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향해 비상하는 공룡의 날개짓-강진 덕룡산(07/7/22)<하>
[동봉에서 바라본 서봉과 7봉-덕룡의 본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도의 끝인 해남,강진에는 좋은 산이 많다.월출산,달마산,두륜산,금강산,흑석산,병풍산,수인산-수려하고 아기자기한 산들 일색이다.발을 찢고 손을 뻗어 부지런히 오른다.바위에 붙어 로프를 잡고 오르락내리락,암봉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동과 서로 탁 트인 전경은 시원함과 스릴을 더한다.암봉을 오를 때는 긴장하지만,봉우리에 오르면 그때 그때 새로운 배경과 성취감이 기다린다.카타르시스의 연속이다.
동봉에서 사위를 조망하고 서봉으로 가기 위해 바윗길을 내려간다.발품을 파는 서쪽 방향에서 태양이 비추니 남서쪽으로 굽이치는 거대한 덕룡의 주릉은 푸른 이내에 잠겨 신비스런 색조를 드리운다.특히 역광을 받은 바위들의 푸르스름한 색조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동봉 내리막길]
[동봉을 내려서며 웃음짓는 박순양]
[서봉으로 가기 위해 바위를 오르는 동기들]
[서봉으로 가며 돌아본 동봉]
[로프가 걸린 민탈을 돌아]
[민탈에서 바라본 서봉의 헌걸찬 모습]
[쪼그리기도 하고 로프를 잡기도 하며 민탈을 내려오고]
[가파른 직벽을 꺽쇠를 잡고 오름짓하고]
[서봉 오름길에 돌아본 동봉과 암릉길]
[당겨본 동봉-정수리엔 아직도 친구들이 서성이네]
[서봉을 내려오다 민탈에서 걸음을 멈춘 병진,현영,금구]
[서봉 빗돌을 중심으로 선 김창민,박순양]
동봉에서 잘룩이로 내려오니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연이어진다.바위 틈 사이를 헤집고 훑어 오르내린다.그 바윗길 끄트머리에 이르자 비스듬히 기운 바위 민탈에 로프가 매여 있다.굳이 로프를 잡지 않고도 내려갈 수 있었지만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로프에 의지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민탈이 끝나고 'ㄷ' 자 모양의 꺽쇠가 박힌 직벽길을 내려오니 건너편 바위에도 똑같이 꺽쇠가 박혀 있다.꺽쇠를 잡고 올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가니 서봉(6봉)이다.정수리에도 빗돌이 세워져 있다.
서봉(432.9m)에서 조망을 즐기던 재화가 "산세가 월출산보다 좋은데..."하며 말문을 연다.나도 맞장구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월출은 품이 좁은 반면 덕룡은 품이 넓다.산의 수석미로 치자면 월출이 앞서지만 연이어지는 암릉길로 보면 덕룡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3년 전 10월 친구들과 더불어 주작산을 타본 재화는 주작이 덕룡보다 더 험하고 까탈스럽다고 말한다.두 산 모두 네 발로 올라야 하는데,몸으로 부딛히며 바위와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 뜻에서 종주산행으로서는 덕룡이 월출에 뒤지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입을 모았다.특히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그림같은 섬들의 조망과 상쾌한 해풍은 덕룡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하겠다.
[서봉에서 내려와 석문을 지나고 있는 김창민]
[뒤돌아본 서봉-정길영 동기가 초지로 내려선다]
[서봉과 수양마을 갈림길 사이에 있는 작은 암봉]
[수양마을 갈림길 앞 암봉을 오르는 친구들]
[수양마을 앞 암봉을 오르다 돌아본 서봉과 초지]
[흡사 공룡의 등줄기 같은 바위능선-금방이라도 하늘로 치솟아 오를 듯하다.]
서봉의 민탈을 내려와 석문을 통과하자 짙푸른 초원이 산을 포근하게 감싸며 산꼭대기까지 초록 융단을 깔아놓았다.자그마한 암봉을 하나 넘어서자 눈앞에 눈이 휘등그레지는 장관에 넋을 빼앗긴다.
공룡이었다.덕룡의 산줄기는 날카로운 바위비늘을 세운 거대한 공룡이 웅크리고 있다.당장이라도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키며 하늘로 치솟아 오를 듯 마루금마다 힘이 담겨 있다.이곳이 덕룡산이란 산이름에 가장 걸맞는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나는 덕룡산에 올 때마다 유독 이곳의 풍경에 늘 매료되곤 한다.
[수양마을 갈림길로 가다 돌아본 서봉과 자그마한 암봉]
[수양마을 갈림길,소나무 밑에 있는 재화 뒤로 거대한 용이 꿈틀거릴 듯...]
잠시 뒤,고사리군락지가 있고 수양마을로 내려가는 갈림목이다.먼저 온 재화와 창민,순양이,점자 씨가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다.우리는 여기서 갈증을 축이며 후미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3시 30분,현기를 불러낸다.이제 4봉을 오르고 있다고 한다.기가 막혔다.왜 그리 걸음이 늦어지는지 이러다간 6시를 넘어서야 날머리에 도착할 듯했다.전 원장의 몸상태가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른 건 아닐런지 걱정이 앞선다.아니나다를까 현기의 전화를 받아든 익수가 "신대장,전우성 원장의 상태가 심각해"하면서 목소리가 가라앉는다.5분 뒤,후미 4인방을 빼고 12명의 동기들이 갈림길에 모였다.
그런데 갈림길을 보자 몇 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온전치 않은 병진이가 더 이상 산행은 무리라며 하산하겠다고 한다.이어서 길영이도 탈출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현두와 용효도 하산을 하고자 했다.이성집 총무도 꽁무니를 빼고 심지어는 주력 좋은 대간돌이 전 회장마저 전날의 과음 때문에 저리로 내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쯤 되니 7봉과 8봉을 거쳐 묘지에서 수양마을로 빠지려던 당초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그래도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친구는 재화와 순양이,창민이와 점자 씨 그리고 현영이와 나,모두 6명이었다.절반은 계속 산행이었고 절반은 탈출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탈출조에 낄 것이라 여겼던 현영이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한사코 완주하겠단다.그는 덕룡에 완전히 반했다며 이렇게 멋진 산을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뜻밖이었다.백두대간 첫 구간 지리산을 종주할 때 혈기만 믿고 몸을 만들지 않았던 그는 3보1배를 하며 천왕봉에 올라 끝내 성삼재까지 가지 못하고 세석평전에서 하신하고만 전력의 사나이,현영이가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참으시지..."하고 만류를 해도 막무가내다.나는 그런 그의 정신을 높이사 동참을 받아들였다.하기사 여기서 후미를 기다렸다가 하산하는 시간이나 완주를 하고 수양마을로 내려가는 시간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우리가 먼저 도착할런지도 모를 일이었다."이 멋진 산에 와서 포기는 없다."며 신발끈을 고쳐맨다.1년 넘게 뜸을 매일 실천해왔고 6개월 전엔 내 소개로 몸살림운동도 거르지 않고 행하고 있어 내공미 크게 향상된 듯했다.거의 한 달만에 산행을 한다는 현영이가 대견스럽다.
여기서 나는 현기를 다시 불러낸다.후미가 수양마을 갈림길에서 오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6명의 동기들과 함께 수양마을로 탈출하라고 일렀다.하기사 익수와 현기,전기환 회장은 3년 전 이 코스를 완주를 했으니 중도에 하산하더라도 가시가 걸릴 일은 아니었다.
[공룡의 등줄기를 오르다 굽어본 수양마을 갈림길]
그렇게 우리는 동기들과 헤어졌다.우리 6명은 점점 멀어져가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공룡의 지느러미 같은 암장을 향해 오른다. 다행스럽게도 산길은 암장 왼쪽 아래로 열려 있다.공룡의 목덜미처럼 잘룩한 곳에 이르자 세찬 바람이 몰아쳐 상쾌했다.여기서 7봉과 8봉으로 이어지는 멋들어진 암릉길이 화려하다 못해 현란할 지경이다.
[공룡의 등지느러미에서 바라본 7봉과 8봉에 이르는 현란한 바윗길]
[10미터 바윗길을 로프를 타고 내려서는 현영이]
10미터 가량의 로프를 잡고 바읫길을 하강하여 아기자기한 암릉을 밟아나간다.눈 앞을 막아서는 직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더 가니 갈림길이다.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7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우리는 곧장 왼쪽 가녀린 길을 치고 오른다.드디어 7봉 정수리 암장에 올라선다.정수리 바위에 올라서니 고도감이 상당하다.흡사 공룡의 머리에 올라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왼쪽 사면이 천길 벼랑인 덕룡7봉,그 뒤로 8봉-영주댁이 그 벼랑길을 오른다.]
[ 수직의 7봉을 내려서는 현영이와 순양이]
[7봉 에움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덕룡8봉]
[7봉의 암장 맨 윗부분-곧장 타고 넘는 길도 있으나 대개 왼편 숲으로 들어선다.]
[초지에서 돌아본 7봉-활활 타오르는 촛불이다.
암장 왼쪽,쭈볏 돋아 길게 아래로 늘어선
바위를 끼고 하산길이 열려 있다.]
7봉을 내려서는 바윗길이 섬뜩하다.넝떠러지를 향해 곤두박질 할 듯한 수직의 길이다.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길을 만들고,주의를 기울여 로프를 잡고 조마조마하자 이내 아래다.우리의 마음을 잔뜩 긴장시켰던 7봉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올려다보니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촛불의 형상이다.
수직의 바윗길을 내려서자 다시 초지가 반기고 잘룩이에 다다르자 7봉과 8봉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볼 만하다.덕룡산에서 제일 멋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7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빛나는 바위들,그 밑으로 보이는 초록의 신전리,잘룩이에서 8봉으로 치닫는 능선에는 군데군데 검은 기운을 내뿜은 바위들이 도열해 이채롭다.
[7봉 동남릉을 수놓은 바위군-저 아래로 신전리가 보인다.]
[8봉으로 치닫는 기묘한 바위군]
재화와 점자 씨,순양이와 나는 현영이와 창민이가 7봉을 다 내려올 때까지 갈증을 축이며 잘룩이에서 기다린다.이제 물도 바닥이 나버렸다.그들과 합류한 뒤,서서히 가팔라지는 8봉 오름길을 더터 오른다.계단 같은 바위에 올라서자 흡사 코브라를 닯은 바위가 서 있고 그 왼편으로 8봉 우회길이 트여 있다.점자 씨가 말도 없이 그 바위에 기댄다.이를 높칠세라 나는 셔터를 눌렀다.
[코브라 형상의 바위에 기댄 영주댁-8봉 우회길이 바위 왼쪽으로 나 있다.]
[8봉 오름길에 뒤돌아본 7봉의 장엄한 모습]
[8봉 정수리 암장에서 순양이 너머로 보이는 7봉]
오후 4시 24분,8봉에 올라서서 바위 틈새 동백나무 군락을 지나니 전망바위에 이른다.주변 조망이 일품이었다.첨봉으로 이어지는 덕룡의 부드러운 초원과 수양저수지 건너편 주작의 머리라는 주작산,신전리의 짙푸른 보리밭,멀리는 강진만과 다도해의 섬들.가깝게는 우리가 밟은 7봉의 장엄한 모습.우리는 한동안 이 전망바위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현영이와 창민이는 아직도 8봉에 오르지 못했나보다.
[8봉 정수리 너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8봉의 바위군]
[8봉에서 첨봉으로 이어지는 초원,그 뒤로 주작이 고개를 내민다.]
[8봉 전망바위에서 본 수양저수지와 보리밭,그리고 주작산-신년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다.]
[8봉 능선 위에 솟아난 창검같이 돋아난 바위군]
[8봉 전망바위에서 본 8봉의 정수리-가운데 숲 사이로 내려와야 한다.]
[8봉 아래자락에서 돌아본 8봉의 모습]
갈길이 바쁜 나머지 현영이와 창민이를 보지 못하고 민탈의 전망바위를 내려오자마자 오른쪽 숲 사이로 가풀막진 하산길이 트여 있다.위태로웠던 바윗길은 마침내 끝나고 초원의 품에 안겼다.
[첨봉/수양마을 갈림길에서 당겨본 8봉-자귀나무 뒤로 돌불꽃이 피어올랐다.]
덕룡의 주릉인 첨봉 가는 마루금과 수양리로 빠지는 갈림길에 다다르니 내 키를 훌쩍 넘는 풀이 무성하다.재화와 순양이,점자 씨가 들이닥친다.우리는 그늘진 나무 밑에서 현영이와 창민이를 기다려보지만 지열 탓에 숨이 턱턱 막혔다.차라리 험하기는 할망정 바람을 받으며 바위를 타는 편이 더 나았다.
[첨봉/수양마을 갈림길에서 8봉을 뒤로 한 재화(좌)와 순양이(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8봉 정수리에 창민이의 모습이 잠깐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다.전망바위인 그곳에서 민탈을 조금만 내려서면 하산길이 보일 텐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 듯했다.그렇지,조금 있으려니 현영이가 나를 호출한다.하산길을 찾지 못하겠단다.그래서 창민이가 올라섰던 전망바위에서 바로 내려서면 하산길이라고 일러줬다.그런데 몇 분이 흘렀건만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한참을 기다리니 8봉 왼쪽 아랫자락 숲속에 친구들의 모습이 잡힌다.
[갈림길 주변의 기암]
[수양마을로 하산하는 길목,묘지에 핀 패랭이꽃]
묘지에 이르러 후미가 궁금했다.현기한테 전화를 거니 아직도 서봉 아래턱이란다.그렇다면 수양마을에는 우리가 먼저 도착할 것이다. 4시 36분,무릎까지 휘감기는 풀섶을 헤치고 수양마을을 향해 내려간다.이제까지와 딴판으로 부드럽기 짝이 없는 길이었다.하산길은 여태까지의 고행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중간쯤 내려오다가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세수도 하고 수건도 헹군다.
[묘지를 지나며 올려다본 덕룡의 바위군]
선두에 선 재화,점자 씨와 더불어 완만한 숲속 길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수양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덕룡산 최고의 전망터인 보리밭에 다다른다.푸르름이 넘실대는 보리밭에서 덕룡의 주능선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장관이다.2004년 3월 7일,산행을 마친 동기들과 안사람들은 이곳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칼날처럼 날카로운 침봉들을 올려다보며 과연 저곳을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모르겠다며 놀라움과 감탄사를 연발하던 일이 새삼스럽다.오늘은 지는 해가 주릉에 역광을 드리워 그때만큼은 실감이 덜했지만 그래도 역시 덕룡의 기막한 모습은 넋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양마을 보리밭에서 덕룡 주릉을 등진 재화와 영주댁]
[보리밭에서 바라본 덕룡의 산세]
[덕룡 주능선을 등진 이성집 산우회 총무(2004.3.7)]
보리밭에서 시멘트도로로 내려간다.베이스캠프 조장인 유건이한테 휴대폰을 넣으니 25인승 대절버스도 수양저수지 옆 도로따라 올라오는 게 보였다.한 모롱이를 돌아서니 멋들어지게 손질한 정원이 나오고,그곳 할머니로부터 물 한 바가지를 얻어 갈증을 다스렸다.
[산행날머리 수양마을에서 만난 아름다운 정원]
[수석과 분재,꽃이 조화를 이룬 정원-주인의 심미안을 보는 듯]
유건이 말로는 한규는 경로당에 있단다.대절버스를 경로당으로 돌리니 한규는 거기 평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그를 깨워 마을사람들이 가르쳐준 대로 농로를 따라 차를 몰아 월하마을 경로당에 닿았다.경로당 어른들에게 등산로를 물어보니 두 군데란다.
마을 길을 돌아 곧장 오르니 뜻밖에도 만덕광업소 정문이 나온다.이곳으로 내려오려면 덕룡3봉과 4봉 사이의 하산길올 내려와야 한다.우리는 길을 잘못 들었다.차머리를 돌려 경로당으로 되돌아왔다.
익수한테 다시 휴대폰을 넣는다.날머리를 잘 모르겠으니 도착하면 마을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그렇게 기다리는 틈을 타서 재화와 나는 경로당 세면장에서 재빨리 샤워를 했다.어차피 목욕은 물 건너 갔으니 이렇게라도 대충 몸을 씻는게 좋을 듯했다.
그리고 전 원장을 비롯한 후미4인방이 궁금하여 연락을 해보니 아직도 가파른 계곡 너덜지대를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우리는 차를 돌려 우리가 내려온 수양마을로 돌아왔다.그렇지만 지세로 봐서 아무래도 익수 일행이 내려올 하산 날머리는 아니었다.차를 돌려 수양마을 경로당 쪽으로 내려가는데 왼편 마을 어귀에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그곳도 수양마을이었다.차를 마을 어귀로 몰아 일행을 만났다.익수에게 물어보니 전 원장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산자락까지 올라가라고 한다.
나와 함께 현영이,순양이와 영주댁을 실은 대절버스는 마을 안쪽으로 열린 농로를 따라 산등을 타고 오르니 버스를 돌릴만한 너른 공터가 나온다.물을 준비하고 점자 씨와 함께 등산로를 거슬러 오른다.조금 오르니 전기환 산우회 회장이 터벅터벅 내려온다.얼마나 오르면 후미를 만나겠냐고 하니 20여분 걸릴 거라 한다.
[수양마을로 탈출한 후미를 만나 덕룡 주릉을 등지고
왼쪽부터 조현영,박순양,전우성 동산병원 원장,
전기환 회장,영주댁,후미대장 김현기]
부드러운 등산로를 따라 듬성듬성 조릿대가 군락을 이룬 지점을 거쳐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다다랐다."현기야!" 하고 소리쳐 부르니 저 위에서 대답이 들린다.계곡물이 흐르는 너덜지대를 톺아오르자 전 원장이 스틱에 의지해 육중한 몸으로 다리를 절며 내려온다.정말 반가웠다.
"신 대장,다리에 경련이 와 걸음을 걷지 못하겠다."며 초죽음이다.허벅지 안쪽에 경련과 함께 통증이 온 탓에 기운이 빠져 다리 힘마저 없더란다.선두인 우리가 내려온 대로 완주를 하더라도 4시간이면 충분한데 벌써 7시가 넘었으니무려 3시간이나 지체된 셈이다,그러니 그의 고통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깔고 전 원장을 편히 눕게한 뒤,발가락과 발목의 근육을 풀고 장단지와 허벅지에 뭉친 근육을 풀어줬다.마지막으로 원기가 떨어져 있으니 공명을 틔워줘야 한다.배꼽 밑 5cm 지점의 공명을 엄지로 누르니 질겁을 한다.대개 공명이 막히면 의욕이 감퇴하고 힘이 떨어지는 법.두 차례 공명 틔우기를 실시했다.전 원장은 일어서면서 다리 근육이 많이 풀려 부드럽다고 한다.계곡길을 내려서기가 쉽지 않았다.아직도 다리에 힘이 없으니 조심스럽게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 전 원장과 후미대장 김현기-그 뒤로 덕룡이 비꼈다.]
7시 20분,드디어 대절버스가 있는 공터에 다다랐다.그곳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전 원장이 무사히 내려온 것을 축하해줬다.전 원장은 "나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해요.그렇지만 큰 교훈을 얻었지."하며 홍조띈 얼굴로 반색을 한다.우리는 덕룡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서서히 어스름이 밀려온다.공룡의 이빨처럼 치솟은 주릉은 땅끝마을을 향해 날개짓을 하며 비상을 서두르는 듯했다.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남도 백반으로 유명한 설성식당은 시간이 늦어 가지 못하고 강진 읍내에 있는 짱뚱어로 이름난 동해회관에서 산행뒷풀이를 가졌다.이번 덕룡산 산행은 우여곡절로 점철된 절반의 산행이었지만,무사히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퍽이나 다행스러웠다.
근자에 산우회 산행에 동참해온 영주댁은 "바위를 타고 나면 몸이 가볍죠.날아갈 것만 같아요"라고 실토하곤 한다.그건 아마도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이 몸안의 탁기를 걸러내준 때문은 아닐런지 모르겠다.흙산도 좋지만 우린 때때로 바위산을 접해야 할 것이다.그럴 때 음양의 조화로운 산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끝으로 3년 전,이곳을 찾은 전기환 회장의 아내 박영란 씨가 덕룡산을 두고 던진 말이 귓전에 맴돈다."산을 높이로만 논하지 말라!"는 경구를....