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3구간<윗왕실고개-신의터재>
윗왕실고개-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 13.25km(2003.12.21)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1일-13차 백두대간 끊어타기 날이다.오늘 종주는 윗왕실고개~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를 잇는 13.25km,종주거리는 비록 짧은데 비해 그야말로 화제 만발의 하루였다.처음으로 여성회원이 참가한 뜻깊은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물론 대간종주에 여성이 참여하기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6구간 종주 때 봉생크로바산악회의 두 여성산꾼이 참여했으니 말이다.그렇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초대손님의 자격으로서였지 동기회 안사람으로서는 아니었다.전기환 동기의 아내인 박영란 씨가 처음으로 선을 보여,회원들로부터 환호와 격려의 박수세례를 받았다.어제 저녁(12월 20일) 동기회 송년모임에서 현기가 영란 씨를 꼬득여(?)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전기환 동기가 일천한 산행경력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에 과감히 도전,정예멤버로 급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영란 씨의 헌신적인 노력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매일 인근의 산을 함께 오르내리고 등산장비를 사들이곤 하는데 이는 언제나 영란 씨 몫이었다.영란 씨가 기환이의 그림자 노릇을 해온 셈이니 이번 동참도 이미 예견된 일이나 진배없었다.
그 다음 화제는 김유건 동기였다.지난 10구간 종주 때도 자칭타칭 베이스캠프 매니저로 참여해 우리를 환하게 만들었다.그때는 하산지점에서 잠시 우릴 마중나왔을 뿐이었다.그러나 이번 종주 때는 오전 구간 개머리재와 오후 구간인 신의터재에서 거꾸로 올라와 우리와 함께 대간을 끊어탔으니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평소 여행통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유건이는 유감스럽게도 2시간 넘는 산행은 힘겨워하곤 한다.특히 오르막에서 다른 사람이 1시간 정도 걸리면 자신은 거의 배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므로 먼거리 산행은 누를 끼칠까봐 아예 단념하곤 하던 그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통념을 깼으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었다.
3번째 화제는 점심시간에 일어났다.의선이가 다짜고자로 형제농장에 쳐들어가 거실을 빌린 사건이었다.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4번 째 화제는 기환이의 발렌타인 17년산 이야기.몇 달동안 벼르고 벼르던 발렌타인 시식을 해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오! 발렌타인 17년산과 21년산의 향긋하고 입안을 감치는 그 맛을 오늘에사 맛보다니....
사진은 5시 한양프라자에서 출발하여 추풍령면 "고향갈비"에서 김치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지난 구간에 이어 거푸 이 식당에서 아침을 들었다.
윗왕실고개 임도에서 동물통로인 육교를 등지고 선 대간종주팀-왼쪽부터 이재화 총무,김익수,김현기,김황세,손의선,앞줄의 홍일점 박영란,전기환,김유건,맨 오른쪽에 신남석 산행대장이 13구간 산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날씨는 차겁고 기온이 0도에 이르자 일행은 두터운 방한복에 방한모자를 썼다.
8시 37분,윗왕실고개를 떠나 백학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윗왕실고개에서 백학산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은 북동진하다 서서히 북서쪽으로 틀어 백학산 산줄기에 올라붙은 다음 남서진하는 형국이다.마치 "C"자를 거꾸로 엎어 놓은 듯한 모양새다.대간은 백학산에서 서진하지만,백학산은 남서릉을 갈래쳐 성봉산(星峰山)을 일구고,또 하나의 지맥인 남릉을 갈래쳐 윗왕실마을로 그 뿌리를 내린다. 윗왕실마을과 약국마,넘어마를 아우르는 효곡리는 대간과 백학산 남서릉,그리고 남릉에 둘러쌓여 마치 포란지형의 산세를 빚어놓고 있다.
10분 쯤 발품을 팔아 480봉에 다다르자 대간은 북동쪽으로 물결치다가 대간분기봉인 470봉에서 서서히 북진한다.그리고 오른편으로 내서면 노류리 배골마을과 외남면 소상리 좀실마을을 잇는 산간임도가 대간(470봉)에서 뻗어나간 산허리를 굽이돌아 내려가는 것이 보이고 북쪽 저멀리 봉황산,노악산이 모습을 드러낸다.9시 소나무 잡목을 헤치고 477봉을 지난다.이제 진행방향 왼편으로 백학산 산줄기가 성큼 다가선다.사진은 477봉을 지나 조그마한 봉우리 두 개를 넘어서는 곳에서 백학산 능선을 화인더에 담았다.능선 왼편에 있는 백학산 정상은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백학산으로 올라간다.등 뒤에서 태양이 비치는 탓에 두터운 방한복을 벗어던지게 한다.25분 가량 발품을 팔자 백학산 세번 째 봉우리에 올라선다.새하얀 눈이 밟힌다.9시 32분,빗돌이 서 있는 백학산 정수리에 올라서자 정상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그러나 햇빛이 들면 그 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백학산은 천혜의 조망터다.
먼저 남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백화산(白華山 933m)의 헌걸찬 모습이 눈에 잡힌다.경북 상주시 모동,모서면과 충북 영동군 황간의 경계에 치솟은 백화산은 다부진 산세도 산세려니와 아름다운 석천(石川)을 끼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유산객과 산꾼들을 불러모은다.뿐만 아니라,산자락에는 옛절 반야사와 백옥정,황희정승 사당을 품고 있으며 금돌산성이 산을 감싸고 있어,신라와 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그 옛날의 숨결이 흥건히 배여 있는 산이다.아울러 2001년 10월 28일에는 서울과 부산 동기들이 합동산행을 한 바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정감이 와 닿는 산이기도 하다.
백학산에서 남서쪽 백화산 조망을 끝내고 북서쪽으로 고개를 돌려 지기재 일원을 살펴본다.대간의 흐름과 인근 산세 그리고 상세한 지점을 식별해본다.사진 맨 앞쪽 작은 봉우리를 파고드는 도로가 보인다.상주시 모서면 대표리 함박골마을에서 개머리재(또는 소정재 340m)소정리로 넘어가는 도로다.그 다음은 함박골마을에서 작은 봉우리 뒷쪽을 휘감아 석산리로 넘어가는 지기재(250m) 모습이 사진 왼쪽 중앙에 보인다.그 지기재 앞쪽의 작은 봉우리는 안심산(420m)이다.
대간은 지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거의 북서진하는데,산자락이 벌채된 듯한 능선 너머가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에 있는 신의터재(280m)다.사진 왼쪽에 우뚝 치솟은 봉우리(596.9m) 아랫자락은 화동면 선교리,대간은 산의터재에서 선교리를 왼쪽 발치 아래에 두고 오른쪽(동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다가 다시 북쪽으로 꺾어 윤지미산(538m)에 이른 뒤,북서진,화서면에 있는 봉황산(740.8m)으로 이어진다.
백학산에서 조망한 충북 알프스의 막내 구병산.
백학산에서 조망한 속리산 일원
백학산에서 조망한 도장산 일원
백학산에서 조망한 문경의 산들
백학산에서 주변 산세를 조망하고 눈 덮인 정상에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백학산 능선에는 고만고만한 봉우리 3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연이어 있어 어느 것이 정상인지 아리송하나 지도상에 표고점이 표시된 남쪽 봉우리가 정상이다. 백학산 빗돌이 있는 이 봉우리에서 대간이 서쪽으로 나우리쳐나간다.백학산은 내서면 배골마을에서는 백골봉이라고 부른다.골이 깊어 한 번 들어가면 백골이 되어서 나온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고,모서면 소정마을에서는 장자봉이라고도 부른다.
10시 1분,대표(大杓) 임도에 다다라 구병산(九屛山 876.5m)을 바라본다.세종실록지리지에 상주의 세 명산 가운데 하나라고 했을 정도로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구병산-그래서 속리산이 아니면서도 속리산국립공원의 남쪽 경계에 들었다.지금은 거의가 보은군 땅이다.25번 국도를 타고가다 보면 아홉 봉우리가 눈에 띄는데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동서로 거의 일직선으로 뻗은 구병산은 능선이 갈리는 곳마다 암봉이 솟구쳐 아홉 병풍산 또는 구봉산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한 번 보기만 해도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생길 만하다. 보은쪽에서는 서원동계곡이 유명한데,이 계곡은 삼가동 물의 수구(水口)로 협곡 6km가 이어져 피서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그 안쪽 삼가동은 십승지지라 하여 예전에는 비결파들이 많이 살았다.
[대포 임도에서 본 구병산]
10시 1분,대표 임도로 내려섰다.대표 임도는 모서면 대표리 함박골과 모동면 덕곡리 원산 그리고 공성면 효곡리 약국마를 이어주며,1995년에 개설되었다. 산악자전거 코스(MTB)로 활용하기에 좋은 임도다.
유건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20분 가량 발품을 팔자 갑자기 눈앞이 훤히 열리면서 조그마한 소롯길인 농로가 나타난다.오얏골과 대표저수지를 이어주는 구재 농로다.구재(280m)를 가로질러 구릉에 올라서자 묵밭 같기도 한 억새밭이 나온다.
묵밭을 지나 대간 길을 잇는다.조금 가자 또다시 구릉이 나온다.그 구릉을 오르는 회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정 개머리재-주변은 온통 밭으로 인삼,포도,담배 따위를 재배하고 있지만 수확을 끝낸 자리는 볼품없이 황량했으며,고갯마루의 사과밭은 98년 포도밭으로 변했다고 한다.개머리재의 유래는 지형이 개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그 이름이며,상주시 모서면 소정리와 대표리 함박골을 연결하는 시멘트도로로 이날도 굴삭기가 도로를 손보고 있었다.
날씨는 많이 풀렸으나 바람 부는 고갯마루 한데서 점심을 들기에는 영 마뜩찮았다.주위를 둘러보니 농가 한 채가 보였다.고갯마루에서 왼쪽 산허리로 60미터가량 떨어진 그 집에는 물도 있고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이런 일이라면 의당 의선이가 나서야 제격일 터.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의선이는 벌써 그 농가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한 6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말까 의선이가 우리를 오라고 손짓을 한다.우리는 기묵이의 봉고를 타고 그 농가 안마당으로 들어섰다.형제농장 권상수 씨 집이었다.그런데 권 씨는 우릴 보자마다 "내 참,거실을 내놓으라는 사람은 처음 보았시우...."하며 혀를 끌끌 찬다." 나는 의선이가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 짐짓 걱정이었다.개머리재에서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이 집은 숱한 종주꾼들이 거쳐 가는 곳인지라 권 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게 어디 한두번이었을까.사천왕처럼 우람하고 우락부락한 의선이가 밭에서 일하는 권 씨를 불러 "잠시 쉬어 갈 방 좀 없겠소?" 하자 "안되는디유..." 하며 첫마디에 거절하더라 한다.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의선이겠는가.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인데 밥 먹을 장소가 없어 그런다며 그 큰 눈을 부라지자 그는 "난...못하는디유...." 하며 딱 잡아 떼더라는 것이었다.
의선이는 정색을 하며 "그럼 추운데 밖에서 점심을 들란 말이오."하며 권 씨의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는 채 현관문을 열어젖히더라는 것이었다.의선이 말로는 거실이 넓어 우리가 신세를 지기에는 딱 좋아보이더라 한다. 일이 이쯤 되자 우릴 물리칠 염두는커녕 "그럼,깨끗이 써야 해유...." 하며 충청도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승락을 하고 말았다 한다.그래서 권 씨는 우릴 보자 그런 넋두리를 펼쳤던 것이고 우리는 한 술 더 떠 "의선이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군요." 하며 맞장구를 치자 "그런 셈이지유..."하며 그는 입가에 웃음을 흘린다.우리가 거실로 들어서자 권 씨 아버지가 나오며 "이 추운데 뭐 좀 드실라우?"하며 반색을 한다.
대전 사람인 권 씨 일가는 96년 이곳 상주 땅으로 옮겨와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차림새와 행색으로 보건대 권 씨 양친은 본디부터 농군은 아닌 듯했다.아무튼 3대가 어울려 오손도손 살아가는 보기 드문 농사꾼집안이었다.어제 저녁 우리 일행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김치찌개를 끓여 가져온 나는 권 씨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써도 좋다는 말에 우리의 영원한 주방장 의선이를 앞세워 찌개를 데운 다음,제각기 가져온 도시락과 함께 점심을 들었다.바람만 피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 할 판에 안락한 거실에서 점심을 들었으니 오늘은 정말 대운이 트인 날이었다.의선이는 우리 일행의 별식인 황도통조림 2개를 권씨댁에 전해주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 구겨진 체면을 반쯤 만회한 셈이었다.사진은 권상수 씨가 우리와 맞닥뜨리자 의선이 같은 인물은 난생 처음보았다며 혀를 내두르며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는 장면이다.형제농장 권상수 씨댁에서 오후 종주를 하기 위해 산행채비를 하는 종주팀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간,지기재 근처의 밭두렁을 지나다.
12시 개머리재(340m)를 뒤로 하고 430봉으로 오른다.묘지 2기를 지나 6분 뒤 430봉에 올라선 뒤 길 좋은 솔밭길을 내려간다.12시 15분,430m 잘룩이로 내려서자 왼쪽 선유동으로 빠지는 선유동 농로와 만난다.여기서 450봉 오르기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그 오르막 치오르기는 점심을 먹은 뒤라서 그런지 속이 편치 않고 호흡도 고르지 않다.
12시 20분,450봉에 올라선다.대간 길은 온통 숲속이라 전혀 조망이 터지지 않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12시 28분,묘지가 또 나타난다.이제 조금 가면 대간이 갈라지는 대간 분기봉,안심산(423m)에 이를 것이다.2분 뒤,안심산에 닿았다.지기재를 살피기 위해 안심산 꼭대기 조망이 터지는 곳으로 다가서자 안심산 앞쪽과 오른쪽은 까마득한 급경사다.발치 저 아래로 내서면 대표리 노산에서 지기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그렇다면 안심산에서 지기재 하산길은 이 꼭대기가 아니다.꼭대기에 다다르기 50미터 앞 왼쪽 산줄기(서릉)를 따라 내려서야 한다.이곳에서는 독도가 애매하여 지형도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그러나 안심산 꼭대기에서 되돌아와 아무리 하산길을 살펴봐도 왼쪽 산줄기 쪽으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그 대신 내가 조망한 그 꼭대기 조금 왼쪽(북서릉)으로 반듯한 하산길이 열려 있고 대간 리번도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아무래도 이 길은 아닌데 반신반의하면서 그 길을 따라 내려선다.오늘 구간 가운데서 가장 가파른 하산길이었다.안심산 정상 423m에서 300미터까지 표고 120여미터를 더터내려와
야 하기 때문이었다.경사도는 좋이 40도는 됨직했다.
10분쯤 발품을 팔아 가파른 하산길을 내려오자 비로소 평평한 산자락에 이르렀고 내 예상대로,작은 개울을 가로질러 왼쪽 산줄기(서릉)로 붙었다.그러나 서릉에서 내려오는 길은 실날같이 희미했다.그래서 대부분의 종주꾼들이 안심산 서릉을 마다하고 길 좋은 북서릉을 따라 내려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5분 가량 더 내려가자 농로가 나오며 눈앞에 밭자락이 펼쳐진다.고도가 낮은 상주의 중화지역답게 대간은 밭두렁을 지나가고,밭두렁을 분수령 삼아 물가름이 나뉘어지고 지기재의 모습이 성큼 닥아온다.
농로를 따르자 과수원이 나오고 폐농가를 지나 12시 51분,지기재(250m)에 다다랐다.상주시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물가름 표지판이 이 고개에서도 우리를 반긴다.일행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표지판을 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옛날 동네 뒷산에서 도둑이 많이 나와다고 하여 '적기재'라 불렀다는 지기재-모서면 대표리에서 모서면 석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지기재에서 지기재동으로 가는 마을길을 따라 가다 은왕봉(409m)을 배경으로 일행을 카메라에 담았다.종주팀 뒤로 지기재동 마을이 보이고 지기재동 마을 솔숲 너머 암봉으로 이뤄진 은왕봉이 솟아 있다.대간 길은 지기재동 마을 오른편 대숲을 통과한다.
12시 57분,지기재동마을 어귀에서 사진을 찍고 마을 오른편 대숲으로 들어 대간마루금을 잇는다.지기재동 마을 뒷산 솔숲을 벗어나자 금은골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내 밭길이 나온다.종주팀이 금은동마을 밭두렁 길을 다리품을 팔고 있다. 대간은 황토흙이 보이는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금은동마을 밭두렁을 걷다 마을과 마을 뒷편에 치솟은 은왕봉(409m)을 카메라에 담았다.대간은 은왕봉 산줄기 오른편에 있는 370봉을 거쳐 바깥쑥밭골로 내려간다.금은골에 5가구가 사는 금은동마을-흔히 노다지를 연상케 하는 금은동은 예전에는 금골 또는 금곡동(琴谷洞)으로 불렸고 왜정 때 마을부근에 금광이 있었다고 한다.
금은동마을의 밭두렁을 거쳐 능선으로 올라섰다.9분 가량 발품을 팔자 대간의 기운이 흐르는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한 묘지가 나온다.익수가 그 묘지 가장자리를 걸어 오르고 있다.
전기환 부부와 김현기 후미대장이 묘지를 향해 오른다.
박영란 씨가 묘지를 오르다 멈춰서서 포즈를 취한다.그녀 뒤로 대표 임도에서 구재 농로로 자세를 낮추다가 안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이 선연하다.그리고 지기재에서 금은동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보일듯말듯 산자락을 휘감고 그 너머에는 소정리 선유동 일대의 벌판이 펼쳐진다.
묘지를 뒤로 하고 은왕봉 능선의 대간분기점인 370봉으로 오른다.이제 대간 길은 솔숲이 완연하다. 짙은 솔향이 코끝을 스친다.오른쪽 절골 산비알에는 거대한 바위슬랩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야산치고는 전혀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우리는 불그스름한 바위지대에 올라섰는데,주변의 바위들이 뻘겋게 그을려 있고 바윗가루가 화산재처럼 보여 그 옛날 화산지대가 아닌지 의심스럽다.사진은 그 바위슬랩지대를 오르다 전기환 부부와 김익수,그리고 김현기 후미대장이 잠시 다리쉼을 하고 있다.
바위지대를 더터 오후 1시 25분,은왕봉의 북동릉이자 대간분기봉인 370봉에 올라섰다. 왼쪽으로 길게 능선이 뻗어 있어 대간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은왕봉(409m)으로 가게 된다.여기서는 무조건 앞쪽으로 내려서야 한다.사진은 370봉에서 우리가 밟은 백학산을 뒤돌아보았다.백학산 정수리 오른쪽 잘룩이로 대표 임도가 열려 있다.
370봉(은왕봉 북동릉)에서 백학산을 뒤돌아본 다음,신의터재와 다음 구간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을 조망한다.신의터재에서 내서면 낙서리를 거쳐 상주로 가는 도로가 사진 아랫쪽에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그 뒤 능선이 대간마루금이며 왼쪽 가장 높은 산이 봉황산,윤지미산이 그 앞쪽 오른쪽에 보인다.윤지미산 뒤에 원뿔처럼 솟은 산은 상주의 성주봉이며 그 어깨쭉지 왼쪽에 보이는 산이 상주 남산이다.산줄기가 중첩하여 파노라마를 이룬 상주의 연봉들이 가슴 저미듯 나우리치며 흐른다.
은왕봉 북동릉인 370봉에서 조망을 마치고 1시 28분,바깥쑥밭골로 내려간다. 12분 가량 발품을 팔자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검으퇴퇴한 암장이 나타나고 유건이가 거기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유건이는 신의터재에서 거꾸로 대간 길을 밟아온 것이다.일행은 배낭을 벗어놓고 이 암장에서 다리쉼을 한다. 이제 신의터재까지 남은 거리는 약 2.6km,오르막이 없는 순탄한 길만 남았다는 말에 너도나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신의터재에서 내서를 지나 신라 천년 고도(古都) 상주에 들어섰다.1,300리 낙동강 물줄기 가운데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는 경천대 안내판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인터체인지로 꺾어들어 15분 쯤 남진하니 오른편 차창으로 상주 삼악-(연악(淵岳) 갑장산,노악(露岳) 노음산,석악(石岳) 천봉산-의 제일 명산인 갑장산(甲長山 805.7m)의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온다.김천과 구미의 중간지점,아포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 때쯤 나른한 잠속으로 빠져들어 깨어나보니 우리의 봉고는 어느결에 언양을 지나고 있었다.
문경약돌돼지에서 2003년 백두대간 종주를 결산하고 13구간 끊어타기 뒷풀이를 했다.이일산우회 정영천 회장과 강호철,최금구 회원이 달려와 함께 하며 인근 노래방에서 못다한 얘기를 창가로 대신했다. 아듀! 2003년.영원하라 백두대간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대간에 대한 우리들의 그리움 또는 열정이여!
[종주정보]
07:37 윗왕실고개(390m)....1.19....477봉....1.15....09:32-09:41 백학산(615m)....0.7....10:01 대포임도(400m)....2.0....11:05-11:50 개머리재(340m)....1.43....12:39 안심산(423m)....0.92....12:50 지기재(250m)....1.25....13:25-13:28 390봉(은왕봉 능선)....2.62....14:20-14:30 신의터재(280m)
종주거리/시간:13.25km/6시간 4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