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하여-신경림
[대지리의 품을 벗어난 대간마루는 마침내 사람들이 몸부비며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애환을 함께 한다.]
산에 대하여/신경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즈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돼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울어지는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만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경림(申庚林 1935~) 충북 충주 출생.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9년 "문학예술"에서 시 <갈대>가 추천되어 문단데뷔.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1981년 제8회 한국문학 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농무>,<달넘세>,<가난한 사랑노래>,<길>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