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4구간 <복성이재-선바위고개>

청산신남석 2006. 4. 10. 19:35

 [700봉에서 내려다본 복성이재]

 


 복성이재-봉화산-광대치-중재-백운산-선바위고개 17.4km(2003.7.20)

 

 

어둠이 짙게 드리운 새벽 3시 45분,한양프라자 앞-전기환 동기가 벤치를 홀로 지키고 있다.오기묵 후배의 봉고도 다른 회원들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조금 있으니 최금구 동기가 나타났고,이어서 이재화 총무,김익수와 손의선이가 합류했으며 김황세를 태운 기묵이의 봉고가 도착했다.새벽 4시 5분,4구간 종주팀이 한양프라자를 떠난다.서마산인터체인지에서 김현기 후미대장을 태우니 종주팀은 모두 8명.


어제까지 줄기차게 퍼붓던 장마비는 오늘도 그 기세가 수그려들지 않을 전망이다.함양과 장수 지역은 오전에 비 올 확률은 40%,오후에는 한두 차례 비를 뿌리며 강수량은 5~20mm에 이를 거라는 예보였다.그렇다면 어차피 빗속 산행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대진고속도로의 산청휴게소에 잠시 내려 국밥을 들고,함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함양 시내로 들어섰다.


하늘은 잔뜩 흐렸으나 비가 올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최치원이 홍수를 잠재우기 위해 심었다는 함양의 명물,상림(上林)을 끼고 봉고는 1084번 도로를 따른다.위천교에 이르러 봉고는 37번 도로로 스며들어 백전면사무소를 지나 운산리까지 올라갔다.백운산 등산로안내판을 발견한 우리는 흠칫 놀라 위천교로 되돌아와야 했다.위천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84번 도로를 따라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로 들어섰다.


흥부가의 발상지로 알려진 복성이재 동쪽 성리마을 어귀에는 흥부가 박을 타는 모습의 조각상이 보였다.그리고 곳곳에 흥부마을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즐비했다.

 

아침 7시,복성이재 고갯마루(540m)에 올라섰다.다들 반바지를 입고 최대한 배낭무게를 줄이며 산행채비를 차렸다.기묵 아우의 사진 촬영을 끝으로 7시 10분,제4구간 종주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구간 하산 때만 해도 복성이재 서쪽(번암면 논곡리)은 비포장길이었는데 2주가 지난 오늘은 말끔히 포장공사가 끝나 있었다.복성이재에서 700봉오름길에는 온통 매캐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대간 마루금을 따르는 철조망 왼편 산비알이 목장 초지이어서 가축의 배설물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냄새는 역겹기 짝이 없었다.

 

7시 30분,700봉우리에 올라섰다.이 봉우리에서 복성이재를 굽어본다.대간마루금 오른편 산비알에는 초지가 조성돼 있고 고갯마루를 에돌아 막 포장공사를 끝낸 도로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쪽으로 열려 있다.

 

[목장초지와 복성이재]

 

[700봉에서 뒤돌아본 대간마루금]


남원은 춘향전과 흥부전 설화의 근원지이면서 판소리의 전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흥부가의'제비노정기'와'박타령'에 나오는 지명을 근거로 하여 1992년 조사연구에서 흥부전은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설화를 판소리로 구성한 것으로 무대의 배경은 경남 남원군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중심이라 한다.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설화(박첨지설화,춘보설화)와 지명을 분석한 결과 이곳 남원이 흥부전의 발상지로 판명되었다.또한'박첨지 설화'에 근거하여 인월면 성산마을이 흥부와 놀부의 고향으로,'춘보설화'에 근거하여 아영면 성리마을이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쫓겨나 부자가 된 발복지로 밝혀졌고 지금도 두 마을에서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삼월삼짇날 박첨지의 제사와 정월 보름날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남원시에서는 흥부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9월 9일 시민의 날과 함께 흥부제를 개최하여 축제화시켜나가고 있다.
 

                                                             [700봉에서 내려다본 흥부가의 발상지,성리마을]

 
산행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700봉에 올라서서 성리마을을 살펴보고 구름 비낀 봉화산을 배경으로 종주팀이 포즈를 잡았다.다행스럽게도 종주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구름이 잔뜩 끼어 시계(視界)는 별로였다.
 

[700봉에서 봉화산을 등지고]
 
700봉 바로 밑에 자귀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중부 이남 지방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귀나무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초여름이 되면 공작의 깃털처럼 울긋불긋한 부채 모양의 꽃을 펼친다.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자귀나무는 꽃이나 잎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낮에는 활짝 펼쳤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가지런하게 접는다.특히 양쪽으로 난 잎을 포개는 모양이 마치 금실 좋은 부부가 꼭 껴안고 자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합혼목(合婚木) 또는 합환목(合歡木)'이라고 부른다.이런 이유로 부부간에 금이 가면 이 나무를 파다가 심어놓고 좋아지기를 빌기도 하였고,중국에서는 신혼부부에게 이 나무를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최근에 우리 나라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이 나무를 '사랑나무'라고 하여 아파트 정원에다 기념식수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자귀나무는 꽃이 하도 화려해서 서양에서 온 꽃나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귀나무는 엄연히 동양 나무이며 우리 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나무다.

 
자귀나무는 신경초랑 비슷한 족속이다.콩과 식물들은 주로 밤이 되면 잎을 움츠리는 버릇이 있는데,아까시나무,싸리,콩사리,신경초(미모사 또는 엄살풀이라고도 부름),자귀풀 같은 식물이다.꽃이 지고나면 콩하고 비슷하게 생긴 열매가 달린다.그 열매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면 익으면서 갈색으로 변한다.그때부터 바람이 불면 콩깍지가 흔들리면서 요란하게 소리가 난다고 하여 '여설목(女舌木)'이라고도 부른다.여자들처럼 아주 시끄럽다는 뜻이다.
 

[700봉 근처의 자귀나무]

복성이재에서 700봉에 올라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 마루금을 조망한다.저멀리 산정상 부근에 초지가 형성된 산이 봉화산이다.700봉에서 치재(660m)로 내려서면서부터 가시덤불을 뚫고 헤쳐나가야 했다.비는 오지 않았지만 딸기나무며 싸리나무,또는 철쭉 가지를 요리조리 피하며 낮은 포복을 하듯 나아가다보니 반바지는 흠씬 물에 젖어버렸고 종아리를 타고 내리는 이술방울은 신발 속으로 마냥 스며들기 시작했다.얼마 가지 않아 빗속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웃도리와 반바지는 물에 젖어버렸다.어디 그뿐인가.가시덤불을 밀치며 진행하다보니 반소매를 입은 팔뚝은 회를 친듯 상채기를 내 따끔거렸다.
 
종주를 마치고 무령고개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살펴보니 회원들 모두 팔뚝이 엉망이었다.그리고 장수군 장계면 목욕탕의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자 상처난 곳은 어찌나 화끈거리고 따금거리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이런 난관은 꼬부랑재 앞 봉우리인 660봉에 다다를 때(7시 50분)까지 계속되었다.

 
그런가운데서도 한가지 위안꺼리는 이슬을 흠뻑 머금은 산딸기를 따먹는 일이었다.시큼달큼한 산딸기는 이상스럽게도 원기를 북돋아주었다.8시 꼬부랑재(615m)로 내려선 뒤부터 풀숲이 이어진다.710봉에 올라서자 흥성장씨 묘가 나오고 다시 가시덤불이 가로막는다.봉화산 앞봉인 850봉에 올라서자 초지가 봉화산(919.8m)으로 이어진다.8시 50분,선두가 봉화산에 다다랐고 5분 뒤,후미가 봉화산에 올라섰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대간마루금]
 

9시 10분까지 봉화산 정상에서 머물렀다.시계가 좋았다면 백운산을 비롯 인근의 멋진 산들을 조망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그 대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대간의 마루금을 바라본다.봉화산 앞봉에서 봉화산,그리고 870봉(함양군 백전면,남원시 아영면,장수군 번암면 경계봉)에 이르는 초지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지나는 길손의 마음을 황홀하게 해주었다.꽃창포,파랭이꽃,솔나물,말나리,원추리,꿀풀,금마타리,....듣기만 해도 금세 환한 웃음이 피어나는 졍겨운 꽃이름들이다. 이번 4구간 끊어타기는 야생화를 만끽한 아름다운 산행이었다.사진 한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870봉이다.

 

[봉화산 정상에서]


8시 55분,봉화산 정수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남원군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에 걸쳐 있는 봉화산(919.8m)은 철쭉으로 이름난 산이다.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인근의 바래봉 철쭉의 유명세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이 지역 산악인들의 홍보로 점차 알려졌다.5월 말에 열리는 봉화산 철쭉제는 이름도 정겨운 남원 흥부산악회가 주최하고 남원시에서 후원하는데,자연생태 사진대회 및 등반대회,그리고 어린이 글짓기대회 등 여러 행사가 펼쳐진다.

 

[꽃창포(붓꽃)]


봉화산 일대는 꽃창포(붓꽃)가 무리지어 있었다.프랑스의 국화인 꽃창포에는 이런 일화가 얽혀 전해내려온다.클로비스 왕은 어느 날 신기한 꿈을 꾸었다.마흔 살이 넘도록,한 번도 보지 못한 천사가 꿈에 나타나 방패 하나를 주며,왕비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천사가 주고 간 방패에는 꽃창포 세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왕은 천사가 주고 간 방패처럼 전국의 기사에게 방패의 문양을 꽃창포로 바꾸어 넣으라고 명령하였다.지금까지 방패의 문양은 개구리였다.


그런지 얼마 뒤에,외국의 군대가 프랑스에 쳐들어왔다.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온 적군이 그만큼 유리했다.그러나 프랑스 군대는 적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워 프랑스 영토를 한 발도 밟지 못하고 물러갔다.왕은 이것이 천사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천사가 방패를 갖다 주었기 때문에 프랑스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외국의 군대가 또 프랑스를 쳐들어왔다.한 번 실패를 하고 돌아간 적군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수천 마리의 말과 수백만의 군대가 프랑스 영토로 쳐들어왔다.왕은 국경선을 지키는 장군을 불렀다.허연 수염을 기른 장군이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장군,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빨리 국경으로 가시오.짐도 곧 그리로 나가겠소." 프랑스는 다시 전투 태세로 들어갔다.왕은 프랑스 국민과 군사들에게 더 이상 전선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양쪽 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이 기회다.총반격이다." 백마를 탄 왕은 몸소 전쟁터로 나아가 총지휘를 하였다.꽃창포가 그려진 방패를 든 왕은 동과 서로 뛰면서 적군의 기세를 막았다.왕의 모습을 본 군사들은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적을 삽시간에 쳐부수었다.총사령관의 목이 떨어지고 수십만의 포로를 사로잡은 프랑스군은 완전히 적군을 물리쳤다.물론,그 나라 땅까지 점령한 프랑스는 대제국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오자,왕은 왕비에게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다.왕은 방패의 문양을 개구리에서 꽃창포로 바꾼 뒤로 두 번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꽃창포를 국화로 삼고자 했다.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지켜 준 꽃창포를 당연히 국화로 정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이때부터 꽃창포는 프랑스 국화가 되었다고 한다.


꽃창포의 꽃말은 심부름,소식이다.꽃창포가 이 세상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하늘의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땅 위에 심부름을 왔다가 구름의 장난으로 무지개가 걷히자,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꽃창포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다.꽃창포는 또한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좋아하던 꽃 중의 하나로, 베토벤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갈 때는 꼭 꽃창포를 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강릉을 비롯,전국에서 단오와 관련된 행사가 여럿 치러진다.이들 행사에는 으레 창포물(菖蒲湯)에 머리를 감는 행사가 끼어 있다.옛날부터 단오날 창포를 삶은 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창포의 뿌리줄기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꼽으면,병마를 물리친다는 풍습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1998년까지 특정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한 창포는 천남성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습지,못,도랑,강가에 드물게 자란다.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뻗으며 마디가 많다.전체에서 향기가 난다.잎은 길이 50-80cm,폭 0.5-1.5cm이며 중륵이 있다.꽃은 6-7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육수꽃차례에 피며,꽃차례는 길이 5-10cm다.꽃의 불염포는 꽃차례를 감싸지 않으며,잎처럼 생겼고 길이 30-40cm다.


두 식물은 사는 곳도 다른데,창포는 연못이나 강가 등 습지에 자라고,꽃창포는 습기가 조금 있는 초원이나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꽃창포'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과 들에 자란다.꽃대를 포함한 줄기의 높이는 40-120cm이며,잎은 길이 30-60cm,폭 0.5-1.5cm다.꽃은 6-7월에 적자색으로 피며 지름 10cm쯤이다.동아시아 특산식물이다.'붓꽃'은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란다.꽃대를 포함한 줄기의 높이는 60cm쯤이며,잎은 길이 30-50cm다.꽃은 5-6월에 피며 자주색이고 지름 8cm쯤이다.

 

 

원 추 리


톡 톡/두드려 보았다./숲 속에서/자라난 꽃 대가리.

맑은 아침/오래도 마셨으리.

비단 자락 밑에/살 냄새야,

톡 톡/두드리면/먼 상고까장 울린다

춤 추던 사람이여/토장국 냄새.

이슬 먹은 세월이여/보리 타작 소리.

톡 톡/두드려 보았다.

삼한ᄉ적/맑은 대가리.

산 가시내/사랑,다 보았으리.


신동엽

 

 

솔나물은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식물로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잎과 줄기는 높이 70~100㎝로 곧추 자라면서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잎은 길이 2~3㎝로 선형이고 8~10개가 윤생하는데 잎 뒷면과 줄기의 마디에 털이 있다.개화기는 6·8월로 황색의 꽃이 엽액과 원줄기 끝에 원추화서로 달린다.열매는 2개씩 달리고 겉에 털이 없다.솔나물 꽃에서 강한 향기가 나는 방향성 식물이다.희랍 옛이름 galion은 gala(乳)에서 유래된 말로서 치즈를 만들 때 젖을 엉키게 하기 위해 솔나물을 이용하였는데 속명 galium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햇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 또는 묘지 주변에 주로 생육하는데 다른 잡초들과 섞여서 자란다. 

 

[솔나물]

 
9시 10분,대간 탐사를 위해 봉화산을 떠난다.10분 뒤,잘룩이를 관통하는 임도를 지나 그 임도를 왼편 발치에 두고 풀밭으로 난 산길을 따라 산등을 오른다.5분 뒤,첫 봉우리 870봉에 올라서자 묘지가 나오고 묘지 주위로 수많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묘지를 지나자 내 키로 한 길이나 됨직한 억새풀이 나온다.그 묘지에서 우리가 밟은 봉화산 일원을 뒤돌아보았다.금구와 현기 뒤로 초지로 이뤄진 봉화산과 그 아래 산자락을 휘감고 있는 임도가 보인다.

 

[870봉에서 봉화산을 등지고]

 
함양군 백전면과 남원시 아영면,장수군 번암면 경계에 터잡은 870봉은 세 면이 맞닿은 삼면봉(三面峰)이다.이 봉우리를 지나면 잠시 억새구간이 나오고 이어 숲길이 시작된다.사진은 그 숲속길을 나아가다 월경산(月鏡山 981.9m)일원을 조망해보았다.

 

 

길섶에 피어 지나는 이의 발길에 채이기도 하는 패랭이꽃은 우리 나라 산과 들의 풀밭이나 길가 언덕에서 흔히 자라는 여려해살이 풀이다.꽃대가 연약한데도 여러 송이의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여름의 풀밭에 작은 소녀가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풀 전체가 분을 하얗게 바른 것처럼 분록색을 띄며 높이는 약 30센티미터 정도다.잎과 줄기의 마디가 대나무를 닮았다.잎은 마디에서 마주 나고 줄기 끝에서 가지가 몇 줄기 갈라진다.
 
6~8월에 줄기 맨 끝에서 꽃이 핀다.꽃은 연한 붉은색이며 꽃술이 있는 옆부분에 흑자색의 무늬가 나 있다.꽃잎은 다섯 장이며 끝이 톱니 모양이고 꽃은 좁고 긴 꽃받침통에 들어 있다.9월에 긴 꼬투리가 달리는데,이 속에 씨앗이 여러 개 들어 있다.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씨앗이 땅에 떨어져 번식한다.씨앗은 아주 작아서 약한 바람에도 날려 잘 번식된다.그러다보니 길을 닦기 위하여 산허리를 깎아내 돌틈,바위를 잘라낸 곳,메마르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이 풀 전체를 말린 것을 생약명으로 석죽(石竹)이라 일컫는다.안질,이뇨,소염,회충,늑막염,치질,인후염,생선 뼈가 목에 걸렸을 때 다른 약재와 처방하여 약으로 쓴다.한편 석죽과에는 야생종이 많은데,꽃이 크며 아름답고 향기도 좋다.
 
유럽 원산으로 원예종으로 재배하는 카네이션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꽃이다.패랭이꽃의 씨앗은 구맥자(瞿麥子)라 하는데 한방에서 이뇨제,통경제에 쓰이며 민간에서는 달여 먹는다.패랭이꽃의 학명이 석죽(石竹)으로 된 것은 희랍의 한 신(神)이 자기의 이름자 하나와 꽃이라는 희랍어를 합쳐 석죽이라고 부르고 자신의 꽃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페랭이꽃]

 
870봉에 있는 묘지를 지나자 잠시 억새풀이 나오더니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속보를 하기 매우 좋은 길이었다.그러다가 멋진 암장과 마주쳤다.종주팀은 이 전망바위 암장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갈증을 추겼다.전망바위를 조금 지나면 대간마루금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 944봉이 나온다.

 

 

10시 전망바위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다리품을 팔았다.이윽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944봉에 다다랐다.이 봉우리에서 광대치를 거쳐 월경산(月鏡山 981.9m)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을 살펴본다.맨뒤에 보이는 높은 산이 880봉인데 그 너머가 광대치이며 월경산은 윤곽이 흐릿하다.그런데 944봉에서 광대치 앞봉인 880봉까지의 오른편 산비탈은 간벌을 하여 조망하기에 좋았다.

 


우리나라 산과 들녘에 많이 피는 노란 원추리꽃.‘오늘 보니 원추리꽃이 매우 아름답구나.' 천하일색 양귀비와 궁중뜰을 거닐며 목단꽃을 감상하던 당태종 임금이 훤초화(萱草花) 원추리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 하나 둘 피기 시작하는 원추리꽃은 7월 하순쯤이면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다.원추리 군락지로 장관을 이룬 대표적인 산은 지리산 노고단이다.밤새껏 이슬을 머금고 있다가 동쪽에서 솟는 햇빛을 받아 늠름하게 곧추 핀 원추리꽃을 보노라면 오묘한 자연의 섭리에 깊이 녹아든다.더구나 운해가 산밑으로 깔리는 날에는 노오란 원추리와 산,하얀 운해가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원추리는 지리산 1400m 높은 고지의 심심산골부터 시작해 도시에서 멀지않은 야산과 들녘까지 흔히 볼 수 있는 여름꽃이다.
 


원추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꽃이라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꽃으로 보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꽃이다.잎은 난(蘭)을 닮고,꽃은 백합을 닮아 나리꽃과 원추리꽃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이 땅에 자생하는 백합종류의 식물은 비교적 낮은 지역에서 생장하는 나리꽃 종류와 낮은 지역부터 높은 산능선까지 널리 분포된 원추리 두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나리꽃의 종류는 그리 길지 않은 잎이 줄기에 차례대로 나거나 줄기를 동그랗게 돌아 달리는 반면,원추리꽃 종류는 난초잎처럼 길게 뻗은 잎새가 아래쪽에서 서로 얼싸안고 있다가 위로 가면서 부챗살처럼 시원스럽게 퍼지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우리 땅에 수많은 식물들이 제나름대로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지만,오랜 역사를 두고 원추리만큼 우리곁의 가까이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도 흔치 않다. 
 
원추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여름이 시작되면 산골의 낮은지역에서 먼저 피기 시작하는데,꽃대가 잎새 사이로 높이 올라와 어른 허리까지 올라오는 큰 것부터 50㎝에 이르는 다양한 품종이 있다.2㎝ 너비의 잎은 서로 편을 갈라놓은 듯이 양옆으로 나뉘어지지만 밑둥에서 하나씩 서로 포개져 단단히 뭉쳐있다.꽃대는 가지가 갈라져 위로 올라가며,꽃한송이씩 피우는데 봉긋한 봉우리를 벌려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꽃한송이의 수명은 하루동안 피었다 지는 꽃이라고 한다.꽃대가 자라면서 위쪽으로 계속 피기 때문에 여름날 아주 오랫동안 원추리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다.원추리는 주홍빛을 띤 백두산 등지에 피는 것과 남해바다 홍도에서만 자생하는 등황색이 있는 반면,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노란색의 각시원추리와 잎에 골이진 꽃잎원추리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원추리 자생지로 이름난 지리산의 노고단은 공기가 맑고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그곳에 100년이 넘은 외국인 별장의 잔해가 남아 있는데 그것들은 외국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풍토병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아지자 병균이 없는 노고단을 택하여 생활하던 곳으로 판명됐다.그곳에 기거하던 외국인들은 원추리가 피는 여름풍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글로 적어 남긴 일기장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덕유산의 원추리 군락지는 결코 노고단의 그것에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산자락을 노랗게 물들인 원추리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오는 8월 17일,백두대간 6구간 끊어타기를 할 때 아마 덕유산의 덕유평전에서 원추리 군락을 감상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사진에 보이는 원추리를 접사촬영하였다.자세히 보면 두 마리의 벌이 분주하게 꽃가루를 나르고 있는 성스럽고 엄숙한 순간이었다.
 

[비비추] 
 
비비추는 검소하면서도 애교있는 꽃으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비비추 꽃의 색깔은 자라는 곳에 따라 백색에서 보라색 등 변화가 많고,그 중에서도 백색이 가장 돋보이는 꽃이다.은근하게 풍기는 향기도 그윽하거니와 점잖으면서도 애교가 넘치는 꽃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그리고 연두색의 빛을 띄는 잎 또한 꽃처럼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인의 파란 심상을 자아내는 듯한 비비추는 백합과에 속하는 식물이고,6월에서 7월 사이에 연한 자주색으로 꽃을 피우는 비비추는 다소곳이 있는 모습이 청초하고 단아하다.잎은 심장 모양 또는 넓은 달걀모양으로 모두 뿌리에서 돋아 비스듬이 퍼지며,어린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비비추와 유사한 중국원산의 귀화종인 옥잠화는 꽃이 백색이며,잎줄기가 길다.비비추는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달린다.비비추는 다년생으로 옥잠화와 함께 공원녹지대 등에 조경용 지피식물(地皮植物)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
 
880봉에서 광대치로 가는 대간 길에 비비추 군락지를 발견하였다.짙푸른 고비와 비비추가 한데 어울려 장관을 연출하고 있고 바람결에 비비추가 한쪽 방향으로 흔들리는 듯하다.실제로 비비추의 꽃대는 태양을 향해 비트는 듯하다 해서 비비추란 꽃명을 얻었다 한다.
 

[비비추군락]

봉화산 건너 봉우리인 780봉을 지나면서 남원시와 헤어진 대간의 분수령은 왼편은 장수군 번암면,오른편은 함양군 백전면으로 갈라지게 된다.일행은 944봉 못 미쳐 전망하기 좋은 암장에서 다리쉼을 하고 10시 광대치로 걸음을 옮겼다.944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길,자못 미끄럽고 조심스러웠다.고만고만한 봉우리 세 개를 넘어서자 월경산과 그 아래 잘룩이인 광대치가 눈에 들어왔다. 광대치로 오는 대간 길에는 원추리가 보이고 비비추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었다. 
 
10시 46분 광대치(950m)에 다다르자 리번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광대치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에도 리번이 많이 붙어 있어 대간 탈출로로 이용된 듯했다.이 하산길로 내려서면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로 빠지게 된다.그러나 광대치 오른쪽 하산길은 장수군 지지리 광대동으로 이어지나 길이 희미하여 대간 탈출로로 이용되지 않는 듯하다.광대치를 지나 월경산으로 오르는 산등에 올라붙자 선두의 재화,황세,의선이가 그곳에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가량 기다리자 익수,기환,금구 그리고 현기가 올라왔다.사진은 월경산 지능으로 오르는 익수와 기환이의 모습이다.일행이 다리쉼을 한 이 월경산의 지능 산비알에도 아름다운 비비추가 피어 있어 산행으로 지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다.이곳에서 11시 2분 월경산을 행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했다.
 


광대치(890m)에서 월경산 지능에 올라선 뒤,후미를 기다려 숨을 고르고,11시 2분,월경산으로 오른다.그러나 대간은 월경산 정상을 오르지 않고 월경산 왼편 지능을 에돌아 중재로 내려선다.11시 27분,월경산 능선 분기점(940m)에 다다라 왼편(북쪽) 능선을 따라 중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중재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 산사태지역을 지난다.이곳에서 잠시 다리품을 팔아 12시 정각 중재(650m)에 다다랐다. 
 

중재에서 점심을 들기 위해서는 식수가 필요했다.우리가 준비한 물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는 중재 오른쪽 농로를 따라 100미터쯤 내려가서 식수를 확인했다.다시 고갯마루로 올라와 이번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린 왼쪽 농로를 따라 또다시 100미터 가량 내려서자 철거된 옛마을터인 중재 마을이 나왔다.그러나 식수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의선이와 황세가 오른쪽 농로를 따라 내려가서 물을 떠 왔다.그러는 사이 후미가 중재에 합류했다. 
 
12시 20분,우리는 라면을 끓여 점심을 들었다.땅이 질퍽거려 앉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으나 돗자리를 펴고 그럭저럭 점심을 때웠다.점심을 들고 있는데 백두대간 종주팀이 월경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1구간 종주 때 지리산 화개재에서 만났던 울산의 안내산악회 에델바이스 종주팀이었다.그들은 매요리에서 종주를 시작해 오늘 구간을 중재에서 마친다고 했다.선두와 후미가 거의 40분 가량 차이가 났다.우리는 서로 격려의 말을 건네며 대간완주를 기원했다.오후 1시 13분, 중재를 출발하기에 앞서 중재 이정표를 가운데 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재(650m)에서 점심을 들고 오후 1시 13분,오늘 구간 가운데 가장 힘이 든다는 백운산 구간을 향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아름드리 정자나무를 지나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는데 다북솔이 우거져 걸음이 무디어진다.그런데다 점심을 들고 곧장 발품을 팔기 때문에 속이 불편하고 숨이 가쁘다.8분 가량 능선을 더터 695봉에 올라섰다. 
 

소나무가 우거진 이 봉우리에서부터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대간은 중고개재까지 거의 북진하게 된다.중재에서 30분쯤 발품을 팔아 755.3봉에 다다랐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야 중고개재로 내려선다.오던 그대로 직진하면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계곡으로 빠진다.755.3봉을 내려서자 바로 중고개재(740m)다.1시 45분,중고개재에 먼저 온 재화,황세,의선이가 후미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3분 뒤,중고개재에서 후미 일행이 합류했다.
 

[중고개재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중고개재(740m)에서 백운산 정상(1,278.5m)까지는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가풀막진 오르막 길.표고 540미터를 1시간 40분쯤 발품을 팔아야 한다.그러나 등산로는 유순한 흙길에다 직등하지 않고 비스듬히 오르기 때문에 생각만큼 어려운 구간은 아니었다.다만 체력이 저하된 오후이기 때문에 걸음은 지체되기 마련이었다.해발 1000미터 지점에 이르자 전망바위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암릉을 돌아 오르자 50대 중반의 등산객 두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중재 마을에 차를 두고 백운산에 올랐다가 하산하고 있었다.함양에 산다는 이들은 부부 함께 산행을 즐기며 백운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그리고 동년배로서 우리의 백두대간 완주를 기원해주었다.
 
재화가 함양에서 권할 만한 음식점을 묻자,함양과 인월 사이에 있다는 "청학산"을 추천한다.죽염으로 유명한 인산가(仁山家)의 며느리가 직영한다는 이 음식점은 죽염을 써서 고기를 조리하기 때문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우리도 구미가 당겨 산행을 마치고 한 번 방문해볼 요량이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쉬임없이 백운산으로 올랐다.숲 사이로 가끔씩 백운산 정상이 눈에 들어왔으나 이름 그대로 구름에 가려 정수리는 보이지 않았다.무덤 2기와 헬기장을 지나 3시 14분,백운산 정수리에올라섰다.선두가 정상에 오르고나서도 20여분이 지나 후미가 올라왔다.3시 43분,백운산 정수리에 오른 회원들이 표지판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잡았다.
 

 

 

산 이름치고 '백운산'과 '매봉'만큼 흔한 산명도 없을 것이다.먼저 백운(白雲)을 선호하여 쓰는 것은 흰구름이 지니는 그 때묻지 않은 청정감,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함,그것이 바로 한국인이 산에다가 그리는 정감의 표상인지도 모른다.더구나 흰구름이 머무는 산 정수리에는 으례 또 백운대라는 이름의 전망이 좋은 반석이 놓인다. 
 
그러나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진 그 많은 산들은 대개는 인접하는 더 큰 산덩치에 묻혀 있는 가운데,독립산으로는 광양의 백운산과 함양의 이 산뿐이다.같은 백운산이란 이름일지라도,높이로야 정선 고한의 1,426m봉에 댈까만은,그 산은 함백산의 서쪽가지에 붙어 앉았다.그러고 보면,지리산 남북에 솟는 두 개 백운산 중 남쪽 광양의 백운산(1,217.8m)과 북쪽 함양의 이 백운산(1,278.6m)만이 독립산이랄 수 있겠는데,그 중에서도 여기 북쪽 백운산이 60여미터가 높다.덩달아,절 이름으로도 가장 흔한 것은 백운사요 백운암이다.
 
함양의 백운산은 한반도의 오장육부라 할 "덕유산"과,"산경표"가 한반도의 등뼈로 이름한 백두대간을 마무리하는 지리산의 어간에 우뚝 솟아나 작게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크게는 한반도를 동서로 나누는 큰 산줄기 한가운데 군림하고 앉았기 때문이다.  
 
이 산의 앉음새는 우선 그 물줄기로써 헤아려볼 수 있다.정상과 하봉(1,157m) 어간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송계천이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남계천과 합류하여 남강이 되는 한편,서쪽의 백운천은 요천이 되어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남쪽 비알을 훑어내리는 큰골,미끼골,훗골 세 줄기 시내는 모두 위천이 되어 함양,거창을 적신 끝에 낙동강으로 흡수된다.
 
따라서 이 산의 얼굴은 함양군 백전면을 내다보는 그 남쪽사면이 된다.그런 까닭에 등산로도 대개는 이곳으로 열려 있다.중재에서 우리가 톺아오른 대간 길은 물론,함양 백전면 상연대,묵계암으로 하산하는 최단 코스,동쪽 서래봉을 거쳐 원통재로 하산하는 코스,큰골을 거쳐 백운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산객들은 선호한다.
 

 

3시 43분,백운산(1,278.5m) 정수리에서 오늘 구간의 하산지점인 영취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대간 길은 정상 팻말이 선 곳에서 왼쪽으로 90도 꺾인다.무성한 산죽밭을 지난다.대간 길은 오르내림이 많지 않은 탓에 부드러우면서도 완만하다.4시 11분,1,156봉에 다다라 백운산을 뒤돌아본다.백운산 정수리는 여전히 구름에 쌓여 신비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녹색의 신록에서는 푸른 물이 뚝뚝 듣고 그 위로 연초록 바람이 일렁인다.

 

                 

4시 11분,1,156봉에서 백운산을 조망하고 속력을 낸다.그런데 백운산 정상에서 선두에 선 의선이는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엄청난 속보로 바람처럼 걸어간다.재화와 내가 뒤따라 가지만 혀들 내두를 정도다.속보로 치자면 황세를 당할 사람이 없는데,황세는 백운산 하산길에 접어들자 무릎 관절이 아프다며 사나브로 뒤처진다.황세는 그 답지 않게 오늘은 다리를 질질 끌며 내려온다. 오르막길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내리막길에는 몸의 하중 때문에 통증이 심하다는 것이다.
 
4시 45분 영취산 바로 밑 선바위고개(1,040m)에 다다랐다.의선이는 홀로 영취산으로 올라가고 재화와 나는 선바위고개에 배낭을 내려놓고 후미를 기다렸다. 잠시 뒤,황세가 도착했다. 
 
선바위고개 이정표에는 영취산 0.4km,무령고개 0.7km,백운산 3.2km라고 적혀 있었다.아침에 기묵 후배와 하산지점인 무령고개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영취산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것 같았다.그래서 영취산 정상으로 오르는 의선이한테 기묵이를 데리고 선바위로 내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의선이는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한다.황세가 후미를 기다리기로 하고,재화와 나는 영취산(1,075.6m) 왼쪽 산허리길을 따라 무령고개로 탈출했다. 
 
무령고개 하산길은 유순했다.영취산 정상에서 서쪽 산등을 따라 도상거리로 0.35km쯤 떨어져 있는 무령고개로 가려면 선바위고개에서 영취산 왼쪽 허릿길을 따르다 계곡을 건너야 한다.4시 45분 무령고개(930m)에 다다르니 기묵이의 봉고가 보이고 왼쪽 절개지 위를 의선이 혼자 걸어내려오고 있었다.그렇다면 아침에 기묵이가 영취산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은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무령고개는 장수군 장계면 쪽은 포장이 되어 있었으나 장수군 번암면 쪽은 여전히 비포장이었다.5시 5분,황세와 익수와 기환이,금구와 현기 무령고개(930m)에 도착했다.백두대간 제4구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사진은 후미대장인 현기가 봉고로 걸어가는 모습을 기묵이가 찍었다.
 

[영취산 아래 무령고개에서 종주를 마치고]
 
무령고개(930m)-영취산에서 서쪽으로 350미터 떨어진 고개로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로 넘는 고개다.이번 구간의 하산지점을 무령고개에서 끊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무령고개는 금남호남정맥에 속한다. 
 
영취산(1,075.6m)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은 무령고개와 장수 장안산(長安山 1,237m)을 거쳐 장수 팔공산(八公山 1,151m)을 지나 진안 주화산(雲長山)에서 다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래친다.여기서 남쪽으로 내닫는 호남정맥은 내장,추월,무등,사자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에서 기세를 다하고,북으로 나우리치는 금남정맥은 대둔,계룡산을 거쳐 부여 부소산에서 그 맥을 다한다.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 정맥은 다시 수많은 지맥(支脈)을 가지치며 금강,섬진강,영산강,동진강,만경강,탐진강 같은 강줄기를 일궈내 호남과 충청지역 사람들의 젖줄 노릇을 하고 있다.무령고개에서 제4구간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봉고에 오르자마자 종주 내내 잠잠하던 빗줄기가 마침내 쏟아지기 시작했다.장마철에 비를 맞지 않는 것만 해도 이게 어디냐며 우리는 감지덕지했다.기묵 아우의 봉고는 장계 방면으로 내려간다.흡사 호수처럼 드넓고 잔잔한 대곡저수지를 지나칠 무렵 차창 밖으로 논개 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장수삼절(長水三絶)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히는 논개 생가를 순례하는 대절버스들이 보였다.우리는 장계 시내로 들어가 '면 단위 목욕탕 가운데 제일(?)'이라는 기묵이의 말대로,그가 물색한 목욕탕에서 산행으로 찌든 때를 �었다.면소재지 목욕탕치고는 시설도 그렇고 물도 좋아 썩 마음에 들었다.우리는 다음 구간 일정을 염두에 두고,함양의 명소라는 "청학산" 은 다음으로 미루고 장계에서 저녁을 들기로 마음을 굳혔다.목욕탕 이발사의 소개로 장계를 가로지르는 장계천 변에 있는 조그마한 대중식당으로 들어갔다. 
 
백금녀와 흡사한 주인 아지매한테 "땡칠이탕이 되느냐.?"고 묻자 25년간 만들어왔는데 괜한 걱정일랑 붙들어 매란다.일행은 먼저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그런데 수육이 나오자 미식가인 의선이와 재화,익수의 입가에선 환한 웃음이 묻어나온다.정말 그랬다.수욕을 삶는 방식이나 양념은 경상도식과 사뭇 달랐지만 고기맛은 끝내주었다.정말 뜻하지 않는 곳에서 뜻밖의 땡칠이를 먹는 행운을 누렸다.이쯤 되자 오는 8월 3일,5구간 아침 식사는 바로 이 "대중식당"에서 하기로 아예 작정해버렸다.몸집만큼이나 후덕한 아지매는 하루 전에만 전화를 주면,새벽 5시일지라도 식사는 물론,점심 주먹밥까지 준비하겠노라며 우리의 궁금증을 말끔히 털어냈다.장대비가 쏟아져 불어난 장계천의 물살을 내다보며,천변 대중식당에서 우리는 멋들어진 뒷풀이로 백두 4구간 끊어타기를 마무리했다. 
 
 
[종주정보]
 
07:10 복성이재(540)...3.5km...08:50 봉화산(919.8)...4.3km...10:46 광대치(950)...2.7km...12:20-13:13 중재(650)...3.7km...15:14-15:45 백운산(1,270.5)...3.2km...16:15 선바위고개(1,040)...0.7km...17:05 무령고개(930)
 
도상거리/종주시간    :17.4km/9시간 40분
탈출거리/산행시간    :0.7km/15분(선바위고개-무령고개)
총산행거리/총산행시간:18.1km/9시간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