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응봉산 용소골(07/10/14)<3>

청산신남석 2007. 10. 22. 14:59

붉은 하늘벽을 지나 뒤돌아본 용소골(12:47:39)

 

암벽 오름길 타고 넘어 2용소로!

  

후미와 선두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진다.길은 외줄기.길 잃을 염려는 없다.앞서거니 뒤서거니 계곡을 내려간다.초행길인 회원들이야 암반을 타고 넘나드는 것이 어디 수월하겠는가! 그뿐인가.7시간이 넘게 발품을 팔아 피로가 쌓였으니 망정이지.그렇지만 눈길 가는 곳마다,발길 머무는 곳마다 용소골의 풍광은 육체의 난관을 잊어버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물줄기(12:47:47) 

 

계곡 왼쪽을 따르던 길은 다시 물을 건너 오른편으로 이어지며 한 구비 감아돈다.군데군데 널려있는 잔돌밭을 지나면서 급격하게 흐르던 물줄기는 다소곳해지며 숨을 죽인다.그런 길을 허위단심 내려오면 골짜기 좌우로 흘립한 암벽 위로 금강송이 멋진 자태를 드리운다.

 

골안을 막아서며 흘립한 벼랑,그 위의 금강송(12:50:50) 

 

물길을 따르던 산길은 바윗돌 사이로 열리고(12:50:56) 

 

산길은 잠시 물길과 헤어지면서 계단처럼 보이는 오른편 바윗돌 사이로 열려 있다.바윗돌을 요리조리 넘어서면 다시 물길이 앞을 가로막아서며 수수만년 흘렀던 물살에 암반은 닳고 닳아 몽돌처럼 두리뭉실하다.그 사이로 물살은 곤두박질치며 물소리를 울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두리뭉실한 형상의 암반(12:52:12) 

 

용소골 풍경을 벗삼아 물길을 걷는 33산우회 회원(12:52:35) 

 

이제 골안은 수더분해지면서 헤벌어진다.흰 바윗돌에 부딪히는 햇살에 눈이 부신다.그 속을 걸어내려오는 33산우회 회원들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골짜기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곡은 협소해지며 물길에 놓인 바위는 더 크고 우람하다.      

 

물살은 서서히 급해지며 빨라진다.(12:53:58)

 

골안은 솔아지며 바위는 우람하고(12:54:34) 

 

바위를 넘고 모래톱을 지나(12:55:33) 

 

바위 틈에 핀 야생화(12:56:33)

 

잠시 벗어났던 물길은 모습을 드러내고(12:57:00)

 

로프가 걸린 바위 벼랑길(12:57:50) 

 

물길 왼편으로 이어지던 산길은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서 사라져버리고 바위를 건너뛰어 넘으면 희미한 길이 나타나곤 했다.바윗돌 아래로 숨어버린 듯한 물길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모래톱이 나오면서 다시 살아난다.다시 모래톱을 지나 물을 건너 오른편 바위지대로 붙었다.이어서 협곡이 나오더니 산길은 왼편 바위 벼랑길로 이어진다. 

 

바위 벼랑길을 타는 회원들(12:57:56)

 

굳이 로프를 잡지 않아도 지날 수 있는 벼랑길을 빠져나오니 골안은 더 협소해지며 한 모롱이를 돌아서니 시야가 훤히 열리면서 밝은 빛이 가득하다.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바위와 암반이 펼쳐진다.물길 왼편을 따르던 산길은 물을 건너 오른편 바윗길로 이어져나간다.

 

이때 덕구온천에서 종주를 하지 않고 덕풍마을로 먼저와 용소골을 거꾸로 올라온 청마의 일행 3명 중 김홍명 회원과 마주쳤다.반가웠다.황선정 회장 일행은 저 아래에 있다고 한다.용소골을 혜쳐내려갈 산행능력은 충분했지만 엊저녁 술추렴이 지나쳤던지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B조를 택했다 한다.이들은 덕풍산장의 이희철 반장댁에 백숙을 시켜놓고 1용소와 2용소를 거쳐 우리를 찾아나선 셈이다.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즐결던 반(半)보기는 아닐지라도 얼마나 반가웠으랴.'반보기'란 우리네 세시풍속으로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하는데 길 중간에서 서로 만난다는 뜻이다.요즘에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지방의 친구나 연인들끼리,일테면 서울이나 부산에 사는 이들이 추풍령이나 금강유원지에서 만나 즐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나올까?(12:59:17)

 

빛나는 바위,암반이 문득 나타나...(13:00:14)

 

물을 건너 오른편 길로(13:01:27)

 

용소골을 거슬러 올라와 합류한 청마의 김홍명(우)(13:04:42) 

 

쉬어가기 좋은 너럭바위(13:04:56) 

 

탈출구가 없는 용소골-수량이 줄어 다행스럽다. (13:09:49) 

 

내가 용소골을 찾은 것은 오늘까지 모두 9번이다.한 번은 폭우가 내려 2용소까지만 올라왔고,또 한 번은 홀로 울진 소광리에서 용소골을 거쳐 내려가기도 했다.그 가운데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은 3용소에서 폭우를 만나 가까스로 응봉산을 넘어 덕구온천으로 내려섰을 때였다.이때 발가락이 아파 2용소에서 덕풍마을로 내려가기로 한 친구 부부가 무턱대고 우리를 찾으러 3용소까지 올라왔다.그런데 여기서 폭우를 만나는 바람에 다시 덕풍마을로 되내려간 아찔한 사건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털이 곤두선다.폭우가 내린지 2시간이 지나자 삽시간에 물이 불어나면서 낮은 곳은 무릎까지,깊은 곳은 가슴까지 물이 차 올랐다고 한다.그래서 혜엄을 치며 용소골을 내려왔고...나중에 구출하고나서 알았지만 2용소와 1용소를 거쳐 덕풍마을까지 내려가는데 무려 8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우리는 덕구온천에서 버스를 돌려 풍곡으로 두 차례나 들락거리고...이 일이 있은 뒤 그 친구는 끝내 산행과 결별하고 말았으니.용소골은 폭우시에는 실로 위험천만한 곳이다.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때론 광포한 곳으로 돌변하니 자연이란 늘 사람의 의지와 달리 매정한 법이다. 

 

바위 벼랑을 타고 넘어(13:11:19) 

 

황금빛 물결,빛나는 바위,쏟아지는 햇볕이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고.(13:13:45)

 

뒤돌아본 계곡 풍경(13:16:27) 

 

암반을 휘감고 살풀이춤을 추는 물길 저 아래 청마의 황선정 회장이 서성이고(13:18:36) 

 

흰바위에서 가까이 당겨본 황 회장 일행(13:18:44)

 

평평한 너럭바위에 배낭을 부리고 잠시 다리쉼을 한다.다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친구들은“이제 얼마나 남았느냐”며 갈 길을 묻는다.산에서 제일 어리석은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하산 지점이 얼마나 남았느냐.”는 물음일 것이다.


산에 들면 느긋하게 그리고 천천히 자연을 음미해야 한다.황급히 설치면 사고의 위험도 높고 또 산행의 참 맛도 놓치는 법이다.그러다가는 그저 앞사람의 뒤꿈치만 쳐다보고 온 셈이니 산에서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산행이란 제 발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목적지에 이르는 행위다.따라서 남이 속보를 내든 말든 제 스스로의 걸음과 보폭을 지켜나가야 한다.이 리듬이 깨지면 무리하게 되고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산행을 하다보면 이런 원리는 저절로 와 닿는다.산행에 가장 좋은 훈련은 바로 산행 그 자체란 말이 있다.그러므로 산행을 위한 산행이 아니라 산행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나는 산길의 완급(緩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그저 산 속에 있는 것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어쩌다 일정이 늦어지더라도 나는 우정 고맙게 생각한다.왜냐면 대자연의 품속에 그만큼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풀 한 포기,나무 한 그루,돌 하나,바람 한 올,한 줄기의 물 그리고 내 마음 한 자락-우리에겐 음미할 것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 몸도 이런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향(反響)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울림이요 떨림이다.메아리처럼 울리고 그 울림을 받는 것이리라.    

 

이런 생각에 잠기면서 계곡을 한 굽이 더 돌아 오른쪽 산길로 붙었다.오후 1시 18분,흰바위를 지나자 오른편으로 지계곡이 나타났다.지계곡 들머리에는 큼지막한 너덜겅이 펼쳐진다.큰터골 입구다.예전에 이 골짝 안에 수십 채의 민가가 있어 큰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지금은 덕풍 사람들이 응봉산에 송이나 약초를 따러 다니는 은밀한 길로 골 안에는 길 흔적이 거의 없다. 

 

송이나 약초를 캐러 덕풍사람들이 드나드는 은밀한 길-큰터골(13:18:55)

 

매의 형상을 한 매바위(13:19:34) 

 

큰터골 어름에서 매바위를 만났다.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매의 형상이 뚜렷했던 매바위는 폭우로 말미암아 형체가 희미해졌다.큰터골을 지나 너덜겅을 거쳐가자 골안은 협소해지면서 암반 위로 물살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물길은 몇 구비 더 돌아나가더니 암반 위에 숱한 담을 만들어놓아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점점 거칠어지는 골짜기를 따라(13:21:04)

 

검푸른 담을 내려다보며(13:22:48) 

 

눈길 가는 데마다 아름다운 풍광은 펼쳐지고(13:22:56) 

 

헤아릴 수 없는 소와 담은 나그네의 발길을 붙들어매고(13:24:25) 

 

물살은 암반을 유유히 흐르고(13:28:00

 

이끼 낀 너럭바위와 낙엽(13:28:07)

 

완만한 계곡길(13:28:11) 

 

암반지대를 빠져나오자 물가에 버들개지가 듬성듬성 서 있고 물길은 부드러워지면서 계곡은 다시 완만하다.너덜겅은 사라졌지만 물가에는 작은 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13:30:30 

 

모래톱과 투명한 물(13:31:49) 

 

물속에 산그림자 투영되고(13:33:02)

 

수석미가 아름다운 바위가 몰속에 솟아 있고(13:35:32) 

 

협곡 바위지대 들머리(13:38:04) 

 

큰터골 입구를 지나 20여분 발품을 팔자 깊은 담(潭)에 암벽지대가 나타나며 길이 끊긴다.암벽을 타지 않고 물 속을 걷는다면 허리춤까지 빠질 것을 각오해야 하리라.바위지대에는 안전을 위해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수량이 불어나면 옷을 적시지 않고 이곳을 오르기란 어려울 듯했다.

 

바위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회원들(13:42:30)

 

일행은 오른쪽 암반을 타고 내려가다 다시 물을 건너뛰었다.계곡은 점점 더 굽이를 하고 협곡으로 변해갔다.그렇지만 경사는 여전히 완만했다.우리는 널따란 암반에 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며 과일을 깎아먹었다.다들 말이 없었다.용소골의 빼어난 경치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용소골을 타고 내려오면서 진이 빠져서일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사실 이런 풍광 속에서 자연미에 취하다보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친구들에게 괜찮으냐고 일일이 확인한 뒤 2용소를 향해 무뎌진 걸음을 옮긴다.

 

용소골의 전형적인 암반지대(13:43:47)

 

로프가 출렁거려 발디딤과 균형을 요구하고(13:45:48)

 

한 구비 돌아서면 어김없이 소는 나타나고(13:46:03) 

 

13:47:30 

 

13:54:33 

 

이곳에도 산판길 흔적-레일이 보이네(14:02:33) 

 

14:04:45

 

바위지대 로프구간(14:04:50) 

 

오른쪽 지계곡인 작은터골이 가까워지자 시커먼 소가 기다린다.소를 돌아나가자 등산로는 암반을 가로질러 가파른 둔덕으로 기어오른다.나무줄기를 잡고 허우적거리며 올라서자 다시 암벽지대다.처음부터 물 속을 걸어간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이 암벽지대는 너무 곧추서서 가파르기 짝이 없다.그리고 짙푸른 이끼가 끼어 있어 발을 잘못 디디면 균형을 잃을 것 같았다.험하기는 할망정 밧줄까지 매여 있어 타고 넘을 만했다.모두 다 조심조심 균형을 잡아가며 계곡 가장자리로 내려섰다.

 

김용진 회원이 로프를 잡고 오르다(14:06:20) 

 

로프를 타고 바위에 올라(14:06:35)

 

바위지대를 돌아서면 만나는 짙푸른 소(14:08:38) 

 

저 바위 모롱이를 돌면 2용소가 지척일 테니(14:09:54)

 

성대장바위를 넘어서는 33산우회 김미란(14:12:52) 

 

김미란 씨가 2용소를 돌아 내려간다.(14:17:24) 

 

성대장바위를 넘어 2용소로 다가서는 회원들(14:18:02) 

 

로프를 타고 2용소로 내려서는 김용진 회원(14:18:10)

 

물을 건너자 골 오른쪽으로 큰 바위 하나가 정자처럼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성대장바위였다.용소골에 진을 쳤다는 구한말의 의병장 성대장의 바위였다.성대장바위를 지나 다시 한번 물을 건너 암반 위에 올라섰다. 아! 물길이 끊기고 앞에 훤해지면서 천둥소리 같은 물소리가 천지를 뒤흔든다.오후 2시 19분, 이윽고 2용소에 닿았다. 

 

곤두박질치는 2용소의 물살(14:19:48)

 

폭포처럼 곤박질치고 싶은 유혹-2용소에서 환호하는 김법영 부총무(14:21:50)   

 

2용소 전경(14:22:15) 

 

2용소 아래 모래톱(14:22:21) 

 

2용소를 등진 청마회원들(14:23:44)

 

 2용소는 좌측의 암벽을 타고 내려서야 한다.일단 밧줄을 잡고 암벽 턱으로 내려선 다음 조도(鳥道)같은 에움길을 조심해서 돌아내려야 한다.2용소는 8m쯤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소(沼)로 내리쏟는 직폭도 8m 높이다.직폭 물받이는 타원형의 탕인데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니 탕 안은 소름이 돋을 만큼 검푸른 빛깔을 띄고 있다.하지만 오늘은 용소골의 수량이 줄어들어 폭포미는 반감되었다.폭포 위에서 건너다 뵈는 오른쪽 지계곡이 큰다래지기골인데 그 골 안으로 거슬러 오르면 20미터 폭포가 또 숨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