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맑게 하는 山詩

산에 대하여-신경림

청산신남석 2006. 5. 22. 18:39
  

            [대지리의 품을 벗어난 대간마루는 마침내 사람들이

             몸부비며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애환을 함께 한다.]

            

 산에 대하여/신경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즈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돼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울어지는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만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경림(申庚林 1935~)

 충북 충주 출생.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9년 "문학예술"에서 시 <갈대>가 추천되어 문단데뷔.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1981년 제8회 한국문학 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농무>,<달넘세>,<가난한 사랑노래>,<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