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8구간 벌충<지름티재-희양산-이화령>
[은티마을 노거수를 등지고]
지름티재-희양산-이만봉-백화산-곰봉-이화령(2005.5.15)
[이 후기는 2004년 7월,이 구간종주에 불참했던
친구들과 함께 10개월 뒤에 행한 보충산행이다.]
5월 15일은 일요일이자 초파일.이런 뜻깊은 날 산꾼은 어느 산으로 가야 할까?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이라면 으레 이름난 절집이 있고,유명한 절집을 품은 산치고 이름나지 않은 산이 없으니 우리네 산과 절집은 불가분의 관계다.그렇다면 그 많은 산 가운데서 과연 어느 산으로 가야만 할까?
그 대답은 하나-봉암사를 품은 문경의 <희양산>이다.일년 내내 산문(山門)을 굳게 걸어 잠궜다가 초파일 딱 하루만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봉암사.오늘이 바로 그날이다.희양산을 다시 찾은 또 다른 이유는 재화와 익수가 이 구간 종주를 빼먹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김유건 베이스캠프 조장이 흔쾌히 우리를 실어나르기로 했고 재화와 익수 그리고 나와 전기환,마산의 김현기가 이 땜빵에 우정출연했다.하지만 이미 종주를 했던 세 사람은 말이 우정출연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우리가 희양산을 찾았다기보다 희양산이 불렀다는 편이 옳을 성싶다.
희양산은 감히 말하건대,지상에 있는 산이지만 단지 지상에 있는 산만은 아닌 듯했다.희양산은 신비롭고 당찬 기운이 넘치는 예사로운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6구간 종주 때,구왕산에서 종주날머리 지름티재로 내려오니 봉암사의 건장한 스님들이 떡 버티고 서서 봉암사는 물론이요 희양산마저 출입을 허락하지 않아 종주에 나선 대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래서 우리는 다음 종주 때 새벽같이 지름티재로 올라 종주를 마쳤다.
그러나 오늘은 산문이 열려져 있으니 홀가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일행이 은티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5월 15일 새벽 3시 30분이었다.우리는 차안에서 5시까지 눈을 붙였다.사진은 은티마을 다리에서 막 어둠이 사위어가는 마을 노거수를 뒤에 두고 종주팀이 함께 했다.(05:13:43)
[지름티재를 등지고(사진 가운데 잘룩이가 지름티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을 뒤로하고 지름티재로 오른다.산행들머리로 가다 과수원 어귀에서 희양산을 배경으로 한 컷트 했다.사진 가운데 잘룩한 고개가 18구간 종주들머리인 지름티재이며 그 왼쪽 봉우리는 희양산이고 오른쪽 봉우리는 구왕봉이다.지름티재 너머,문경시 가은 땅에 조계종 특별선원이 있는 봉암사가 있다. (05:18:40)
[지름티재로 오르며 조망한 희양산-시루봉 능선]
과수원 어귀를 지나다 왼쪽으로 시야를 돌려 희양산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를 바라본다.동트는 새벽 여명이 붉게 물든 두 봉우리 가운데 오른쪽은 시루봉이며,시루봉이 수긋해지는 잘룩이가 배너미평전이다.배너미평전에서 오른쪽으로 하늘금을 긋는 산줄기는 백두대간 희양산 능선이다.시루봉은 백두대간에서 슬쩍 비켜서 있다.(05:20:07)
[소리난바우골,희양산성터 갈림길의 해골바위]
지름티재 산행들머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숲속 길이다.’소리난바우골’을 거슬러 오른다.태풍 매이가 훑고 지나가면서 계곡 언덕을 무참히 도려낸 지점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이곳에서 왼쪽 샛길로 빠지면 희양산성으로 오르는 길.직진하면 지름티재 가는 길이다.갈림길에서 오른쪽 숲속으로 해골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얼핏 보면 거대한 버섯 같기도 하고 흡사 사람의 인골을 빼닮은 듯한 해골바위를 배경으로 이재화 산우회 총무가 무심히 서 있다.(05:46:30)
[지름티재 오름길의 익수와 기환]
마침내 지름티재에 섰다.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연풍면을 가르는 백두대간의 지름티재-봉암사로 넘는 최단거리 지름길이라 하여 지름티재란 이름이 붙여졌다.
은티마을에서 올라오던 그대로 고개를 넘어서면 유명한 봉암사가 나온다.하지만 고갯마루에는 목책이 어지럽게 둘러져 있다.봉암사 일원은 산문(山門)이 폐쇄되어 연중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막을 치고 봉암사 스님 4~5명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어디 이곳 뿐이랴.희양산성이 있는 갈림목에도 목책을 치고 스님들이 지키고 있으니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목은 완전 차단된 셈이다.
뭣 모르고 지름티재를 찾은 이들은 아쉽게 발길을 돌려 오른편 구왕산에 올라 희양산을 바라보곤하니 평소 같으면 산꾼들에게 희양산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희양산이 품고 있는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이십년 넘게 굳게 걸어 잠근 문을 일년에 딱 한번 초파일에만 연다.
수행하는 납자들의 청정도량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신도들조차 드나들 수 없다. 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봉암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그러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행락객들 때문에 희양산 자락과 봉암사 옆 40리 계곡,봉암용곡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사찰 주변 환경훼손은 차치하고라도 국보급 문화재들마저 손상될 정도로 청정도량의 이미지가 사라지고말 위기에 처했다.
신라시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이자,1945년 봉암사 결사의 성지로서 봉암사 명성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자 마침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수행자들이 나섰다.산문 폐쇄 10년이 지나서 사람의 자취가 지워지고,20년째 접어들자 산천이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06:11:41)
[지름티재 목책을 등지고 선 현기,기환,익수,재화]
지름티재 목책을 넘어 희양산으로 오른다.10분 가량 발품을 파니 전망바위에 이른다.이 전망바위 쉼터에서 건너편 구왕봉을 바라본다.온통 바위 투성이인 구왕봉은 희양산을 옮겨다 놓은 듯한 산세다.
봉암사 창건 설화에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대사가 심충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봉암사 자리를 결정하고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메울 때 용이 살고 있어서 지증대사는 신통력으로 그 용을 구룡봉(九龍峰)으로 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이 구룡봉이 바로 구왕봉이며 봉암사에서는 날개봉이라고도 한다.또 이 날개봉에 풍수지리설에 의해 매년 소금단지를 묻어 기를 눌러둔다고 한다.
백두대간이 천하의 절경 희양산을 높이 솟구친 후 그래도 아쉬운지 다시 희양산과 비숫한 산을 세우고 달려 가다가 희양산과 구왕봉 사이에 지름티재를,구왕봉을 지나 은티재를 만들고 악희봉.장성봉을 지나 대야산.청화산으로 이어진다.그러나 지금까지도 희양산의 명성에 눌려 이름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인적이 뜸해 깨끗한 산길과 아기자기한 능선길은 찾는 이로 하여금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산이 바로 구왕봉이다.(06:21)
[희양산 직벽 아래 전망바위에서 구왕봉을 등지고]
전망바위에서 내려와 희양산으로 오른다.커다란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나가자 개구멍바위가 나타난다.덩치 큰 사람은 허리를 구부려 통과해야 한다.바위너덜을 지나 6시 37분,드디어 가파르기 짝이 없는 바위 직벽구간에 이르렀다.말로만 듣던 험난한 구간으로 세미클라이밍을 해야 된다고 종주안내서에 적힌 구간이다.바위 한가운데로 두 줄기의 홈이 패여 있고 그 곁으로 가녀린 로프가 걸려 있다.물기가 있는 바위면은 무척 미끄러웠다.3단으로 된 50미터의 이 직벽구간은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릴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마지막 직벽을 더터오르는 동기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06:49:38)
[전망바위 지나 집채바위 아래에서]
[희양산 갈림길 아래 가파른 직벽구간 이모저모]
희양산은 호젓하면서도 깨끗했다.그 흔한 껌껍질 하나 보이지 않고 리번도 찾을 수가 없었다.정상에 다다르니 정상을 알리는 표석마저 없었다.사진에 보이듯,바위 위에 빛 바랜 글씨로 ’희양산’이라 적힌 돌무지만 있을 뿐,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전국의 이름난 산치고 요란하게 치장한 정상 표석이 없는 봉우리를 찾을 수 없는데 이곳은 아무런 표식이 없으니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산꼭대기를 짓누르는 정상 표지석은 우리 인간의 편의에 부합하는 일일 뿐.그 산 자체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어쩌면 자연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 정상 표석 설치일 지도 모른다.(07:14:21)
[희양산 정상 가는 길에 만난 전망바위-저 아래로 봉암사가...]
[희양상 정상 가는 길에 만난 석문]
[희양산 정수리 앞 암릉을 배경으로]
희양산 정상 아래 바위 테라스에서 아침을 들고 희양산 갈림길로 돌아간다,봉암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딱 한곳이 있었으나 사진을 찍고 보니 너무 희미했다.그 대신 너럭바위에 걸터 앉은 동기들의 모습을 잡아보았다.(07:41:34)
갈림길로 돌아오니 50대 중반의 부부가 직벽구간을 거슬러 올라와 가쁜 숨을 몰아쉰다.이들은 봉암사에서 지름티재를 거쳐 예까지 올라왔다고 했다.몇 년을 벼르다가 왔다는 그들은 초파일 한 번 빗장을 여는 봉암사에서 희양산으로 올라왔으니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들과 헤어지고 신라 때 쌓았다는 희양산성에 다다랐다.이곳에서 저 아래 소라난바우골의 해골바위 갈림길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열려 있다.여기도 목책을 쳐놓고 출입을 금지시키기 때문에 평소에는 산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07:55:09)
[희양산성 터에 다다라]
희양산성을 뒤로하고 한마장 발품을 팔아 배너미평전에 이르니 30여명쯤 되는 울산의 영남알프스산악회 대간팀이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이들은 은티마을에서 올라와 버리미기재까지 간다고 했다.배너미평전은 시루봉과 희양산 능선 사이에 이뤄진 넓은 터전으로 식수를 구하기가 좋기 때문에 대간꾼들이 쉬어가기 안성맞춤의 장소다.
배너미평전을 벗어나 시루봉 갈림길에 올라서니 문경의 백화산과 조령산이 조망된다.시루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꺾어 이만봉으로 간다.이만봉 가는 대간에는 간간이 암장이 나와 지루함을 덜어준다.이만봉이 얼마 남지 않은 �속에 용의 비늘처럼 생긴 용바위가 드러누워 있다.(09:19:14)
[용비늘 형상의 용바위를 지나며]
[이만봉 가는 길,전망바위에서]
곰틀봉을 넘어 사다리를 지나면 평전치 갈림길이 나온다.이 갈림길을 뒤로하고 백화산으로 오르는 대간 길은 녹음이 짙게 우거져 온통 초록색천지다.친구들의 얼굴마저 초록으로 물들었다.(10:56:25)
[평전치 지나 백화산 오름길 숲속 풍경-초록이 뚝뚝 듣는다]
평전치(890m)에서 백화산(1,063.5m)으로 오르는 대간 길은 뜻밖에 오르내림이 심했다.990봉 오름길은 암릉을 딛고 넘어야 했다.990봉에 올라서니 그 앞쪽에 1,013봉이 보인다.이 1,013봉은 암봉이었으나 990봉에서는 수림에 가려 그저 평범한 봉우리처럼 보였다.990봉에서 1,013봉으로 오르는 길은 1,013봉을 바로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간다.1,013봉을 돌아가면서 보니 거대한 암장이 1,013봉을 휘감고 있었다.1,013봉 능선이 돌아오는 길과 만나 잠시 발품을 팔아 전망바위에 올라섰다.
이 봉우리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손수건으로 훔치고 갈증을 축이며 대간을 뒤돌아본다.맨 앞쪽 암봉이 바로 오르지 않고 돌아온 1,013봉이고 그 뒤의 봉우리가 990봉,세번째 봉우리는 뇌정산 갈림봉인 973봉이다.그리고 저 멀리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암봉이 바로 희양산(999m)이다.(12:11:23)
[990봉에서 뒤돌아본 이만봉과 대간마루금]
[1,013봉 지나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대간의 산들]
1,013봉 지난 전망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백화산으로 오른다.백화산으로 닥아갈수록 햇빛이 쨍쨍 내려쬐어 온몸이 달아오른다.12시 20분,드디어 백화산 정수리에 올라섰다.백화산은 이화령에서 잠시 수긋하던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향해 치달리기 전에 솟구친 산이다.백두대간이 문경 쪽으로 한참을 치고 들어갔다 빠지며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고,백화산은 그 정점에 위치해 있어 흔히들 봉황이 나는 형국이라고 한다.
특히 문경쪽으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부리 구실을 하고,정상은 새가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 보듯이 인근 산과 들이 한 눈에 내려다 뵈는 조망의 명당이다.
백화산은 봉황이다.성인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다.그 발치에 봉생(鳳笙),왼쪽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오른쪽에 신라시대 고찰인 봉암사(鳳岩寺)를 두고 뒤로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봉황이다.믿기지 않거든 정수리에 서서 볼 일이다.
북쪽으로 성채처럼 우뚝 솟은 주흘산,돌기둥 뚜렷한 부봉,조령산의 빛나는 바위면 뒤로 월악산이 환상의 성(城)처럼 떠오를 것이다.남으로 눈을 돌리면 희양산의 눈부신 암벽 저편에 속리산 톱날능선이 무쇠처럼 검다.운달산 너머로는 소백산이 아스라하다.이렇게 많은 명산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이 땅에 달리 없으리라.이곳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서기(瑞氣)어린 땅이기 때문이다.4단으로 된 정상 남벽에는 근동사람들이 명당자리로 꼽는 기도터가 있다 한다.
문경 사람들이 즐겨찾는 백화산은 이날 등산객들이 전혀 없었다.땡볕이 내리쬐는 정상에서는 점심을 들기가 마뜩찮았다.서둘러 백화산에서 내려와 대간 길을 간다.로프가 걸린 암봉을 올라서고 나서 그늘진 공터에서 점심을 들고 잠시 눈을 붙였다.여기서부터 이화령까지는 양탄자같은 순한 흙길이 2시간 넘게 이어졌다.여태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이렇게 순탄한 숲길은 처음이었다.3시 30분,이화령에 다다라 18구간 벌충을 마감했다.10시간 20분이 걸린 대간종주였지만 희양산에 오른 뿌듯함이 산행의 피로를 녹여주고도 남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