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11구간 끊어타기<괘방령-작점고개>
[경상 우도의 옛과거길 괘방령에서]
괘방령-눌의산-추풍령-사기점고개-작점고개(2003년 11월 6일)
옛과거길 괘방령(掛榜嶺)에 서다.
김천시에서 4번 국도를 따르다 남천에 이르러 4번 국도를 버리고 백두대간과 나란히 서면 길은 외줄기,천년 옛절 직지사로 간다.워낙 찾는 이가 많아 이제는'일방통행'이 되어버린 직지사 길에서 백두대간을 향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977번 지방도로로 스며들면 황악산(해발 1,111m) 발치를 타고 넘는 고개가 나온다.괘방령이다.
이름부터가 그렇듯 사람 발길로 친다면 괘방령은 추풍령보다도 한결 부산했던 고개다. 방(榜)이란 본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나 붙는 것이니까.추풍령은 관로였다.'되도록이면 포도청 앞은 피해 가는 게 상책‘인 풍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폐습이다.별 켕길 게 없는 나그네도 으레 관리들이 들끓는 역로를 피해 한가한 샛길을 찾기 마련.늘 구린 게 많아 부러 트집을 잡는다면'털어 먼지 안날 리 없는'장사꾼들이 그랬고,구태여 역졸들의 농짓거리가 되기 싫은 천한 백성들이 그랬다.
또 있다.이름도 하필이면 추풍이라 과거길에 나선 선비들은 모두 추풍령을 마다하고 한사코 괘방령을 넘었다.과거길에’방에 붙는다‘는 말은 얼마나 반가운가.사위(taboo)란 본래 갈수록 태산이라 나중에는 인근에 부임하는 관리까지도 관직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추풍령을 피하고 괘방령을 넘었다.괘방령은 그렇게 추풍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고개였다.
그 괘방령에도 포장길이 뚫렸다.고갯마루에는 흔히 추풍령의 장지현과 함께 이야기되는 박이룡 장군의 사당이 있고,더 내려가면 아름다운 숲속의 천덕 분교가 나온다.박이룡은 퇴각하는 왜군을 맞아 수 없이 많은 승전보를 남긴 황간 출신의 의병장이다.왜군이 한양으로 진격할 적에는 추풍령을 넘었지만 퇴각로는 괘방령이었고,한국전쟁 때에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으로 진격했던 북군의 퇴각로 또한 괘방령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덥고 배부를 적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도 춥고 배고픈 시절이 오면 문득 생각나는 고개,괘방령은 그런 고개였다.그런 괘방령이 우리들 종주의 산행들머리다.지금은 한갓지기 이를 데 없어 찾는 이마저 뜸한 이 고개마루에 서서 그 옛날 괘방령의 애환을 다시 한 번 곰씹어보는 것 또한 뜻있는 일일 것이다.
지난 10차에 동참했던 회원가운데 유건이만 빼고 그 얼굴 그대로다.산행들머리,괘방령(300m)에서 채비를 차린 대간회원들-뒷줄 왼쪽부터 손의선,이재화,김현기,신남석,강호철 앞줄에 앉은 이는 왼쪽부터 한정문,김익수,김황세,전기환 그리고 최금구 회원이다.고갯마루에는 세찬 바람이 분다.기온은 영상 4도,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낮아 두터운 겉옷을 걸치게 했다.
아침 7시 21분,첫 걸음을 내딛는다.찬바람이 세차게 불어 장갑을 끼지 않은 손끝이 시리다.7시 34분 417봉에 올라서니 북동쪽으로 나아가던 대간은 90도로 방향을 꺾어 북서쪽으로 이어진다.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은 잘룩이(340m)에서 왼쪽으로 갈림길이 열린다.오리실에서 올라오는 길이다.대간 마루금 바로 아랫자락까지 논밭이 들어와 있다.
날씨가 찹찹하다.쉴 겨를도 말 할 틈도 없이 발품을 판다.골바람이 불어와 산길에 깔린 낙엽을 몰고 간다.찬바람은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내 몸을 여지없이 깨우고 혼미하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나는 이런 날의 산행을 좋아한다.땀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한 여름 뙤약볕 산행보다 나는 이렇게 정신을 담금질하는 늦가을이나 초겨울 산행을 사랑한다.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전신은 희열에 휩싸인다.한 자락의 바람이 불어 와 찌들 대로 찌든 창자를 훑고 지나간다.말 없는 가운데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낀다.힘들게 발품을 팔아 산길을 밀어내며 오르다 봉우리에 서면 가장 높고 숭고한 정신을 깨닫게 된다.산에서는 시간이 느리게도,빠르게도 간다.그래서 산에서 느끼는 시간은 마치 축지법과 같다.한참을 걸었는데도 그냥 그자리에 있기도 하고 잠시 순간이었는데도 벌써 봉우리를 넘어서고 있기도 하다.
산은 경이롭다.그래서 우리는 산을 찾는지도 모른다.산을 타는 이들은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다.외롭기 때문에 산을 찾지만 외로움에 묻히다보면 그 외로움도 그저 외로움만은 아니다.그건 사랑이다.사랑없이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그러므로 산을 오르는 것은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다.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그 높고,험한 먼거리를 갈 수 있을까.잠들지 않고 늘 깨어있는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백두대간이라는 사랑을 위하여!
7시 50분,420봉에 올라서자 대간은 또다시 오른편(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400봉까지 이어진다.대간은 400봉을 지나면서 왼쪽(북서쪽)으로 활시위처럼 휘어져 가성산으로 올라붙는다.기온은 1도가 오른 5도를 가리킨다.420봉에 올라 처음으로 다리쉼을 한다.선두와 후미가 별반 차이가 없다.우리는 약 6분 가량 쉬고 다시 배냥을 챙겨 오른다.날씨가 차거워서 땀도 나지 않고 갈증도 없다.400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줄기차게 고도를 높인다.가성산 바로 밑 자락에 다다르니 처음으로 바위가 나타난다.그 바윗길을 더터올라 8시 39분,가성산 앞봉우리인 720봉에 올라 지난 구간 우리가 밟은 황악산 일원을 되돌아보았다.
사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장중한 능선이 황악산 주능선이며,그 왼쪽 뒷편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신선봉(944m)이다.그 신선봉 바로 앞 삼각형의 작은 봉우리(황악산 주능선 왼쪽에서 자지러드는)가 운수산(또는 천덕산 668.2m)이고,그 앞 큰 원뿔형의 산이 여시골산을 지나 괘방령으로 가파르게 하산했던 봉우리이다.충북 영동군 황간면 매곡리 일원의 마을과 들판이 건너다보이고 마을 한복판으로 괘방령으로 이어지는 977번 지방도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황악산과 괘방령 일원을 뒤돌아보고 가성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작은 봉우리 3개를 넘어 8시 55분,정수리가 시멘트로 포장된 가성산 정상에 올라섰다. 가성산(729.9m)은 천혜의 전망터다.사위(四圍)가 막힐 것 이 없다.건너편 눌의산 뿐만 아니라 백화산과 주행봉을 비롯 우리가 밟은 황악산과 김천 일대의 높고 낮은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그래서 가성산은 추풍령을 끼고 있는 눌의산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가성산은 김천 사람들이'가재산'이라 부르는 산으로 산 중턱에 산성이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의 가성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고, 왼편으로는 영동군 매곡면과 맞닿아 있다.그런데 25,000:1 지형도에는 정상이 해발 729.9m라 표기돼 있으나 50,000:1 지형도에는 710m라 나와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 산높이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가성산 표석에는 그 높이가 710m라 적혀 있기는 하나,산높이는 25,000:1 지형도를 따르고자 한다.
가성산 정상에서 하산길에 들기 전 정상 바로 옆 암장에 선 익수가 건너편 눌의산(743.3m)을 지팡이로 가리키고 있다.맨 오른쪽 제일 높은 봉우리가 눌의산이며,그 산줄기따라 오른쪽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다.대간마루금 뒤로 황간의 백화산과 주행봉이 하늘금을 그었다.
이번에는 기환이가 그 암장에 올라 눌의산을 지팡이로 짚고 있다.
9시 3분,가성산(729.9m)에서 장군봉과 눌의산으로 가기 위해서 490m 잘룩이로 내려간다.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하산길이다.게다가 북서쪽 산비알이라 푸석푸석한 땅에는 서릿발이 서려 있고 미끄럽기까지 하여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정문 회원이 몸을 구부텅하게 자세를 잡아 내려오고 있고 그 뒤를 재화가 따르고 있다.
호철이가 까꿀막진 가성산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있다.
의선이가 가성산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그 뒤를 기환이와 후미대장 현기가 따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환이와 현기가 가성산 내리막길에서 포즈를 잡았다.햇볕이 들지 않는 북서쪽 산비알이라 전체 배경은 어슴프레하고 나뭇잎 다 떨어진 나목(裸木)이 하늘로 치솟아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9시 18분,490m 잘룩이로 내려와 장군봉(624.8m)으로 오른다.9시 25분,장군봉에 올라서자 평평한 산길이 약 1km가량 국사봉(690.1m)까지 뻗어 있다.오늘은 땀도 흘리지 않고 갈증도 느낄 수 없어 수통은 그대로다.그런데 다른 회원들은 멀쩡한데 한정문 회원만은 왜 그리 땀을 많이 흘리는지 모자 창에서는 연신 물방울이 �뚝 듣는다.땀 흘리기로 치자면 의선이를 당할 사람이 없는데 오늘은 의선이조차 땀을 별로 흘리지 않으니 참으로 신기했다.정문이와 익수가 햇빛이 쏟어져 눈부시게 빛나는 대간 길을 걸어 나오고 있다.
9시 44분,국사봉(690.1m)에 올라서자 눌의산이 지척이다.5분쯤 발품을 파니 묵은 헬기장이 나오고 9시 59분,6.25 때 흔적인 서너 개의 참호 곁으로 해서 마침내 눌의산(訥誼山 743.3m) 정상에 올라선다.시골 타작마당보다는 좀 더 넓은 헬기장 북쪽 가장자리로 해묵은 석축이 두둑한 둔덕 위,거기 눌의산이란 표석이 박힌 그 자리가 눌이항산(訥伊項山) 봉수대 흔적이다."동국여지승람"에 동쪽으로 경상도 금산군 고성산과 서쪽으로 황간의 소이산에 응한다고 적힌 이 자리에서는 3개 교통로가 한꺼번에 몰려 지나는 골짜기 너머 북북서로,내처 부르면 고대 답이 돌아올 것 같은 거리에 소이산(所伊山)이 바라보인다.소이산은 물론 상주의 백화산을 등지고 앉은,지금 지도상에 봉대산(653.9m)이라 적힌 그 산이다.사진의 마른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헬기장 너머 산줄기가운데 기중 높은 봉우리가 봉대산이며,그 봉대산 산등 뒤로 주행봉(874m)에서 백화산(933m)으로 이어지는 백화산맥의 장쾌한 산줄기가 하늘금을 긋는다.
눌의산 정상에서 가성산과 황악산을 뒤돌아보다.
눌의산에서 약 7km 가량 동쪽에 있는 묘함산(卯含山 733.4m) 일원을 조망하다. 묘함산 정수리에는 통신중계소가 있다.대간은 묘함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중계소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에서 590봉으로 이어지나,실제로는 사기점고개에서 오르다 만나는 도로따라 왼쪽으로 하산하여 작점고개로 가야 한다.
추풍령휴계소와 경부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 보인다.그리고 그 기념탑 뒤로 길게 뻗은 길은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곤천마을로 들어가는 길-백두대간 마루금 오른편에 있는 골짜기다.그런데 대간 마루금은 추풍령휴게소에서 600미터 왼쪽 당마루를 통과하기 때문에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추풍령휴게소를 조망한 다음,눌의산에서 추풍령고개 당마루로 내려선 백두대간이 거쳐 갈 금산과 대간마루금을 굽어본다.사진 맨 왼쪽 아래 경부고속도로를 가로 질러 건설중인 추풍령 외곽도로가 보이고 회색빛 산 언저리를 거쳐 대간마루금은 금산에 올랐다가 산등 너머 추풍령저수지를 왼쪽으로 보며 나우리친다.사진이 희미한 까닭은 사진기가 흔들린 탓이다.
눌의산에서 추풍령 당마루로 이어지는 대간을 클로즈업한다.눌의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약 250미터 떨어진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710m)를 지나면서 대간은 급격하게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선다.급경사지대를 내려서면 능선은 완만해지지만 계속 잡목숲으로 이어진다.갈림길이 나타나면 왼쪽길을 버리고 직진한다.송리마을에서 돈목마을로 넘어가는 소롯길이 나타나고,능선은 소나무숲을 이루며 고속도로까지 이어진다.잘 조성된 거대한 가족묘를 지나 송리마을로 들어서서 길을 따라 내려와 고속도로 밑 지하통로를 지나 철도를 건너면 국도 위 추풍령 당마루에 닿는다.
추풍령 외곽도로가 고속도로를 지나는 그 언저리 앞쪽의 소나무숲 오른편 가장자리를 따라 대간 길은 이어진다.그 소나무숲 왼쪽 마을이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은편마을이고 그 뒷편 마을이 추풍령면 면사무소가 있는 관리(官里)이다. 그리고 추풍령저수지가 있는 죽전마을 왼편에 우뚝 치솟은 산이 다음 12구간 때 우리가 밟아야 할 용문산(708.5m)이며,용문산 산자락 왼편을 휘감아도는 희미한 길이 상주시 모동으로 넘는 고갯길이다.그 고갯마루를 부산과 서울의 딱 절반 길이라 하여 이 고장 사람들 "반고개"라 일컫는다.
눌의산(743.3m)은 추풍령 뒷꼭지에 올라앉은 산인데도 이따금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꾼들이나 능선길을 스쳐지나갈 뿐,직접 그 산을 목표로 하여 더터오르는 이가 없으니 산허리는 어느 때나 호젓하고도 한갓지기가 그만이다.경부선 철도를 비롯한 4번 국도 혹은 1번 경부고속도로가 모두 한데 몰리어 발치 아래 추풍령을 지나고 있지만,누구나가 거기 차창에서 혹은 휴게소에서 잠시 이 산을 흘깃 쳐다보기만 할 따름,이 남한 땅 얼굴의 딱 한가운데 콧잔등에 올라서 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더구나 이 산은 속리산에서 황악산,삼도봉으로 남진하는 백두대간의 주맥에서도 잠시 서쪽으로 휘감아치는 귀때기 끝에 돌아앉아 있음으로써,그 줄행랑을 치는 3개 기간교통로의 찻소리가 전혀 닿지 않는 희한한 놓임새라,흡사 태풍의 눈 같은 내밀한 정밀감을 그냥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눌의산(訥誼山)이란 산이름은 얼른 그 뜻이 와 닿지 않은 유별난 산명(山名)이다.
그런데 이 산 정수리에 놓였던 봉수대를 두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눌이항(訥伊項)이라 하고,덩달아 "동국여지승람"에는'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遂)라 적고 있으니 지금 지도상의'눌의(訥誼)'의'의(誼)'자는'이(伊)‘ 자를 고친 것이 된다.눌이항산처럼 향찰로 표기된 지명은 대개 본디 이름을 유사음으로 빌어온 것이라 한다면,여태도 여기 사람들이 누리산이라고 부르듯, "눌이산"을 풀이하면"늘이목", 혹은 "늘잇재"가된다.사실 추풍령은 해발이 225m밖에 안 되어,그밖에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서는 죽령(689m),조령(362m) 등 이름난 고개들에 비하여 훨씬 낮을 뿐더러,김천시의 해발이 100m에 또 그 너머 황간 쪽은 더구나 추풍령 영마루 높이를 유지하면서 넌지시 기울다뿐이니,'늘잇재'라는 이름은 산이름이었다기보다는 추풍령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눌의산 동쪽 묘함산과 추풍령저수지 부근 대간마루금을 뒤에 두고 종주팀이 함께 했다.
10시 20분 눌의산에서 추풍령으로 하산한다.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동남쪽 급경사 길을 내려서면 소나무숲이 끝나고 잠시 철 지난 억새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둔덕에 이른다.종주팀 뒤로 눌의산이 의연하게 솟았고 우리가 내려온 대간 줄기가 비로소 확연하게 드러난다.이 근처에 이르자 기온은 거의 영상 16도를 가리킨다.산 안에 있을 때보다 인가가 가까워지자 무려 12도 가량 기온이 상승한 셈이었다.
11시 10분,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빠져나와 철길을 건너 4번 국도에 다다랐다.추풍령휴게소에서 기다리던 기묵 아우를 휴대폰으로 불러내 우리가 서 있는 국도로 오게 했다.우리는 점심을 들 마땅한 식당을 찾아 기묵이의 봉고로 추풍령 당마루 쪽으로 가니'진웅식당'이 보였다.봉고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김치찌개 몇 개를 시켜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을 작정이었다.창문 너머로 우리를 보고 있던 식당 주인은 문을 열고 김치찌개 두서너 개를 해달라고 하니,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매몰차게 쏘아부친다.후한 인심을 기대한 우리는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접경지역의 인심이란 본디 그런가보다 여기며 우리는 철길 가 벤치가 있는 빈터로 돌아와 깔판을 펴고 점심을 들어야 했다.이따금 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어가며 점심을 들지만 날씨가 쌀쌀하여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런데 기묵이에 따르면 경북과 충북의 접경지역에 있는 당마루는 추풍령 외곽도로공사 때문에 금산 쪽으로 옮겨버렸다는 것이다.11시 50분, 점심을 끝내고 서둘러 추풍령 당마루 쪽으로 가다 충청북도를 알리는 빗돌을 중심으로 회원 모두 기념사진을 찍었다.
추풍령-영남과 호서의 접경, 당마루
백두대간의 고개,추풍령(225m)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다보면 어느 틈에 그만 평지처럼 슬그머니 재를 넘는다.'구름도 자고 가는,바람도 쉬어 가는'추풍령 노래비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는 소문난 고개치고는 별 볼거리가 마뜩찮고 흔한 당집이나 당목 한 그루도 없는데 웬 일인지 마을의 이름만은 예로부터 당마루라 불렀다.마을을 둘로 쪼개어 경상도와 충청도가 나뉘었으니 당마루 역시 경북의 당마루와 충북의 당마루가 서로 생겨났다.마을은 하나 인데 반쪽은 김천 시민이요,반쪽은 영동 군민이다.
추풍령은 언제나 그렇게 구름이 모여들고 바람이 술렁대는 고개였다.조선 시대에는 역과 원으로 이어진 관로(官路)였으며 일제 시대에는 경부선을 오가는 기차가 으레 빠짐없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까닭이야 숨가쁘게 고갯길을 넘은 증기기관차가 물을 보충하기 위함이었지만 구름도 쉬어 가고 바람도 자고 가는 곳이니 기차인들 그 냥 갈 수 없었을 터이다.마땅히 역은 번창하고 많은 일본인이 모여 살았던 탓에 유곽의 규모 또한 매우 컸다고 한다.흙먼지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온 목탄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도저히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바로 추풍령이었다.추풍령 길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경 새재에 비하면 턱없이 한가로운 길이었다.
가령,한양을 중심으로 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9개 국도는 모두 추풍령과 무관하게 이어진다.다만 문경 새재를 넘어 유곡역에서 제 4로(영남대로)와 갈려 상주를 지나 통영으로 가는 제 5로와 천안,공주로 이어지는 제 6로에서 각각 지로 (支路,굳이 비교하자면 오늘날의 지방도로이다)를 내어 추풍령을 다스렸다.그것은 추풍령이 다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고개였음을 의미한다.'청주를 경유할 때'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추풍령은 결코 부산과 한양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역로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조선과 일본의 사신은 물론 그 위치상 특수성에 겸하여 고개 높이가 낮은 데다가 고개 앞 뒤에서 풍부한 1차 산물을 공급받아가며 요새를 지킬 수 있었던 데에 더 큰 요인이 있었던 것이다.그런 기술을 다산 정약용은(丁茶山 1762-1836)은 "추풍령을 넘으며(踰秋風嶺)"이라는 시에 남기고 있다.
"태백산 소백산 날고 뛰는 기세가 장하더니만
달리던 용머리가 여기와서 수그렸네.
골짜기는 북으로 황간으로 흘러가고
산줄기는 서쪽으로 적상산을 감아도네.
봉우리마다 높다라니 성벽을 쌓았다먼
이 평지가 요새임을 그 뉘가 알았으리.
청주 너른 벌판이 천리에 펼쳤으니
추풍령 빼앗겼다가는 멱살을 잡히리라."
아,토막난 금산이여!
11시 54분,점심을 들고 기묵이의 봉고로 추풍령 고갯마루를 지나 금산 아래턱까지 간다.추풍령 외곽도로를 건설하기 때문에 금산 아래자락은 흙투성이다.절개지 왼편으로 붙어 대간 길을 잇는다. 금산(384m) 정수리까지 150미터 된비알을 더터오른다.정수리에 가까워지자 암장이 나타나고 12시 10분,드디어 금산 정수리에 다가간다.그런데 금산 꼭대기에 올라서자 반대편 산비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저 아래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면서 산 반쪽을 깎아내린 때문이었다.정수리에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꼭대기에 올라서자 낙석을 방지한답시고 초록색 철망을 쳐놓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흡사 반월형의 가장자리에 올라선 듯 위험천만한 느낌이었다.조심스럽게 비탈길을 내려와 저 아래 채석장을 굽어보니 공사 현장이 까마득하게 보인다.어쩌다 기차를 타고 추풍령을 지날 때 기괴한 모습의 산과 마주치곤 했는데 이 산이 바로 금산이었다.이러다가는 멀지 않은 장래에 금산의 반쪽 남은 산마저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내 반쪽 허퍼를 떠낸 것처럼....아! 금산이여. 토막난 백두대간이여! 사진은 금산 정수리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서서 반쪽이 날아가버린 금산의 처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금산의 절개지 끄트머리에 서서 채석장을 굽어본다.까마득하게 고도감이 느껴진다.채석장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는 추풍령면소재지에서 추풍령저수지와 작점고개로 거쳐 상주시로 가는 길이다.
금산(384m)이 파헤처져 절단난 비극의 현장은 우리를 당혹스럽게했고 혼란에 빠트렸다.종주 내내 암울한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12시 13분,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종주를 계속한다.산길은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재화와 황세가 또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고 정문이와 내가 뒤따른다.10분쯤 발품을 팔자 묘지가 연이어 나온다.숲이 울창하여 주위를 조망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오로지 산등을 밟아 전진할 뿐이었다.대간은 금산에서 502봉까지 동쪽으로 가다 서서히 남동쪽으로 휘어진다.502봉 아랫자락에 다다르자 산길은 차츰 고도를 높여나간다. 표고차 100미터를 차고 올라야 502봉에 다다르게 된다.된비알을 치오르면서 오늘 처음으로 땀이 솟는다.하지만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발품을 가볍게해준다.12시 41분,선두가 502봉에 올라섰다. 후미가 올 때까지 배낭을 벗어놓고 기다린다.
502봉에서 15분 가량 후미를 기다린다.익수가 합류하면서 선두는 휑하니 502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익수를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502봉을 벗어나자 대간 길은 오른쪽(남쪽)으로 방향을 튼다.등산로는 완만하고 부드러워 마치 산책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오후의 햇살이 낙엽 쌓인 대간마루를 환하게 비추고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와 나뭇잎 떨어뜨린 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소담하다.그 길을 선두의 재화가 발품을 팔고 있다.480봉 부근의 풍광이다.
480봉에 가까워지자 해주 오씨 묘와 마주친다.1시 6분,480봉에 오르자 대간은 왼편(남동)으로 꺾이며 급격한 내리막길이다.1시 12분,좌우로 갈림길이 열린 400m 잘룩이를 지나자 다북솔숲 구간이 나온다.솔향기가 진하다.정문이 익수와 함께 사기점고개를 향해 발품을 판다.후미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궁금하여 현기한테 무전을 때린다.480봉 못미쳐 묘지를 막 지났다는 응답이 왔다.정문이와 나는 발품을 재촉한다.익수가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대간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1시 28분 500봉에 다다랐다.500봉은 남동진하던 대간이 왼쪽으로 90도로 꺾여 북동진하는 대간 분기봉이다.이제 사기점고개까지 남은 거리는 약 1km.뒤로 처진 익수가 야호를 외친다.정문이와 나는 다리쉼을 하며 익수를 기다린다. 대간길을 홀로 걷는다는 느낌이 들면 더러는 외롭고 무섭기도 한 법이다.익수를 만나 함께 길을 재촉하여 1시 45분,사기점고개(390m)에 닿았다.
사기점고개에는 5분 가량 먼저 온 황세와 재화가 황금빛 풀섶에 드러누워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김천시 봉산면 사기점리에서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로 넘는 임도가 사기점고개를 지나고 있었고,그 임도는 황토길이었다.후미를 기다리며 나는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을 조망한다.먼저 통신중계탑이 서 있는 묘함산을 올려다본다.작점마을에서 묘함산으로 오르는 시멘트도로와 통신중계탑 시설물이 묘함산 정상을 점유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1시 55분,후미가 사기점고개에 합류했다.
사기점고개에서 동쪽의 묘함산을 조망하고 북동쪽으로 눈을 돌려 우리가 가야 할 대간을 가늠한다.묘함산으로 오르는 도로와 그 뒷쪽에 590봉이 보인다.대간은 이 590봉에서 왼쪽(서)으로 방향을 틀어나간다.그러나 590봉에 올라 산줄기를 밟아보니 길이 끊겼음을 확인했다.그러므로 묘함산 도로에 닿으면 590봉으로 오르지 말고 무조건 그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하산해야 한다.
2시 4분,사기점고개(390m)를 뒤로 하고 대간 길을 밟아나간다.임도를 따라 오르다 오른편 숲길로 들어선다.차츰 고도가 높아지는 산길을 오르니 기온은 10도를 가리키고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다.2시 20분,묘함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도로(510m)에 다다라 6분 가량 다리쉼을 하며 일행이 모이기를 기다린다.자,이제 590봉으로 오를 것이냐 아니면 그 시멘트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시멘트도로를 걷는데 진력이 난 우리는 짧지만 가풀막진 590봉으로 치고 오른다.2시 34분,590봉에 올라서서 대간마루금을 살핀다.
590봉에 오르던 그 방향으로 산줄기가 열려 있고 또 왼쪽으로도 산줄기가 뻗어내려간다.재화와 황세가 직진하여 대간 길을 살핀다.의선이와 나는 왼쪽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본다.지형도에 따르면,왼쪽 산줄기를 타고 하산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그 많던 대간 리번은 어디 간 것인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아,그렇다면 시멘트도로를 따라 작점으로 간 게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는 했다.그러나 우리는 우회하지 않고 제대로 된 대간 길을 찾아내기로 한다. 의선이가 먼저 590봉 왼쪽 산등을 따라 내려가고 일행은 590봉에서 조금 내려서다가 멈춰선다.그러나 의선이가 내려간 길은 자꾸만 계곡으로 빨려든다.산등 중간쯤에 있던 나는 일행한테로 돌아오고 황세는 590봉에서 직진하여 대간마루금을 살피러 떠나고...의선이가 올라오면서 리번이 달린 왼쪽 지능을 발견하자,우리는 황세한테 되돌아오라고 소리친다.우리는 왼쪽 지능을 타고 내려간다. 길은 거의 없었고 사람이 다닌 자취도 희미했다.하지만 이 지능선이 바로 대간마루금이었다.그런데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니 아뿔사! 묘함산에서 작점으로 내려가는 예의 그 시멘트도로 곡각지점과 만나는 게 아닌가.그런데 이 곡각지점에서 대간마루금을 이어가려면 신애원농장 건물(?)을 통과해야 한다.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그래서 대다수의 대간꾼들이 시멘트도로를 따라 하산한 것이었구나.
3시 45분,우리는 가능한한 빨리 부산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여기서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는 경부고속도로 대구 근처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다리는 차량행렬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니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작점에서 추풍령저수지를 지나 추풍령 인터체인지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갔다.북대구 근처에 오자 차량이 밀리기 시작했으나 일찍 서두른 바람에 무사히 현풍을 거쳐 구마고속도로로 스며들 수 있었다.마산의 현기한테 지난해 낙남정간을 종주하며 몇 차례 들렀던 오동동의 실비통술집에 예약을 시켜놓고 마산으로 빠져 신속하게 목욕을 했다.사진은 각종 해산물이 푸짐하게 나오는 마산의 실비통술집에서 11구간 끊어타기의 뒷풀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11구간을 종주하면서 가장 곤욕을 치룬 회원은 최금구 동기였다.대간을 종주하기 3일 전부터 술자리를 거푸해서 주력이 많이 떨어진 탓이었다."산은 산이 말해준다."고 그가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그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자 그는 금정산 아침 조기등산을 빼먹지 않아야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10구간부터 동참한 호철이는 몸무게도 2.5kg 가량 줄었고 주력도 많이 좋아졌다.개별산을 오르내리는 산행과 달리 대간 종주는 힘이 많이 든다.한 구간을 끊어타면서 적게는 20개에서 많게는 30개 정도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체력 안배가 관건이다.초장에 힘을 너무 쏟으면 점심을 먹고 난 후반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주력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렇기 때문에 종주를 마치고도 약 5km은 더 탈 수 있는 여력을 늘 비축해놓아야 한다. 대간 종주는 한마디로 마라톤에 비견된다.주력과 지구력 또는 인내심이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종주정보]
07:21 괘방령(300m)...3.65...09:03 가성산(729.9m)...2.85...09:55-10:20 눌의산(743.3m)...1.5...10:45 추풍령휴게소/송리 갈림길(340m)...1.25...11:00-11:54 추풍령(225m)...0.6...12:10 금산(384m)...2.37...13:06 480m봉...2.0...13:45-13:58 사기점고개(390m)...0.87...14:20-14:26 묘함산행 도로(510m)...2.2...15:30-15:35 작점고개(350m)
종주거리/시간:17.3km/8시간 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