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24구간<고치령-선달산-도래기재>

청산신남석 2006. 9. 7. 18:05

 

[종주들머리,고치령 소백지장 장승과 함께]

 

                            고치령-미내치-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2004.10.17)

  

백두24차 끊어타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종주를 며칠 앞두고 이제부터 차량지원을 받지 않고 대간팀의 차를 손수 운전하여 들고나는 것은 위험천만이며 무모한 행위라는 지탄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구간별 끊어타기는 정말 피하고 싶은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이렇게 대간을 완주하려면 40번가량 끊어타야 하니 매번 드는 경비도 경비려니와 시간 또한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산불방지기간을 피해 한 달에 두번씩 6개월을 종주한다 하더라도 좋이 3년은 걸린다.시간이 넉넉하고 생업에서 자유롭다면 1달 안팎이면 종주가 끝날 텐데,지금 우리의 사정이 이를 허락치 않으니 구간별 끊어타기를 고집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뿐이랴,이제 태백이 가까워지면서 부산에서 종주 들머리와 날머리를 오가는데 드는 시간이 늘어나니‘무박종주’가 어찌 두렵지 않으랴.그래서 토요일 막바지에 이르러 부랴부랴 차량지원을 요청하게 됐으나 익수는 개인 사정으로 끝내 불참하여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황세도 허리가 좋지 않아 못 오고 재화도 몸 상태가 여의치 않으니 종주에 참가한 동기는 나를 비롯하여 김현기,전기환,최금구 네 사람이 전부였다.

 

그러나 문제는 종주 바깥에만 있지 않았다.고치령에서 선달산을 거쳐 도래기재에 이르는 구간은 짙은 숲 속을 헤쳐나가야 했으므로 조망이 전무한데다 거릿수가 멀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종주 안팎으로 어려움이 따랐으니 나는 리더로서 우울함을 떨치지 못했다.


차량지원은 지난번 팔공산종주와 강진 덕룡산 산행 때 함께 한 안성수 부장(한국자유총연맹 청룡.노포동지부)이 도맡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풍기읍으로 들어선 안 부장의 봉고는 순흥(順興)의 소수서원을 거쳐 단산(丹山)에 다다랐다.북동진하는 부석사 길을 버리고 단산에서 북쪽으로 길을 바꾸면 포장도로가 4km 남짓 큰산 발치로 기어든다.산이 생기기를 네모꼴이라 하여 모산이란 마을도 스쳐가고 마을 앞에 널찍한 바위가 놓였다 하여 좌석이란 마을도 지나간다.칠흙같이 어두운 밤길,좌석을 지나면서 차츰차츰 고도를 높여나가던 산길은 잠시 고치령 오르는 길을 왼쪽으로 비켜 사잇길이 열린다.연화부수(蓮花浮水)의 명당터라는 연화동 가는 길이다.

 

고치령 오르는 길은 아직은 비포장길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나는 지난 23구간 종주를 기획하면서 고치령 고갯길의 형편을 염려했는데 고치령에서 내려오다 보니 비포장길이 더러 남아 있기는 했지만 승용차가 오르내리는데는 별반 지장이 없음을 확인하곤 저으기 안심했다.바람 부는 고치령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새벽 2시 50분이었다.장비를 챙겨 종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구간 고치령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새워진 소백지장(小白地將)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03:03)

 

[미내치(810m)에 다다라]

 

예정보다 1시간 앞당겨 3시 3분,헤드랜턴에 불을 밝히고 발품을 판다.고치령 산신각(770m)을 뒤로 하고 첫 봉우리인 810봉에 오르자 헬기장이 나타난다.여기서 3분간 다리쉼을 하고 1km가량 떨어져 있는 950봉을 향해 칠흙같은 대간길을 걸어오른다.발 아래 밟히는 낙엽 소리만이 이 고즈너기한 산중의 정적을 깨트릴 뿐이었다.새벽 3시 30분,950봉 아래 920미터 지점에 이르자 대간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열린 산허릿길로 방향을 튼다.여기서부터는 평탄하면서도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바람이 불어온다.친구들은 긴팔 셔츠를 입었으나 나는 그리 쌀쌀한 날씨가 아니어서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조금 걷다보면 어차피 긴팔 셔츠를 벗어야 하니 그럴 바엔 처음부터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게 좋기 때문이었다.


3시 45분,870봉을 지나 5분 뒤엔 880봉에 올라서서 5분쯤 다리쉼을 했다.대간 길에는 250미터 또는 500미터 간격으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나무로 된 위치표지판을 세워놓아 산행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4시 7분,900봉에 올라선다.남남서진하던 대간은 이 봉우리에 오면서 동진하게 된다.조금 발품을 팔자 봉우리에 커다란 묘지가 있는 830.5봉을 지나 4시 15분,미내치(810m)로 내려섰다.

 

요즈음에는 미내치(美乃峙)라 하기도 하나 그 옛날에는 미내치(尾乃峙)라 했다는데 고려 공민왕 때 인근에 산성을 쌓으면서 돌이며 기와를 날랐는데 그 행렬이 어찌나 길었던지 그 꼬리가 이 고개까지 이어졌다 하여 미내치(尾乃峙)라 한다고 한다.(04:22)

 

[남대천 3도 사람들이 부석장으로 넘던 마구령에서]

 

미내치에서 좌우로 열린 하산길은 이지음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탓인지 실날같이 희미했다.왼쪽 갈림길은 부석면 마락리,오른쪽은 달터를 거쳐 부석면 소천리 하산길이다.미내치(810m)를 뒤로 하고 발길을 옮긴다.9분가량 발품을 팔아 850봉을 지난다.850봉을 지나 조금 가니 북북동진 하던 대간은 오른쪽(동남)으로 방향을 꺾더니 100미터쯤 가자 다시 왼쪽(동)으로 머리를 돌린다.그러더니 대간은 금세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4시 43분 헬기장이 있는 840봉에 다다랐다.이 헬기장에서 목을 축이며 5분간 다리쉼을 했다.


840봉에서 대간은 100미터쯤 북동쪽으로 뻗어나가다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120미터가량 동진하던 대간은 다시 북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940봉에 다다를 때까지 500미터가량 동진한다.5시 6분 940봉에 다다르자 대간은 왼쪽(북동)으로 크게 꺾인다.어두운 숲속길,오른쪽 발치 아래로 간간이 불빛이 보인다.부석면의 인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다.940봉에서 대간이 차츰 고도를 높여나가다 대간분기봉인 1,096.6봉으로 이어진다.

 

5시 34분,헬기장이 있는 1,096.6봉에 다다랐다.이 봉우리를 깃점으로 대간은 동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리지만 대간에서 갈래쳐 나온 산줄기는 그 여세를 몰아 한강수계의 유일한 경상도 땅 부석면 마락리와 부석면 남대리를 동서로 가르며 북진한다.2분간 대간분기봉 1,096.6봉에서 쉰 다음 750미터쯤 동남진하다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5시 50분,850봉에 다다랐다.이제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한다.850봉에서 동진하는 대간을 따라 6시 5분,비포장도로인 마구령(750m)에 내려섰다.


마구령은 남대천의 의풍(충북 단양),영월(강원),남대리(경북 부석) 삼도 사람들이 부석장 보러 남나들던 고개다.이 고갯마루에서 우리가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고 있는데 갤로퍼 한 대가 전조등에 불을 켠 채 남대리에서 부석면 임곡리 방향으로 쏜살같이 지나간다.(06:25)

 

[마구령에서 남대리 쪽을 배경으로]

 

[마구령에서 부석면 임곡리 쪽을 배경으로]

 

경상도의 유일한 한강수계(漢江水界)인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서 발원한 남대천이 경북,충북,강원 삼도가 맞닿은 이 특이한 골짜기의 물을 모두 합쳐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노루목의 노루목계곡이다.남쪽으로는 고치령(770)~미내치(810)~마구령(750)~늦은목이(860)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장벽이,서쪽은 대간에서 갈래친 형제봉(1,177.5)~배티재(650)~마대산(1,050.2)줄기가,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선달산(1,236)에서 갈라진 어래산(1,063.6) 줄기가 세 방면을 가로막고 있으니 노루목은 이 골짜기의 유일한 숨통인 셈이다.

 

노루목 사람들은 옥동천으로 나가 100리 길 영월장으로 가기보다 마구령 넘어 부석장 가기를 좋아했다.배티재 넘어 영춘장으로 가는 길도 있으나 물길을 건너야 했고 부석장보다 물건이 미비한 탓에 다들 마구령을 넘어 70리 부석장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게다가 남한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단연 첫손에 꼽히는 부석사도 이들의 발걸음 재촉하는데 한몫했으리라.노루목 사람들이 그러하듯 남대리와 충북 땅,의풍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루목이 이 골짜기 삼도 물이 모여드는 곳이라면 마구령은 삼도 사람들이 모여 장보러 넘던 옛길이었던 것이다.남대리와 근동 사람들은 마구령을 메기재라 부르는데 메기골따라 열린 옛길을 거슬러 오르면 30여년 전만하더라도 고갯 만당에는 4월 초파일과 정월 대보름에는 동제(洞祭)를 올리던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마구령 소롯길을 넓히면서 당집은 사라지고 말았고 마구령 옛길도 머지 않아 빠르고 편한 데 익숙한 포장도로로 바뀐다면 옛길의 고즈녁함과 아름다움은 필시 사라질 운명이니 친구들이여,서둘러 이 옛길을 걸어보아야 하지 않겠나.(06:27)

 

[898봉 헬기장에서 1,096.6봉을 등지고]

 

[898봉 헬기장에서 춘양목을 등지고]

 

마구령(750m)에서 6시 27분까지 아침을 들고 다시 대간을 간다.동이 터오른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만물이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린다.이렇게 자연은 변한다.얼핏 보기엔 산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인 듯하나 시시각각 변한다.


2주 전만 하더라도 나뭇잎은 초록빛이었는데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었고,그토록 대간 길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던 꽃들도 다 스러지고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그 중심에 우리가 서 있다.자연은 느리게 변하지만 결코 느린 게 아니다.우리의 생각이나 의식이 빠를 뿐이다.광속(光速)을 추구하는 우리네 삶이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가 얼른 보기엔 하찮게 보일 뿐이다.그러나 그 느리게 바뀌는 자연의 변화 속에 우주의 대변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대간 종주는 단지 앞만 보고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작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받아들이는 행위일 것이다.그리하여 대간에 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눈은 밝아지며 의식은 섬세해지며 생동감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6시 36분,새롭게 단장한 헬기장이 있는 898봉에 올라섰다.거기서 마구령 너머 1,096.6봉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06:41)

 

 

[대간 리번이 화려한 1,058봉에 올라]

 

마구령(750m)에서 봉황산(818.9m)을 거쳐 부석사로 내려가는 갈림봉인 갈곳산(961m)까지 대간은 크게 보면 동남동진하는 형국이다.898봉 헬기장에서 4분가량 머문 뒤,6시 40분,다시 걸음을 옮긴다.사위는 완전히 밝았으나 대간 좌우로 무성한 숲 때문에 조망이 열리지 않아 답답했다.대간은 차츰 고도를 높여나간다.7시 10분,1,030봉에 올라섰다.남서진하던 대간은 이 봉우리에 이르자 오른편(동남쪽)으로 방향을 튼다.1,030봉 내리막길에 처음으로 암릉이 나타난다.암릉이라고 해서 바위를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위를 돌아나갈 뿐이었다.7시 20분,1,058봉에 오르니 대간종주팀들의 리번이 나뭇가지에 어지럽게 걸려 있다.이곳도 조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숲이 무성했다.

(07:24)

 

[920m 잘룩이 가는 길의 단풍]

 

1,058봉에서 내려와 990미터 잘룩이를 거쳐 1,010봉에 올라서니 또 다시 헬기장이 나온다,여기서 우리 일행은 7시25분부터 10분가량 다리쉼을 했다.헬기장을 뒤로 하고 대간 길을 간다.15분 가량 발품을 판다.920미터 잘룩이 가는 길에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멋진 단풍과 만났다.피빛을 토하듯 진한 색조가 너무 아름답고 선명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07:50)

 

[부석사 갈림길,갈곳산(961m)에 다다라]

 

이제 갈곳산까지 남은 거리는 약 2.5km.대간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나든다.햇빛도 싫지 않을만큼 내려쬐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 산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았다.7시 59분,920m 잘룩이로 내려와 연이어 940봉 두 개를 넘어서니 890m 잘룩이가 나온다.대간은 다시 고도를 높여 932봉으로 이어진다.8시 18분,932봉에 올라 12분간 다리쉼을 했다.932봉에서 840미터 잘룩이로 내려오는데 갈곳산 쪽에서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 3 사람이 달려온다.배낭도 없고 물병조차 없이 달리고 있는 이들은 부석사에서 봉황산에 올랐다가 갈곳산을 거쳐 오는 듯했다.이들과 헤어지고나서 8시 50분,갈곳산(961m)에 올라섰다.동남진하던 대간은 갈곳산에 이르러 왼쪽(북)으로 급격하게 말머리를 튼다.


갈곳산에서 오른쪽(남)으로 꺾어 봉황산(818.9m)을 거치면 무량수전으로 이름난 부석사로 내려서게 된다.나뭇가지 사이로 얼비치는 산등이 오늘 구간가운데 두번 째로 높은 선달산(1,236m) 산줄기다.갈곳산을 기점으로 선달산을 거쳐 박달령에 이르는 대간 오른편은 영주 땅을 벗어나 봉화 땅으로 들어서고,갈곳산에서 늦은목이를 거쳐 선달산에 이르는 대간 왼편은 여전히 영주 땅이지만,선달산에서 박달령에 이르는 대간 왼편은 마침내 강원도 영월 땅이다.그러다가 박달령에서 도래기재를 거쳐 구룡산까지 대간 좌우는 또다시 경북 봉화 땅으로 들어선다.상주의 중화지역과 더불어 이 일대도 대간이 도경계를 벗어난 특이한 지역이다.(08:53)

 

[늦은목이(860m)에 다다라]

 

갈곳산에서 사진을 찍고 늦은목이로 내려간다.810m 잘룩이로 내려섰다가 830봉에 오른 뒤 9시 9분 늦은목이에 다다랐다.늦은목이는 고개로서 오른쪽 큰터골로 해서 생달을 거쳐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로 내려갈 수 있다.


이곳에는 전국에서도 명 약수로 이름을 떨치는 오전약수(梧田藥水)가 있다.늦은목이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한강수계에 들어 있는 부석면 남대리로 빠진다.늦은목이에서 현기는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 친구들의 물병을 들고 오른쪽 큰터골로 50미터쯤 내려가 물을 길어온다.물이 근처에 있고 공터가 있으니 늦은목이는 야영터로 안성맞춤의 장소라 하겠다.(09:12)

 

[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오름길의 대간 풍경]

 

늦은목이(860m)에서 다리쉼을 하며 간식을 들고 9시 23분,오늘 구간가운데 가장 힘이 드는 선달산(1,236m)으로 오른다.표고 376미터를 톺아올라야 한다.늦은목이에서 선달산 정상까지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선달산 오름길을 15분가량 발품을 팔자 아름드리 춘양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춘양목으로 이름난 봉화 지역답게 소나무가 선달산 산비알을 덮고 있었다.그러나 본격적인 춘양목은 선달산 정상에서 박달령에 이르는 대간 산비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09:40)

 

[선달산(1,236m) 정상에 올라]

 

선달산 오름길은 끝없이 이어진다.아주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지루할 정도로 멀었다.정상처럼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또 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제 하늘이 보이니 저 봉우리만 오르면 정상이 틀림없겠지 하고 닥아서면 정상은 저만큼 떨어져 있으니...마치 숨박꼭질을 하는 것처럼 사람을 안달나게 만들었다.늦은목이에서 거의 50분쯤 발품을 판 끝에 10시 17분,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는 선달산 정수리에 닿았다.기환이의 말처럼 선달산 정수리는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아마 예전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던 것 같다.초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누군가 함석판을 세워 바람막이를 해놓았고 잔디밭산악회에서 세운 나무푯말이 선달산임을 알리고 있었다.

 

선달산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영주시 부석면 남대리,강원 영월군 하동면 내리의 경계에 솟구친 산이다.본래 신선이 놀던 곳이라는 뜻으로 선달산(仙達山)이라 하고,먼저 올라야 한다는 뜻으로 선달산(先達山)이라고도 한다.선달산의 북쪽에는 용아골과 칠룡골이 있다.용아골(龍芽谷)은 선달산의 맥을 이어 받았고,칠룡골(七龍谷)은 일곱 능선이 선달산으로 이어지니 남쪽으로는 봉황산,서쪽으로 회암산과 어래산,형제봉과 소백산,동쪽으로 옥돌봉,동남쪽으로 문수봉,예배봉이 에워싸고 있어 이 산에 오르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다.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기운이 넘치는 당찬 산이다.


공터가 있는 선달산 정상은 한둔(비박)이나 야영지로 쓰일 만했다.새벽 3시 종주를 시작하여 이미 7시간이 넘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들어야 했다.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선달산 꼭대기에서 점심을 드는 이 상쾌한 맛은 어디에 비할 것인가.이런 맛에 고통스럽더라도 대간 종주를 하는 것이리라.점심을 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낭을 베개 삼아 단잠에 들었다 깨어나니 11시 25분이었다.꿀맛같은 시간이 흘러갔다.선달산은 그런 산이었다.선달산에서 너무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우리는 박달령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꾸렸다.(11:26)

 

[1,240봉 암릉지대를 지나며]

 

11시 26분,선달산 정상을 뒤로 하고 박달령으로 발품을 판다.선달산 정상까지 북동진하던 대간은 여기서 다시 동쪽으로 활처럼 휘어져나가 박달령을 거쳐 옥돌봉까지 이어진다.1,190m 잘룩이로 내려와 1,240봉에 올라서니 암릉지대가 나온다.사진은 암릉 사이를 비집고 올라선 종주팀을 카메라에 담았다.(11:41)

 

[박달령(1,170m) 가는 길에 만난 거목]

 

1,240봉 암릉지대를 지나 1,210m 잘룩이에 다다르니 대간 좌우로 갈림길이 열려 있다.왼쪽(북)으로 난 산길은 영월군 하동면 칠룡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여기서 오른쪽(남) 왕바우골로 내려서면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로 빠질 수 있다.이 산길은 오전리에서 왕바우골로 해서 선달산에 오른 다음,늦은목이를 거쳐 오전리로 원점회귀하는 등산로인데 주로 오전약수 산행지로 인기가 높다.이 갈림길을 지나고나서도 얼마간 암릉이 나타나더니 이내 암릉은 사라지고 흙산으로 바뀐다.대간 양쪽 산비탈에는 수령 100년은 넘을 듯한 거목이 즐비하다.사진에 보이는 거목도 그가운데 하나인데 세 아름은 됨직하다.(12:06) 

 

[박달령(1,170m) 산신각을 배경으로]

 

이제 박달령까지 남은 거리는 약 3km.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사실은 그러지 말라고 해도 걸음은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산길은 굴곡이 거의 없고 부드럽기 때문이었다.12시 30분,1,190봉에 올라섰다.지형도에는 이 봉우리에서 오른쪽 오전리로 빠지는 하산길이 있다고 돼 있으나 낙엽이 짙게 깔려 그 길을 찾지는 못했다.11분 뒤,1,100봉을 지나 1,130봉에 올라선 다음부터 대간은 박달령까지 내리막길이다.박달령까지 약 1km 남았다.1,050m 잘룩이로 내려와 1,060봉에 오르니 박달령이 내려다보인다.오후 1시,박달령 바로 못미쳐 헬기장을 지나 박달령(970m)에 다다랐다.

 

고개 만당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우리가 막 박달령에 이르자 공사를 하다 말고 네 사람이 점심을 들고 있었다.이들은 산림청의 발주를 받아 통나무집 매표소를 고개에 짓고 있는 중이었다.우리는 도로 건너편 산신각으로 발길을 옮기니 짙은 향내음이 진동을 한다.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오전약수)에서 영월군 하동면으로 넘는 고개,박달령은 아직은 비포장도로이지만 큰 차는 물론이요,승용차도 통행할 수 있었다.그러나 산림청에서 매표소를 설치하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의 비포장도로는 머지 않은 장래에 포장도로로 바뀔 것만 같았다.


박달령은 옥돌봉(또는 옥석산)과 선달산 산행의 들머리이며,오전약수가 바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찾는 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우리는 산신각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산신각 바로 뒤 공터에서 오후 1시 15분까지 다리쉼을 했다.(13:06)

 

[옥돌봉 가는 길에 만난 단풍군락]

 

[옥돌봉 갈림길에 다다라]

 

오후 1시 15분,박달령을 뒤로 하고 옥돌봉으로 떠난다.5분 뒤 1,015봉에 올라서니 오른편 산허리를 감도는 임도가 보인다.박달령(970m) 고갯마루 북쪽으로 난 길은 옥돌봉 북쪽 산허리를 가로질러 도래기재로 이어지는 임도다.1,015봉에서 대간은 940m 잘룩이로 내려섰다가 940봉과 950봉을 거쳐 987봉으로 이어진다.


박달령에서 옥돌봉 갈림길인 1,200m 지점까지 거리는 약 2.4km.오늘 구간 가운데 선달산 오르막길에 이어 두 번 째로 힘든 구간이다.1시 35분,987봉에 다다랐다.987봉에서 대간은 250미터가량 밋밋한 능선길이지만 그 뒤부터는 차츰차츰 고도를 높여 옥돌봉 갈림길(1,200m 지점)로 이어진다.여기서부터 10시간 넘게 걸은 탓에 힘이 무척 들었다.한바탕 비지땀을 흘리며 금구와 내가 옥돌봉 산등의 갈림길(1,200m)에 다다른 시각은 오후 2시 15분.7분 늦게 현기와 기환이가 지친 모습으로 갈림길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리를 풀고 얼린 황도를 꺼내 갈증을 다스렸다.이 갈림길에서 옥돌봉(1,242m) 정상은 왼쪽(북동)으로,주실령을 거쳐 예배산과 문수산은 오른쪽 능선(남)을 따라야 한다.그런데 이정표 나무푯말에는 옥석산(玉石山)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지형도(25,000분의 1)에는 이 산명을 옥돌봉으로 기명하고 있다.하기야 옥돌봉이나 옥석산이나 다를 바는 없지만 봉화군에서는 옥석산으로 표시하고 있다.그렇지만 나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지형도대로 옥돌봉이란 산명을 따르기로 한다.앞으로 산림청에서는‘우리 산이름 바로찾기’캠페인을 벌여 잘못된 산이름을 바로 잡아나간다 하니 자못 기대가 크다.(14:28)

 

[옥돌봉 정상 빗돌과 함께]

 

2시 26분,옥돌봉 갈림길을 떠나 250미터 북동쪽에 솟은 옥돌봉으로 간다.옥돌봉 밑에 다다르니 암릉이 버티고 섰다.암릉을 비켜 올라 2시 36분,옥돌봉 정수리에 다다르니 봉화산악회에서 세운 옥돌봉 빗돌이 서 있다.그리고 정상 서쪽에는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다.옥돌봉 정상에서도 조망은 별로였기 때문에 우리는 헬기장으로 가 마지막으로 다리쉼을 하며 목을 축였다.(14:37)

 

[옥돌봉에서 도래기재 하산길,단풍터널을 가며]

 

가을날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옥돌봉에 쏟아져 내린다.그 빛은 어찌나 강렬한지 눈이 부신다.참으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햇살이다.수백만 톤의 스펙트럼이 화살처럼 쏟아져 들어온다.이 빛과 하늘,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땅,우리는 이런 것들을 잊고 살아간다.이 소중한 것들을 곧잘 잊어버린다.너무 흔해서 잊어버리는 것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대간을 종주하면서 그들의 무한성과 우리의 유한성을 실감한다.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이다.


2시 45분,옥돌봉 헬기장을 떠나 도래기재로 내려간다.남은 거리는 2.4킬로미터.대간은 옥돌봉(1,242m)에서 500미터 떨어진 1,150봉까지는 동쪽으로 가다 이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북동쪽으로 말머리를 틀어 도래기재(725m)로 자세를 낮춘다.종주날머리,도래기재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숲터널이었고 가파른 곳도 몇 군데 있어 미끄러웠다.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순한 흙길이라 어렵지는 않았다.사진은 1,050봉 지나 단풍터널 속에 든 금구를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었다.(15:20)

 

 

[종주날머리 도래기재(775m)에 다다라]

 

도래기재(775m)가 코앞이다.왼쪽 산자락으로는 난 임도를 버리고 대간마루 따라 곧장 고개 쪽으로 닥아서니 40미터는 됨직한 절개지가 나온다.임도로 돌아온다.임도에는 돌계단을 놓으려는지 큰 바윗돌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고 공사가 한창이었다.3시 27분,금구와 나는 도래기재로 내려섰다.그곳에는 안성수 부장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는다.10분쯤 기다리자 현기와 기환이도 고갯마루로 내려왔다.

 

도래기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고개 너머 춘양면 우구치리를 거쳐)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으로 넘는 고개로,88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도래기재는 고개 남쪽 도래기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경상도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역(驛)이 있던 마을이라고 도역이,도래기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래기재 부근 산등에 도열한 춘양목]

 

도래기재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24구간 종주를 마감하고 귀향길에 올랐다.안 부장의 봉고는 춘양면 서벽리 서벽초등학교에 이르러 오른쪽 도로를 따라 물야면으로 간다.조금 가니 두내약수터가 보인다.봉화는 이 약수터 외에도 물야의 오전약수를 비롯,봉성의 다덕약수가 널리 알려져 있다.옥돌봉의 남릉인 주실령을 넘어서 물야면 오전리로 내려선다.오전약수터가 보인다.


오전약수는 마구령과 도래기재 사이의 선달산(1,236m) 아래 있으며 물맛이 좋기로 조선시대 최고의 약수로 손꼽히기도 했다.그리고 중종 때의 풍기군수 주세붕은 오전약수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고 극찬했다.전설에 따르면,오전리의 후평장과 춘양면의 서벽장을 드나드는 보부상이 주실령을 넘어가던 어느 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약수를 일러주었다고 한다.그래서 이 약수를 쑥밭약수터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오전약수에 들러 백숙을 드는 대신,풍기온천으로 차머리를 돌렸다.풍기온천의 물에 반한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풍기행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특히나 기환이는 지난번 풍기온천에서 목욕을 한 뒤 머리에 난 상처가 씻은듯이 나았다며 극구 풍기온천을 칭찬했다.풍기온천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고 풍기읍내에 있는 삼계탕집에서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인삼삼계탕을 들며 산행뒷풀이를 했다.

 

[종주정보]

 

*차량지원:봉고(안성수:한국자유총연맹 청룡.노포동지부)

*종주시간/거리 및 지점

04:03 고치령(770m)..03:10-03:13 810봉(헬기장)..1.0km...03:30 950봉의 920m 지점(왼쪽 허릿길/북서->북동)...0.5km...850m 잘룩이...03:45 870봉...840m 잘룩이...03:50-03:55 880봉...0.5km...900봉(남남서->동)...920봉...900봉...04:07 830.5봉(삼각점/헬기장)...1.05km...04:15-04:18 미내치(810m)...850봉...840m 잘룩이...0.5km...04:24 850봉...830m 잘룩이(갈림길)...04:43-04:48 840봉(헬기장)...860...0.75km...05:06 940봉(동->북동)...1.05km...05:34-05:36 1,096.6봉(삼각점/H/대간분기봉:남서->동)...1.25km....05:50 850봉...0.38km...06:05-06:25 마구령(800m)..06:36-06:40 898봉(헬기장)...850m 잘룩이...1.03km...07:10 1,030봉(남서->남동)...07:20-0:35 1,058봉...990m 잘룩이...0.75km...1,010봉...1,000봉...0.5km...07:59 920m 잘룩이...940봉...940봉...890m 잘룩이...0.75km...08:18-08:30 932봉...840봉...910봉....910봉...1.25km...08:50 갈곳산(961m 봉황산 갈림봉 북서->북)...810m잘룩이...1.0km...09:09-09:23 늦은목이(860m/물 보충)...0.75km...980봉...1.0km..10:17-11:25 선달산(1,236m/삼각점)...1,190m 잘룩이...1,240봉/암릉구간...1,220봉...1.75km...12:00 1,210봉...1,170봉...1,140m 잘룩이...1,170봉...1.12km....12:30 1,190봉...0.5km...12:41 1,100봉...1,130봉...1,050m 잘룩이....1,060봉...1.0km...13:00-13:15 박달령(970m/성황당,공터,헬기장)...13:20 1,015봉...940봉...950봉...1.38km....987봉...14:15-14:26 1,200m 지점(대간->동북동 옥돌봉/주실령-남>)....1.25km....14:36-14:45 옥돌봉(1,242m)...1,150봉...1.13km...1,050봉...1.25km....15:27-15:37 도래기재(775m)

 

*도상거리:24.9km
*종주시간:12시간 24분(산행시간 9시간 27분/휴식시간 2시간 5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