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4구간 <복성이재-선바위고개>
[700봉에서 내려다본 복성이재]
복성이재-봉화산-광대치-중재-백운산-선바위고개 17.4km(2003.7.20)
어둠이 짙게 드리운 새벽 3시 45분,한양프라자 앞-전기환 동기가 벤치를 홀로 지키고 있다.오기묵 후배의 봉고도 다른 회원들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조금 있으니 최금구 동기가 나타났고,이어서 이재화 총무,김익수와 손의선이가 합류했으며 김황세를 태운 기묵이의 봉고가 도착했다.새벽 4시 5분,4구간 종주팀이 한양프라자를 떠난다.서마산인터체인지에서 김현기 후미대장을 태우니 종주팀은 모두 8명.
어제까지 줄기차게 퍼붓던 장마비는 오늘도 그 기세가 수그려들지 않을 전망이다.함양과 장수 지역은 오전에 비 올 확률은 40%,오후에는 한두 차례 비를 뿌리며 강수량은 5~20mm에 이를 거라는 예보였다.그렇다면 어차피 빗속 산행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대진고속도로의 산청휴게소에 잠시 내려 국밥을 들고,함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함양 시내로 들어섰다.
하늘은 잔뜩 흐렸으나 비가 올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최치원이 홍수를 잠재우기 위해 심었다는 함양의 명물,상림(上林)을 끼고 봉고는 1084번 도로를 따른다.위천교에 이르러 봉고는 37번 도로로 스며들어 백전면사무소를 지나 운산리까지 올라갔다.백운산 등산로안내판을 발견한 우리는 흠칫 놀라 위천교로 되돌아와야 했다.위천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84번 도로를 따라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로 들어섰다.
흥부가의 발상지로 알려진 복성이재 동쪽 성리마을 어귀에는 흥부가 박을 타는 모습의 조각상이 보였다.그리고 곳곳에 흥부마을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즐비했다.
아침 7시,복성이재 고갯마루(540m)에 올라섰다.다들 반바지를 입고 최대한 배낭무게를 줄이며 산행채비를 차렸다.기묵 아우의 사진 촬영을 끝으로 7시 10분,제4구간 종주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구간 하산 때만 해도 복성이재 서쪽(번암면 논곡리)은 비포장길이었는데 2주가 지난 오늘은 말끔히 포장공사가 끝나 있었다.복성이재에서 700봉오름길에는 온통 매캐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대간 마루금을 따르는 철조망 왼편 산비알이 목장 초지이어서 가축의 배설물에서 풍겨나오는 고약한 냄새는 역겹기 짝이 없었다.
7시 30분,700봉우리에 올라섰다.이 봉우리에서 복성이재를 굽어본다.대간마루금 오른편 산비알에는 초지가 조성돼 있고 고갯마루를 에돌아 막 포장공사를 끝낸 도로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쪽으로 열려 있다.
[목장초지와 복성이재]
[700봉에서 뒤돌아본 대간마루금]
남원은 춘향전과 흥부전 설화의 근원지이면서 판소리의 전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흥부가의'제비노정기'와'박타령'에 나오는 지명을 근거로 하여 1992년 조사연구에서 흥부전은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설화를 판소리로 구성한 것으로 무대의 배경은 경남 남원군 인월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중심이라 한다.
복성이재에서 700봉에 올라 우리가 밟아야 할 대간 마루금을 조망한다.저멀리 산정상 부근에 초지가 형성된 산이 봉화산이다.700봉에서 치재(660m)로 내려서면서부터 가시덤불을 뚫고 헤쳐나가야 했다.비는 오지 않았지만 딸기나무며 싸리나무,또는 철쭉 가지를 요리조리 피하며 낮은 포복을 하듯 나아가다보니 반바지는 흠씬 물에 젖어버렸고 종아리를 타고 내리는 이술방울은 신발 속으로 마냥 스며들기 시작했다.얼마 가지 않아 빗속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웃도리와 반바지는 물에 젖어버렸다.어디 그뿐인가.가시덤불을 밀치며 진행하다보니 반소매를 입은 팔뚝은 회를 친듯 상채기를 내 따끔거렸다.
9시 10분까지 봉화산 정상에서 머물렀다.시계가 좋았다면 백운산을 비롯 인근의 멋진 산들을 조망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그 대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대간의 마루금을 바라본다.봉화산 앞봉에서 봉화산,그리고 870봉(함양군 백전면,남원시 아영면,장수군 번암면 경계봉)에 이르는 초지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지나는 길손의 마음을 황홀하게 해주었다.꽃창포,파랭이꽃,솔나물,말나리,원추리,꿀풀,금마타리,....듣기만 해도 금세 환한 웃음이 피어나는 졍겨운 꽃이름들이다. 이번 4구간 끊어타기는 야생화를 만끽한 아름다운 산행이었다.사진 한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870봉이다.
[봉화산 정상에서]
8시 55분,봉화산 정수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남원군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에 걸쳐 있는 봉화산(919.8m)은 철쭉으로 이름난 산이다.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인근의 바래봉 철쭉의 유명세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이 지역 산악인들의 홍보로 점차 알려졌다.5월 말에 열리는 봉화산 철쭉제는 이름도 정겨운 남원 흥부산악회가 주최하고 남원시에서 후원하는데,자연생태 사진대회 및 등반대회,그리고 어린이 글짓기대회 등 여러 행사가 펼쳐진다.
[꽃창포(붓꽃)]
봉화산 일대는 꽃창포(붓꽃)가 무리지어 있었다.프랑스의 국화인 꽃창포에는 이런 일화가 얽혀 전해내려온다.클로비스 왕은 어느 날 신기한 꿈을 꾸었다.마흔 살이 넘도록,한 번도 보지 못한 천사가 꿈에 나타나 방패 하나를 주며,왕비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천사가 주고 간 방패에는 꽃창포 세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왕은 천사가 주고 간 방패처럼 전국의 기사에게 방패의 문양을 꽃창포로 바꾸어 넣으라고 명령하였다.지금까지 방패의 문양은 개구리였다.
그런지 얼마 뒤에,외국의 군대가 프랑스에 쳐들어왔다.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온 적군이 그만큼 유리했다.그러나 프랑스 군대는 적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워 프랑스 영토를 한 발도 밟지 못하고 물러갔다.왕은 이것이 천사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천사가 방패를 갖다 주었기 때문에 프랑스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외국의 군대가 또 프랑스를 쳐들어왔다.한 번 실패를 하고 돌아간 적군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수천 마리의 말과 수백만의 군대가 프랑스 영토로 쳐들어왔다.왕은 국경선을 지키는 장군을 불렀다.허연 수염을 기른 장군이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장군,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빨리 국경으로 가시오.짐도 곧 그리로 나가겠소." 프랑스는 다시 전투 태세로 들어갔다.왕은 프랑스 국민과 군사들에게 더 이상 전선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양쪽 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이 기회다.총반격이다." 백마를 탄 왕은 몸소 전쟁터로 나아가 총지휘를 하였다.꽃창포가 그려진 방패를 든 왕은 동과 서로 뛰면서 적군의 기세를 막았다.왕의 모습을 본 군사들은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적을 삽시간에 쳐부수었다.총사령관의 목이 떨어지고 수십만의 포로를 사로잡은 프랑스군은 완전히 적군을 물리쳤다.물론,그 나라 땅까지 점령한 프랑스는 대제국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오자,왕은 왕비에게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다.왕은 방패의 문양을 개구리에서 꽃창포로 바꾼 뒤로 두 번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꽃창포를 국화로 삼고자 했다.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지켜 준 꽃창포를 당연히 국화로 정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이때부터 꽃창포는 프랑스 국화가 되었다고 한다.
꽃창포의 꽃말은 심부름,소식이다.꽃창포가 이 세상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하늘의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땅 위에 심부름을 왔다가 구름의 장난으로 무지개가 걷히자,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꽃창포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다.꽃창포는 또한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좋아하던 꽃 중의 하나로, 베토벤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갈 때는 꼭 꽃창포를 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강릉을 비롯,전국에서 단오와 관련된 행사가 여럿 치러진다.이들 행사에는 으레 창포물(菖蒲湯)에 머리를 감는 행사가 끼어 있다.옛날부터 단오날 창포를 삶은 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창포의 뿌리줄기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꼽으면,병마를 물리친다는 풍습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1998년까지 특정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한 창포는 천남성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습지,못,도랑,강가에 드물게 자란다.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뻗으며 마디가 많다.전체에서 향기가 난다.잎은 길이 50-80cm,폭 0.5-1.5cm이며 중륵이 있다.꽃은 6-7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육수꽃차례에 피며,꽃차례는 길이 5-10cm다.꽃의 불염포는 꽃차례를 감싸지 않으며,잎처럼 생겼고 길이 30-40cm다.
두 식물은 사는 곳도 다른데,창포는 연못이나 강가 등 습지에 자라고,꽃창포는 습기가 조금 있는 초원이나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꽃창포'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과 들에 자란다.꽃대를 포함한 줄기의 높이는 40-120cm이며,잎은 길이 30-60cm,폭 0.5-1.5cm다.꽃은 6-7월에 적자색으로 피며 지름 10cm쯤이다.동아시아 특산식물이다.'붓꽃'은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란다.꽃대를 포함한 줄기의 높이는 60cm쯤이며,잎은 길이 30-50cm다.꽃은 5-6월에 피며 자주색이고 지름 8cm쯤이다.
원 추 리
톡 톡/두드려 보았다./숲 속에서/자라난 꽃 대가리.
맑은 아침/오래도 마셨으리.
비단 자락 밑에/살 냄새야,
톡 톡/두드리면/먼 상고까장 울린다
춤 추던 사람이여/토장국 냄새.
이슬 먹은 세월이여/보리 타작 소리.
톡 톡/두드려 보았다.
삼한ᄉ적/맑은 대가리.
산 가시내/사랑,다 보았으리.
신동엽
솔나물은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식물로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잎과 줄기는 높이 70~100㎝로 곧추 자라면서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잎은 길이 2~3㎝로 선형이고 8~10개가 윤생하는데 잎 뒷면과 줄기의 마디에 털이 있다.개화기는 6·8월로 황색의 꽃이 엽액과 원줄기 끝에 원추화서로 달린다.열매는 2개씩 달리고 겉에 털이 없다.솔나물 꽃에서 강한 향기가 나는 방향성 식물이다.희랍 옛이름 galion은 gala(乳)에서 유래된 말로서 치즈를 만들 때 젖을 엉키게 하기 위해 솔나물을 이용하였는데 속명 galium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햇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 또는 묘지 주변에 주로 생육하는데 다른 잡초들과 섞여서 자란다.
[솔나물]
[870봉에서 봉화산을 등지고]
[페랭이꽃]
봉화산 건너 봉우리인 780봉을 지나면서 남원시와 헤어진 대간의 분수령은 왼편은 장수군 번암면,오른편은 함양군 백전면으로 갈라지게 된다.일행은 944봉 못 미쳐 전망하기 좋은 암장에서 다리쉼을 하고 10시 광대치로 걸음을 옮겼다.944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길,자못 미끄럽고 조심스러웠다.고만고만한 봉우리 세 개를 넘어서자 월경산과 그 아래 잘룩이인 광대치가 눈에 들어왔다. 광대치로 오는 대간 길에는 원추리가 보이고 비비추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었다.
광대치(890m)에서 월경산 지능에 올라선 뒤,후미를 기다려 숨을 고르고,11시 2분,월경산으로 오른다.그러나 대간은 월경산 정상을 오르지 않고 월경산 왼편 지능을 에돌아 중재로 내려선다.11시 27분,월경산 능선 분기점(940m)에 다다라 왼편(북쪽) 능선을 따라 중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중재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 산사태지역을 지난다.이곳에서 잠시 다리품을 팔아 12시 정각 중재(650m)에 다다랐다.
중재(650m)에서 점심을 들고 오후 1시 13분,오늘 구간 가운데 가장 힘이 든다는 백운산 구간을 향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아름드리 정자나무를 지나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는데 다북솔이 우거져 걸음이 무디어진다.그런데다 점심을 들고 곧장 발품을 팔기 때문에 속이 불편하고 숨이 가쁘다.8분 가량 능선을 더터 695봉에 올라섰다.
3시 43분,백운산(1,278.5m) 정수리에서 오늘 구간의 하산지점인 영취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대간 길은 정상 팻말이 선 곳에서 왼쪽으로 90도 꺾인다.무성한 산죽밭을 지난다.대간 길은 오르내림이 많지 않은 탓에 부드러우면서도 완만하다.4시 11분,1,156봉에 다다라 백운산을 뒤돌아본다.백운산 정수리는 여전히 구름에 쌓여 신비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녹색의 신록에서는 푸른 물이 뚝뚝 듣고 그 위로 연초록 바람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