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백두대간-31구간<삽당령-대관령>(하)
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12.23km(2005년 7월 31일)
닭목재를 떠나기에 앞서 성황당 옆에 세워진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에서 대관령까지 산행정보를 신 대장과 이재화 총무가 살펴보고 있다.
예전에는 닭목재를 끼고 있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일원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였지만,고랭지 재배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사방으로 아스팔트길이 열리고 지금은 적설기를 제외하고는 승용차들도 무리가 없게 됐다.닭목재 고개마루에는 "전국최고 감자채종포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반겨주고 "마지막으로 남은 청정고랭지 채소마을"이라는 간판도 이곳의 특성을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닭목재의 산행안내판]
오후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닭목재 이정표를 중심으로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닭목재에서 대관령까지 남은 거리는 12.23km이다.
10시 2분,닭목재 산행안내판을 뒤로 하고 임도를 따라 오르니 밭이 나온다.왼쪽으로 꺾어 숲으로 들어가니 금세 임도와 만났다.대간마루는 772봉 능선을 따르지만 길이 없다.그래서 왼쪽 산허리로 열린 임도를 따라 가야 한다.
10시 24분,노루목 부근에 다다랐을 때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피덕령 주변의 고랭지채소밭을 조망한다.대관령 일원은 소위 고위평탄면이라는 특이한 지역으로 유명하다.이는 산지의 정상 부근에 나타나는 비교적 평탄한 지역으로 대관령이 대표적이다.이 지역은 여름의 서늘한 기후 조건을 이용하여 감자,채소,약초 따위를 재배하는 고랭지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루목 근처에서 바라본 피덕령 고랭지채소밭]
772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은 그 생김새가 잘숙하여 노루목과 흡사하다.이 노루목에서 선두의 재화와 나는 후미가 합류하길 기다리면서 10분간 다리쉼을 했다.
10시 38분 맹덕한우목장을 알리는 첫문을 돌아드니 오른쪽 저 아래로 막사 건물과 산비탈 따라 목장 초지가 눈에 들어온다.그러나 소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는지 거의 폐목장이 된 듯 을씨년스럽다.대간은 목장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오른다.사진은 맹덕 한우목장 들머리에서 목장 초지를 바라본 모습이다.초지 바로 위 제일 높은 봉우리가 955.8봉이며 왼쪽 초지와 숲이 만나는 가장자리가 대간 길이다.
[맹덕 한우목장 들머리에서 바라본 대간마루]
[맹덕 한우목장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는 종주팀]
맹덕 한우목장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955.8봉 오름길은 꽤나 가팔랐다.10분가량 된비알을 치올라 드디어 정상과 초지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 뒤돌아본 화란봉의 모습이다.실루렛처럼 안개에 가린 화란봉이 장중하다.
[맹덕 한우목장 955.8봉 근처에 오른 종주팀]
맹덕 한우농장 초지를 밟아나가다 대간 길은 곧 숲속으로 스며든다.5분쯤 가자 목장 끝문이 나오고 진행방향 앞쪽으로 고루포기산 능선이 보인다.사진 앞쪽 오른편의 뾰족한 봉우리는 1,020봉이며,그 너머 잘룩이에 왕산제1쉼터가 있다.맨 뒤쪽에 보이는 봉우리는 고루포기산 동릉으로 1,224봉과 철탑이 있는 1,220봉이다.
그리고 고루포기산 동릉 앞을 막아선 봉우리는 1,224봉에서 뻗어내린 능선 위의 1,151봉이다.대간 길은 1,020봉을 넘고 왕산제1쉼터와 왕산제2쉼터를 거쳐 철탑이 있는 1,220봉에 오른 뒤,왼편(서)으로 꺾어 1,224봉과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맥을 댄다.
고루포기산을 조망하고 임도에서 숲속으로 들어가 왕산제1쉼터로 간다.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1,020봉에 올라섰다.1,020봉 잘룩이(980m)로 내려서면 금세 나타날 줄로 믿었던 왕산제1쉼터는 또다시 자그마한 1,003봉을 넘고서야 비로소 나타났다.11시 20분,벤치가 있는 왕산제1쉼터에 다다랐다.점심을 들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지만 우리는 이 쉼터에서 점심을 들기로 했다.고루포기산 오름길은 체력소모가 클 것 같아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11시 50분,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루포기산으로 떠난다.짙은 수림의 대간 길을 헤쳐 나간다.바위 암장 아래에서 만난 멋진 "비비추"군락이 눈길을 끌었다.태양을 향해 몸을 비튼다해서 그런 꽃명을 얻은 비비추는 백합과 에 속하는 식물이고,6월에서 7월 사이에 연한 자주색으로 꽃을 피운다.비비추는 다소곳이 있는 모습이 청초하고 단아하다.
잎은 심장 모양 또는 넓은 달걀모양으로 모두 뿌리에서 돋아 비스듬히 퍼지며,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비비추와 유사한 중국 원산의 귀화종인 옥잠화는 꽃이 백색이며,잎줄기가 길다.비비추는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달린다.
비비추는 다년생으로 옥잠화와 함께 공원녹지대 등에 조경용 지피식물(地皮植物)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아울러 이번 종주길에서 고루포기산 일대와 능경봉 일대에는 강릉시와 평창군에서 비비추를 비롯,옥잠화,산수국 따위의 야생화를 군데군데 심어 놓아 주목을 끌었다.
[태양을 향해 몸을 비튼다는 비비추]
비비추군락지를 지나자 12시 14분,거친 암장이 가로막는다.암장을 넘어서자 곧추선 된비알길.10분쯤 발품을 파니 왕산제2쉼터다.
그런데 이곳의 고도가 952m라니! 저 아래 왕산제1쉼터의 고도가 1,000미터인데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내 판단으로 이 쉼터의 고도는 1,080미터는 될 듯했다.평소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정표나 산행안내판에 나와 있는 ’거리’나 ’고도’는 잘못 투성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그걸 믿고 산행이나 종주를 해보면 시간계획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해당 시나 군에서 거리나 고도를 실측을 하고나서 이정표나 안내판을 세우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대충 얼버무린 수치이기 때문이다.그럴 바엔 아예 거리나 고도를 표시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아직까지 거리나 고도가 제대로 된 이정표나 안내판을 본 적은 내 기억으로는 전무하다.
지리산 종주 길의 잘못된 수치도 수십 년간 방치되다가 근래에 들어서 바로잡았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포항셀파산악회가 백두대간 전구간을 50미터 줄자를 써서 실측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왕산제2쉼터에서 13분가량 다리쉼을 하고 12시 39분,고루포기산 동릉을 향해 오른다.8분 뒤,35번 고압송전탑을 지나 12시 50분 1,220봉에 올라서서 대간 오른편 강릉시 왕산면 일원을 바라본다.
이 날은 날씨는 괜찮았지만 시계가 불량하여 원거리를 조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사진 한가운데 솟은 봉우리 왼쪽 골짜기는 큰골이고 사진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고루포기 산 북쪽 대간 상의 985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이다.이 능선 뒷쪽에 능경봉 능선이 희미하게 가늠된다.
[고루포기산 동릉,1,220봉에서 바라본 강릉시 왕산면 일원]
35번 철탑이 있는 1,220봉에서 1,224봉을 거쳐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는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은 아주 기분 나쁜 길이었다.고루포기산 정상 일대에는 비포장도로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주변이 마구 파헤처져 있었다.
고압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도로를 개설했기 때문이었다.심지어 비탈진 고압송전선 철탑 부지에는 쓰러진 고목과 절개지가 방치되어 있었다.고루포기산 일원은 수령 70년 이상 된 신갈나무와 금강소나무가 들어선 아름다운 숲이었다는데 한전의 고압송전탑 건설로 무참히 훼손되었다.지난 구간 자병산에 이어 고루포기산의 자연파괴를 또 다시 목격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고루포기산(1,283,3m) 정수리의 종주팀]
오후 1시 10분,고루포기산에 오르니 나무 한 그루 없는 정수리에는 땡볕이 작열하고 있었다.먼저 온 재화는 정상 아래 숲속에서 한참동안이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루포기산은 산 이름이 아주 특이하다.고로쇠나무가 많아 붙여진 산 이름이라고도 하나 설득력이 미흡하다.산악인이요,시인이었던 김장호씨는 ’고루포기’란 순수한 우리 말로써’머릿골’의 속어인’골패기’의 표준음이라고,’월간 산’에 기고한 ’명산행각’에서 밝힌 바 있다.
또 이향지 시인은 조강원(72) 박태원(72) 두 할아버지로부터 ’고루포기’란 고루포기산 아래 남쪽 기슭에 있는,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고루포기 마을 이름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했다고 한다.’고루포기 마을’이란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고루포기란 결국’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골짜기’라는 말에서’골패기 마을’, ’골패기산’이 ’고루포기산’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에서는 고루포기산을‘소은백이산’(所隱柏伊山)’이라하여,강릉 서쪽 65리에 있는,’옛말에 전하기를 신선이 살던 곳이다.옛날 사냥꾼이 짐승을 �다가 높은 봉우리에 올라 조망을 하니 골짜기 마을에는 노거수(老巨樹)와 초가집과 오솔길이 있고 시냇가에는 포목과 옷가지,빨래가 걸려 있었다.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하산하여 그 곳을 찾아갔으나 마침 구름과 이내가 계곡을 덮어 길을 잃고 끝내 그 곳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다.’소은백이산’, 즉 ’고루포기산’은 신선이나 살던 심심 산골 마을의 산이었음이 확연하다.
고루포기산에서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언저리에는 아직도 만인의 피란지지(避亂之地)라는 오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다고 한다.괴비데기(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안반데기(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장두데기(길고 긴 언덕),황정데기(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황철데기(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니,전란을 피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땅이라 한다.[고루포기산 지명유래-사람과 산 김부래기자]
[고루포기산 아래 39번 철탑 주위에서 만난 구릿대]
고루포기산을 경계로 대간 오른편은 여전히 강릉 땅이지만 대간 왼편은 평창 땅이 시작된다.고루포기산 정수리에서 사진을 찍고 서둘러 그늘진 숲속으로 내려와 다리쉼을 했다.오후 1시 23분,북서쪽으로 하산길에 들어 1분 뒤,39번 고압송전탑을 만났다.이 송전탑 부근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이 구릿대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39번 철탑 아래 왼쪽 산허리를 따라 예의 고압송전탑용 비포장도로가 이어지지만 대간은 능선마루금을 따라간다.4분 뒤,다시 그 비포장도로가 보이는 지점에 다다라 두 마리 나비와 벌들이 구릿대에 앉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시 35분 북진하던 대간이 북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1,174봉 전망대에 닿았다.황병산과 노인봉을 비롯한 대간 북서쪽을 전망하기에 좋다는 이곳은 시계가 흐려 조망은 별로였다.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엄청 큰 "꿩고비"군락을 만났다.
1,174봉,북서쪽 전망대를 내려와 고비군락을 만난 뒤에도 하산길은 완만했다.985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왼쪽(북)으로 꺾이고 250미터 가량 내려서니 1시 55분,횡계제1쉼터(900m)가 나오고 왼쪽으로 갈림길이 열려 있다.평창군 횡계리 왕산골로 빠지는 하산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발품을 파니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굉음이 오른쪽에서 들려온다.횡계에서 강릉으로 가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1터널을 오가는 차량들의 소음이었다.우리는 그 터널 바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2시 9분,횡계치(900m)에 닿으니 샘터 안내판이 나왔다.왼쪽 계곡으로 100미터 내려가면 샘터란다.이곳 안내판에는 능경봉까지 남은 거리는 2.8km라고 적혀 있다.
횡계치에서 9분가량 쉬고 2시 18분,후미에 오던 기환이를 선두로 내세워 능경봉(1,123.2m)으로 오른다.선두에 선 기환이는 재빠르게 걸음을 옮긴다.평소보다 빠른 보폭이었다.저러면 안 되는데....하는 한가닥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2시 33분,945봉을 지나면서 동진하던 대간은 서서히 왼쪽으로 꺾어 북진한다.대간 오른편 발치 아래로는 영동고속도로가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945봉을 떠나 750미터쯤 오르막을 오르자 북진하던 대간이 오른쪽(동)으로 말머리를 돌리는 930봉에 다다랐을 때 기세좋게 선두를 지키던 기환이가 슬슬 뒤쳐지기 시작하고 주력 좋은 재화가 휑하니 치고 나간다.
기환이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체력이 딸려서..."하며 꼬리를 내린다.이를 놓칠세라 입심 좋은 익수는 "그럼 그렇치.선두는 아무나 하나 치고 나갈 때 알아봤지.."하며 일침을 놓는다.사람 좋은 기환이는 "그래 맞아.오버하는게 아니더라구"하며 자신의 과욕을 실토한다.우리는 한바탕 유쾌하게 웃어제꼈다.
잠시 뒤,대간 길 가장자리에 산수국하며,비비추와 옥잠화 따위를 심어 놓은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3시,970봉에 다다라 가쁜 숨을 다스리며 갈증을 축였다. 그렇게 7분가량 쉬고 발품을 팔기 시작한다.금세 나타날 것 같은 능경봉은 보일 기미가 없다.익수는 "죽여주는구먼.."하며 어금니를 앙다문다.
3시 10분 행운의 돌탑을 지난다.이제 다 오른 것이겠거니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게 아니었다.그러고나서도 15분가량 발품을 팔고나서 능경봉 정수리에 설 수 있었다. 싱거운 소릴 잘 하는 익수는 지겨운 능경봉 오르기를 빗대어 "능경봉은 쉽게 안주는구먼..."하며 중얼거린다.
대관령, 혹은 강릉쪽에서 능경봉 정수리를 올려다보면 그 모양새가 어마어마하게 큰 왕릉이나 지리산 반야봉처럼 팽팽이 당겨서 파르르 떨리는 활시위 같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능정봉(凌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 했다는데....맑은 날에는 울릉도가 보인다 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능경봉 안내판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뚤레뚤레 가젯트-기환이의 멍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능경봉에서 종주날머리,대관령까지 도상거리는 약 3km.빠른 걸음이라면 30분이면 넉넉하리라.하산길은 부드럽고 순해 쏜살같이 내닫는다.881봉 헬기장을 지나 3시 43분,약수터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물을 받고 있었다.양해를 구하고 약수물을 들이키니 내장이 얼얼하리만큼 차겁다.머리수건을 찬물에 헹구고 얼굴을 �고 또 한 모금 마시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약수터에서 조금 내려와 숲을 벗어나니 앞이 훤히 열린다.’새버뎅이’이다.새버뎅이를 시멘트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 도로는 백두대간 서쪽의 도암천 물을 고루포기산, 능경봉, 제왕산 아래로 15.6킬로미터의 구멍을 뚫어 640여 미터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강동수력발전소(1991년 준공) 건설 때 만든 것으로,횡계에서 중웨이(제왕산·840.7m) 정상 동쪽 헬기장 아래 도암 수조작업장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자연을 거슬러 물길을 바꿔 놓아 예기치 못한 기현상이 일어나고,강릉의 남대천 물은 강릉시민의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한다.
맑은 날 울릉도가 보인다는 세버뎅이 도로 옆에는 비석과 물을 토하는 거북돌로 된 샘터가 있고 무더위를 피해 몰려든 인파로 제법 붐볐다.가물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샘,영천(靈泉)이 이곳인가 보다.
산불 감시초소와 제왕산, 대관령휴게소, 능경봉 방향을 알리는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시벤트도로를 건너 대관령으로 가다 능경봉을 뒤돌아보니,그 생김새가 기이하다.어마어마하게 큰 왕릉 같기도 하고,어린왕자에 나오는 모자 속의 보아뱀처럼 방금이라도 꿈틀거리며 튀쳐나올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새버뎅이 지나 대관령으로 가며 돌아본 능경봉]
이제 종주날머리 대관령이 지척이다.4시 주차장 동쪽 끝에서 영동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1975년에 세운 중공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무게 150여톤,높이 10미터의 탑만 덩그러니 서 있다.그 기념비로 오르는 108계단 왼쪽 길을 따라 영동고속도로 하행휴게소에 다다라 15,08km의 31구간 끊어타기를 마감했다.
[대관령 하행휴게소로 걸어오는 종주팀 뒤로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덩그러니 서 있다]
*다음 32구간 끊어타기는 대관령~진고개 구간(22.8km)이다.
[주]종주기에 표기된 산높이는 1/25,000 지형도에 따른 것으로 1/50,000 지형도의 그것과 차이가 날 수 있으며,지형도에 나타나지 않은 산봉우리의 고도는 등고선을 감안하여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