간다.이어서 숲 사이로 장천재가 왼편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드디어 오늘의 하산지점인 영월정(迎月亭)에 다다랐다.

 

 

영월정 왼편으로 걸어나오면 샘터가 나오고 장천재로 가는 포장도로와 만난다.오늘 천관산 산행은 비록 3시간 30분이 걸린 단출한 산행이었으나 기암괴봉과 억새,그리고 이곳에 붙박고 살았던 이들의 숨결을 만난 뜻 깊은 산행이었다.산에는 사람의 입김이 불어넣어져야 그 산은 비로소 살아 숨쉬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우리는 관산읍 옥당의 병영횟집으로 발길을 옮겨 칠량에서 금방 건저 올린 고소한 전어회로 소줏잔을 들며 석양 비낀 천관산을 바라본다.

 

 

[천관산 산행 개념도-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등산로]


천관산 산행은 대개 장천재,천관사,탑산사를 산행들머리로 한다.이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장천재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는다.장천재 주차장에서는 정상능선으로 올라가는 세 개의 등산로가 있어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고 능선마다 기암괴석이 즐비해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특히,장천재를 거쳐 환희대에 오른 다음 연대봉 정상을 거쳐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추천한다.이 코스에는 능선상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조망이 시원해 잠시도 지루하거나 힘든 줄 모르고 산행을 마칠 수 있다.어느 코스로든 2시간이면 정상능선에 오를 수 있다.장천재 주차장 주차요금 하루 2,000원(승용차),입장료 500원(어른)


탑산사를 기점으로 삼을 경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정상능선까지 오를 수 있다.이곳에도 탑산암자와 구룡봉을 거쳐 연대봉을 둘러보고 불영봉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산행 내내 남쪽으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탑산사 입구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천관사를 기점으로 삼을 경우 환희대까지는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지만 불편한 교통편을 감수해야 한다.이밖에도 천관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지장봉 능선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천관산 산행은 어디에서 시작하든지 4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