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5구간 <선바위고개-덕유교육원 갈림길>
선바위고개-영취산-육십령-합미봉-덕유교육원갈림길 16km(2003.8.3)
8월 3일,백두대간 5구간 종주날이다.오늘은 지난 구간 하산지점인 무령고개에서 영취산에 오른 뒤,깃대봉과 육십령을 거쳐 합미봉,덕유서봉,남덕유로 해서 영각사로 내려오는 21.7km 구간으로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8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영각사에서 남덕유에 오른 다음,삿갓골재대피소에서 1박,8월 17일 당일 빼재까지 끊어타기로 했다.(이를 위해 현기는 8월 16일 삿갓골재대피소에 12명을 미리 예약해놓았다)
그런데 8월 3일,새벽 2시 50분 한양프라자 앞에 도착하자 컴컴한 어둠 속에 기환이 홀로 종주팀을 기다리고 있었다.8월 16일은 제사 때문에 1박 2일은 곤란하다는 엊저녁 그의 전화를 받은 터라,오늘 구간을 어디까지 끊어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덕유로 해서 설령 영각사로 내려선다 해도,다음 구간 하산지점을 끊기가 영 마뜩하지 않고,그 다음 지옥같은 남덕유 700개 철계단 오름길에 초장부터 기력을 빼앗길 터이니 말이다.그렇다고 까꿀막진 남덕유 철계단을 피해 월성치에서 황점으로 내려선다 해도 다시 월성치로 올라붙으려면 거의 3시간 가량 씨름을 해야 하니,어느 곳에서 탈출하더라도 대간마루금에 올라붙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오늘은 삿갓골재대피소까지 끊어타도록 종주코스를 연장하고 말았다.그렇다면 1박 하지 않고 8월 17일 당일 산행으로도 빼재까지 넉넉히 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삿갓골재대피소에서 황점까지 탈출거리를 합치면,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구간은 25km가 넘는 장거리.쉼없이 걸어도 저녁 6시 30분쯤 황점에 다다를 것이니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그런데다 덕유서봉 오름길이 가파르기 그지없어 강인한 체력과 인내 없이는 완주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장수군 장계면 "대중식당"에 봉고가 도착한 시각은 새벽 5시 10분.대낮같이 훤히 불을 밝힌 대중식당에 들어서자 구면의 그 뚱보 아지매는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지난번에 압도적으로 인기를 끈 "보신탕" 다섯 그릇과 된장찌개 두 그릇을 시켜 먹었다.새벽 5시에 보신탕을 먹기는 우리 생애 처음이라며 아지매한테 거듭 고마움을 전하고 무령고개로 떠났다.기묵이의 봉고는 육십령행 26번 도로를 따르다 삼봉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동리를 지난다.이어 주곡저수지가 나오고 말끔히 단장된 주논개 생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논개가 태어난 주촌마을은 주곡저수지가 생기는 바람에 물에 잠겼고 논개 생가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해놓았다.이곳 장수 사람들이 충절의 여신이라 자랑하는 주논개(朱論介)는 장수삼절(長水三絶) 가운데 으뜸이다.그 다음은 임란 때 빼어난 기개로 장수향교를 왜구로부터 지켜내 왜장마저도 그의 충성심과 기상에 탄복했다는 향교지기 정경손.삼절 가운데 마지막은 순의리(殉義吏)이다.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 감영으로 가는 길에 천천리 장척애라는 험한 벼랑길을 지나다 홀연 꿩의 울음소리에 말이 놀라는 바람에 현감이 절벽밑으로 떨어져 소에 빠져 죽었다.이를 본 마부는 손가락을 깨물어 꿩과 말의 그림을 바위에 그리고 "타루(墮淚)" 두 자를 써놓고 물에 뛰어들어 자결했다.나중에 주인을 따라 죽은 노비의 충절을 가상하다고 사람들은 칭찬하였다.그 노비의 본명은 모르지만 그 자리에 타루비를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타루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다.
6시 19분,무령고개에 다다라,백두대간 해설판을 배경으로 이재화,전기환,김황세,김현기,손의선 그리고 신남석 모두 6명이 5구간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종주들머리 선바위고개로 가는 산골짜기 물가에는 물봉선화 군락이 예쁜 꽃을 피워올리고 있었다.봉선화는 대체로 깨끗한 물이 있는 산골짜기 혹은 냇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 풀이다.주로 물가에 산다고 해서 물 봉선화 혹은 인가가 아니고 산야에서 잘 산다고 해서 야 봉선화라고도 부른다.
보통은 무리를 이루고 깨끗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은 산골짜기 물기가 축축한 곳을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요즘은 인가 주위의 야산에는 많이 오염되어 점차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하지만 조금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보통 물 봉선화는 키가 60cm정도 자라며 줄기부분이 아주 유연하고 부드러워 쉽게 부러진다.그리고 줄기의 상단부에만 잎이 나 있기 때문에 줄기부분이 아주 깨끗해 보인다.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를 가지고 있는 6-15cm 정도의 잎은 넓이가 3-7cm 정도 된다.주로 8-9월경에 붉은 자주색의 고깔 모양의 꽃이 피며 꽃의 끝 부분은 안으로 말려들어가 있다.그리고 꽃이 진 뒤 여무는 열매의 크기는 1-2cm정도로 꼬투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삭과 안에 씨앗이 들어있는데 잘 터지기 때문에 봉선화의 씨앗처럼 "Touch - me -not" 이다.즉,다가가면 터져서 멀리까지 씨앗을 퍼뜨린다.현철의 봉선화 연정에 나오는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봉선화라 부르리"처럼 꽃말도 "나를 만지지 마세요"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봉선화는 인도에서 들어온 외래종이지만,이 물봉선화는 그야말로 이 땅에서 자라는 우리의 꽃이란 점에서 더욱 애착이 가는 꽃이다.
[선바위고개-산죽밭 뒤로 영취산 오름길이 열려있다.]
선바위고개에서 산죽밭을 헤치고 영취산으로 오른다.첫 봉에 오른 뒤,헬기장을 지나자 길은 훤히 트여 있다.반바지를 입었는데도 비가 오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아 지난 구간처럼 바지를 적실 염려는 없었다.날씨는 먼 산에 구름이 끼여 있을 뿐,쾌청하다.요즘 같은 장마철에 맑은 날씨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6시 45분,영취산 정수리에 다다르니 돌탑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그러나 주위 조망은 숲에 가려 신통치 않았다.
영취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은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 도계(道界)를 분수령 삼아 북진(北進)한다.그런데 영취산에서는 또 하나의 정맥이 갈래쳐 서진(西進)하니 이름하여 호남금남정맥이다.호남금남정맥은 무령고개에 와서 숨을 죽이다가 장수 장안산(1,236.9m)을 일으켜 세우고 진안의 운장산(주화산)에 이르러 북으로 금남정맥,남으로 호남정맥을 갈래쳐나간다.그러나 영취산 어디에도 그런 안내판이 전혀 없어 서운했다.단지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이정표가 이곳이 영취산임을 알리고 있었다.
영취산 정상에서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 마루금을 조망한다.5번째 하늘금을 그리는 높은 봉우리는 깃대봉(1,014.8m)이고,그 너머가 육십령이다.4번째 하늘금을 긋는 봉우리는 961봉.3번째 봉우리는 977.1봉.그 앞에 덕운봉 갈림봉이 보인다.대간마루금은 이렇게 이리 꿈틀 저리 꿈틀 용트림치며 나우리친다.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면서 마루금을 조망하다 보면 우리 산줄기가 흘러가는 그 맥을 짚어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게 된다.그럴 때 우리의 산들은 동떨어진 독립산이 아니라 서로 유기체로 연관되어 있으며,살아 숨쉬는 생명체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시야를 넓혀 덕유서봉과 남덕유 일원,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마루금을 조망한다.맨뒤 하늘을 가르며 우뚝 솟아 있는 산줄기는 남덕유 능선인데 황소 뿔처럼 보이는 왼쪽 봉우리가 덕유서봉이며 그 오른쪽 봉우리는 남덕유(1,507.4m)이다.그 앞의 능선이 깃대봉,남덕유와 깃대봉 사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는 합미봉이다.3번째가 977.1봉이며 맨앞이 덕운봉(983m) 능선이다.
옛날 외동아들 집에 며느리를 맞게 되었다.자식처럼 연인처럼 아들을 길러 온 홀어머니는 처음엔 잘 대해주다가,아들을 빼앗긴 듯한 느낌에 점점 심하게 박대를 했다. 어느 날 밥을 짓던 며느리는 밥이 다 익었는지 알아보려고 밥알 몇 개를 씹어 보다가 들켰다.미운 놈은 미운 짓만 보인다고,눈엣가시 같은 며느리에게 트집을 잡았다.시에미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고.(일설에는 조상에게 올리기도 전에 먼저 먹었다고 트집 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당연히 습관처럼 오락처럼 사정없이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당연히 분통이 터지고 상처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변명도 못해 보고...그게 원통해서 속앓이 병으로 끝내 죽고 말았다.동네 사람들이 불쌍해서 정성껏 묻어주자,그 무덤에서 꽃이 피었다.마치 밥알을 안 먹고 입에 넣고 씹어만 봤다는 듯이 말없는 시위처럼 혓바닥에 밥알 두 개를 물고 있는 듯이 보였다.그래서 며느리밥풀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취산에서 대간을 조망하고 덕운봉 갈림길로 떠난다.조릿대군락이 간간이 나타나는 숲은 발품을 팔기에는 좋은 길이었다.바위가 없어 속도를 한껏 낼 수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이 훤히 열리면서 억새숲 구간이 나타난다.후미의 기환이와 현기가 어깨까지 드리운 억새풀을 헤쳐나오고 있다.
이제 덕운봉 갈림봉이 눈에 들어온다.대간 마루금은 북동쪽으로 흘러 덕운봉으로 올라붙는다.덕운봉은 대간에서 오른편(동쪽)으로 슬쩍 비켜나 있다.
[뒤돌아본 백운산]
억새밭에서 우리가 지나온 백운산을 뒤돌아본다.저 멀리 구름 비낀 봉우리가 그 이름 그대로 백운산(白雲山)이고,그 앞쪽을 가로지르는 영취산 줄기가 서상면 상부전으로 뻗어내린다.
백운산을 뒤돌아보고 덕유서봉을 바라본다.장수덕유산이라고도 부르는 덕유서봉이 멀리 스카이라인을 그으며 그 뒤로 붉으스레한 일출이 오로라처럼 장엄하게 피어오른다.
덕유서봉을 조망하고 다시 발품을 판다.그러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대간마루금을 잇기 시작한 영취산과 그 뒤에 구름 덮인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백운산과 영취산을 함께 조망한다.왼쪽 제일 높은 봉우리는 백운산이며 그 오른쪽 산줄기가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이다.
[980봉에서 남덕유를 등지고]
[덕유서봉과 남덕유로 중첩되는 산줄기]
덕운봉으로 갈라지는 분기봉을 지나 6분쯤 발품을 파니 988봉에 이른다.이 봉우리에서 깃대봉과 덕유서봉,남덕유 그리고 무룡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이번 구간 가운데 최고였다.맨앞에 보이는 초록색 능선 한가운데가 928봉이며,그 앞 잘룩이가 옥산리 갈림길이다.그곳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대간마루금이 이어지고,삼각형으로 돋올한 봉우리가‘북바위’로 유명한 961봉이다.961봉에서 그 다음 914봉을 넘어서면 민령(870m)이다.민령 뒤에 보이는 봉우리는 깃대봉(1,014.8m).맨뒤에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장중한 능선은 남덕유산이다.
전기환 원장이 짙푸른 대간마루금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았다.
현기와 재화가 짙푸른 산그리매가 중첩된 대간마루금을 뒤로 하고 잠시 포즈를 취했다.
988봉에서 15분 가량 발품을 팔아 전망바위가 있는 978봉에 이르렀다.이 봉우리에서 건너편 977.1봉 너머 남령과 월봉산을 바라보았다.남덕유(1,507.9m)에서 중봉(1,363m),남령을 거쳐 월봉산~은신치~거망산~황석산으로 이어지는 9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쾌한 능선 종주는 억새가 지천인 가을철이 제격이다.
7시 50분,978봉 바위전망대를 지나면서 대간은 거의 북동진하게 된다.다시 5분 가량 발품을 팔면 동쪽 50미터 지점에 물이 있다는 비닐안내문을 지난다.여기서부터 산죽밭이 옥산리 갈림길까지 이어진다.그 구간을 종주하는 도중 기환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간 길의 야생화-잔대]
모싯대는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며 농가에서 재배하기도 하는 도라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흰꽃이 피는 것을 흰모싯대라 한다.꽃은 비록 크지는 않지만 작은 종(鐘)모양으로 여러 개씩 매달려 귀엽게 보인다.화단에 촘촘히 심고 버팀목을 세워 옆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줄을 매어 주면,여름부터 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이 많이 핀다.
[북바위에서 바라본 민령과 깃대봉]
지겹도록 이어지는 산죽밭을 지나 바위전망대가 있는 943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거의 북진(北進)한다.8시 23분, 977.1 봉 아래 갈림길에 다다랐다.갈림길 이정표에는 육십령(6.5km),함양군 서상면 옥산리(3.5km),논개 생가(장수군 장계면 대곡리(2.0km)라고 적혀있다.또 하나의 바위전망대와 977.1봉을 지난다.종주길은 기복이 심하지 않고 부드러워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드디어 8시 47분,‘북바위’가 있는 961봉에 다다랐다.사진은 북바위에서 바라본 민령과 깃대봉이다.
[기우제를 지내던 북바위에 올라]
영취산(1,075.6m)에서 갈라져 섬진강과 영산강을 싸안고 돌아 광양 백운산(1,218m)까지 뻗어나가는 462km 호남정맥이 백두대간과 북쪽 골짜기에 처음으로 빚은‘큰골’대곡리.여기에는 성곡,주촌,지승 세 개의 마을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임란왜란 때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충절의 여신' 주논개가 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
[민령으로 가는 억새숲 속의 의선]
북바위에서 조망을 끝내고 육십령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여기서부터 민령까지는 간간이 숲속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억새풀이 무성한 구간이 었다.사진은 북바위를 떠나 10분 가량 발품을 팔았을 때 만난 억새밭-의선이가 어깨춤까지 자란 억새를 헤쳐나오고 있다.가을이 오면 깃대봉을 비롯한 이 일대는 억새천국을 이뤄 장관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민령 가는 길-억새숲에 든 재화와 황세]
선두에 선 의선이가 지나가고 다음에는 재화와 황세가 억새밭을 헤쳐나 온다.
[대간 길의 야생화-여로]
여로는 백합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우리나라 어디든지 산속 나무 밑이나 풀밭에서 자란다.특히 고산지대의 물기 있는 풀밭에 무리 지어 자란다.
[민령 지나 억새밭을 걷는 현기]
9시 10분,깃대봉 아래 민령(870m)에 다다랐으나 무성하게 자란 풀이 고갯마루를 뒤덮고 있어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민령에서 오른쪽 성주골로 빠지면 서상면 금당리에 이른다.민령을 지나면서 억새밭은 계속된다.현기가 억새속에 파묻혀 걷고 있다.
민령(870m)을 뒤로 하고 깃대봉으로 오른다.첫 봉인 943봉 오름길은 완만한 억새터널이 이어지다가 솔숲이 나오더니 또다시 억새숲길이다.9시 50분,마침내 깃대봉(1,014.8m)에 올라섰다.깃대봉 정수리도 억새천지였으며 백두대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패장(敗醬)이라고도 하는-마타리]
코스모스가 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 한들거리면 산에서는 유난히도 노란 마타리꽃이 실바람에도 살랑거리며 가을을 푹 익게 한다.코스모스,국화,구절초,쑥부쟁이,곰취,단풍,산수유,맨드라미 등과 함께 가을을 장식하는 자생화이다.
[민산초나무]
산초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낙엽성 나무이고 다 자라도 키가 3~4미터를 넘지 못한다.산초나무는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의 그리 높지도 않고 그다지 깊지도 않은 곳에서 자라며,초피나무는 남쪽지방에 주로 많이 분포하고 중부내륙지방에서는 볼 수 없으나 해안을 따라서는 중부지방까지 올라온다.
깃대봉을 떠나 1,010봉에 올라선 뒤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자 잘 다듬어진 샘터와 만난다.이 샘은 수량이 넉넉하고 물맛도 좋아 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에게는 고맙기 그지 없는 감로수였다.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이라는 함양과 너무도 오지라 울고왔다 울고간다는 장수 두 고장을 이어주는 고개가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는 육십령(六十嶺 734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풀기를,"신라적부터 요해지였으니,행인이 이 곳에 이르면 늘 도적에게 약탈당하므로 반드시 60명이 되어야만 지나가곤 했는데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고 하였다.
[합미봉 동릉 위의 바위군]
915봉에서 잠시 다리를 풀고 합미봉으로 향한다.오후 1시 2분,합미봉 아래턱에 다다랐다.저 가파른 합미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여기서 잠시 갈증을 축이고 숨을 골라야 한다.그런 다음 단숨에 합미봉 정수리까지 치고 오르는 게 상책이다.1시 20분,합미봉 정상에 올라섰다.정상에 오르니 덕유서봉과 남덕유는 구름에 가려 전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사진은 합미봉 정상 바로 밑 전망바위에서 합미봉 동쪽에 우뚝 솟은 암릉을 찍었다.
합미봉 전망바위에서 숱한 사연을 간직한 육십령을 조망한다.사진 가운데 작은 봉우리 뒷쪽이 육십령휴게소가 있는 고갯마루.그 봉우리 오른쪽 산허리를 따라 구불텅거리며 뻗어내리는 26번 도로는 전북 장수군 장계로,왼쪽 도로는 경남 함양군 서상으로 이어진다.
[합미봉 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본 육십령]
합미봉 전망바위에 종주팀이 다 모였다.동릉의 암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종주팀 뒤로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가 남덕유-남령-월봉산 능선,그 한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월봉산(月峰山 1,279.2m)이다.
[합미봉 정수리에 올라]
합미봉에는 정수리를 중심으로 허물어진 성터 흔적이 보였다.일행은 5분쯤 다리쉼을 하고 합미봉에서 하산했다.가파른 암릉길이었다.세 차례나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 끝에 합미봉을 빠져나왔다.까탈스런 할매처럼 우리를 곱게 내려보내지 않고 장난질을 치는 듯했으니.그렇다고 그리 위험한 구간은 아니지만 눈이 내리거나 비가 쏟아질 때에는 매우 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헬기장에서 일명,장수덕유산이라고도 부르는 덕유 서봉으로 오른다.황세와 내가 앞장서고 그 뒤에 재화,의선이 기환이와 현기가 뒤따른다.오르막길은 언제나 힘이 든다.그 길을 한발 한발 내딛어 산을 밀어내리며 오른다.땀이 억수같이 쏟아진다.무릎이 뻐근해지고 가슴은 답답하다.안개가 앞을 가려 시계(視界)도 좋지 않으니 더 답답하다.그러다가 오름길 곳곳에 핀 노란 원추리를 본다.이 청순하고 예쁜 원추리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주저앉고 말았을지도 모른다.그렇게 허위단심 발품을 팔아 3시 20분,1,260봉 전망바위에 다다랐다.여기서 나는 구름에 갇힌 황세를 카메라에 담고,동기들을 기다렸다.이 전망바위가 나중에 문제의 바위가 될 줄은 그땐 미쳐 몰랐으니.....
[짙게 드리운 구름을 등지고 전망바위에 앉은 황세]
페르시아의 여왕은 욕심이 아주 많았다.특히 보석을 좋아해서 이 세상의 보석이라는 보석은 모두 모아들일 결심을 했다.그래서 페르시아로 들어오는 모든 장사꾼들은 통행세로 보석을 내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지요.이 방법으로 많은 보석을 얻었지만,욕심 많은 이 여왕은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다.
등산로에서 기다리던 황세를 원추리 군락지대로 불렀다.원추리 꽃 사이에 기댄 황세의 모습-꽃보다 아름답구나.
황세와 나는 원추리 군락지대를 벗어나 등산로로 내려왔다.조금 오르자 잡목지대가 나온다.원추리와 구름,그리고 바위가 조화를 이룬 풍경이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지유,적지유라는 약명의 오이풀은 잎을 뜯어서 코에 대어 보면 오이 또는 수박냄새가 물씬 나는데,진짜 오이보다 오이 냄새가 더 진하게 난다.장미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양지 바른 산이나 들에 흔히 자라는데 특히 높은 산 바위틈 험한 곳에 무리 지어 자란다.
오이풀은 꽃 모양이 독특하다.마치 젖꼭지처럼 생긴 자주색 꽃이 긴 꽃자루 끝에서 둥글게 뭉쳐서 핀다.대개의 꽃들이 아래서부터 위로 피어 올라가지만 오이풀은 위에서부터 피는 것이 특징이다.오이풀의 꽃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그 생김새가 독특하여 꽃꽂이 재료로 흔히 쓴다.뿌리는 굵고 딱딱하며 줄기는 곧게 서고 털은 없다.긴 잎자루 끝에 작은 잎이 5~13장이 난다.잎 모양은 긴 타원형으로 끝이 무디고 가장자리는 거친 톱니가 있다.꽃은 7~10월에 피어 8~11월에 씨앗이 익는다.
오이풀은 설사,대장염,출혈,악창,화상 등에 중요하게 쓰는 민간약이다.특히 지혈작용이 강하여 갖가지 출혈에 피를 멎게 하는 데 많이 쓴다.오이풀 잎에는 탄수화물,단백질,지방,무기질이 고루 들어 있으므로 나물로 먹으면 좋다.상큼한 오이 향이 일품이다.봄철 새로 돋아난 부드러운 잎을 나물로 무쳐 먹거나 생즙을 내어 먹는다.칼슘,철,구리,아연 등의 미량원소가 많이 들어 있다.오이풀은 아무 데나 흔하며,산오이풀,가는잎오이풀,큰오이풀 등 비슷한 식물이 여러 가지 있으며 어떤 것이나 같은 효과가 있다.
오이풀은 화상에 최고의 명약이다.오이즙을 화상에 바르면 신기한 효과가 있듯 오이 내음이 나는 오이풀의 잎이나 뿌리 줄기를 짓찧어 붙이면 신통하다 싶을 만큼 잘 낫는다.오이 냄새가 나는 정유성분에 화상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손이나 발에 생긴 습진에는 오이풀 뿌리,줄기 등을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약한 불로 천천히 달여 농축시킨 것을 하루에 5~6번 발라주면 잘 낫는다.오이풀은 피를 맑게 하고 피나는 것을 멈추며 설사를 멎게 하고 토하는 것을 멈추게 하며 새살을 잘 나오게 하는 등의 약리작용이 있다.
그러나 재화는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낭패였다.일이 이렇게 되자 서봉 정상 오르기는 아예 단념했다.배낭을 의선이한테 맡기고 나는,예의 그 전망바위로 쏜살같이 뛰어내려갔다.연신 목이 터져라 재화를 불러댔다.안개는 자꾸만 엄습해오고 서서히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밧줄을 타고 전망바위로 올라갔다.4시 50분이었다.그러나 재화는 거기 없었다.의선이와 현기에 따르면,기환이와 현기가 전망바위에서 재화를 부르자 바위 밑에서 재화의 응답이 들려왔다 한다.그렇다면 재화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실족을 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5시 10분,황세와 의선이를 비롯,일행이 전망바위에 모였다.나는 다시 밧줄을 타고 전망바위 아래로 내려가보았다.거기서 서봉으로 오르려면 왼쪽으로 돌아 산등에 붙어야 한다.그런데 서봉 반대쪽으로 산길이 열려 있고 붉은 리번 하나가 달려 있었다.나는 그 길을 따라 올라보니 웬걸 전망바위 들머리가 나온다.
간밤에 한 숨도 못잔 데다,체력이 떨어진 재화가 이 길을 따라 덕유교육원으로 내려간 것으로 추론했다.그래서 우리는 덕유교육원 갈림길로 내려가기로 단안을 내렸다.덕유교육원 갈림길로 내려오면서 기묵이한테 황급히 휴대폰을 날려,재화가 행불이 됐으니 봉고를 덕유교육원으로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23회 동기회 산행대장이며 노련한 기묵이한테 덕유교육원 갈림길까지 올라와달라는 주문도 곁들였다.
덕유교육원 갈림길로 내려와 교육원 길로 들어서자 땅바닥에 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재화는 평소 하산길에 스틱을 즐겨 쓰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국을 재화의 것으로 생각했다.한가닥 희망이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조금 내려가자 기묵이 혼자 올라왔다.그런데 그는 재화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눈 앞이 캄캄했다.의선이는 "전망바위로 다시 올라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그러자 기묵이는 교육원 조금 위에 마을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으니 거기까지 가보자고 했다.20분 넘게 걸어 그 갈림길에 다다라 마을로 빠지는 길을 가며 살펴보니 여전히 스틱 흔적이 나타났다.현기가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15분쯤 걸었을까? 현기한테서 휴대폰이 왔다.재화가 이 길로 내려간 것 같다는 메시지였다.그리고 조금 더 가자 별장같은 집 앞 개울가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30~40분 전에 키 큰 산꾼이 지나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그러는 사이 기묵이한테서 재화의 위치를 대충 알았으니 영각사 아래 영각교 다리 밑에서 목욕이나 하며 기다려달라는 휴대폰이 날아 왔다.그때 재화는 우리가 내려오기로 황점에 가 있었다.
기묵이가 재화를 봉고에 싣고 영각교로 와 오후 6시경,우리 일행과 다시 만났다.휴대폰을 봉고에 놓고 산행을 한 재화는 우리와 통화가 되지 않았고,영각교 삼거리 덕유민박집에서 전화를 빌어 의선이한테 전화를 했지만 의선이도 휴대폰을 봉고에 놓고 와 불통이었으니...그뿐이랴.재화는 내 휴대폰 번호마저 단축다이얼로 해놓아 전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재화는 자신도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며 계면쩍어 했다.그러나저러나 우리는 아무 탈없이 재화와 다시 만난 것을 자족(自足)하며 안의에 있는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종주정보]
06:21 무령고개(930)---0.7---06:36 선바위고개(1,040)...0.4...06:45 영취산(1,075.6)...1.9...덕운봉 갈림길(980)...2.6...07:53 978봉...08:47 북바위봉(961)...2.3...09:10 민령(870)...2.3...09:52 깃대봉(1,014.8)...10:05 샘터(우->민재골 갈림길 870)...2.5...10:38-12:15 육십령(700)...12:49 헬기장(915)...1.5...13:20-13:30 합미봉(1,026.4)...2.5...14:27 덕유교육원 길림길(950)...14:50 헬기장(1,070)...1.6...15:50-16:50 전망바위(1,260봉)...1.6...17:15 덕유교육원 갈림길(950)---2.5---17:55 영각교(600)
*도상거리/종주시간:19.2km/10시간 39분
*진입 및 탈출거리/산행시간:3.2km/55분
(무령고개->선바위고개:0.7km/덕유교육원 갈림길->영각교:2.5km)
*휴식시간:3시간 47분
*총산행거리/시간:22.4km/11시간 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