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5구간<비재-밤티재>

청산신남석 2006. 7. 8. 18:43
 

                                [문장대에서 바라본 칠형제봉과 천황봉의 파노라마]

 

 

비재-형제봉-천황봉-신선대-문장대-밤티재(2004.6.6)

 

 

다시 백두대간이다.고기에겐 물이 있어야 하듯 산꾼한테는 산이 있어야 한다.그 가운데서도 뭐니뭐니해도 산은 백두대간이다.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모든 산들이 이 백두대간에 뿌리를 대고 기대니 대간은 큰 마루요,지붕이다.그래서 대간에서 2개의 정간(正幹)과 12개의 정맥(正脈)이 갈래쳐 나가 비로소 한반도는 금수강산이 되는 것이다.지난 1월 18일,14차 대간을 끊어탄 뒤,무려 4개월 반동안 우리는 휴식에 들어갔다.


국립공원 속리산 일원이 5월 말까지 출입이 통제되는 데다 암릉이 많은 이번 구간을 겨울철에 종주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대간으로 향하는 우리의 열정이나 그리움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왕성하게 불타올랐다.이런 열기는 부산 근교산인 토곡 남릉인 용굴산 암릉산행,강진의 주작,덕룡산,가학-별매-흑석산 산행과 팔공산 릿지산행으로 이어졌다.

 

막상 6월 5일,저녁 대간 길을 출발하려니 이재화 산우회 총무,최금구,김황세 동기를 비롯 손의선 회원마저 불참하여 여간 씁쓸하지 않았다.대간에 동참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김익수 동기의 차편으로 부산을 벗어난 시간은 6월 5일(토) 저녁 8시 30분-서마산에서 김현기 후미대장을 태우고 상주로 떠난다.경부고속도로 김천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스며들어 상주에 다다르니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상주에서 보은행 25번 도로로 접어들자 도로변에는 우리가 잠시 쉬어갈 만한 식당이나 가게마저 불이 꺼져 있었다.내서를 거쳐 화서에서 49번 도로로 꺾어들어도 한적한 시골길은 무인지경이요,적막강산이었다.그러나 오늘은 음력 5월 19일,달이 훤히 밝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지난 구간 하산지점인 비재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아리송했다.화북 면소재지에 다다라 비재를 물어보니 우리는 그곳을 지나쳐 왔다는 것이었다.다시 오던 길로 되내려와 대궐터산과 형제봉 산행들머리인 갈령(葛嶺)에서 조금 내려오니 인근 음식점 주인이 SK주유소까지 조금 더 내려가란다.그 주유소에서 오른쪽 비포장 길로 꺾어들어 조금 가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비재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었다.


새벽 2시,우리는 차안에서 2시간 가량 잠을 청했다 6월 6일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나 산행을 서두른다.비재에 익수 차를 세워놓고 4시 18분 헤드랜턴을 켜고 철계단에 걸음을 딛어 15구간 산행에 들어갔다.

 

[종주들머리 비재의 쇠사다리를 등지고]

 

비재(330m)에서 형제봉을 거쳐 속리산 천황봉(1,058.4m)까지 오름길은 기복이 심한데다 지루한 느낌을 주는 대간길이다.비록 암릉이나 위험구간은 없으나 표고 700여 미터를 톺아올라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힘이 든다.그래서 이 구간은 평소 산행보다 20% 가량 보행속도를 낮추어서 운행해야 천황봉-문장대-암릉지대-밤티재-늘재까지 종주가 가능하게 된다.밤티재까지는 중간에 탈출할 곳이 없기 때문에 늘재까지 가지 못한다면,차선책으로 밤티재까지는 종주를 마쳐야 한다.그래야 차량이 다니는 다음 구간 산행들머리까지 진입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헤드랜턴에 불을 밝히고 비재를 떠난다.철제계단을 밀어내며 오른다.비재는 새가 나는 형국이라 하여 비조령(飛鳥嶺)이라고 불렀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비재라고 한다.지난 5월 한달 동안은 거의 산행을 하지 못한 탓에 첫걸음부터 조심스러웠다.대간 끊어타기는 워낙 장거리 산행이므로 익수와 기환이는 걱정부터 앞서는지 불안한 얼굴이다.

 

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간다.비재에서 첫봉우리(453.2m)를 넘어 4시 35분,묘지를 지나자 낙엽송군락지가 나온다.이른 새벽산행이지만 보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굳이 헤드랜턴이 없어도 걸을 만큼 사위는 밝다.시원한 바람결에 소쩍새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홀딱벗고"새인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연신 들려온다.새들의 영롱하면서도 기막힌 합창-우리는 그 소리를 따라 점점 산속으로 빠져들고 걸음짓은 한결 경쾌하다.여늬 산에서 맛보지 못하는 청량감이 온몸을 적신다.우리는 �파람으로 홀딱벗고를 흉내내며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나간다.그 새는 우리가 발품을 파는 앞쪽 저만 치에서 여전히 육감적인 소리를 낸다.


5시 바위로 된 560봉을 지나자 왼편으로 대궐터산과 청계산이 육중한 모습을 드러내고 화남과 화북을 잇는 49번 지방도로(비재를 찾기 위해 오른 내린)가 백두대간과 나란히 달린다.10분 가량 걸어나가자 오른편 억시기 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갈림길이 나타난다.갈림길을 벗어나 5시 44분,헬기장에 다다른다. 또다시 10분쯤 발품을 팔자 암릉이 나오는데 바위를 넘을 수도 있고 왼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나 우리는 우회로를 택한다.이곳이 삼형제바위가 있는 689.9봉이다. 5시 52분,삼형제바위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삼형제바위에 올라]

 

삼형제바위가 있는 689.9봉에 다다라 다리쉼을 하며 갈증을 푼다.비재에서 1시간 가량 어둠을 뚫고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전망이 트이는 이곳에서 숨을 고른다. 서서히 동이 터온다.사진은 지난 구간 우리가 심설산행을 하며 비재로 내려온 봉황산을 뒤돌아본다.사진 한가운데 우뚝 치솟은 봉황산과 그 앞쪽으로 동관부락,그리고 화북과 늘재로 가는 실날같은 49번 지방도로가 얼핏얼핏 보이고 왼편에서 대궐터산 산자락이 동관마을로 뻗어내리고 있다.봉황산 뒤로 새벽 여명이 장엄하다.

 

[삼형제바위에서 돌아본 봉황산]

 

20분쯤 삼형제바위에서 휴식을 하고 형제봉으로 걸음짓을 한다.조금 가자 묘지가 나오고 지형이 묘하게 생긴 곳에 다다랐다.이곳이 백두대간마루금에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천지(天池 못제)다.못제는 사방이 다 막혀 있는 천연습지로 면적은 200여평 정도이고 물이 고여 있는 부분은 10평 가량 된다.그러나 유입수가 없고 빗물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마를 때가 많다.이날 우리가 본 못제는 비가 오지 않아서 인지 마를 대로 말라 있었다.

 

[견훤이 목욕을 했다는 못제(天池)]

 

이곳 못제에 대해 동관의 자연부락 억시기 동네에는 견훤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옛날 견훤이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의 신라 황충장군과 다툴 때 매번 승리를 거두자 황충장군이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염탐꾼을 시켜 뒤를 밟아 보니 견훤이 기진맥진 상태에서도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힘이 솟구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황충장군은 견훤이 지렁이 자손임을 알고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소금 삼백석을 풀게 하였다.그리고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이 빠진 견훤을 쳐서 크게 이겼다"고 한다.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절기에 이곳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묘지가 있는 헬기장을 지나자 또다른 바위구간이 나타나다.


이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오르니 갈령삼거리(680m)에 다다른다.갈령삼거리에서 4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갈령(443m)으로 하산하는 데는 25분쯤 걸린다.6시 30분,갈령삼거리에서 형제봉으로 발품을 판다.15분 걸려 형제봉(829m)에 다다랐다.형제봉은 암봉으로 장쾌한 속리산 주릉과 천황봉,그리고 백두대간을 조망하기에 아주 멋진 곳이다.주변의 청계산과 대궐터산,구병산,도장산,청화산,봉황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갈령고개도 보인다.사진 왼쪽 제일 높은 봉우리가 속리산 제일봉인 천황봉이고 그 오르쪽 능선 따라 기치창검한 속리산 암릉이 수를 놓고 있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릉]

 

형제봉 암릉에서 동남쪽으로 눈을 돌려 대궐터산과 봉황산 주변을 조망한다.사진 가운데로 보이는 마을이 상주시 화남면 동관마을이고,그 마을을 관통하는 49번 지방도로가 화북을 거쳐 늘재와 밤티재로 이어진다.사진 왼편으로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가 대궐터산 능선이며 그 앞쪽 능선이 청계산 능선이다.그리고 동관마을 오른편으로 비스듬하게 뻗어내린 능선이 봉황산 산줄기이며,사진 맨 뒤를 가로지르는 산은 윤지미산이다.

 

[형제봉에서 돌아본 청계산과 대궐터산,봉황산]

 

형제봉 동쪽으로 시야를 옮긴다.형제봉과 마주보는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청계산(淸溪山 873m)이며 산행들머리는 갈령이다.갈령에서 청계산으로 오르지 않고 반대편으로 오르면 형제봉에 이른다.청계산은 산 모양새가 두리뭉실하다 하여 두루봉이라고 인근사람들은 부른다.또 대궐터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이 산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청계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대궐터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그러나 상주의 역사책인 상산지에 이 산이 청계산이라고 적혀 있으니 청계산 두루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대궐터산 이름을 꼭 붙이려면 극락정사 뒤 삼각점이 있는 곳에만 한정해야 한다.사진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청계산이며 그 능선을 따라내려가다 뭉툭하게 튀어나온 암봉이 투구봉이고 그 아래 봉우리가 성산산성이 있는 대궐터산으로 후백제 견훤이 웅거했던 천연의 요새지이다.

 

[형제봉에서 돌아본 봉황산과 대간마루금]

 

사진 맨 뒷쪽을 가로지는 산이 봉황산이고 봉황산과 대각선으로 뻗어 사진 왼편 앞으로 흐르는 능선이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이다.

 

 

형제봉 암릉에 올라 속리산을 등지고 자세를 잡은 종주팀-속리산으로 나우리치는 대간마루금이 갈 "지(之)" 자를 그리며 천황봉으로 이어진다.왼쪽부터 전기환,김현기,김익수 동기이다.

 

 

비재에서 형제봉을 거쳐 속리산 천황봉,문장대,밤티재로 이어지는 15구간의 대간길에는 야생화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더러 기린초가 보이기는 했으나 볼품이 없었다.단지 천황봉에서 문수봉 구간에는 함박나무(산목련)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사진에 보이는 민백미꽃(?)은 형제봉을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6시 57분까지 형제봉(839m)에서 주변 산세를 살피고 형제봉 암릉을 내려와 할배바위 옆을 지나 하산길에 든다.7시 30분,소나무가 우거진 피앗재(590m)에 다다른다.피앗재는 난을 피했던 장소로 피화재(避禍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여기서 만수동으로 하산하려면 왼쪽 계곡을 따르면 된다.만수동은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고 계곡이 아름다워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피서철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피서인파로 붐빈다.10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7시 40분,피앗재를 떠난다.참나무숲이 우거진 오름길을 따라 8시 7분 북진하던 대간이 북서진하는 분기봉인 667봉에 다다라 간식을 든다.기환이가 준비해온 모도백이떡을 들고 8시 23분,천황봉으로 발품을 판다.이제 속리산 천황봉이 성큼 닥아선다.8시 50분 730봉 암릉에 닿아 속리산을 배경으로 종주팀을 화인더에 담았다.
 

 

730봉에 다다라 속리산 천황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기치창검한 바위군을 카메라에 담았다.
 

 

730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암릉을 오르내린다.704봉을 지나면서 잠시 산죽이 나타나더니 9시 30분,천황봉 아래 최고의 전망바위에 다다랐다.전망바위에서 우리가 지나온 대간마루금을 잡아보았다.(09:32)
 

 

천황봉 아래 전망바위에 앉은 종주팀이 청계산과 봉황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았다.천애만애한 직벽을 품고 있는 청계산 자락과 사진 한가운데의 봉황산,그 오른쪽 소나무가 있는 능선이 대간마루금이다.
 

[속리산의 최고봉이자 한남금북정맥의 분기봉-천황봉]

 
전망바위(740m)를 뒤로 하고 이제 까꿀막지기 한량없는 천황봉(1,058.4)으로 더터오른다.9시 56분 묘지를 지나 10시 7분,좌측은 대목리,우측은 만수동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난다.이정표에는 천황봉까지 350미터가량 남았다고 적혀있으나 천황봉까지는 무척 힘겨운 걸음짓을 해야 한다.30분가량 더 발품을 팔아 10시 30문,천황봉 바로 밑 나무그늘에 다다랐다.

 

물병의 물이 동이 날 지경으로 목마름이 강렬했다.우리는 11시 15분까지 점심을 들고 천황봉 정수리에 올라섰다.천황봉에 올라서니 그 상쾌함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문장대의 유명세에 가려 주봉으로서 제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속리산의 진면목은 아무래도 천황봉에 올라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천황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진 암릉의 빼어난 자태와 사방천지 골과 산들이 겹쳐 풀어내는 깊고 그윽한 맛은 단연 최고다.

 

천황봉에 올라서야 대한팔경의 하나요,우리나라 십이지종산(十二之宗山)의 하나이자 백두대간이 가지를 친 금북정맥(錦北正脈)과 한남정맥(漢南正脈)의 분기점이 되는 속리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금북정맥은 속리산 천황봉을 시발점으로 장장 420킬로미터를 달려가 태안 안흥진에서 서해바다에 몸을 푼다.이에 앞서 안성 칠현산에서 한남금북정맥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뉜다.한남정맥은 칠현산에서 서북쪽을 향해 달려 인천 문수산에서 끝난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동서로 나눈다면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은 이남의 중부권을 남북으로 나눈다.따라서 속리산 천황봉은 낙동강과 한강,금강의 분수령이며 이를 삼파수(三派水)라 부른다.

 

 

천황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장쾌한 속리산 주능선상의 암릉군-왼쪽에 뾰족하게 치솟은 암봉이 문장대며,오른쪽으로 치솟은 또 하나의 능선이 속리산 능선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산수유릿지 또는 칠형제봉이다.

 

속리산 암릉은 설악산의 바위처럼 웅장하지도 않고,강진의 주작,덕룡산,월출산의 바위처럼 불꽃을 튀기며 타오르는 침봉(針峰)도 아니다.속리산의 바위는 두리뭉실하면서도 우악스럽게 크지도 않고 아기자기하다.바위들은 군두더기 하나 없는 매끈하면서도 깔끔함을 자랑한다.십이지종산으로서의 기품이 제대로 우러나오는 모습이다.

 

 

문장대에서-관음봉-속사치-북가치-묘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서북능선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어진다.사진 오른편에 뾰족하게 치솟은 문장대가 보이고 그 다음 돋올한 봉우리가 관음봉,관음봉 다음 잘룩이가 속사치,그리고 삼각형의 산 너머 암릉을 뒤집어 쓴 묘봉이 가늠된다.문장대에서 뻗어내린 능선과 왼쪽 아래쪽 두 개의 두리뭉실한 봉우리인 수정봉 그 고샅에 법주사가 자리를 틀고 앉았다.
 

[비로봉 능선 상의 암릉]

 

[천황석문에 다다라]

 

천황봉(1,058.4m)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3.5km의 주능선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속리산 산행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구간이다.등산로가 양호하여 항상 등산객들이 붐비는 곳으로 이날도 많은 등산객들이 오고가고 있었다.11시 15분,속리산 조망을 끝내고 문장대로 떠난다.15분 뒤 법주사(5.1km),상고암(0.7km)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난다.다시 10분 뒤 천황석문에 다다라 종주팀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천황석문을 빠져나와 비로봉으로 오르기 위해 커다란 기암으로 들어선다.코끼리 발굽같기도 한 기암을 등지고 현기가 자세를 잡았다.

 

 

비로봉 오름길에 만난 또 하나의 기암-마치 거북이가 비로봉으로 힘차게 오르는 듯하다.

 

 

비로봉으로 오르다 속리산 천황봉을 뒤돌아 본다.(11:48)

 

 

 

거북이 형상의 기암을 지나자마자 어느덧 비로봉을 지난다.비로봉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입석대 아래,상고제2석문이 반긴다.종주팀이 바야흐로 석문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카메라에 잡았고 그 곁에 영락없이 원숭이를 닮은 바위가 길손을 지켜보고 있다.

 

 

상고제2석문으로 들어서는 종주팀을 크로즈업한다.사진 오른편의 원숭이를 빼닮은 바위와 그 왼편 바위의 모서리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의 옆모습으로 얼비친다.아울러 두 바위 안쪽에는 흡사 조각된 듯한 부처상이 있다.

 

 

상고제2석문과 조릿대군락을 지나 입석대로 오른다.입석대는 임경업장군이 7년간의 수도 끝에 거대한 바위를 세워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사진 왼쪽에 보이는 외딴 바위가 입석대인데 입석대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입석대 주변의 암릉을 배경으로 종주팀이 자세를 잡았다.

 

 

입석대가 정면으로 바라뵈는 장소를 놓치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곳에 다다라 입석대 뒷면을 카메라에 담았다.사진 왼쪽에 반쯤 튀어나온 바위가 입석대이지만 이 또한 입석대 전모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입석대 주변의 암릉을 감상하며 12시 19분,경업대로 빠지는 갈림길에 다다랐다.여기서 8분 뒤인 12시 27분 신선대휴게소에 도착했다.천황봉을 오르느라 힘이 소진되고 천황봉에서부터 예까지 땡볕이 배려쬐는 구간이라 목마름은 참을 길이 없었다.물통의 얼음물도 동이 나서 어디 시원한 물줄기라도 있으면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신선대휴게소는 다다른 현기와 익수,기환이는 캔맥주부터 찾는다.무려 4,000원이나 하는 캔맥주를 들이키며 갈증을 다스린다.그리고 한 병에 3,000원하는 생수 4병을 얼음이 아직 녹지 않은 2리터짜리 물병에 털어넣었다.너무 폭리를 일삼는 휴게소 측에 분노를 느꼈지만 항의는 엄두도 못낼 지경이었다.값은 고사하고 생수병에 들어 있는 물맛이 이상야릇하여 더욱 찌증이 났다.나중에 문장대휴게소에 들러 물어보니,신선대휴게소의 가격이 1,000원이나 비싸 국립공원 매점이 얄팍한 상술에만 눈이 멀어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사진은 신선대휴게소에서 문수봉 남쪽 200미터에 있는 1,018봉의 청법대에서 뻗어내린 산수유릿지라 일컫는 칠형제봉능선의 암릉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산수유릿지 바로 뒤의 능선은 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밤티재 건너편의 산인 백악산(白岳山857m) 산줄기이다.

 

 

신선대휴게소의 불쾌한 기분은 문장대를 바라보며 어느 정도 억누를 수가 있었다.산은 청산 그대로 인데,사람의 마음이 그 산을 떠나 속된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본디 그대로의 산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저 문장대의 높은 기상을 조망하며 속리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우리 인간이 속세로 자꾸만 기어드는 게 아닌가.철탑이 솟은 그 오른편에 문장대가 수즙은 듯 숨어 있고 사진 한가운데가 문수봉,그 오른쪽이 청법대가 있는 1,018봉이다.

 

 

12시 47분,신선대휴게소를 떠나 청법대와 문수봉으로 간다.사진은 청법대 오름길에 널부러진 기묘한 암릉들이다.
 

 

문수봉에 올라서자 문장대가 지척이다.문장대 오르는 철계단과 문장대 위에 많은 등산객들이 서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문장대 바로 밑에 헬기장이 뚜렷한데 백두대간은 여기 헬기장을 지나'등산로 아님'이란 팻말이 걸린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야 한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다워 시인묵객들로부터 절찬을 받아와 그 아름다운 경치를 속리36경이라 하였다.그 가운데서도 문장대(文藏臺)는 제1경으로 문장기운(文藏起雲)으로 이름 나 있다.

 

문장대는 세조가 친히 올라 문신들과 함께 시문을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이름하였고,한편으론 구름 속에 갈무러진 높은 대라 하여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한다.문장대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주변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열리고,멀리 월악산이 조망되며 쾌청한 날에는 대전 시내도 보이는 금상첨화의 망대로 세 번 오르면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12시 10분,문장대 아래에 있는 문장대휴게소에 다다랐다.문장대휴게소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등산객들이 붐볐다.우리는 휴게소에서 5분 가량 다리쉼을 하고 난 뒤,문장대로 오른다.사진은 문장대 오름길에서 종주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는 문장대로 오르는 대신 밤티재로 하산하는 대간길을 택한다.문장대 정수리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에워싸 철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예상밖으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그래서 문장대 아래에서 오른쪽 헬기장으로 꺾어 속리산 북동릉으로 접어들었다.사진은 헬기장에 도착한 종주팀이 문장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았다.
 

북동릉 들머리는 길을 잃어버리기 쉬울 정도로 키작은 관목이 우거져 있었다. 1시 36분,처음으로 개구멍바위를 만난다.암릉이 시작되는 구간이다.배낭을 벗고 몸을 빼야 한다.그러나 현기는 배낭을 맨 채 개구멍을 통과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개구멍을 통과하고 나자 이번에는 사진에 보이듯이 거대한 석문이 나타난다.이제 본격적으로 아기자기한 암릉이 나타난다.

 

 

한동안 숨막히게 바위와 씨름하던 우리는 940봉에 올라선다.그곳에서 문장대와 서북릉을 바라보았다.사진 왼쪽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문장대(1,033m)이며 오른쪽의 암봉이 관음봉(985m)이다.속리산 서북릉 종주코스는 암릉과 육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장쾌한 능선으로 속리산 종주능선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곳이다.산행들머리는 활목고개나 밤티재,시어동주차장을 들 수 있지만 활목고개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통이다.이 구간에는 샘이 없기 때문에 사전에 물을 충분히 준비해가야 한다.산행시간이 길고 곳곳에 암릉이 도사리고 있어 초보자는 전문산악인과 함께 산행하는 것이 좋다.종주코스는 활목고개-운흥리 하산길-묘-개구멍-상학봉-묘봉-북가치-속사치-관음봉-문장대-주차장 하산길-시어동 주차장이며,산행시간은 9시간 30분쯤 걸린다.

 

 

관음봉 일대 속리산 서북릉을 클로즈업하다.(13:46)

 

 

 

940봉에서 속리산 서북릉을 감상하고 다시 대간길을 잇는다.더러는 바위를 돌아내리기도 하다가 사진에 보이는 두번째 개구멍을 통과하게 된다.이곳도 배낭을 벗어놓고 몸만 빠져나오는게 좋다.기환이가 개구멍을 통과한 다음,익수가 막 개구멍을 빠져나오고 있다.
 

 

두번째 개구멍을 통과하자마자 이번에는 10미터 가량의 침니구간이 나온다.두 가닥 로프가 걸려 있으나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저 아래는 천애만애한 절벽이 입을 벌리고 있으니 겨울철 산행에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로프를 타고 오른쪽 벽으로 붙어 돌문을 뜀 뛰듯 뛰어 내려서면 917봉에 다다르게 된다.이곳에는 아주 멋진 전망바위가 있어 대간꾼들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사진은 전망바위에 도착하여 칠형제봉능선(산수유릿지)과 속리산 동릉을 함께 조망한다.
 

 

두리뭉실하게 생긴 전망바위에 다다라 종주팀이 기념사진을 찍고 다리쉼을 한다.바위에 자란 푸른 이끼가 매우 인상적이다.(14:18)
 

 

전망바위에서 밤티재와 늘재를 조망한다.사진 왼쪽 암릉이 속리산 북동릉의 마지막 바위로 이곳을 내려서면 대간은 부드러운 육산이 이어진다.대간마루금따라 가다보면 두군데 산자락이 파헤처진 곳이 밤티재인데 현재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늘재는 밤티재 오른편에 보이는 마을을 따르면 청화산 아랫자락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있으나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망바위에서 속리산 산수유릿지와 동릉을 비롯하여 서북릉,그리고 밤티재 일원을 조망하고 입석바위로 하산한다.10분쯤 지나 소나무에 밧줄이 매달린 구간을 내려서니 비로소 암릉구간이 끝난다.이제 밤티재까지 유순한 산길을 따라 속보로 걷는다.사진은 입석바위 못미친 지점에서 종주팀을 세우고 속리산 산수유릿지(칠형제봉능선)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았다.종주팀 바로 뒤에 암릉이 불끈불끈 치솟아 수를 놓은 능선이 산수유릿지이며,그 뒷쪽으로 속리산 동릉이 나우리치고 있다.
 

 

산수유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입석바위로 닥아간다.3분 뒤,거대한 바위가 서 있는 입석바위에 다다랐다.입석바위에 오르자 우리가 밟은 속리산 북동릉과 주능선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그런데 기환이는 일전에 다친 발목이 영 시원치 않고 익수도,현기도 진이 빠져 밤티재를 거쳐 늘재까지 가려던 당초 목표는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금 시각은 오후 2시 50분,밤티재에는 3시 40분,거기서 경미산을 거쳐 늘재까지 2.4km의 거리를 더 가야 하니 5시20-30분에야 늘재에서 종주가 마무리될 듯 했다.현기마저 간밤에 잠을 못 잤다며 밤티재까지 구간을 끊어타자고 한다.나는 도리없이 오늘은 밤티재까지만 가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그래도 거의 10시간 30분 가량 발품을 판 셈이니 적지 않은 산행시간이었다.

 

입석바위에서 15차 끊어타기의 산행날머리인 밤티재로 간다.마지막 1.3km가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종주팀이 자꾸만 뒤쳐지기 시작한다.한참동안 나홀로 발품을 팔다 너무 속력을 낸 것 같아 익수를 기다려 함께 간다.아픈 다리 때문에 기환이는 뒤에 처져 현기와 함께 오고 있다.밤티재로 가는 능선은 오르막길이더니 이내 내리막길이 나오고 그러다가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되풀이한다.사진은 밤티재에 거의 다왔을 즈음 뒤돌아본 속리산 주릉의 모습이다.사진 한가운데서 약간 왼쪽으로 침봉처럼 솟은 암봉이 산수유릿지(일명 칠형제봉능선)이며 그 오른쪽 능선이 속리산 북동릉으로 우리가 밟은 대간마루금이다.

 

밤티재에 다다르자 고갯마루에는 한창 도로확장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상주시 화북에서 상주시 운흥리에 있는 문장대 용화온천으로 이어지는 37번지방도로가 밤티재를 통과하고 있어 용화온천 오픈을 앞두고 도로를 넓히고 있는 중이었다.익수와 나는 옹벽 물받이를 따라 조심스레 밤티재로 내려왔다.크레인 기사들이 우리의 행색을 보더니 얼음물이 든 페트병을 내민다.참 고마운 청년들이다.목이 마를 대로 마른 참에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얼음물을 거푸 들이킨다.그리고 반쯤 녹은 "메로나"를 주며 그 나이(?)에 산행을 하는 우리를 격려해준다.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 신세를 졌다.오후 3시 47분이었다.우리는 밤티재 고갯마루 뙤약볕에서 후미를 기다린다.

 

이제 비재에 놓고온 차량까지 무슨 수로 가느냐가 문제였다.그 청년들에게 저 아랫마을 화북에 개인택시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딱 한 대가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114로 개인택시 전화번호를 받아 택시를 호출했다.그러는 사이에 기환이와 현기가 밤티재로 내려왔다.두 사람은 밤티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그 청년들이 건네주는 연두색 메로나(눈도 밝지!)를 어떻게 하느냐 지켜볼 참이었다며 우리가 먹다 남은 메로나를 건네자 피익 웃음을 흘렸다.그리고는 시원한 얼음물을 정신없이 들이켰다.소금기 어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화살같이 내려쬐는 밤티재의 뙤약볕보다 더 강렬해보였다.오후 3시 58분-산행날머리인 밤티재에서 15구간을 마감했다.그리고 화북의 개인택시를 타고 비재로 떠났다. 

 

[종주정보]

 

04:18 비재(330)....<1.2km>....04:39 560봉....<0.35km>....05:10.억시기 갈림길520)....<0.62km>....06:05689.9봉(삼형제바위)....<0.25km>....못제....<1.13km>....

06:30 680봉(갈령 갈림길)....719봉....730봉....<0.7km>....06:45-06:57 형제봉(829)....<0.38km>....07:10 803.3봉....<0.87km>....07:30-07:40 피앗재(590)....640봉....<1.25km>....08:07-08:23667봉.....<0.57km>.....만수동갈림길(670)....<0.25k

m>....08:50 730봉...<0.88km>....704봉....<0.75km>....09:07-09:18전망바위740)...

..<0.75km>....910봉....<0.38km>....10:30-11:15속리산 천황봉(1,058.4)....<1.4km>.

....11:50 비로봉(1,050)....<0.8km>....12:12 입석대(1,018)....12:27-12:40 신선대휴게소....청업대....<1.30km>....13:10-13:15문장대휴게소....문장대(1,013)....<0.7

5km>....14:20 917봉....853봉...<0.75km>....700봉.....<0.25km>....14:50 698봉(입석바위)....593....<1.32km>....15:47-15:58밤티재(500)

*도상거리:16.9km

*종주시간:11시간 2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