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조개풀의 서울 나들이-최성현
주름조개풀의 서울 나들이
아주 가끔 서울에 간다.대개 기차를 이용하는데 이번 나들이는 버스였다.약속시간에 맞추자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아홉 시 이십 분.열차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보았다.바짓가랑이에 잔뜩 붙어 있는 주름조개풀의 씨앗을.
새벽에 외출복 차림으로 이 밭 저 밭을 뛰어다니며 그날 만날 사람에게 줄 버섯과 호박,고추,오이 따위를 땄는데 그때 붙은 것이 분명했다.어떻게 해야 하나,잠시 생각했다.결론은 간단했다.버릴 곳이 없었다.
주름조개풀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이다.키가 작고 잎도 크지 않은 데다 몇 개 안 달리고,꽃도 잘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볼품이 없다.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그 풀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은 씨앗이 여문 뒤부터다.까끄라기가 있는 데다 접착력이 강한 액체를 분비하기 때문에 주름조개풀은 바짓가랑이에 잘 붙는다.맨다리에도 붙을 만큼 솜씨가 좋다.다른 것은 볼품없고 작거나 열등한데,달라붙은 힘 하나만은 발군이다.작고 힘이 없는 탓인지 꼭 길가에 나서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다.
웃음이 났다.자주 다니는 길에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떼어 내야 했던 풀이다.그 풀씨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서울까지 따라온 셈이었다.어찌 박대할 수 있으라! 게다가 서울에서 떼어 낸다면 그것은 곧 풀씨의 죽음을 뜻했다.훍 한 줌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 작은 풀씨가 살아 남는단 말인가.혹시 흙을 만나면 그곳에 떼어 놓는 방법밖에 없었다.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지하철을 향해 일어섰다.
일을 보며 틈틈이 주름조개풀의 새로운 거처를 찾아보았다.마땅치 않았다.손톱의 때만 한 풀씨 하나 살곳이 서울에는 없었다.가로수마다 밑둥 근처에 아주 조금씩 흙이 있기는 했다.하지만 주름조개풀이 거기서 싹을 틔우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물속에서 성냥을 그어 불을 피우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길가의 화단은 작은 나무들로 뒤덮여 아예 흙은 보이지 않았다.또 모든 땅이 시멘트로 뒤덮여 있어 서울에서는 흙을 보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
아쉬웠다.어딘가 빈 땅이 있고 거기에 주름조개풀의 씨앗을 묻어 둘 수 있다면 서울을 생각할 때마다 그 풀 생각이 나며 나는 기뻤으리라.휘황찬란하고 으리번쩍한 서울에 그와 정반대인 지지리도 못난 키도 작고 잎새도 볼품이 없는,그러나 붙는 재주 하나만은 발군인,작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름대로 예쁜 꽃도 피우는 주름조개풀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해보라.거기서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리며 여리나마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그 작은 풀 하나가 있어 서울은 내 마음의 도시가 되었으리라.
결국 서울 어디에서도 나는 그 씨앗들을 떼어 낼 곳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집으로 돌아와 바짓가랑이를 보니 씨앗 수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반은 서울 오가는 사이에 떨어졌다는 뜻이었다.모두 스무 알은 되리라.그 가운데 한 알이라도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기를!
남은 것은 아직도 바짓가랑이에 붙어 있다.다시 그 바지를 입어야 하는 날에는 그 풀씨들을 떼어 내야 하리라.그날에,그 풀씨들을 떼어 내 어딘가 빈 터를 찾아 뿌려 두리라.가을이 되면 그 풀씨로 또 고생을 하겠지만 봄에 그 풀씨가 싹을 틔운 것을 보면 반가울 것이다.가을 나들이 길에는 그 풀씨가 어린 딸애처럼 또 바짓가랑이를 잡고 따라나설지 모르고,니는 그 풀씨를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며 보고 웃으리라.
만 년 동안 반복되는 일이다.만 년 전에도 주름조개풀 같은 풀이 있었을 것이다.발이 없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해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는 이 전략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진득찰,도깨비바늘,그령,짚신나물,도둑놈의갈고리 따위가 주름조개풀과 같은 방법으로 자손을 퍼트리고 있는데,혹시 그것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대의 여행을 따라나서더라도 화내지 말 일이다.식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면서 살지 않은가.
-최성현의 「산에서 살다」에서-
최성현,그는 누구인가?
그가 사는 산 입구에는“바보 이반 농장”이란 작은 문패가 걸려 있다.그에게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경전과 같은 책으로,가능하다면 그는 그 나라의 주민이 되어 살고 싶어한다.그런 그이가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실천하기 위해 도시 생활을 접고 지금 사는 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1988년의 일이다.20년이 다 되어 가는 셈이다.
그는 산에서 하루 가운데 반은 농사를 짓고 남은 반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오래 걷거나 앉아 일도 즐기는 일 가운데 하나다.예컨대 반농반x의 삶이다.최성현의 농사 규모는 크지 않다.벌레와 풀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 방식으로 자급 정도의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고 있다.아울러 꽤 큰 뽕나무 밭을 가꾸고 있다.거기서 나오는 오디로 발효 음료를 만들어 시장에 내기도 한다.
그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음은 물론 땅을 갈거나 벌거숭이로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그런 방침 때문이리라.그의 논에는 미나리 밭이 절로 생겼고,거머리와 미꾸라지와 야생 달팽이와 소금쟁이 따위 수많은 수생 동물이 산다.밭에도 먹을 수 있는 풀들이 많아 늘 밥상에는 야생초가 반이다.또한 그가 사는 곳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까막딱따구리나 솔부엉이와 같은 새가 있다.아래 절집 스님이 보았다는 장수하늘소를 친견하는 날이 어서 오길 학수고대하는 그는,이렇게 자신이 사는 곳에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살러 오는 것을 무엇보다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산에서 살다>라는 책은 최성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모든 목숨을 가진 것의 바탕인 공기와 물과 땅과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민과 실천,거기서 얻는 보람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한 포기 풀을 존경하고,벌레 한 마리에게서도 배우는 삶을 통해 그는 삼라만상이 모두 신성한 존재이며 그러한 신성함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지 않은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좁쌀 한 알>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명의 농업(공역)>,<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여기에 사는 즐거움>,<풀들의 전략>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