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9구간<이화령-새재-하늘재>(하)
이화령-조령산-새재-마패봉-탄항산-하늘재(2004.8.1)
-새재 옛길에서 그날을 생각하며-
"새재"란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전해온다.'나는 새도 쉬어 가는 고개'라 하여 새재(鳥嶺)로 불렸다는 설이 첫째이며,하늘재 대신,'새로난 고개'라는 뜻의 새재가 그 다음이다.셋째는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새'로 난 길이라 하여 '샛재' '새재'이고 넷째는 경상도에서 '쌔'라고 부르는 억새가 특히 많아 '새재'라 불렸다는 설인데,새재골의 마을이 초점(草岾 푸실)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러나 이가운데서도 "새도 쉬어간다."는 새재가 가장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조선시대 10대로 가운데 제4대로가 부산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로 지도상에 서울과 부산을 일직선으로 그은,바로 새재를 넘어가는 길이다.지금의 경부고속도로가 428km인데 비해 영남대로는 380km에 지나지 않았으니 짧아도 한참은 짧은 길이다.오로지 발품에 의존해야 했던 옛날에는 한 발자국이라도 짧아야 했음을 물론이다.
경부고속도에 대전을 포함시킴에 따라 서울서 부산가는 길은 멀어지게 되었고 또 영호남길이 모두 대전을 거치게 됨으로써 심각한 교통체증을 불러왔다.이의 해소책으로 최근 여주와 구미를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건설중인데 이 길이 바로 지난날의 영남대로를 고속도로화하는 셈이다.(*2005년에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조령1관문에서 2관문까지는 3km,2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3.5km로 1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20리 정도다.그러나 옛 새재길은 1관문에 진입하는 길과 3관문을 지나서도 작은 새재를 더 넘어야 했으므로 전체적으로 50여리의 길을 걸어야만 완전히 새재를 벗아날 수 있었다.
문경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조령1관문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태조 왕건' 세트장만 훌쩍 둘러보곤 그냥 돌아가버린다.그러나 이 세트장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새재길로 접어든다.새재 답사여행의 진수는 세트장이 아니라 새재길에 있기 때문이다.뿐만아니라 새재길의 참모습과 참된 가치를 맛보려면 무작정 걸을 것이 아니라,굽이굽이 숨쉬고 있는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과 선인들의 자취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경새재가 최적의 도보여행(트래킹)코스로 손꼽히는 것은 주변경관이 수려한데다 10여km에 이르는 비교적 평탄한 옛 과거길,그 길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 등 수려한 자연풍광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낭만의 드라이브 코스 충주 호반을 거쳐 올 수 있고 도보여행 후에는 국내 유일의 황톳물온천에서 말끔히 피로를 씻을 수도 있어 일석삼조의 여행이 된다.최근에는 드라마 태조 왕건촬영장까지 둘러볼 수 있어 더욱 각광받는 코스가 되고 있다.특히 새재길은 고운 마사토로 잘 다져져 있어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국내 하나밖에 없는 트래킹 코스다.발바닥의 지압효과를 얻고 산기(山氣)와 지기(地氣)를 온몸으로 받기 위함이다.길 옆으로 맑고 풍부한 수량의 계곡물이 흘러,걷다가 힘이 들면 물에 발을 담그는 여유와 시원함도 맛볼 수 있다.(09:48)
정문에서 바라본 조령3관문(鳥嶺關)의 모습이다.누각의 현판에는 "영남제3관문(嶺南第三關)"이라 적혀 있다.(09:55)
조령3관문을 떠나 마패봉으로 오르기에 �서 등기들이 3관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09:57)
새재에서 바라본 깃대봉 동릉-
9시 57분,조령3관문을 뒤로 하고 마패봉으로 오른다.2분쯤 발품을 파니 조령성터가 나온다.대간길은 이 성터를 따르다가 오른편 숲속으로 방향을 틀어나간다.(09:59)
조령성터가 끝나고 10시 4분,오른쪽 숲길로 들어서자 이내 묘2기가 나오고 대간 길은 계속 오름길이다.8분 가량 발품을 팔자 잘룩이가 나오면서 다시 오르막이다.바윗길이 시작된다.그 첫 번째 바위에 올라 조령관과 깃대봉을 비롯한 대간마루금을 일별한다.
사진 맨 뒷쪽에 조령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쪽에 신선암봉이 날카롭게 솟았다.신선암봉에서 대간은 "S"자를 이루며 치마바위 4개의 봉우리를 빚어놓았다.그리고 사진 오른쪽에 깃대봉이 대간의 흐름을 이어받은 다음,갑자기 수긋해지면서 그 여세를 몰아 조령3관문으로 맥을 댄다.사진 앞쪽에 빈 공터 같은 부분이 조령관 아래 측간이 있는 자리다.참으로 대간은 장엄하게 나우리치면서 용트림하며 가슴 저미게 한다.(10:23)
마패봉 오름길,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본 대간마루금]
첫번째 전망바위에서 대간을 뒤돌아본 다음,로프가 걸린 바윗길에 다다랐다.(10:26)
[마패봉 오름길,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부봉,주흘영봉,주흘산]
신선봉과 마패봉은 월악산국립공원의 남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암봉들로 충북 충주시 상모면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 있는 산들이다.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약5㎞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산들로 산 아래로는 문경새재 제3관문을 비롯하여 문경새재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연중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승지이다.
산행은 신선봉과 마패봉을 연계하여 오르는 경우가 많으며 산세는 비록 험준하나 산행은 수월한 편이고 능선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펼쳐진 월악산국립공원의 수려한 장관이 압도적이다.마패봉 정상은 멀리 대미산,포함산,부봉을 거치는 백두대간의 산으로 그 발치 아래로 내려서면 문경새재로 유명한 조령3관문에 다다르게 된다.
마패봉에서 약 1.3km 북서쪽에 떨어진 신선봉 역시 마패봉과 더불어 그리 잘 알려진 산은 아니었으나 월악산 국립공원과 문경새재도립공원 그리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 덕분으로 널리 알려 졌으며 산행시간도 4시간이면 충분하고 산행 후 가까운 수안보 온천에서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어 실버산행지로 권하고 싶은 산이다.
충주인근 지역의 산행이 대개 그러하듯이 산행 후 온천을 즐길 수 있어 그 날 하루의 산행을 더욱 만족스럽게 한다.신선봉(967m)은 마패봉(922m)보다 더 높고 멀리서 조망을 하더래도 민두름한 마패봉보다 날카로운 신선봉이 눈에 들어오기 십상이다.(10:43)
[마패봉 정수리에서 바라본 신선봉]
마패봉 정수리에서 신선봉을 조망하고 북문으로 발품을 판다.북문에 가까워지면서 평탄한 대간 길따라 성터가 나타난다.석성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으나 군데군데 무너진 곳이 보였다.10시 57분 북문(또는 북암문)에 다다라 대관령산악회의 최능규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늘재로 이어지는 산성은 1708년 제3관문(조령관)과 제1관문을 축성할 때 함께 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임진왜란 이전에 쌓여졌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이 북문에서 왼쪽으로는 충주시 상모면 지름재로,오른쪽으로는 동화원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열려 있다.(11:03)
[조령산성 북문에서 최능규 씨 부부와 함께]
북문(710m)을 뒤로 하고 동문으로 발품을 판다.휫파람을 불면서 갈 정도로 길은 평탄하고 좋다.모처럼 속보로 걷는다.750봉을 지나 11시 14분,760봉에 다다라 11시 33분까지 다리쉼을 한다.햇빛이 나기 때문에 땀이 억수같이 흘러 휴식을 취해야 했다.
성벽은 계속해서 대간 길 왼편으로 이어진다.11시 46분,740m 잘룩이에 닿으니 좌우로 갈림길이 나 았다.왼쪽은 충주시 상모면 점말,오른쪽은 문경읍 상초리 동화원으로 빠지는 길이다.12시 10분,동문(또는 동암문 720m)에 다다랐다.이곳도 북문처럼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돌문이 열려 있었으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석성의 추춧돌이 무너져 나뒹굴고 있어 안타까웠다.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12시 46분까지 점심을 들었다.최능규 부부는 새재에서 미리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우리가 점심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부봉으로 떠난다.
동문에서도 좌우로 갈림길이 나 있다.왼쪽은 충주시 상모면 점말,오른쪽은 동화원으로 빠지는 길이 열려 있다.이제 부봉 갈림길로 오른다.부봉 갈림길까지는 산성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간다.부봉 갈림길 아래턱,성터 한켠 너른 바위에는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었고 오후 1시 2분,부봉 갈림길에 다다르자 최능규 부부가 부봉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일행이 부봉 갈림길에 모두 온 시각은 1시 8분.이 부봉 갈림길(810m)에서 대간은 부봉으로 오르지 않고 부봉 왼쪽 산허릿길을 따라 내려선다.
우리는 7분간 다리를 쉰 다음,부봉으로 직등한다.잠시 뒤 부봉 정수리 바로 아래턱에 이르니 집채만한 암장에 로프가 드리워져 있다.로프를 잡고 부봉 1봉(917m)에 올라서자 정상에는 듣던대로 묘지1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부봉을 알라는 아무런 표지판도 보이질 않는다.그런데 거기에는 마땅히 최능규 부부가 있어야 할 텐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최능규 씨를 소리쳐 불러보아도 소용이 없었다.우리는 그들이 부봉 갈림길로 내려오지 않고 그만 부봉2봉을 거쳐 부봉 6봉까지 타고 간 것으로 확신하며 1시 25분 부봉 갈림길로 다시 내려오고 말았다.
부봉 오름길은 친구들 뒤 허물어진 석성 오른편 바위를 돌아 직등하고 대간 길은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 왼편 산허릿길로 이어진다.(13:11)
[대간과 부봉이 갈래치는 갈림길에 다다라]
부봉 제1봉 정상에서 주흘산 갈림봉과 주흘영봉을 바라본다.사진 앞쪽에 소나무에 로프가 걸린 곳이 부봉으로 오르는 암장이며,오른편 윗쪽에 기묘한 생김새의 봉우리가 주흘산 주봉(1,076m),그 왼쪽 덩치 큰 봉우리가 주흘영봉(1,106m)이다.그리고 사진 왼쪽 뾰족한 봉우리가 대간분기봉인 주흘산 갈림봉이다.(13:24)
[부봉1봉에서 건너다본 주흘영봉과 주흘산 갈림봉]
부봉 1봉(917m) 에서 카메라의 각도를 오른쪽으로 옮겨 햇빛이 들어 밝게 빛나는 주흘영봉(1,106m)과 주흘산 주봉(1,076m)를 조망한다.사진 왼쪽 높은 봉우리가 주흘영봉이며,흡사 감투처럼 기묘한 모양새의 봉우리가 주흘산 주봉으로 문경읍내에서는 주흘산 주봉은 보이나 주흘영봉은 보이지 않는다.(13:24)
[부봉 1봉에서 바라본 포암산 일원]
친구들을 부봉 1봉 암장에 세우고 주흘산으로 갈래치는 대간분기봉인 주흘산 갈림봉(960m)과 주흘영봉,그리고 주흘산 주봉을 다시 조망해본다.사진 왼쪽 봉우리가 주흘산 갈림봉(960m),그 오른편 민드름하며 덩치 큰 봉우리는 주흘영봉(1,106m),그 곁에 마치 감투처럼 생긴 봉우리가 주흘산 주봉(1,076m)이다.(13:25)
오후 1시 25분,부봉 갈림길을 뒤로 하고 주흘산 갈림봉으로 간다.갈림길을 내려서고 있는데,30여 명의 등산객들이 부봉 갈림길로 올라오고 있다.옷차림새나 배낭으로 미루어볼 때,대간꾼들은 아닌 것 같고 여성등산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갑습니더.어디서 오능교?"하고 일행 가운데 한 여성 등산객한테 물으니 "저 아래 주차장에서 옵니더."하며 생긋 웃으며 지나간다.조령1관문 아래 주차장에서 주흘산에 올랐다가 우리와 만난 것이다.요즘 들어 여성 등산인구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산행도 이젠 남성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가고 여성들의 참여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자녀들에게 올바른 자연관을 심어주는데는 남성보다 오히려 섬세한 여성이 휠씬 효과적일 것이다.아울러 자녀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데도 어머니의 역할이 절대적이다.그러므로 여성이 산행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 등산객들은 선두와 후미가 격차가 나서인지 그 행렬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우리가 주흘산 갈림봉 아래 암벽을 모두 오르자 비로소 일행의 모습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주흘산 갈림봉 아래 잘룩이에 다다라 오르막길로 접어들자 또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이곳 암릉의 특징은 직등하지 않고 바위 옆으로 게걸음을 걷듯 돌아나가는데 있다.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로프가 바위와 바위 사이를 가로질러 있으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기환이가 나뭇가지를 잡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뛰듯 돌아나가고 있다.종아리에 돋은 힘줄에 걸린 그의 몸무게를 생각해보라!!! 이번 구간을 마치고 우리는 바윗길을 몇 개나 타고 넘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그만큼 힘이 들기도 했지만 스릴과 아기자기함도 함께 맛보았다.정말 멋진 대간 길이라는데 우리는 입을 모았다.(13:41)
바윗길을 모두 오른 다음,전망바위에서 부봉을 바라본다.사진 오른쪽이 부봉 제1봉(917m)이고 왼쪽 봉우리가 부봉 제3봉(933.5m)이다.(13:46)
[주흘산 갈림봉 못미쳐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부봉]
전망바위에서 부봉을 조망하고 5분쯤 발품을 팔아 오후 1시 50분,주흘산 갈림봉(960m)에 다다랐다.여기서 대간은 북진,평천재로 내려섰다가 탄항산과 하늘재로 나우리치고, 동남진하면 주흘영봉과 주흘산 주봉으로 가게 된다.우리 일행은 이 갈림봉에서 2시 19분까지 다리쉼을 하면서 간식을 들어 체력을 북돋았다.(14:19)
주흘산 갈림길(960m)에서 평천재(740m)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면서도 미끄러웠다.도상거리 550미터의 거리에 표고 220미터를 내려서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2/3쯤 산길을 내려왔을 때,두 갈래 길이 나오길래 우리는 오던 그대로 그냥 내려섰는데 평천재에 거의 다다라 자세히 보니 그 길은 두 산등성이 한가운데 계곡을 가로질러 평천재로 이어지고 있었다.그러니 뭔가 잘못된 게 틀림 없었다.두 갈래 길에서 왼쪽 산등길로 방향을 잡아 내려왔어야 제대로 평천재로 올 수가 있는 것이다.
평천재에 다다르니 길 한복판에 서너 사람이 앉아 쉬기 좋을 만한 너럭바위가 있어 2시 44분까지 다리쉼을 했다.평천재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빠지면 동문으로,오른쪽 길로 빠지면 탄항산 아래에 터잡은 문경읍 평천리(平川里) 월항(月項,달미기)마을에 이르게 된다.(14:44)
[평천재에 다다라]
평천재(740m)에서 2시 44분까지 다리쉼을 하고 탄항산으로 오른다.그러나 대간 길은 첫봉우리(780m)를 바로 오르지 않고 왼쪽 산허릿길을 돌아나간다.숲속길을 따라 가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하다.그런데 853봉에 다다랐지만 탄항산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25,000분의 1지형도에는 탄항산이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각종 안내서에는 이 853봉을 탄항산이라 적고 있다.단지 사람과 산에서 펴낸 백두대간 종주안내서에는 853봉에서 오른쪽으로 더 간 곳을 탄항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그곳이 탄항산의 올바른 위치다.
탄항산으로 닥아가는데 대간 왼쪽 아래,충주시 미륵리 쪽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재에 가까이 왔다는 징표다.목탁소리를 벗삼아 3시 11분,탄항산(炭項山 856.7m)에 다다르니 정상을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다.탄항산은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하며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봉홧불을 올려 한양으로 전했다고 한다.문경시에서는 탄항봉수의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다.(15:15)
3시 17분까지 탄항산에 머물다 다시 대간 길을 잇는다.이제 하산길이다.18분쯤 발품을 팔자 굴바위에 다다랐다.선바위라고도 부르는 이 굴바위는 거대한 바위덩어리 두 개를 아래 위로 걸터놓은 2단 바위로 매우 이색적인 모습이었다.우리는 굴바위 앞 전망바위에서 굴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하늘재로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15:35)
하늘재로 내려가다가 포암산(布巖山)을 배경으로-
이쯤에서 우리는 동문에서 헤어진 최능규 부부가 긍금하여 휴대폰을 넣어보았으나 불통이었다.조금 있으니 휴대폰에 뜬 내 번호를 보고 최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우리가 예상한 대로 그들은 부봉을 종주하는 바람에 동화원으로 잘못 하산했다고 한다.그는 다시 주흘산 갈림길로 올라와 하늘재로 오겠노라고 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기다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화령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전했다.그들 부부를 다시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못내 아쉬웠다.
문헌에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3년(156)에 개척된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리로 넘어가는 계립령(鷄立嶺525m,하늘재)이다.신라의 북진정책은 2세기 중엽 이미 백두대간을 넘어 중원 땅을 겨누고 있었다.
신라는 이때부터 하늘재 요충지에 성을 쌓아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삼았다.그러나 고구려의 남진정책도 만만찮았다.고구려의 도움을 청하러 간 김춘추한테 보장왕이 "마목현(하늘재)와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 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나 "계립령과 죽령의 서쪽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출사표 등은 이를 말해준다.
후삼국 쟁패기에는 왕건과 견훤의 싸움이 치열했다.아찬의 벼슬에 오른 왕건이 906년 군사 3천을 이끌고 상주 사하진을 공격할 때 남하한 길이 바로 이 하늘재 길이다.927년에는 왕건이 고사갈이성(문경) 성주 홍달을 항복시켜 당시 후백제 세력하에 있던 하늘재 길을 차지 하였다.이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는 병참선로를 확보한 것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견훤이 이에 분노하여 가까이에 있는 산북의 근암성을 불태운 뒤 곧바로 경주로 진격해 갔던 것도 하늘재 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신라가 망한 뒤,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눈물로 넘었던 고개도 하늘재다.고려 때는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길 때와 고종 42년(1255) 10월,차라대가 이끄는 몽고군이 남진할 때,그리고 1362년 홍건적이 송도를 함락시켜 공민왕의 어가가 안동으로 파천할 때도 이 고개를 넘었다.
하늘재의 지명은 다양하게 변해오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계립령으로,김유신조에는 마목현(麻木峴)으로 나타난다.또 "고려사"에는 미륵리 절에 원(院)이 생기면서 대원령(大院嶺)으로,"세종실록지리지" 에는 마골점(麻骨岾)으로 등장한다.계립이란 '껍질을 벗긴 삼대'를 뜻하는 겨릅(마골)을 한자어로 옮기면서 생겨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16:02)
[다시 찾은 이화령]
하늘재에서 문경의 개인택시 이상록 기사한테 휴대폰을 넣어 하늘재로 오게 했다.10분쯤 기다리니 이 기사가 왔다.그의 차를 타고 이화령으로 가면서 우리는 하늘재와 관음리,그리고 문막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그도 산행을 즐겨 쉬는 날이면 장거리 산행을 즐기는 산꾼이었다.그래서 더 한층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특히 그는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한테 깎듯이 예의를 차렸다.하늘재에서 이화령까지는 문경 땅이기 때문에 미터기에 나오는 대로 요금을 받는다고 했다.우리는 구비구비 옛도로를 거슬러 올라 이화령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 어두컴컴한 새벽에 종주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화령에서 찍은 어두운 사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우리는 다시 한번 이화령 고갯마루 경북도계비를 등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17:44)
*이화령 종주들머리에 다시 서서 이화령을 생각한다*
1925년,이화령이 신작로로 처음 닦였을 때는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고 험한 단일로였다.정해진 장소에서만 오가는 차가 겨우 비켜 지날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그런 탓에 6.25 때는 이 고개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수많은 차량들이 계곡으로 굴러 떨어졌고,피아간 셀 수 없는 인명들이 목숨을 잃었다.낙동강 방어선을 긋고 경부선을 따라 지연작전을 벌이는 미 24사단의 후방을 지키는 역할을 이화령이 담당한 때문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화령 길은 차사고가 무척 잦았다.겨울철이면 차가 몇 대씩 굴렀고,설이나 추석 명절 때는 빙판길에 오가는 차량이 서로 뒤엉켜 귀향 차량들이 충주,괴산까지 줄을 서는 심각한 정체현 상을 빚기도 했다.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화령 정상까지는 폭설로 앞이 보이질 않다가도 고개만 넘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이 맑아 지는 경우였다.백두대간을 경계로 두 지역의 기후가 그만큼 변화무쌍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애로와 염려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충북 괴산과 경북문경을 잇는 이화령터널이 1997년 개통된 때문이다.1.6km에 이르는 터널 개통으로 20분 가량 통행시간이 단축되었고 결빙에 따른 교통사고와 체증현상도 해결되었다.그리고 금년 말까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추가로 완공될 예정이어서 이 지역 교통은 한층 편리해질 전망이다.현재 4시간 걸리는 여주-구미간의 통행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단축되고 서울서 문경새재까지도 2시간대로 앞당겨질 것이다.
하늘재에서 종주를 마치고 문경의 개인택시를 빌어 이화령에 다시 오자 이화령휴게소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들이 있었다.주로 대간을 종주하는 대간꾼들의 차량이나 행락철 피서객과 유산객들의 차량이 이화령터널을 이용하지 않고 이 옛고개에 올라와 바쁠 것 없는 여행길의 느긋함을 만끽하고 있었다.우리는 이화령휴게소에 들어가 시원한 캔맥주와 청량음료로 갈증을 달랬고 그것도 모자라 팥빙수로 더워진 속을 식히고 연풍의 명물이라는 "박사 찰옥수수"를 뜯으며 허기를 달랬다.(17:44)
[종주정보]
*차편
부산<---북상주인터체인지--->이화령:전기환 승용차
하늘재--->이화령:문경개인택시(이상록 016-280-3026/054-571-9526)
*종주코스/시간 및 통과 지점
03:36 이화령(548m)...758봉 왼쪽 9부능선길...690m잘룩이...1.0km....04:03-04:20 헬기장(740m)...0.75km...04:50 조령샘 갈림길(870m)...0.25km...04:41-04:43 조령샘(850m)....0.38km...04:57-04:59 헬기장(1,000m)...0.37km...05:10-05:22 조령산1,026m)...0.88km....05:47 946m 잘룩이...06:15 상암사터 갈림봉(887m)...0.62km...0.62km...06:20 840m 잘룩이...06;33-06:39 신선암봉(930m)....06:51 790m 잘룩이...0.87km....07:08 치마바위 1봉(928m)....07:15 치미바위 2봉(910m)...07:33-07:52 치마바위 3봉(900m)...1.05km...08:24-08:20 삼거리봉(750m)...08:35 740m 잘룩이...753봉....1.0km...08:54 깃대봉(812.5m)...0.25km....09:04 갈림길(700m)...0.5km...09:15-09:53 조령(새재,640m,조령약수)...0.83km...10:36-10:41마패봉(마역봉 922m)...0.63km...10:57 북문(북암문 710m)....750봉...1.12km...760...11:33 750봉...740m 잘룩이...1.12km...12:15-12:46 동암문(720)...0.5km...13:02...0.5km...13:02-13:25 부봉 잘룩이(810m)...0.82km...13:50-14:19 주흘산 갈림봉(960m)...0.55km...14:31-14:38 평천재(740m...0.63km...15:11-15:17 탄항산(853m)...0.37km...856봉.....15:34 굴바위(선바위)...0.55km...766봉...640봉...0.9km...16:13 하늘재(520m)
*도상거리:15.94km
*부봉(釜峰,917m) 등산 왕복:0.26km
*총산행거리/시간-16.2km/12시간 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